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버스의 시작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맨 처음 생각한 예산은 5천만원. 봉고차가 대형 버스가 바뀌었으니 비용이 배로 늘어난 건 말할 것도 없다. 직접 운영 계획서를 만들어 후원 기업들을 찾아다니고, 치과의사들이 십시일반 주머니를 털어 힘을 모은 결과 계획을 세운 지 3년 만에 ‘해피 스마일 치과 버스’가 완성됐다. 현재 13명의 치과의사와 위생사, 현장에서 진행을 돕는 봉사자들이 한 달에 두 번 휴일을 반납하고 치과 버스에 오른다. 버스가 출동하는 곳은 지역 아동센터와 다문화가족지원센터, 탈북청소년센터 등 아이들이 있는 곳이다.
“소외 계층의 아이들은 어른들의 보살핌이 부족해 구강 상태가 안 좋은 경우가 많아요. 대신 치료만 제대로 받으면 금방 좋아지죠. 저희가 한 지역을 두 번 정도 가는데, 아이들은 그 기간 동안 만족할 만한 치료가 가능해요. 제대로 된 봉사를 하려면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의 경우 구강 상태가 영양 섭취와 직결되기 때문에 성장과 대인관계, 성격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창 밝게 커나가야 할 아이들이 잘 웃지도 못하고 고생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플 때가 많다.
“‘요즘에도 돈이 없어서 치과를 못 가는 사람이 있어?’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우리나라에 결식아동이 40만 명이에요. 밥을 못 먹는데 치과 치료는 당연히 받기 힘들겠죠. 우리가 지금 먹고살 만하니 잘 보이지 않을 뿐이지 곳곳에 있어요. 저도 모르고 살았어요. 그런 아이들이 많다는 걸요.”
“형편이 어려워 장학금을 받고 공부했고, 주변 분들로부터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나 혼자 잘해서 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제가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때 받았던 것들을 돌려드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을 치료하고 나면, 지금 당장은 힘들고 어렵겠지만 앞으로 더 많이 웃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해져요.”
치과 버스를 운영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곳곳에서 암초와 부딪친다. 충분히 치과에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찾아와 치료를 요구하기도 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무료 진료 버스를 ‘혐오 시설’이라며 주차 공간을 내주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의 냉대에 마음을 다치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엔 아직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깨닫는다.
“보람 있는 일을 하니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돼요. 소식을 듣고 자원봉사로 참여해주는 분들도 계시고,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물어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동대문시장에서 옷 장사를 하는 제 친구는 아이들에게 나눠줄 티셔츠를 만들어줬어요. 얼마 전에는 부산에 계신 한 치과 원장님이 자신도 치과 버스를 만들고 싶다고 전화를 주셨는데 무척 반갑더라고요. 대한민국에 치과의사가 2만 명이 조금 넘는데 그중 10%만 이런 마음을 가져주신다면 우리나라에서 치과 치료를 못 받는 아이들이 사라지지 않을까요?”
“3년을 무사히 마무리했으니 앞으로 30년을 더 해야죠”라며 웃는 그는 앞으로 꿈이 많다. 지속적인 봉사가 가능하려면 자력으로 비용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린이 치과용품을 생산하는 회사를 만들어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치과 버스 운영 비용을 충당하기로 했다. 벌써 2015년 계획도 세워놓았다. 상반기에는 농아와 맹아 그리고 하반기에는 탈북 청소년들을 찾아 나설 계획이다. 버스도 3대 정도로 늘리고 구석구석 더 많은 곳을 찾아다니고 싶다. 이 작은 움직임이 우리 사회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단다.
“오랜 시간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어요. 나눔을 통해 꼭 그렇게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같이 사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함께 사는 삶의 가치, 나눔이 저에게 준 가장 큰 선물입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박재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