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파출소 장준기 경위 노숙인들과 함께한 15년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

서울역 파출소 장준기 경위 노숙인들과 함께한 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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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무서운 경찰 아저씨. 하지만 웃을 때면 누구보다 푸근한 미소를 보이는 서울역 파출소 장준기 경위는 서울역 노숙인들 사이에서 ‘형님’으로 통한다. 2000년 서울역 파출소로 발령을 받으며 첫 인연을 맺은 뒤 노숙인들과 동고동락해온 지 올해로 15년째를 맞은 그를 만났다.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서울역 파출소 장준기 경위 노숙인들과 함께한 15년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서울역 파출소 장준기 경위 노숙인들과 함께한 15년

“맨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서울역은 IMF 이후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어요. 아침이면 여기저기 술병이 널려 있고 출퇴근 시간에는 역 주변 통행이 힘들 정도였죠. 경찰관들이 다들 할 일이 많은데 노숙인들까지 관리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때부터 아침 일찍 노숙인들을 깨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됐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서울역 파출소는 남대문경찰서 관내에서도 일이 많고 힘든 지역으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특히 술을 마시고 문제를 일으키는 노숙인들이 많았던 터라 이를 관리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술 마시고 싸우는 일이 다반사였죠.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지만 역 대합실 안에서 난동을 부리는 일도 많았고요. 당시에는 노숙인이 행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난동을 부릴 때만 경찰이 개입해서 해결하는 수준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더라고요.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지하도에 있던 무료 급식소로 내려가 노숙인 한 명 한 명을 대면하는 방법을 택했다. 처음에는 밥맛이 떨어진다느니, 기분이 나쁘다느니 등등 냉대도 심했다. 하지만 곧 진심으로 말을 걸어오는 그에게 노숙인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누구나 살다 보면 힘든 사연들이 있잖아요.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에게도 많은 상처가 있다는 걸 알았죠.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이발을 생각하게 됐어요. 제가 형제가 넷인데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직접 저희 형제들 머리를 깎아주셨거든요. 그때 생각이 나 직접 ‘바리캉’ 3개와 가위 10개를 사서 이발을 해주기 시작했어요.”

거리를 집 삼아 사는 사람들, 한여름에도 두꺼운 옷을 겹겹이 껴입은 채 날카로운 가시를 세운 그들도 결국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이발을 통해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하며 이런저런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응어리가 풀리는 듯했다. 노숙인들에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나서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다 보니 어느새 단단한 신뢰가 쌓이게 됐다.

“노숙인들 중에는 주민등록이 말소됐거나 사망신고가 돼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지금은 시스템상 여의치 않아졌지만 전에는 전국 파출소에서 신원조회를 통해서 가족을 찾아주는 일도 많았어요. 고아로 자란 탓에 호적이 없었는데 50년 만에 호적을 만들어준 적도 있어요. 주민등록증이라도 있으면 일도 하고 통장 만들어 저축도 하고 싶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1년간 법원과 구청을 찾아다니며 호적을 만들어줬어요. 가족 연락처를 파악해 명절에 대신 안부의 문자메시지를 띄워주기도 하고요. 이번 추석에도 몇몇 가족에게 안부를 전해주었지요.”

일명 ‘대포폰’이나 ‘대포차’, ‘대포통장’ 등 명의 도용과 국제결혼 사기 범죄에 노출돼 있는 노숙인들을 위한 법률적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노숙인들과 가까워지다 보니 웃지 못할 일들도 많았다고. 파출소 앞까지 택시를 타고 온 한 노숙인이 “우리 형님이다”라고 해 대신 택시 요금을 내는 일도 있었고 일부러 멀리서 장 경위를 찾아 서울역으로 오는 노숙인들도 있었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형님” 하며 먼저 손을 내밀고 반갑게 맞이하는 이들을 보면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늘 만나면 반가워하고 잠깐이라도 안 보이면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하고, 서로를 살피며 점점 더 좋은 변화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노숙인들의 85~90% 정도는 노숙만 할 뿐이지 남한테 해코지를 한다거나 크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요새는 청소 봉사 등 자립 의지를 갖고 노력하는 노숙인들도 많고요. 노숙인들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이상하게 보거나 또 동정심을 갖지 않아도 됩니다. 자연스럽게 우리 이웃 중 한 명으로 대해주셨으면 해요.”

장 경위는 그간 노숙인들을 관리해온 전문성을 인정받아 원할 때까지 해당 지역 근무를 계속할 수 있게 됐다. “전문성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라며 소감을 전하는 그는 노숙인들을 위해 매년 서울역 파출소로 옷과 기증품을 보내오는 고마운 이웃들에게 전하는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함께 사는 이웃을 생각하는, 작지만 큰 도움들로 다가오는 계절이 두렵지 않다고 말이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안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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