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장의 초상화, 유난순

The Lady

두 장의 초상화, 유난순

카페의 볕 좋은 테라스석에는 유아용 식탁 의자에 앉은 아이의 밥을 챙기는 엄마들과 노트북으로 작업 중인 젊은 여성 그리고 모녀로 보이는 한 쌍이 있었다. 약속보다 이른 시간인데다 식사를 마친 것으로 보이는 빈 접시를 앞에 두고 있었지만 「엄마의 초상화」의 주인공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다.

[The Lady]두 장의 초상화, 유난순

[The Lady]두 장의 초상화, 유난순

다시 그린 엄마
「엄마의 초상화」(이야기꽃)라는 제목의 그림책 마지막 장을 넘기자마자 출판사로 전화를 걸었다. “작가가 아니라 작가의 어머니를요?” 하고 반문하는 편집자를 거쳐, 유지연(35) 작가를 통해 그림책 속 주인공 ‘미영씨’의 인터뷰 승낙을 받을 수 있었다. 동양화를 전공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유 작가는 첫 창작 그림책의 주인공을 엄마로 삼았다. “덤덤하더라고요. 내 마음을 들킨 것 같기도 하고….” 어머니 유난순씨(63)가 전하는 소감의 끝은 웃음으로 번졌다.

‘엄마는 내가 그림 그리는 걸 자랑스러워하지만, 미영씨는 내가 그린 초상화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엄마의 초상화」 중에서

유 작가가 엄마의 첫 초상화를 그린 것은 대학시절 학교 과제전을 앞두고 그동안 엄마를 한 번도 그려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다. 영광스럽게도 그림을 사겠다는 이가 있었지만 엄마에게 선물할 거라며 집으로 가져간 그 귀한 초상화를 받아든 주인공의 첫마디는 “나를 왜 이렇게 그렸느냐”였다.

“그때는 제가 젊었고요, 50대 초반이니까 예쁘게 표현해주길 바랐죠. 너무 리얼하게 표현한 게 좀 그렇더라니까요(웃음).”

딸의 당황함과 서운함이 잊힐 무렵, 프랑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의 손에는 두루마리 종이가 한 장 들려 있었다. 몽마르트 언덕에서 그려온 ‘새 초상화’였다. 그것이 정말 마음에 들었던지 엄마는 “왜 내가 그린 초상화는 안 걸어두느냐”라는 딸의 볼멘소리에도 분홍색 액자에 담아 눈에 잘 띄는 벽에 걸어두었다.

“화가가 서양인이다 보니 그림도 서양인인 거예요. 그래도 전 좋았어요. 제 눈에는 예뻤거든요. 성의는 좀 없지만 일상에 찌든 모습이 아니라 여행 다니면서 멋 부린 제 모습이 마음에 들었어요. 물론 나도 꾸미면 그거(딸이 그린 초상화)보다는 낫겠지, 하는 자신감도 있었던 것 같고요(웃음).”

시간은 또 흘렀다. 한 번의 이사가 있었고, 액자 속에 고이 모셔놓았던 프랑스제 초상화의 행방이 묘연해진 2014년, 유 작가는 엄마를 다시 화폭에 옮겼다. 그렇게 탄생한 「엄마의 초상화」를 작가는 ‘다시 그린 초상화’라고 부른다.

“(첫 초상화는) 요철지에 구멍을 뚫어서 공판화 기법과 비슷하게 작업했어요. 그렇다 보니 표면이 울퉁불퉁하잖아요? 그런 굴곡진 질감에서 엄마의 세월, 엄마 하면 흔히 떠올리는 희생 같은 것을 표현했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 엄마가 싫어하셨을 만하더라고요. 제가 전형적인 엄마상을 강요한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5년 전 결혼해 주부가 된 딸은 세 뼘쯤은 무르익은 감정을 붓에 실었다. 그렇게 다시 탄생한 그림책 속 엄마의 이름은 ‘미영씨’라고 붙였다. ‘영원한 아름다움’이라는 뜻을 담아서.

유지연 작가가 그린 엄마의 첫 초상화

달라도 너무 다른 모녀
그 여행은 엄마의 세 번째 프랑스행이었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뤄지고 여행객이 증가하던 20여 년 전 호주를 시작으로 1년에 두 번 정도는 꼭 여행을 다녔다. 예고생이던 유 작가가 고3을 코앞에 두고 있었을 때도 엄마는 유럽 패키지 여행객의 일원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친구들 엄마와는 좀 다른 엄마라는 것을 유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감지하고 있었다.

“어릴 때는 엄마가 좀 엄마다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엄마들이 학교에 도시락이나 준비물 가져다주러 오실 때가 있잖아요. 엄마도 다른 엄마들처럼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았으면 했거든요. 엄마한테 얘기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전 그래서 엄마가 학교 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웃음).”

유난순씨는 “(그때는) 이해를 못했던 거지”라며 담담하게 웃었다. 딸의 기억 속에 엄마는 집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밖에 나갈 때는 한껏 치장하는 이미지로 남아 있다. 같이 쇼핑을 다니다가 “어머니가 참 멋쟁이세요”라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 것이 결혼을 하고 나서였다고.

“제가 원하는 엄마의 상과 실제 엄마가 충돌한 것이 초상화였던 거 같아요. 그림은 작가의 시선으로 담기잖아요. 제가 계속 그런 시선으로 엄마를 바라봤기 때문에 엄마의 이면, 엄마의 욕망, 엄마의 자아… 이런 것들에 대해선 궁금해하지 않았던 거죠.”

해도해도 끝이 없고 공들인 티도 안 나는 살림살이를 하면서 딸은 비로소 내가 엄마의 역할을 너무 당연하게만 받아들이고 살았나, 하고 돌아볼 수 있었다. 1년간 영유아를 가르치는 일을 했던 것도 도움이 됐다. 살림과 아이를 키우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하고 말이다. 영 손에 붙지 않던 집안일이 익숙해지고 엄마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면서 딸은 엄마에게 느꼈던 묘한 이질감을 거둬낼 수 있었다. 인터뷰 중 유 작가는 ‘참회’라는 낯선 단어를 꺼냈다. 그런 말을 감히 입 밖으로 낼 수 있다는 건, 더 이상 모녀 갈등의 앙금이 남아 있지 않다는 뜻으로 들렸다.

“어려서는 무척 순수하고 표현도 잘하고 속이 깊은 아이였어요. 엄마, 아빠가 여행을 가도 보채지 않았어요. 중학교까지는 그러다가(웃음) 고등학교, 대학교 가면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죠.”

참 다른 모녀였다. 외모부터 옷 고르는 취향까지 어느 것 하나 곱게 포개지는 것이 없었다. 소녀 취향인 엄마에 반해 딸은 입맛조차 아저씨 같았다.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아 쌓여가는 오해는 높은 벽으로 자라났다. 사회활동으로 바쁜 엄마가 싫었지만 딸은 내색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렇게 바쁘게 사는 것이 아이를 위한 거라고 여겼다.

“그렇지 않으면 자식한테 집착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제 시간을 갖고, 아이가 고등학교 때 여행도 다녔던 거 같아요. 아이에게 집착했다가 나중에 ‘너 때문에 내가 지난 세월을 희생했다’ 이런 얘기는 하기 싫었거든요.”

유 작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미안했던 순간순간들이 자꾸만 떠오른다고 했다. 엄마는 조용히 냅킨을 집어 들어 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같이 눈물바람을 하기보다는 입꼬리를 살짝 올린 여유 있는 표정의 엄마를 보니 이들 모녀의 입에서 여러 차례 등장했던 ‘이해’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우울하거나 속상할 때 털어놓으면 딸이 저를 다독거려줘요. 그때 이제 딸이 어른이 다 됐구나, 하고 느끼죠. 어렸을 때는 몰랐던 동질감도 생기니 마음이 좋지요. 사소한 거, 예를 들어 모임에서 여자들끼리의 소소한 질투, 거기서 오는 속상함을 얘기하면 다 들어주고 나서 ‘엄마, 이럴 때는 이렇게 해’라고 조언을 해주고요. 그건 정말 최고죠!”

꾸미는 것에는 영 소질이 없던 딸은 요즘 거울을 볼 때면 엄마랑 닮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딸과 닮은 점을 묻자 “차가운 가운데에도 속정이 있는 것”이라고 답했던 엄마도 “요즘 우리 딸이 외모도 예뻐지는 거 같아”라며 이내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이제는 사진으로 남은 몽마르트 언덕에서 그려온 두 번째 초상화.

이해가 발휘하는 힘
미대에 가라는 권유를 받을 정도로 그림을 좋아했지만, “예술 하면 밥 굶기 딱 좋다”라는 어른들 말씀에 공무원 생활을 했던 유난순씨는 선배의 소개로 만난 경상도 총각과 1년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가 돼 1남 1녀를 둔 그녀는 스물다섯 새댁 시절부터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이를테면 남편이 늦게 퇴근한다고 하면 혼자 밥을 먹어버린다거나….
“오늘도 먼저 와서 저 혼자 점심 먹었어요(웃음). 아이들 키울 때는 힘들어도 문화생활을 했던 거 같아요.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보러 갔어요. 애기 보는 언니(베이비시터)한테 아이들 잠깐 맡기고 충무로에 있는 명보극장에 ‘대부’를 보러 간 적도 있어요. 그것도 혼자. 그때는 암표가 있었거든요. 그걸 사야 빨리 보고 빨리 집에 갈 수 있으니까. 지금도 영화 보고 싶으면 혼자 가요. 친구들 만나면 초이스하기도 번거롭거든요.”

유 작가 아버지는 지금도 “너희 엄마는 평생 안 기다린다”라는 얘기를 한다고. 아들, 딸에게도 다르지 않았다. “엄마, 우리 같이 밥 좀 먹자!”를 입에 달고 산 적도 있다.

“저도 결혼하고 나서 보니 알겠더라고요. 남편 기다리느라 8시 넘도록 저녁 안 먹고 기다리는데 ‘약속 잡혔어’라고 하면 정말 화가 나거든요. 이젠 엄마가 이해가 돼요. 어찌 보면 엄마는 항상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사람이잖아요. 음식을 만들다 보면 맛있게 먹을 만한 상황이 아닐 때도 있고, 게다가 배고픔이라는 게 휘발되는 거고요. 결혼 초에는 그 문제로 남편과 싸우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사람이 기다려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저 혼자 화가 났던 거죠. 그래서 저도 남편을 안 기다려요(웃음).”

보고 싶은 거 있으면 혼자 가서 보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혼자 가서 먹는 엄마를 두고 딸은 “스스로를 기쁘게 하는 재주가 있다”라고 표현했다. 여행도 그중 하나. 최근에는 에든버러 성, 글래스고를 거치는 영국 일주를 다녀왔단다.

“아름다운 경치나 건축물을 보는 것도 좋고, 여행을 앞두고 갖는 기대감도 좋고요. 긍정적인 마인드라 그런지 여행 가서 ‘잡쳤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운치가 있고, 추우면 추운 대로 따뜻한 커피나 맥주 한 잔 하다 보면 마음이 느긋해지고요. 그렇게 릴랙스를 하니까 이래 좋고 저래 좋고.”

여행과 산행의 동반자인 남편은 요즘은 댄스 파트너로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유 작가에게는 친정집에서 자고 일어난 아침, 부모님이 거실에서 춤 연습을 하고 있는 장면을 보는 것이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란다. 부부는 지르박, 탱고에 이어 왈츠에도 도전해볼 참이다.

“이 나이에 남편과 커플로 건강 댄스를 하러 다니기가 쉽지 않아요. 사람들의 시선이랄까, 그런 게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같이 춤추고(웃음). 다른 비결은 없고 그냥 살다 보니 비슷해지고 서로 이해의 폭이 넓어져서 그런 거죠, 뭐.”

여행을 다녀오면 꼼꼼하게 기록하는 완벽주의자 남편과 머릿속에 남겨둔다고 주장하는 예술가 기질의 아내. 바둑 채널을 즐겨 보는 남편과 여행 프로그램을 골라 보는 아내. 참 다르지만 그 ‘이해’를 기반으로 딸이 부러워하는 파트너십을 이뤘다. 하지만 무엇보다 부러웠던 점은 ‘젊었을 때 꿈꾸었던 노년을 보내고 있느냐’는 질문에 “많이 비슷하다”라는 답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꿈만 크고 실행을 못하잖아요. 전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았어요. 그렇게 실천한 것이 여행과 운동이에요. YMCA에서 수영과 에어로빅을 26년째 하고 있어요. 35세에 허리가 아파서 고생하다가 운동을 시작했는데, 덕분에 지금도 지탱하는 거 같아요. 아파서 시작한 운동이 저에게는 약이 된 거죠.”

[The Lady]두 장의 초상화, 유난순

[The Lady]두 장의 초상화, 유난순

엄마는 「엄마의 초상화」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페이지를 펼쳐들었다. 왼쪽 페이지에는 좋아하는 ‘빨간 머리 앤’ 만화영화를 보다가 소파에서 잠이 든 현실의 난순씨가, 오른쪽 페이지에는 ‘빨간 머리 앤’과 꽃잎을 방석 삼아 차를 마시는 미영씨가 있었다. 어느 모습이 진짜 엄마의 모습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초등학교 시절 천경자 화백의 삽화가 매력적이던 박경리 작가의 연재소설을 매일 챙겨 보던 소녀도, 스티브 잡스 전기를 2박 3일 동안 읽은 뒤 재밌다고 엄지를 세우는 중년 여성도 모두 난순씨니까. 그게 그녀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이해의 방식이니까.

“지금도 매사에 배워요. 나이 들어가도 배울 점이 많아요. 애들한테도, 시부모님한테도 시행착오를 많이 했어요. 그때는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때의 시부모님 마음도 이해가 되고. 좀 더 따뜻하게 해드릴걸, 하는 후회도 있어요. 그때는 치열했는데 세월이 흐르니까 제가 잘못하고 부족해서 따뜻하게 대하지 못했던 게 애잔하게 남죠. 친정 부모님께도 마찬가지고요.”

그동안 둘만의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다는 모녀는 뉴욕 여행을 구상 중이다. 한 도시에서 열흘 정도 머물면서 딸과 같이 명소를 찾아다니고 맛있는 거 먹고 싶다며 당장이라도 떠날 기세인 엄마와 빠른 시일 내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꼭 가겠다고 다짐하는 딸. 여전히 두 사람의 온도와 속도는 다르지만, 이 여행은 꼭 성사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은 힘들다고 느끼겠지만 그 시기에 충실하면 세월이 금세 가요. 내가 계획한 것을 조금씩 실현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면 되니까 서두르지 않아도 돼요.”
사진 촬영을 앞두고 거울 한 번씩 보시라 했더니, 엄마는 말한다. “아이, 전 됐어요. 그런데 너는 봐! 너는 예쁘게 나와야 하고 엄마는 대충 나와도 돼!”

■글 / 장회정 기자 ■사진 / 박재찬 사진 제공 유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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