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엄마의 딸, 한국인 딸의 엄마 취환

중국인 엄마의 딸, 한국인 딸의 엄마 취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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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상 한국과 중국의 정치·경제적 교류는 활발하지만, 그렇다고 양국이 친밀한 사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아직 서로를 잘 모른다. 양국의 문화는 닮은 듯 닮지 않았다. 한중문화우호협회 취환 회장의 생각이다.

중국인 엄마의 딸, 한국인 딸의 엄마 취환

중국인 엄마의 딸, 한국인 딸의 엄마 취환

중국, 장님 코끼리 만지듯 알고 있던 나라
민간 차원에서 한국과 중국의 문화 교류 사업을 위해 만들어진 한중문화우호협회. 취환(45) 회장은 스스로를 ‘민간 외교관’이라고 부른다. 매년 서울과 베이징을 오가며 ‘한중연’, ‘중화연’이라는 이름의 어학·무술 대회를 열고, 한중 청소년단합대회를 비롯해 ‘한중연 문화축제’, ‘중국의 날’ 등의 각종 행사를 주최하며 양국의 문화를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한국에 와보니 사람들이 중국을 장님 코끼리 만지듯 알고 있더군요. 베이징이나 상하이를 다녀온 사람들은 화려하다고 하고, 시골 변두리를 다녀온 사람들은 가난하다고 해요.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신이 본 모습 그대로만 중국을 이해하는 모습이 답답했어요. 그동안 경제 교류에만 치중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봐요.”

아시아 대륙을 공유하고, 서해를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맞대고 있는 중국과 한국. 한자 문화를 향유하고 유교 문화권에 속하는 양국은 겉으로 봤을 때는 닮은 것 같지만 속속들이 살펴보면 달라도 무척 다르다는 게 그녀의 견해다.

“한국과 중국의 음주 문화도 비슷한 듯 달라요. 공통점은 양국 모두 술을 좋아한다는 것 정도(웃음). 중국은 상대에게 술을 권하는 게 예의이자 관심의 표현이에요. 잔이 차 있어도 술을 더 따라줘요. 그게 정중히 대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반면 한국 사람은 잔을 다 비우는 게 예의더군요. 그래서 한국 사람과 중국 사람이 함께 술을 마시다 보면 재미있는 광경이 연출돼요. 한국 사람은 잔 비우느라 바쁘고, 중국 사람은 술 따르느라 바쁘고(웃음).”

식습관도 마찬가지다. 정성 담긴 국과 찌개, 몇 가지 반찬으로 상을 차리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요리 가짓수가 많아야 잘 차린 밥상이다. 가끔 중국에서 온 손님들이 일반 식당에 가면 먹을 게 별로 없다며 불만스러워하는 이유다.

“사실, 한국 음식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정성이 대단해요. 갈비찜 하나만 보더라도 손이 정말 많이 가잖아요. 고기도 재워야 하고 양념도 여러 가지 들어가고, 채소도 예쁘게 썰어 넣고. 대부분 기름에 볶거나 튀겨 나오는 중국 음식에 비해 찌고, 삶고, 끓이고, 지지고 등 조리 방법도 다양해요. 음식 문화가 아기자기하고 정갈하죠.”

문화의 숨은 매력까지 보는 심안을 키우는 것. 그녀가 생각하는 진정한 문화 교류다. 중국 관광객이 백화점이나 면세점에서 얼마만큼의 매출을 올렸는지가 양국 교류의 지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1 한중 청소년 교류 행사 ‘한마음 한뜻’. 2 한중연문화축제 국악 공연.

1 한중 청소년 교류 행사 ‘한마음 한뜻’. 2 한중연문화축제 국악 공연.

문화 교류를 통해 얻는 성취감
지금은 한국인보다도 우리나라를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그녀지만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속상한 일도 많았다. 병원에서 아픈 증세를 설명할 때가 제일 곤혹스러웠다고. 배가 콕콕 쑤실 때도 있고, 쥐어짜듯 아프거나 눅신하게 아플 때도 있는 법인데,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제가 느꼈던 소외감이나 문화 차이에서 오는 당혹감을 극복하기 위해 교류 활동을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요즘 한국에서 다문화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글쎄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한국 사회가 다양한 문화를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저 또한 최선을 다해 돕고 싶습니다.”

한중문화우호협회에서 하는 일은 크게 3가지다. 첫째, 한중연문화축제를 개최해 양국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것. 둘째, 중국으로 가서 한국의 사물놀이, 판소리, 부채춤과 같은 공연을 하거나 중국 소수민족을 초청해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것. 셋째, 한중 청소년들을 초청해 역사 탐방을 지원하거나 한중 지자체가 자매결연 맺는 일을 돕는 것이다.

“여러 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가장 뿌듯함을 느끼는 건 청소년들이 양국을 탐방할 때예요. 한 해는 중국 학생들을 초청하고, 이듬해에는 한국 학생들을 중국으로 보내죠. 규모는 30~50명 정도로 많지 않지만, 그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양국에 대해 친근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더라고요. ‘카더라’ 하는 편견 없이 말이죠. 이들이 커서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 든든한 교량 역할을 해줄 거라고 믿어요.”

문화 교류는 결과물이 당장 눈에 보이는 작업이 아니다. 그저 우공이 산을 옮기듯 묵묵히 여러 가지 분야의 교류를 시도할 뿐이다. 요즘 그녀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분야는 바로 서예. 중국 운대산에서 한중 서예가 13명이 15m 길이의 캔버스에 우정을 약속하는 글을 남기는 퍼포먼스를 기획하기도 했다.

중국 운대산 한중 서예 교류 행사.

중국 운대산 한중 서예 교류 행사.

“한국과 중국은 오랜 서예 문화의 역사를 가지고 있죠.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먹과 붓으로 통하는 그 무언가가 있어요. 앞으로 붓으로 양국의 미래를 함께 써나갔으면 해요.”

그녀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 제33회 세종문화상(국제협력·봉사 부문)을 수상했다. 중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수상으로, 한국과 중국이 조금이나마 더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비를 털어 시작한 문화 교류 사업에서 일궈낸 눈부신 성과다.

“텐진에 있는 아파트를 팔아서 시작한 활동이에요. 지금이야 정부의 지원을 받지만, 당시에는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서 어려움이 많았죠. 그래도 의미 있는 일에 투자했으니 아깝지 않아요. 그래도 의미 있는 일에 투자했으니 아깝지 않아요(웃음).”

한국인 딸을 둔 중국인 엄마
취환 회장이 대학 졸업 후 홍콩에서 일할 때였다. 한국 출장이 잦던 그녀는 서울에서, 회사원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각자의 언어를 몰라 영어로 대화하며 시작한 연애. 듬직하고 성실한 이 남자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결혼을 결심하고 중국을 떠나 한국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날, 아버지께서는 자신과 한국의 남다른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께서 오래전 한국에서 서예 사업을 하셨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도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셨대요. 한중 수교가 단절되면서 다시 중국으로 돌아오셨고, 중국 문화대혁명 때 아버지가 한국과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로 고초를 겪으면서 자식들에게 관련된 얘기를 안 하신 거였어요.”

한국말이 서툴러 싸울 일도 없다는 남편과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되는 딸 영서. 이 둘은 그녀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자 한국 생활의 버팀목이다. 남편과는 한국어로 대화하지만, 영서와는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중국인 엄마의 딸, 한국인 딸의 엄마 취환

중국인 엄마의 딸, 한국인 딸의 엄마 취환

“딸은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한국말을 잘 못한다고 생각했대요(웃음). 아이가 어려서 4년 정도 중국에 살다 온 이후로는 줄곧 중국어로 대화하고 있어요. 제 한국어 실력보다 영서의 중국어 실력이 뛰어난 것, 인정합니다(웃음).”

한국인 아빠와 중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딸. 영서는 오랜 시간 한국에 있었고 한국 학교를 다니다 보니 스스로 한국인이라는 의식이 강하다. 다만 중국을 아주 많이 사랑하는 한국인이란다.

“학교에 입학할 때 이웃 어른들이 딸아이한테 그러더라고요. 학교 가서 엄마가 중국인이라는 걸 굳이 이야기할 필요 없다고. 친구들에게 따돌림이라도 당할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에 하신 말씀인 건 잘 알지만 속상했죠. 아직도 혼혈아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부정적일 줄은 몰랐어요.”

그래도 기특한 딸은 자기소개 시간에 엄마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요즘은 친구들이 중국에 대해 궁금해하고 이것저것 물어본단다. 하지만 질문 중 절반은 중국에 대한 오해에 관한 것이다.

“어떤 친구가 ‘중국 화장실 더럽지?’라고 묻더래요. 그래서 ‘당연히 더러운 데도 있지. 물론 아닌 곳도 많고!’라고 했대요. 맞는 말이에요. 중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넓잖아요. 좋은 곳도 있고 당연히 아닌 곳도 있어요. 좋지 않은 모습으로 중국을 일반화시켜서 생각하는 게 안타까워요. 이럴 때 문화 교류의 중요성을 더 절실히 느끼죠.”

한국인 딸을 둔 중국인 엄마로서 요즘 그녀가 가장 걱정하는 건 교육 문제다. 공교육을 신뢰하는 중국과 달리 사교육에 의존성이 큰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엄마들의 치맛바람은 선뜻 이해가 가질 않는다.

“중국 여자들은 대부분이 워킹 맘이에요. 일하느라 바쁘다 보니 교육은 전적으로 학교에 맡기죠. 한국 엄마들은 아이들 학원 스케줄까지 일일이 관리할 정도로 관심을 쏟던데, 놀라울 정도예요. 그리고 중국은 아이들이 대부분 학원을 다니지 않아요. 저도 그렇게 컸고요. 당연히 학원은 안 가도 되는 건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는 그걸 이상하게 보더라고요(웃음). 지금은 영어와 수학 과목만 배우고 있는데, 공부하느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어서 안타까워요.”

협회 활동을 도맡아서 하다 보니 늘 시간에 쫓겨 사는 그녀. 딸과 보내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늘 미안함을 품고 산다.

“엄마가 전업주부였으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다행히 아니래요. 바깥에서 열심히 일해서 한국과 중국이 편견 없이 서로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달래요. 이러니 제가 어떻게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웃음) 다음 세대 아이들이 진짜 다문화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초석을 잘 닦아놔야죠.”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정서적 거리는 멀게만 느껴지던 나라 중국. 두 나라를 반반씩 공평하게 사랑한다는, 그래서 양국의 문화를 전달하고 싶다는 그녀 덕분에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고 있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지교(至交)가 되지 않겠는가.

■글 / 서미정 기자 ■사진 / 이상헌 ■사진 제공 / 한중문화우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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