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이웃이 있어 행복한 마을 - 소행주

주거협동조합

집과 이웃이 있어 행복한 마을 - 소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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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아래 아홉 가족이 산다. 개별 등기된 각각의 내 집이지만 집 문 밖을 나서면 복도는 마을 골목길이 되고, 현관은 마을 어귀가 돼준다. 당산나무 아래 툇마루는 없지만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이는 너른 커뮤니티 룸이 있다.

소행주를 소개하려면 먼저 소행주란 이름부터 설명해야 한다. 소행주란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 만들기’의 줄임말이다. 대개 주거 공동체라 하면 저렴한 비용부터 떠올린다. 물론 소행주도 비슷한 주택들보단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하지만 소행주가 ‘무조건 싼 집’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름처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것.

1 옥상 텃밭. 성미산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2 자투리 공간마다 쉼터를 마련해놓았다. ‘알라딘’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마을 예술가 김용량씨 작품. 3 1층 주차장에 있는 벽화. 낮에는 되도록 주차장을 비워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터를 만들어준다.

1 옥상 텃밭. 성미산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2 자투리 공간마다 쉼터를 마련해놓았다. ‘알라딘’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마을 예술가 김용량씨 작품. 3 1층 주차장에 있는 벽화. 낮에는 되도록 주차장을 비워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터를 만들어준다.

서울 마포구 성미산 자락에 위치한 소행주 1호를 찾았을 때 집 소개를 맡은 공동주택 소행주의 박흥섭 대표는 “공동육아를 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라며 “소행주의 핵심 가치는 좋은 이웃들과 함께 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좋은 이웃을 원하더라도 집집마다의 생활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각각의 집은 저마다 개성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철저하게 반영하고 공동의 공간은 집집마다 닮아 있는 비슷한 가치관을 나눈다. 겉에서 보면 층층 건물이지만 안에서는 겹겹이 행복한 마을이랄까. 그것이 소행주다.

대문 밖 온기까지 지어볼까?
공동체라는 말은 개인의 생각과 생활에 어느 정도 제한을 받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공동주택이나 주택협동조합과 같은 이름을 가진 새로운 주거 문화에 관심은 있지만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직접 가서 본 소행주는 공동체라는 말보다는 마을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곳이었다. 1층 현관에는 주차장과 자전거 보관소가 있다. 낮에는 되도록 차를 주차하지 않고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공터를 만들어준다. 2층은 근린상업시설이다. 비누와 아로마 향초 등을 제작해 판매하는 작은 공방과 공부방인 ‘도토리 방과후학교’ 그리고 입주민들이 함께 이용하는 커뮤니티 공간인 ‘씨실’이 있다.

4 마포구 성미산 자락에 위치한 소행주 1호 전경. 5 2층 근린상가 시설에 입점해 있는 비누 공방 전경.

4 마포구 성미산 자락에 위치한 소행주 1호 전경. 5 2층 근린상가 시설에 입점해 있는 비누 공방 전경.

3층부터 각 층마다 다양한 평형의 주거 공간인 가정집이 있다. 옥상 계단의 자투리 공간은 공동창고로 쓰이며, 옥상에는 조그마한 텃밭과 큰 이불을 널어 햇빛에 말릴 수 있는 건조대도 있다. 집집마다 신발장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복도는 신발을 벗고 다니도록 원목 마루를 깔았다. 가정집마다 여느 집들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도어록이 달려 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가면 문 밖 세상은 전혀 모를 일이다. 오로지 우리 집이요, 내 세상이다. 하지만 문 열고 나오면 다르다. 아이들은 일찌감치 아지트 공간을 만들어 까르르 웃음소리를 내며 놀고, 오가는 어른들은 서로에게 인사를 건넨다. 건물 안 곳곳에는 서로에게 알릴 사항을 적은 메모들과 공지들이 붙어 있다. 층층마다, 공간마다 ‘따로 또 같이’가 완벽하게 구현돼 있다. 2층의 공방과 공부방 등을 둘러보던 중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는 아이들 무리와 마주쳤다. 아이들은 소행주를 안내해주던 박 대표를 보자 익숙하게 “박장!” 하고 부르더니 반갑게 손을 흔든다. 아이들과 격의 없이 지내기 위해 애칭을 만들어 부르기 시작했다고. 이곳 소행주 어른 모두에겐 봄봄, 야호, 흰 구름 같은 애칭이 있다.

입주 조건은 따로 없다. 대지 비용과 건축 비용 탓에 같은 평수의 주변 빌라나 연립보단 비싼 편이다. 하지만 아파트에 비해선 훨씬 싸다. 2011년 입주 당시 최저 비용은 11평 기준으로 1억7천만~1억8천만원, 최고 비용은 40평 기준으로 4억원 정도였다. 관리비는 월 4, 5만원 선이다. 관리실은 따로 없고 1년에 4회 정도 대청소를 한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외부에 청소를 맡긴다.

좋은 이웃, 생각보다 더 좋아
소행주는 각각 개별등기가 돼 있다. 그리고 세대마다 소유 평형과 상관없이 공평하게 1평씩 출자해 만든 공간이 있다. 바로 공용 커뮤니티 공간인 씨실이다. 이곳은 주민회의, 손님맞이, 게스트 하우스 등 다용도로 사용된다. 또 주방시설도 갖춰져 있어 입주민들은 ‘저해모’를 운영 중이다. 저해모란 ‘저녁 해방 모임’의 줄임말이다. 말 그대로 저녁을 공동으로 해결한다. 각자 음식을 준비해 오기도 하고, 돌아가며 준비하기도 하고, 그마저 안 되면 음식 잘하는 분을 모셔오기도 한다. 하루 종일 아이들 돌보랴, 집안일 하랴, 회사일 하랴 바쁜 까닭에 저녁 시간이 되면 지치게 마련. 저녁 준비에서 해방되는 것만으로도 엄마와 아이, 아빠는 서로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줄 여유를 가진다. 저녁을 먹은 다음 아이들을 재운 뒤 10시 무렵이면 이곳은 기타 강습소로 변신한다. 강사를 외부에서 초청해 수업을 듣는다. 수업은 입주민뿐 아니라 마을 이웃 주민도 수강할 수 있다.

‘이 모든 활동을 무조건 함께해야 하나’ 하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소행주는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함께 저녁 먹는 시간을 운영하고 있지만 ‘반드시’라는 단서는 없다. 상황이 안 되면 못 오는 거다. 따로 또 함께 사는 것의 핵심은 정해놓은 정답 없이 ‘그럴 수 있다’라고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소행주를 선택한 사람들 중 대부분은 아이를 키우는 데에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한 30, 40대 부부들이다. 아이들끼리 놀고 있어도 안심하고 장을 보고 올 수 있는 곳, 아이들에게 급한 일이 생기면 아랫집, 윗집, 앞집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을 찾는 이들이다. 이 밖에 50대 이상의 장년층이 은퇴 후 귀촌을 준비함에 따라 서울에서 계속 생활해야 하는 성인 자녀들이 좋은 어른들과 이웃하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오가며 인사 나눌 이웃이 그리워서, 독신 세대라도 나를 반겨줄 사람들이 있는 곳에 안착하고 싶어서도 소행주를 선택한다. 연령층도, 사는 모습도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다. 바로 ‘좋은 이웃’이다.

 6 2층 근린시설에 있는 방과 후 학교. 소행주 아이들의 공부방이다. 7 소행주 공용 공간들에는 각종 공지사항과 이웃들의 재밌는 알림글들이 곳곳에 붙어 있다. 8 공용 커뮤니티 공간 ‘씨실’.

6 2층 근린시설에 있는 방과 후 학교. 소행주 아이들의 공부방이다. 7 소행주 공용 공간들에는 각종 공지사항과 이웃들의 재밌는 알림글들이 곳곳에 붙어 있다. 8 공용 커뮤니티 공간 ‘씨실’.

집값을 묻는 질문에 박 대표는 “거래된 적이 없어 모른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시세 따져 사는 집이 아닌 살고 싶은 대로 사는 집이다”라고 했다. 집 평수를 늘리고, 더 좋은 동네로 옮기는 것을 인생 유일의 목표로 삼을 때 희생되는 지금의 꿈과 행복이 얼마나 큰지 따져보자고 반문하면서 말이다. 입주민 중 1명은 이전에 살던 집보다 소행주 집이 실평수만 따지면 더 작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소행주에서 누리는 것들을 혼자 해내려면 더 넓은 집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 엄청난 비용을 치렀을 것이란다. 소행주는 오늘 그리고 지금이 행복한 곳이다. 그러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고, 그것을 위해 지은 집이다.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 소행주, 이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이 또 있을까.

Mini Interview
“개인 프라이버시, 오히려 더 잘 지켜져”
박흥섭(공동주택 소행주 대표)

[주거협동조합]집과 이웃이 있어 행복한 마을 - 소행주

[주거협동조합]집과 이웃이 있어 행복한 마을 - 소행주

사고파는 것이 가능한가? 당연하다. 모든 가정집은 각각 개별등기가 돼 있다. 커뮤니티 공간은 공동등기다. 매매는 가능하지만 아직 매매한 세대가 한 집도 없어서 답을 해줄 만한 사례가 없다. 직장 문제로 제주도로 가신 분이 있는데, 어떻게 연결이 잘돼 전세로 임대를 했다. 주거에 변화가 있는 집은 그 집이 유일하다.

입주자 모집부터 시공까지 구체적인 과정이 궁금하다. 소행주에서 땅을 매입한 뒤 크게 커뮤니티 형성 과정과 건축 과정으로 병행해 진행한다고 보면 된다. 입주자 모임인 빈집 프로젝트를 통해 소행주에서 매입한 땅을 어떻게 구성할지 논의한다. 입주자 워크숍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방법도 배운다. 또 공사 중간중간 입주자들이 건축 과정에 참여한다. 집을 지을 동안 입주자들은 워크숍을 통해 공동주택에서 잘 사는 법을 서로 준비한다고 보면 된다.

소행주 입주민들은 서로 친분이 있는 사이들인가? 소행주 1호만 3, 4가구 정도 서로 원래 아는 사이였고, 다른 분들은 다 모르는 사람으로 만났다. 2호부터는 1가구 정도가 이곳 마포 성미산 지역민이고 나머지는 모두 다른 지역에서 오신 분들이다.

소행주에서 살면서 가장 달라진 점들은 있다면? 늘 함께 놀 친구들이 있으니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니 엄마들이 좋고, 엄마가 좋으니 아빠가 좋다. 한 입주민 아빠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언제나 마음이 무거웠단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 왔는데, 집에서 고생한 아내는 늦게 퇴근한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어 웃어주질 못한 거다. 그런데 이곳은 아빠가 늦어도 웃으며 반겨줄 수 있을 만큼 즐겁고 행복하다. 얼마 전에는 소행주 1호 엄마들끼리 3박 4일로 부산국제영화제 보러 여행을 갔다. 그 기간 동안 아빠들이 돌아가면서 아이들과 밥 해 먹이고, 학교 보내고 했다.

공동주택 소행주에 사는 가장 큰 자랑이랄까, 장점은 무엇인가? 얼마 전 집에 딸 혼자 두고 아내와 일주일 정도 여행을 다녀왔다. 요즘 세상에 딸 혼자 두고 집을 비운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런데 소행주에선 가능하다. 이 건물에는 언제나 이웃 어른들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어울려 살던 동네를 기억해보라. 앞집, 윗집, 옆집 이웃 어른들이 있었고, 마을 곳곳에 인사를 나누던 친구나 언니 동생들이 있었다. 그들과 작은 도움들을 주고받으며 살던 것과 비슷하다.

함께 산다는 것은 늘 갈등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게 가장 큰 단점일 것 같다. 생활의 기준이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입주민마다 깨끗함의 기준이 다르다. 나는 이만큼 하면 깨끗하게 잘 정리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게 아닌 거다. 처음에는 입주민들이 돌아가면서 청소를 해봤는데 이제는 외부에 맡긴다. 기본적으로는 서로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공동주택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공동주택은 아무리 좋은 공간, 훌륭한 룰을 갖더라도 기본적으로 ‘함께’하는 곳이다. 이것을 알고 시작해야 한다. 서로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한다. 나와 같은 생각일 거라 여기면 안 된다. 오히려 성공은 ‘나와 다르다’라는 인식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갈등을 두려워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갈등은 어디서든 존재한다. 갈등의 종류가 조금 다를 뿐이다. 갈등의 종류만 다를 뿐 외려 갈등의 양은 공동주택이 더 적을 것이다(웃음).

■글 / 강은진(프리랜서) ■사진 / 안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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