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램블린이 제안하는 핀란드식 행복 찾기

미셸 램블린이 제안하는 핀란드식 행복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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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바빠서 행복이란 단어를 떠올릴 겨를도 없었던 우리네 인생. 문득 울컥하고 지금 잘 살고 있냐고 스스로에게 물을 때면 씁쓸한 기분이 들곤 한다. 하지만 핀란드에서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연구한 미셸 램블린은 이 말을 달고 산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 자신이 행복한 이유를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도 했다.

미셸 램블린이 제안하는 핀란드식 행복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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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연구하는 남자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부부의 집 곳곳에는 북유럽의 감성이 그대로 묻어났다. 심플한 가구 배치와 넓은 부엌, 군데군데 놓인 화려한 패턴의 소품들이 눈에 띈다. 오븐에서는 멀리서 온 손님을 위해 북유럽인 남편이 직접 준비했다는 스위스 전통 빵이 구워지는 중이었고, 식탁엔 핀란드에서 가져온 예쁜 식기들이 잘 차려져 있다. 고소한 버터 향을 맡으며 잠시나마 유럽에 온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이 들었던 만남. 이달 ‘세계인의 행복 엿보기’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에서 7년간 그들의 행복을 연구한 미셸 램블린(33)의 이야기다.

스위스인 어머니와 프랑스·캐나다 국적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덕분에 세 나라의 국적을 모두 갖게 된 이 남자는 8년 전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 여성과 결혼하는 형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쉽게 접하지 못했던 동양 문화가 어색할 법도 하지만 ‘형수의 나라’는 어딘가 모르게 낯설지 않았다.

“저는 두바이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어요. 석유 시추 관련 일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온 가족이 그곳에서 살았죠. 서울에 왔을 때 두바이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기후나 환경은 전혀 달랐지만 도시가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풍경은 같았거든요. 제 고향과 어딘가 닮은 모습에 끌려서인지 처음부터 한국이 좋았어요.”

한 달 남짓한 여행을 끝내고 당시 대학생이었던 그는 학업을 마치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년 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정착해 신촌의 한 어학원에서 강사로 일을 시작했다.

“그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어요. 당시 대학원을 다니던 그녀는 정부 초청 장학생에 뽑혀 핀란드 유학을 준비하는 중이었죠. 아직도 기억나요. 오후 2시 회화반 학생(웃음)! 결석하기 딱 좋은 시간인데 지각 한 번 없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참 예뻤어요. 서울 맛집 좀 소개해달라는 핑계로 데이트를 시작했죠.”

원어민 교사와 학생으로 시작된 둘의 만남은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그는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아내와 함께 핀란드로 유학을 떠났다.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그는 세계적인 수준의 인문·사회학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헬싱키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행복을 연구할 생각은 없었다. 핀란드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닮아가면서 일과 휴식의 균형을 맞출 줄 알게 됐고, 이웃 커뮤니티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다 보니 행복감은 커졌고 삶은 만족스러웠다. 과연 어떤 환경이 자신을 변화시켰을까 되돌아보며 핀란드인의 행복 조건을 찾기 시작했다.

“헬싱키 대학에서 실용철학을 전공했어요. 철학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삶을 사는 법을 찾는 학문이에요. 본인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행복하길 바라는 핀란드인을 보면서 연구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7년간 핀란드인의 행복을 찾고, 보고, 경험한 뒤 한국으로 돌아온 그가 아내와 함께 한 권의 책을 냈다. 「핀란드 슬로우 라이프」다. 속도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핀란드인의 특성을 담은 제목이다. 그가 선물이라며 귀여운 사인이 담긴 책을 건넸다.

엄마라서 행복한, 핀란드
미셸 램블린이 살았던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는 서울이나 뉴욕, 도쿄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는 아니다. 인구 1백만의 아기자기한 동네지만 탄탄한 사회 안전망과 교통, 문화의 중심지로 매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10대 도시’로 손꼽히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이곳 엄마들의 행복 지수는 무려 세계 1위다. 지난해 ‘세이브더칠드런’에서 발표한 ‘엄마 지수’에서 176개국 중 최고점을 받았다.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엄마가 아이를 키우며 살기 좋은 나라’로 인정받은 것이다.

“핀란드는 아빠의 육아휴직을 시작한 최초의 국가예요. 그만큼 여성과 육아를 위한 제도가 잘 정비돼 있습니다. 아직도 유리천장 때문에 여성의 고위직 승진이 어려운 한국과 달리 정치적으로 여성의 힘이 더 강한 나라이기도 하죠. 최초의 여성 대통령과 장관도 핀란드에서 배출했답니다.”

미셸 램블린이 제안하는 핀란드식 행복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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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임신부는 출산 전 신생아를 위한 육아 필수품이 모두 들어 있는 ‘엄마 상자’를 선물받는다. 이후 아이가 태어나면 만 17세가 되기 전까지 매달 아동 수당을 받는다. 워킹 맘들은 아이가 아프면 한 달 중에 4일은 별다른 보고 없이 쉴 수도 있다. 아픈 아이를 두고 일을 하러 가야만 하는 엄마의 마음을 생각해 나온 정책이다. 엄마의 마음을 찰떡같이 알아주는 세심한 배려에 입이 딱 벌어진다.

핀란드의 안정된 교육제도도 엄마들의 행복에 크게 기여한다. 부모들이 공교육을 신뢰하니 자녀교육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다. 아이들의 머리 위를 빙빙 돌며 모든 것을 관리하는 ‘헬리콥터 맘’이나 교육 커리큘럼까지 직접 짜주는 ‘매니저 맘’이 이곳엔 존재하지 않는다.

“친구의 딸이 어린이집에 다니던 때였어요. 교사가 학부모 상담을 요청해 갔더니 세 살이면 숫자 3까지만 알면 되는데 아이가 10 이상을 알고 있다며, 혹시 집에서 지나치게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는 게 아니냐고 묻더래요(웃음). 그러고는 선행학습 없이 놀이하듯 자연스럽게 숫자를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달라는 주의를 받았대요. 한국과는 꽤 다른 모습이죠?”

핀란드에는 성적표도 없다. 교사가 “이번 학기에는 수학을 좀 더 공부했으면 좋겠다” 정도의 피드백을 줄 뿐이다. 아이들을 객관적인 지표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누가 잘하고 못하고는 크게 중요치 않다.

“인구가 5백만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에서 경쟁은 별로 효과적인 수단이 아니에요. 싸우는 것보다 협동하는 게 훨씬 좋은 결과를 만드니까요. 반면 한국은 좁은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다 보니 경쟁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좀 바뀔 때도 되지 않았나요? 1970, 80년대를 지나며 한국 사회가 충분히 안정화됐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가 여담으로 한 이야기가 떠올라 털어놓자면 핀란드 가정집에는 아이들 공부방도, 흔한 개인용 책상도 없다고 한다. 대신 식탁을 크게 만들어 부모와 아이가 함께 대화도 하고 간식도 먹으며 자유롭게 공부한다. ‘공부 말고 다른 일은 절대 안 돼’라고 말하는 듯, 비좁은 한국의 독서실 책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그의 고백에 지난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독서실 스탠드를 켜야만 공부가 되는 줄 알았던 무지했던 옛날이다.

어디서 사는 게 왜 중요하죠?
요즘 그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왜 그 좋은 핀란드를 떠나 한국으로 왔냐는 질문이다. 서울도 아닌 내륙 한가운데, 대구에 살고 있는 북유럽인 남편의 존재가 여러 사람에게 흥미롭게 느껴진 까닭이다. 올해 초 아내 나유리씨가 대구 계명대학교 공예디자인과 교수로 임용되면서 부부는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헬싱키 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아내와 함께 지내며 남은 논문 작업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어디서 산다는 게 중요한가요? 누구와 어떻게 사는 게 더 중요하죠. 핀란드에서 보낸 7년 동안 도시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대안적인 삶을 배웠어요. 그걸 아내의 나라에서 실현해보고 싶습니다. 논문 작업이 끝나면 한국의 학계에서 일할 생각이에요. 이곳에서 아이를 낳고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

핀란드인들의 행복 지수가 높은 이유는 그들 스스로가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도시 전체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서로 격려하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나눈다. 그는 북유럽에서 살기만 하면 행복할 것 같다는 애교 섞인 투정은 이제 그만하라고 따끔하게 충고한다. 중요한 것은 삶의 장소가 아니라 자세라는 얘기다.

“핀란드의 겨울은 정말 혹독해요. 11월부터 4월까지는 오후 2시만 돼도 어둠이 찾아오죠. 처음엔 그 긴 겨울을 어떻게 보낼까 걱정했는데, 핀란드 사람들은 정말 활동적이더라고요. 스키, 보드, 크로스컨트리를 비롯해 온갖 동계 스포츠를 즐기면서 살아요. 주어진 환경을 불평하는 게 아니라 이용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누구든, 어디서든 행복할 수 밖에 없을 거예요.”

미셸 램블린이 제안하는 핀란드식 행복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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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각종 기관에서 발표하는 행복 지수를 보면 한국은 늘 하위권이다. 높은 자살률과 극심한 빈부 격차, 불안정한 사회 시스템을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행해 보이진 않았을까.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행복 지수를 맹신할 필요는 없어요. 주관적인 감정을 수치로 나타내는 것 자체가 불완전한 일이랍니다. 행복을 1~10까지 나누었을 때, 서양 사람들은 정말 좋으면 10을 선택해요. 반면에 동양 사람들은 보통 7, 8이라고 말하죠.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표현하기보다는 예의와 체면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음양이 공존하듯,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주 행복할 때도 언제 불행이 올지 모르니 겸손해지는 거죠. 이런 문화적인 배경 때문에 한국의 행복 지수는 낮게 측정될 수밖에 없어요.”

거창한 행복을 좇지 마라. 그가 우리에게 전하는 행복 비결이다. 핀란드 사람들은 별 욕심이 없다. 가족과 따뜻한 저녁을 먹는 것에 감사하고 근사한 여름휴가를 떠나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소박한 삶을 산다.

“주위의 한국 친구들을 보며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좀 더 일하면 돈도 많이 모을 거고, 그때가 되면 여행도 많이 다닐 거고, 그래서 몇 년 뒤엔 훨씬 행복해질 거야’라며 미래의 행복을 좇는 사람이 많거든요. 미루지 마세요. 가족과 연인, 친구와 많은 시간을 보내세요. 누리세요. 당신의 현재를!”

인터뷰 말미 미셸 부부는 대구에 오면 꼭 가야 하는 곳이라며 50년 전통 ‘납작만두’ 가게로 기자를 데려갔다. 허름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만두피에 당면소를 넣고 투박하게 부쳐낸 만두에 고춧가루를 살짝 뿌리고, 간장을 흥건히 둘러 한 접시를 뚝딱 해치웠다. 서울에 가면 이 맛있는 음식을 못 먹을 테니 발이 안 떨어진다며 괜히 호들갑을 떨었다. 두 사람이 껄껄 소리를 내며 웃는다. 그가 말한 행복이 이런 것 아니겠는가. 3천원짜리 만두 한 접시가 주는 기쁨을 알고 감사히 먹는 것, 행복하다고 소리 내 표현하는 것 말이다.

1 스위스 전통 빵인 좁프를 만들고 있는 미셸 램블린. 2 핀란드에서 살 때부터 사용한 찻잔들. 3 8년 차 부부의 추억이 담긴 액자.

■글 / 서미정 기자 ■사진 / 안지영 ■참고 서적 / 「핀란드 슬로우 라이프」(나유리·미셸 램블린 저, 미래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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