평범한 밀가루 대리점 사장이었던 김혁 대표는 올해로 12년째 소외 계층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국수 나눔을 하고 있다. 시원한 오이 냉국수 한 그릇이 생각나는 계절, 그가 전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국수 이야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의 어느 날,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나눔 잔치가 열린 강북새희망교회 뒷마당에는 뜨거운 국수물이 팔팔 끓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날씨에 국수 삶느라 여념이 없는 이들은 ‘아름다운 국수가게’의 김혁 대표와 자원봉사자들이다. 밀가루 대리점을 운영하던 김혁 대표는 올해로 12년째 어려운 이웃과 소외 계층을 위한 국수 나눔을 하고 있다. 나눔의 시작은 자투리 만두피에서부터였다.
만두 공장을 드나들며 무심코 지나쳤던 자투리 만두피가 왜 그날 그렇게 눈에 밟혔는지 모르겠단다. 다시 반죽해 칼국수 면으로 태어난 만두피들은 곧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해졌다.
“3인 가족을 기준으로 해서 3인분씩 생칼국수 면을 비닐봉지에 담아드렸어요. 처음에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다 한번은 지인이 사는 의정부 임대아파트에 가서 나눠드리게 됐는데, 몇 번 정기적으로 가다 보니 오는 시간에 맞춰 줄을 서 계시더라고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에게 든든한 한 끼가 되는구나 싶어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게 됐죠.”
그때부터 김 대표는 전국 방방곡곡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대리점 운영은 아내에게 맡겼다. 장애인 시설부터 복지관, 임대아파트, 노숙인, 독거노인, 다문화 가족, 새터민들까지, 든든한 국수 한 끼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주저 없이 찾아가 아낌없이 나눴다. 요즘도 1주일에 4, 5일은 외부 봉사 일정이 있다고 하니 그 인기가 여느 연예인 부럽지 않다.
“나눠드린 칼국수 면을 끓이지 않고 현장에서 바로 드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탈나지 않으실까 걱정도 됐고요. 생면 맛을 즐기시기도 한다는데, 아무튼 국수를 끓여드리는 게 더 낫겠다 싶어 자연스럽게 국수 한 그릇이 됐죠.”
매일 어마어마한 양의 국수를 삶으며 “이러다 국수가게 내는 것이 아니냐”라던 우스갯소리는 현실이 됐다. 4년 전 서울 성북구에 작은 공간을 얻어 ‘아름다운 국수가게’라는 간판을 내걸고 더 많은 이웃들을 만나고 있는 중이다. 메뉴는 잔치국수와 비빔국수 2가지. 3천원이면 누구나 배불리 국수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나는 수익금은 국수 나눔 봉사에 쓰인다. ‘아름다운 국수가게’의 주방장들은 자원봉사자들이다. 처음 2명 남짓이었던 봉사자들은 이제 50명으로 늘어 국수 맛을 책임지고 있다. 요즘에도 만두피로 국수를 만들까?
“경제가 어렵다 보니 이제 만두 공장에서도 만두피를 재반죽해 사용해요. 소식을 들은 대한제분이 국수 면을 지원해주고 있어요. 저희에게는 전화위복이 됐죠. 좋은 일은 전염성이 강해요. 한 번 봉사를 나갈 때마다 적게는 30인분, 많게는 1천5백 인분을 만드는데 처음 국수를 받으러 오셨던 분들이 이제는 봉사자가 돼 부족한 일손을 도와주고 계세요. 정말 칭찬받아야 할 분들은 그분들이에요.”
10년 넘는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오며 힘든 일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자투리 만두피로 국수를 만든다고 못 먹는 걸 주는 건 아닌가 하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나누며 얻는 행복과 즐거움 때문이었다.
“국수를 한 번 받으시고 더 받으시려고 모자 쓰고 다시 오시고, 선글라스 끼고 다시 오시기도 해요. 다 알지만 몇 번이고 드려요. 국수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취약 계층을 찾아다니다 보니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참 고마워하세요. 따로 말이 필요 없어요. 찾아가면 반겨주시고 또 고마워하신다는 걸 느낌으로 압니다. 그것만으로도 저희는 참 행복합니다. 그저 맛있게 드셔주시면 더 바랄게 없어요(웃음).”
김이 모락모락 나던 뜨거운 국수 면발은 얼음 샤워 후 시원한 오이 냉국수로 변신했다. 한여름의 더위와 마음의 허기짐까지 잊게 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국수 한 그릇이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김성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