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래식 음악을 공유하는 새로운 방법 플루티스트 김수연
그룹뮤즈는 연주회의 일정과 참여, 홍보 등이 모두 온라인 사이트(www.groupmuse.com)를 통해 이뤄진다. 장소를 제공하는 호스트와 참여 가능한 연주자의 일정이 맞아떨어지면 공연 장소와 날짜가 정해지는 식이다. 즉흥적인 것이 마치 ‘번개’ 모임을 연상시킨다. 참여하는 연주자에 따라 다양한 협연이 이뤄지고 연주곡의 범위도 달라진다. 호스트의 요청에 따라 어느 도시, 어느 공간에서도 연주가 가능하다. 누구와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될지 예상할 수 없는 것이 그룹뮤즈 공연의 매력이다.
이날 공연은 세종솔로이스츠 강효 교수의 초청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줄리어드 음대 교수이자 바이올리니스트로 유명한 강 교수의 부름 덕에 한국을 떠난 지 17년 만에 처음으로 연주를 하게 된 것이다. 공연 일정이 정해지고,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피아니스트인 친구를 만나 의기투합했다. 한국에 있던 첼리스트 친구도 힘을 보탰다. 여기에 연주회 취지를 동감한 서울대 주희성 교수가 피아노를 전공하는 제자 둘을 추천하면서 라인업을 완성했다. 그룹뮤즈는 감성에서 출발했지만 운영 방식은 합리적이고 군더더기가 없다. 호스트는 장소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날 걷힌 연주회 수익은 연주자들에게 공평하게 배분된다. 한국에서는 조금 낯선 방식이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30회에 가까운 공연을 진행하며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제가 이런 시도를 한국에서 하겠다고 했을 때 모두 실패할 거라고 말했어요. 낯선 사람을 집 안에 선뜻 들이지 않는 한국 문화와 맞지 않을 거라는 조언이었죠. 하지만 저는 공연에 참여하면서 연주자와 청중이 함께 교감하는 ‘새로운’ 감정을 느꼈고, 그것이 확신으로 굳어졌어요.”
세팅이 지연돼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은 여유로워 보였다. 미리 준비된 와인을 마시며 인사를 나누고, 본 공연에 앞서 손을 푸는 피아노 연주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그곳에는 클래식 특유의 위압적인 분위기가 없었다.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모인 특성 탓에 모두 어디선가 만난 듯 친근했다. 클래식 공연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아이들이 무대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고, 서로 어깨를 부딪혀가며 음의 떨림을 피부로 느꼈다. 그 공간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그룹뮤즈의 공연이 시작된 느낌이었다. 연주자도 청중도 자유롭고 편안해 보였다. 연주회를 주최한 김수연씨도 공연의 포문을 여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3번 프렐류드가 시작되자 청중으로 돌아가 아이들 옆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참석자들의 필수 아이템은 ‘오픈 마인드’
그동안 대중을 위한 연주회는 마케팅이나 팬 서비스 차원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그룹뮤즈의 연주자들은 공연 시작에 앞서 청중에게 곡을 설명하고 연주자로서의 해석을 덧붙여 감정의 진폭을 더 크게 만들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연주한 피아니스트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줬고, ‘무한선율’이 특징인 바그너의 곡은 연주자들에게도 그만큼 힘들고 까다롭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1부 공연이 끝난 뒤 마련된 인터미션 시간에도 가벼운 스낵을 즐기며 청중이 연주자에게 직접 감상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기존 클래식 공연에서는 경험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공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하지만 참석자 모두에게 낯선 공간이기 때문에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가장 필요한 것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오픈 마인드’예요.”

클래식 음악을 공유하는 새로운 방법 플루티스트 김수연
돋보이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플루티스트 김수연씨는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실력파 연주자다. 이화경향콩쿠르 1위 수상과 함께 열 살 때 서울시향 협연을 통해 데뷔하며 일찍부터 재능을 인정받았다. 1995년 예원학교 졸업 뒤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 살고 있는 김수연씨는 전 세계를 돌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뉴욕 카네기홀, 링컨센터 앨리스 툴리홀 등 저명한 무대에 올랐으며, 게오르그 솔티 경 재단이 선정하는 커리어그랜트 수상에 이어 2010 뮌헨 ARD 국제음악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의 플루트 부문 수상자가 됐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덕에 같은 길을 걸어오는 후배들에게 많은 질문을 받는다.
“저는 플루트라는 악기를 통해 제 목소리를 내고 노래합니다. 수많은 작곡가들의 곡들을 연주하며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생각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음악인이죠.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것이 음악인인 만큼 연주 이외에도 독서와 사색 등 많은 것을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룹뮤즈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한국 30평형대 아파트의 거실 사이즈를 생각하니 솔직히 견적이 나오지 않았다. 걱정 섞인 질문을 건네니 “공간은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더 밀도 있는 소리를 듣게 된다는 것이다. 이전 공연에서는 어깨를 부딪혀가며 연주를 하고 감상을 했단다. 듣고 보니 그랬다. 실제로 연주를 들으며 그리 넓지 않는 카페 공간에 감사했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는 그렇게 감정적인 거리도 좁혔다. 이날 연주자와 청중 사이에는 어떠한 장벽도 존재하지 않았고, 첼로의 깊은 울림과 플루트를 부는 김수연씨의 들숨과 날숨까지 모두 생생하게 느껴졌다. 듣고 있었지만 악장의 한 파트를 맡은 기분까지 들었다. 그룹뮤즈의 공연에서만큼은 연주자와 청중이 평등했다. 이런 교감 속에서 연주자도 혼신의 힘을 다했다.
김수연씨는 에드바르드 그리그의 ‘나 그대를 사랑해(Jeg Elsker Dig)’ 연주를 마친 직후 “눈을 감고 사랑의 감정을 느껴보세요”라고 말하며 곡의 후렴을 다시 한번 연주하기도 했다. 이들의 연주회를 보고 “그룹뮤즈의 공연을 참석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참석한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사실임을 피부로 느꼈다. 그 어느 때보다 긴 여운이 남은 연주회였다. 여운을 오래 이어가기 위해서도 앞으로 그룹뮤즈의 활동을 눈여겨보게 될 것 같다.
■글 / 강보라(프리랜서) ■사진 / 김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