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리에서 ‘엄마’를 추억하다…신주쿠 골든가
골든가(Golden街). 세 평짜리 바(Bar)가 다닥다닥 들어선 이곳에 어쩌다가 ‘황금의 거리’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가부키초가 화려한 환락가라면 이곳은 대화를 원하는 이들이 찾는 조용하고 은밀한 공간이다. 골든가 대부분의 가게는 단골손님만 받는다. 처음 오는 손님은 단골의 소개를 받아야 올 수 있다. 정해지진 않았지만 암묵적인 회원제로 운영된다고 볼 수 있다. 손님 대부분은 연극인, 작가, 출판 편집자들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술 한 잔을 나누며 세상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곳은 암시장, 이후 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매춘가였어요. 1958년 매춘방지법 시행 후 술집들이 들어서며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했죠. 골든가는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좁고 지저분해요. 그런데 그 분위기가 오히려 예술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듯해요.”
김민정씨의 엄마는 골든가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손님으로조차 진입하기 힘든 이곳에, 이방인이었었기에 어떻게 입성할 수 있었을까?
“엄마는 원래 술을 마시지 못했어요.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고 숨이 가빠졌죠. 그런 엄마가 골든가 바의 여주인이 된 건 ‘가르강튀아’라는 바에서 만난 ‘단코 아줌마’와 친해진 우연한 인연 때문이었어요.”
마흔이 넘었지만 아름답고 무엇보다 사교적이던 그녀의 엄마는 가사도우미보다는 가게를 여는 쪽이 성향에 맞았다. 뒤늦게 칵테일 만드는 법을 배웠고 생맥주 따르는 법을 익혔다. 그렇게 시작한 가게 덕분에 그녀와 그녀의 남동생은 대학까지 졸업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골든가에는 메뉴판이 없는 가게도 흔해요. 손님의 요청에 따라 그날 있는 재료로 손맛으로 차려낸 음식을 내놓는 집도 있죠. 만화 「심야식당」에 등장하는 ‘메시야’처럼 말이죠.”

사교성이 넘쳐 누구에게든 밝고 친절했던 엄마의 젊은 시절.
“실제로 골든가에 ‘메시야’란 가게는 없지만 인간미 넘치는 분위기와 소소한 대화 그리고 따뜻한 음식은 그대로예요. 골목골목을 차지한 좁은 가게들이 꼬마전등을 켜놓고 손님을 받지요. 손님들은 오늘 있었던 일을 풀어놓고, 주인은 손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줍니다. 때로는 같이 웃다 울고, 싸우고 충고하고, 멀어졌다 다시 가까워지죠.”
운이 좋으면 저명한 작가를 마주할 수도 있는 곳이다. 트랜스젠더와 성인 영화 여배우를 만날지도 모른다. 이곳의 주인장들은 손님들이 어떤 직업을 갖고 있든 동등하게 대하는 법을 알고 있다. 서로가 그리운 사람들이 저녁이면 하나둘씩 몰려드는 곳, 골든가는 도심 속 오아시스다.
파인트리, 엄마의 심야 식당
엄마가 가게를 열 당시 김민정씨는 고교생이었다. 사춘기였던 그녀는 “술집을 열겠다”라는 엄마의 말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당시 저는 골든가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창피할 따름이었죠. 혹시라도 학교에 알려지면 친구들이 싫어하거나 놀리지 않을까 두려웠어요. 다행히 일본은 직업에 대한 차별이 적은 분위기라 제가 걱정하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엄마는 파인트리에서 한국 주부로서 갈고닦은 요리 실력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김밥을 말고 돼지고기 장조림을 조렸다. 가지런히 달걀도 넣었다. 일본에서 먹기 힘든 게장이며 삼계탕도 만들었다. 가족에게 먹이듯 재료도 싱싱하고 건강에 좋은 것만 고집했다. 파인트리는 골든가에서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가게로 소문이 났고 바가 아닌 음식점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파인트리는 엄마만의 심야 식당이었어요. 손님 대부분은 기자와 편집자였어요. 손님들은 엄마의 이름 가운데 자에 존칭을 붙여 ‘영상’이라고 불렀어요. 엄마의 시원시원하고 밝은 모습은 그야말로 영(Young)했죠.”

파인트리를 이어받아 현재 운영하고 있는 아저씨.
“어느새 저도 학교가 끝나면 교복을 입은 채 달려가곤 했어요. 글을 쓰고 편집하는 손님들은 내게 좋은 선생님이었어요. 교과서를 펴놓고 가게에 앉아 한자 수업을 들었죠.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를 일본어로 읽는 법을 알려준 건 바의 손님들이었어요.”
물론 한국 여자 홀로 가게를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국인인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텃세를 부리는 인근의 점주들도 있었다.
“엄마에게 ‘조센징’이라는 단어를 서슴없이 내뱉는 우익 성향의 손님도 있었고, 엄마의 말 한마디에 토라져서 발길을 끊는 손님도 있었어요. 손님들은 고마운 존재지만 때로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게 필요했죠. 엄마와 저는 그렇게 타국 생활을 통해 사람 대하는 법을 조금씩 터득해갔어요.”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가게. 그녀는 20년간 매일 저녁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서서 일했다. 엄마는 ‘주인이 앉아 있으면 절대로 손님이 오지 않는다’라고 믿었다. 그녀는 손님들의 허기를 채워주었지만 정작 본인은 하루에 한 끼 먹는 생활을 했다. 몸에 문제가 생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거리에서 ‘엄마’를 추억하다…신주쿠 골든가
암 투병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손님들은 팔을 걷어붙였다. 그들은 자선 파티를 열어 그녀의 병원비를 지원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외롭지만은 않았던 이방인의 삶을 뒤로하고 그들의 곁을 떠났다. 그녀의 모든 것이었던 파인트리는 「심야식당」의 남자 주인장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저씨가 3일 내내 끓인 카레나 직접 바다에 나가 잡은 물고기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골든가…, 그저 우리에겐 낯선 장소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김민정씨는 한때 그곳에서 따스한 정을 나누었던 한 한국인이 있었다는 사실만 어렴풋이 알아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기획 / 이유진 기자, 김민정(일본 통신원) ■사진 / 김아름(프리랜서) ■참고 서적 / 「엄마의 도쿄」(김민정 저, 효형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