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킹 맘이 이끄는 진화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장관 취임에 앞서 읽는 직무 가이드가 있다고 한다. 직무와 관련된 태도, 도덕성에 대한 내용과 함께 전직 장관들이 후임에게 주는 코멘트가 담겨 있단다. 처음 공직자가 된 장관들은 ‘축소된 사생활의 원칙’이라는 문구가 가장 인상적이라고 말한다고. 정확하게 말하면 사생활이 없다는 것! 지난 2014년 7월 여성가족부 수장이 된 김희정(44) 장관은 이미 10년 넘게 공직에 몸담으며 잔뼈가 굵었지만, 여기에 엄마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까지 곱절로 짊어졌다. 장관, 지역구 국회의원, 아내, 엄마…. 흔히 엄살처럼 사용하는 1인 다역이라는 수식이 이처럼 무겁게 와 닿는 인터뷰이도 참 드물었다.
주부들의 기대를 잘 알고 계시니 부담도 클 것이고, 계획도 더 촘촘히 짜셨을 거 같아요. 일단 정부에서 마련한 정책 중 국민이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적재적소에 홍보가 되고 또 잘 이용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데, 좀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를 들면 임신하면 고운맘카드 받는 거 아시죠? 그것도 임신 계획 단계에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임신하고 나서 관련 커뮤니티나 병원을 통해 알게 되는 게 대부분이죠. 그 밖에 아이돌봄서비스 제도, 여성새로일하기센터 등도 그렇고요. 보통 공직자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정책을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하다면, 국민의 관점에서는 이런저런 정책을 직접 이용해봤다는 게 중요하잖아요.
실제로 엄마의 입장에서 가장 추천할 만한 제도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직장 맘 같은 경우 제일 민감한 부분이 아이를 대신 키워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의 문제거든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더라도 그곳의 운영 시간과 엄마의 출퇴근 시간이 맞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죠. 그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게 아이돌봄서비스 제도예요. 저도 이용해봤는데, 혹시 아이돌봄서비스 제도 아세요? 그 제도가 굉장히 인기가 많아요. 보통 엄마들이 아이를 돌봐줄 선생님은 어느 사이트에서 구해야 하나, 면접 볼 때는 무엇을 확인해야 하나, 이런 점들로 고민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걸 국가에서 다 해결해주거든요. 믿을 수 있고, 이용료도 저렴하고, 또 엄마가 직접 선생님과 임금 협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어요.
직접 이용해보니 어떠셨어요? 중간에 익명으로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 조사도 하지요. 개인적으로 쓰는 선생님이 안 맞으면 교체하는 과정이 껄끄러울 수 있잖아요? 여기서는 그럴 경우 엄마가 직접 그 선생님과 얘기하지 않아도 돼요. 국가가 자연스럽게 배정 선생님을 바꿔주니까요. 원래는 아이돌봄서비스 제도의 종일제는 아이가 12개월 때까지만 이용 가능했어요. 그런데 돌 지나자마자 바로 아이를 기관에 보내는 엄마들은 드물거든요. 그래서 24개월까지로 확대했어요. 그다음으로는 아이돌봄서비스 제도에도 일반 기관처럼 대기 인원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올해부터 도입했어요. 그런 식으로 제가 직접 이용해보고 보완점을 찾았죠.
더 개선하고 싶은 점도 있으신가요? 현재 수요와 공급의 차이가 좀 있습니다. 이용하려는 사람들과 선생님의 절대 수치는 굉장히 비슷한데 문제는 대부분 이용하고자 하는 시간대가 겹쳐서요. 대부분 아침 등원이나 등교 시간, 부모들의 야근 시간대에 이용하고자 하니까 집집마다 필요한 시간이 같은 거예요. 그 시간대에 일할 수 있는 선생님을 많이 발굴해야겠죠. 어느 정도 아이를 다 키우신 분들 중에서 일자리를 찾고자 하는 분들에게도 아이 돌보미 선생님에 대한 반응이 좋아요. 공식적으로 90시간 교육을 받고 또 선생님으로 예우받으면서 하는 일이라 어느 지역에서 한 분이 선생님이 되면, 뒤따라오시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이번에 새로 시행되는 양육비이행관리원 제도도 ‘국가가 알아서 해결해준다’라는 점이 와 닿았어요. 며칠 전에 경북 예천에서 80대 할머니가 전 며느리한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잖아요.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 그런데 그 며느리도 알고 보니까 여섯 자녀를 혼자 기르고 있었어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양육비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없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정책이에요. 이 제도는 절대 이혼을 하거나 미혼인 엄마, 아빠를 봐주기 위해 만든 게 아니에요. 이혼이나 비혼을 부추기자는 게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든 간에 그 아이에 대해서는 국가가 최선을 다해 돌봐주자는 거예요. 아이를 맡은 한부모마저 도저히 힘들어서 아이를 포기하지 않도록.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최근 들어 한부모 가정의 비율이 9.7%대에 이르고 있어요. 그런데 이혼·미혼 한부모 가정 중 양육비를 한 번이라도 받아본 비율이 17%에 불과해요.
그 통계 수치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우리나라의 경제적인 수준에 비해 너무 많은 아이들이 버림받고 있어요. 그중 경제적인 이유도 분명 있거든요. 지금 단계에서는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를 찾아서 그걸 주도록 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겠지만, 이 제도가 정착되면 양육비를 이행하지 않는 사례를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비록 부부는 갈라서더라도 아이만큼은 부모의 입장에서 공동 책임져야 한다는 걸 확고하게 하는 효과도 함께요.
며칠 전 애독자 엽서에서 이혼 후 남편이 양육비를 주지 않아 힘들다는 사연을 읽었어요. 오죽 답답하면 독자 고민란에 적어 보냈을까 싶었는데, 이 제도를 그분께 꼭 알려드려야겠어요. 3월 25일 출범 이후 신청을 받아 순서대로 처리하겠지만, 그중에서도 형편이 더 어려우신 분들을 먼저 배려해드리는 방법을 도모할 거예요. 분명 시간이 걸리는 일이거든요.
개개인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런 일을 이제 국가가 나서서 하는 거죠. 올해 소프트랜딩해서 내년에 더 많은 가정을 구제할 수 있는 예산과 인력 확보에 박차를 가할 예정입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김 장관은 인터뷰 중 “○○ 제도는 알고 계세요?”라고 몇 차례 물었다. 안다고 대답하면 “인터뷰 준비하면서 알고 계신 거예요?”라고 확인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뜨끔했는데, 듣고 있자니 관할 수장의 일상적인 설문 조사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인터뷰는 질문 공세와 답변이라기보다는 함께 최선의 방향을 모색해가기 위한 어떠한 과정처럼 느껴졌다.
워킹 맘이 현장에서 느끼는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 그렇죠! 아이 키우는 사람들은 다 그렇지 않나요? 보통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할 때 1차 고비가 오지요. 힘들게 기저귀랑 이유식 뗄 무렵을 보내고 그 이후 정착했다가,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2차 고비가 오고, 고학년이 되면서 또 여러 단계의 고비가 찾아오지요. 그런 순간에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이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육아휴직도 제도가 안 돼 있다기보다는 회사 여건상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를테면 동료들과의 관계 때문에 못 쓰기도 하거든요.
동료들에게 미안해서요? 내가 빠져버리면 그 일이 고스란히 남기 때문에 그렇죠. 두 번째가 어려워요. 앞서 한 명이 육아휴직 중이라 두 번째 휴직자로 자리를 비워야 하거나, 둘째를 임신했을 경우 육아휴직을 사용하기가 더 어려운 거예요. 이런 구조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법이 뭐냐하면, 육아휴직은 여자만 쓸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 남자도 쓸 수 있는 제도라는 걸 알리는 거예요. 즉 남녀 모두 쓸 수 있는 제도가 됐을 때 오히려 여자가 더 많이 쓸 수 있다는 거죠. 아빠의 육아휴직을 늘리기 위해 ‘아빠의 달’ 제도를 만들었어요.
또 임신부가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을 덜고 쉴 수 있게 하기 위해 대체 인력 지원금을 확대했어요. 기업에서 대체 인력 차원을 넘어 아예 한 명을 더 고용한다고 생각하라는 의미로 지원금을 늘린 거예요.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워킹 맘을 위해서는 12개월까지 적용되던 육아기단축근로제 기간을 2배(24개월)로 늘렸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 사정상 육아휴직을 3개월만 썼다면, 나머지 못 쓴 9개월의 2배가 되는 18개월간 단축 근무를 쓸 수 있어요. 또 상황에 따라 최대 3회까지 끊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요.
굉장히 많은 것이 바뀐 느낌인데요? 큰 변형이 있다기보다는 기존의 제도를 현장 상황에 맞게 진화시키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어요. 기업의 인사 담당자뿐만 아니라 개개인도 몰라서 못 쓰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임신부가 고운맘카드를 만들면서 동의하면 몸담고 있는 회사에 임신과 출산 관련 제도 및 처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꿨어요.
든든하네요. 일단 길목을 잡아야 된다는 의미에서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장관들께 제가 제안했는데 두 분 모두 동감해주셔서 가능한 일이었어요.

워킹 맘이 이끄는 진화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올해가 본격적인 시작인 듯하네요. 여성가족부에 오신 뒤로 생각이나 시각이 많이 바뀌었을 것 같은데요. 일은 실제로 우리 직원들이 상당히 많이 하고 있어요. 전달이 제 몫이라고 생각하죠. 그 점에서 제가 지역구 국회의원이라는 것이 도움이 되는 거 같아요. 평소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우리 직원들이 잘 만들어놓은 구슬을 어떻게 꿰느냐의 역할을 맡을 수 있었죠. 건강가정지원센터로 운영되던 것을 워킹맘워킹대디센터로 발전시켜서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게 한 것처럼요.
국민 입장에서는 참 좋은데, 장관님 가족 입장에서는 더 바빠진 아내와 엄마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겠어요. 제 개인이요? 네, 그렇죠. 그런데 남편은 저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해요. 우리 연령대 자체가 어떻게 보면 회사에서 밑천을 다 뽑아먹는 시기잖아요(웃음).
맞아요! 지난주 유엔여성지위위원회에 가서 이런 얘기를 나눴어요. 한국은 제도는 굉장히 많이 발달돼 있는데 잘 활용이 안 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야근 문화 때문이라고요. 야근으로 인해 이런 각종 제도나 각종 서비스가 무용지물이고, 일과 가정 양립도 안 되는 거예요. 이게 풀리지 않고는 절대 다른 문제도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런 문화를 바꾸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수요일을 (정시 퇴근해서 가족과 함께 보내자는) 가족 사랑의 날로 정했는데, 수요일 하루라도 하자는 게 사실은 얼마나….
슬픈 일이죠. 그렇죠. 네덜란드의 헬데르그로엔이라는 디자인 회사는 오후 6시가 되면 책상이 사라져요. 리프트가 달린 책상을 아예 천장으로 올려서 더 이상 일을 못하게 하는 거예요. 우리보다 복지가 잘돼 있다는 유럽에서도 이런 방책을 쓸 정도인 거죠.
우리도 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여성 대통령이 나오는 것도 상상을 못했는데 이뤄졌잖아요. 남자가 육아휴직을 쓴다는 것도 과거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걸요. 이런 것일수록 흐름을 타는 게 중요해요. 단번에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로 중단하지 않고 계속돼야 해요.
터널의 끝은 있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을 때, 당시 김 장관은 초·중·고를 나오고 이사 한 번 없이 내내 한 동네에 살았던 이웃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도 어떻게 커나갈지 여러분의 눈으로 보게 될 것이라고, 정치란 아주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함께 공유해온 평범한 사람이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이다. 그렇게 최연소 국회의원이 됐고, 현직 의원 최초로 국회의사당 의원동산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두 아이를 낳았다. 한결 여유로운 표정의 김 장관에게서 ‘미스 포청천’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국정감사장에서 맹렬한 질문 공세를 퍼붓던 의원 시절의 기개를 다시 엿볼 수 있었던 대목은 바로 최근 논란이 됐던 어린이집의 아동학대 문제를 언급할 때였다.
주변에서 워킹 맘과 전업 맘의 갈등을 심심찮게 접해요. 전 그게 굉장히…. 이번에도 9시 등교제를 둘러싸고 일하는 엄마들과 일하지 않는 엄마들의 갈등 관계로 몰아가던데, 오히려 교육부와 고용노동부가 함께 나서야 하는 문제인 거죠. 그 지역의 교육청에서 초등학교 9시 등교제를 결정하면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초등학생 아이를 둔 부모는 30분 늦게 출근할 수 있도록 제도가 완벽하게 세트로 같이 가야지, 아이들만 9시에 등교하게 하는 것은 반쪽짜리거든요. 이걸 엄마끼리의 싸움으로 몰아서는 절대 안 될 일이죠.
말씀을 듣고 보니 시야의 폭이 넓어지는 느낌이 드네요. 전업 맘도 언제든지 재취업 전선에 들어올 수 있고, 워킹 맘도 언제든지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두 집단을 갈등 관계로 몰아가는 프레임에 절대 갇혀서는 안 돼요. 혹 회의석상에서도 그런 비슷한 구도로 몰아가면 제가 강하게 얘기를 합니다. 당장 이번에 어린이집 아동학대 문제가 터져 보건복지부가 원 스트라이크 아웃이라고 해서 문제 어린이집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그러려면 기존에 다니고 있던 아이들은 어떻게 수용할 건지를 반드시 같이 언급했어야 해요. 어린이집이 문을 닫는 순간 아이들은 다시 새로운 곳에서 적응 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그 아이의 엄마를 위해 국가에서 유연근무를 보장한다거나 다른 국공립 어린이집에 우선 배치한다거나 하는 뒷받침이 없이 무조건 문을 닫는다는 발표만 가지고서는 절대 안심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제가 회의에서 정말 침을 튀며 했어요(웃음).
엄마 입장에서도 장관님 말씀에 수긍할 것 같아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꿰뚫고 계시니까요.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요. 저희 집만 해도 제 근무지에 따라 아이들이 직장 어린이집을 세 번 옮겼어요. 둘째 아이는 아직 세 돌도 안 됐는데 어린이집을 세 번 옮긴 거예요. 그것도 매번 바로바로 자리가 난 것이 아니라 공백기가 있었거든요. 그게 얼마나 힘든 줄 아니까요(웃음).
아이 키우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드세요? 예측 불허의 상황이 발생하는 거요. 예를 들어 제가 출근 준비를 할 때는 일어나는 시간과 밥 먹고 세수하고 옷 입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략 정해져 있잖아요. 그런데 애들은 그게 아니니까요. 외출 준비 다 끝내놨는데, 갑자기 옷에 똥을 쌀 수도 있는 거고, 갑자기 뭘 쏟아서 자기 옷뿐만 아니라 제 옷까지 다 버리게 만드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거고요. 뿐만 아니라 어린이집에 전염병이 돌아서 등원하지 못할 수도 있고, 또 우리 애가 고열에 시달릴 수도 있는 거고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있으니 만약의 경우에 대한 정책을 늘 고민하죠.
일과 육아 사이에 갈등을 심하게 느낀 적은 없으세요? 특별히 어떤 시기라기보다는, 일하는 엄마들은 늘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요? 저 같은 경우는 장기 출장 갔다가 돌아오면 아이가 확실히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요. 짜증과 잠투정도 늘고요. 그런데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아주 많이 부족해요. 주말에는 지역구에 가거든요. 지방 행사도 많고요. 그때는 아이들에게 그냥 “엄마 출장 간다”라고 얘기하는데, 어린이집 선생님이 그런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엄마 아빠 놀이’라는 걸 하는데, 두 돌 지난 둘째가 가방 들고 휴대전화로 전화하는 척하면서 “얘들아, 나 출장 갔다 올게”라고 했다는 거예요(웃음). 다른 아이들 중에는 그런 단어를 쓰는 아이가 아무도 없었대요.
담담하게 말씀은 하시지만, 짠하네요. 아, 네. 「레이디경향」을 읽는 분들도 대부분 연령대가 비슷하실 테고, 어떻게 보면 정부가 만날 무언가를 해도 현장에서는 바뀌는 것이 없다는 불만이 있으실 수 있는데, 결국은 그 회사에서 누군가가 용감하게 먼저 (워킹 맘을 위한) 제도를 쓰겠다고 나서지 않으면 절대로 바뀌지 않거든요. 안 쓰는 게 관행처럼 굳어지면 제도를 만드는 저희에게도 한계가 생기고요.
우리 중에 반드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네,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특히 아빠들이요. 제가 기업 CEO를 만나거나 대통령 주재 장관 회의 때 한 얘기가 있어요. 조직에서 성적이 좋거나 우수한 인력, 특히 남성에게 육아휴직을 쓰도록 적극적으로 권장하자고요. 또 휴직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도 주요 보직을 줘서 성공하는 케이스를 만들어주자고요. 육아휴직은 승진을 포기하거나 업무 의욕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쓴다는 편견부터 없애야 해요.
그 또한 능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말이죠? HR팀(인사팀)에 근무하는 한 남자 팀장으로부터 한 달간 육아휴직을 쓰고 나서 그 전에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퇴근 시간 땡 하면 들어가고 출근시간에 허덕이면서 채 정리되지 못한 모습으로 출근하는 여직원에 대한 반감이 있었대요. 그런데 직접 아이를 돌보면서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겪다 보니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해요. 그래서 저는 남자분들도 그 길이가 길건 짧건 한 번은 전업 아빠가 돼볼 수 있는 기회에 동참했으면 해요. 그래야 이해의 폭도 넓어지니까.
장관님도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워킹 맘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낸 적이 있으세요? 제가 청와대 대변인으로 갔을 때, 처음 한 일이 직장어린이집을 신청하는 거였어요. 워낙 대기 인원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어린이집은 오전 7시에 문을 여는데, 아침 첫 회의는 그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하는 거예요. 더 의외였던 건, 아무도 거기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저와 같은 회의에 참여하는 직급에서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사람이 없었던 거죠.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고위급 회의가 잡히면 그걸 준비하기 위해 실무진들도 그 시간에 같이 나온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제가 어린이집이 오전 7시에 문을 여니 회의도 7시에 하자고 제안을 했어요. 그 이후로는 6시 50분쯤 어린이집에 선생님이 오시면 아이에게 아침으로 먹을 우유와 떡을 손에 쥐어서 들여보내고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죠.
누군가는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걸 제대로 보여주셨네요. 사실 동료들에게 ‘쟤 아줌마였구나’ 이런 느낌을 풍기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이 있는 거거든요. 마치 그런 자리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걸 얘기하면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느낌을 줄까 봐 얘기를 못하는 건데, 시스템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것은 저뿐만 아니라 다음 사람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일이에요.
지금 장관님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일단 일하고 계신 분들께는 위기의 순간이 왔을 때, 그 순간은 지나가게 마련이므로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원과 제도를 이용해서라도 절대로 그만두지 말고 극복하자는 얘기를 하고 싶고요. 그 과정에 저희가 만든 제도가 어떻게 해서든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워킹맘워킹대디지원센터, 아이돌봄서비스,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와 같은 다양한 제도가 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활용하셨으면 좋겠고, 저희가 100% 커버는 못해드리겠지만 고충을 함께 나누면서 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터널은 반드시 끝이 있거든요. 그리고 전업 맘으로 그 자체에서 보람을 찾으시는 분들은 그 자체로 굉장히 좋아요. 혹시 재취업을 하고 싶다면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통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으실 수 있을 거예요.
※양육비이행관리원 제도 미성년 자녀의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이혼·미혼 한부모가 양육비이행관리원에 지원 신청을 하면 비양육부·모로부터 양육비를 받을 수 있도록 상담, 소송, 채권추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 연간 2만3,000여 한부모 가정에서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 / 장회정 기자 ■사진 / 박재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