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4월, 세월호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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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4월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세월호는 아직도 차가운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 후 1년. 도언 엄마 이지성씨와 함께 지난 1년을 돌아봤다.

또다시, 봄
따뜻한 봄 날씨가 반갑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작년 이맘때 세월호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봄이 오지 않았으면 한단다. 안산 단원고 2학년 3반이었던 고 김도언양의 어머니 이지성씨(44)는 봄이 오는 게 두렵다고 한다.

다시 찾아온 4월, 세월호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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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 중순쯤에 도언이가 친구들과 찍은 동영상이 있어요. 꽃향기도 맡고 나비도 보면서 까르르 웃는 모습이 담겨 있어요. 딱 이맘때죠. 그전에도 힘들었지만 봄이 다가오는 게 많이 두려워요. 새 학기가 시작돼서 도언이 또래들이 학교에 다니고, 곧 벚꽃도 피잖아요. 작년 어느 날 아침에는 도언이가 밖에 벚꽃이 많이 폈다며 사진 찍자고 하더라고요. 근데 제가 지각해서 안 된다고 말렸어요. 수학여행 가기 전엔 튤립축제 가자고 했었는데, 튤립은 5월에 피니까 수학여행 갔다 오면 가자고 약속했단 말이에요. 결국 그 약속도 못 지켰네요.”

그녀는 작년 4월 16일에 받았던 ‘전원 구조’라는 문자메시지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세월호에 탄 승객 전원이 구조됐다는 것이 오보로 밝혀진 뒤에도 아이들이 살아 돌아올 거라고 굳게 믿었지만 현실은 그녀가 생각한 것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사망자는 295명, 9명은 실종 상태다. 단원고 학생 4명, 교사 2명과 일반 승객 3명이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전보다 많이 줄어들었고, 세월호로 인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민낯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흐려져가고 있다.

남은 가족들의 삶
유가족들의 삶도 1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우선 일터로 돌아간 부모들이 늘었다. 남아 있는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자식 생각에 일을 하기 힘들어 다시 그만둔 부모들이 많다. 누군가 미리 예고라도 해줬다면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었을 거라는 그들. 평화로운 봄날에 청천벽력같이 다가온 자식의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도언 엄마는 피부관리실을 운영하던 피부관리사이자 건강·산모 관리 등에 대해 강의하는 강사였다. 사고 이후에도 강의 요청이 계속 들어왔지만 그녀는 다시 강단에 설 수 없었다.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도 밝히지도 못한 무능한 엄마가 누구를 위해 강의를 하겠어요. 미리 알았더라면 어떤 방법이든 가리지 않고 다 써봤을 거예요. 산이라면 밤새 땅이라도 파겠는데 바다는 그럴 수 없잖아요. 구조해주기만을 기다렸던 아이들이 우리를 얼마나 원망하면서 하늘나라로 갔겠어요. 그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때가 많아요.”

도언 엄마는 최근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없어지는 게 안타까웠고, 자신이 남긴 기록이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찾아온 4월, 세월호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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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언이가 발견되고는 일주일 동안 집에만 있었어요. 그런데 문득 ‘내가 힘이 없어서 내 새끼를 잃었는데 이렇게 무기력하게 앉아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어요.”

유가족들의 눈에 남아 있는 자식들이 들어온 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한참 뒤였다. 그들에겐 남아 있는 자식들의 슬픔을 보듬어줄 정신이 없었다. 도언이 오빠는 동생을 떠나보낸 두 달 뒤 군 입대를 했다. 도언 엄마는 아들이 입대하기 전까지도 아들의 분을 알아주지 못했다.

“18년 동안 함께 지냈던 동생이 하늘나라로 떠났는데 얼마나 슬펐겠어요. 그런데 저는 피켓 들고 서명 받으러 다니느라 전혀 보듬어주지 못한 거죠. 그때 생각하면 많이 미안해요.”

유가족들은 지난 1년간 목 놓아 울 시간 없이 바쁘게 살았다. 그들은 세월호 사고의 진상 규명을 위해 전국으로 서명을 받으러 다녔다. 광화문광장과 국회 앞에서 피켓을 들고 진실을 밝혀달라고 외쳤다. 전국 곳곳에서 간담회를 열고 일반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외국에까지 지친 몸을 이끌고 가 교민들에게 세월호 사고에 대해 알리고 함께 얘기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들은 3월 4일부터 18일까지 LA, 뉴욕 등 미국의 주요 도시들을 방문해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간담회를 열었다. 도언 엄마는 고 박예슬양의 아버지 박종범씨와 함께 3월 19일부터 일주일간 캐나다를 방문해 교민들을 만났다.

문제는 ‘인양’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이 하루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이유는 딱 한 가지, ‘진상 규명’을 위해서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인양이 꼭 필요한 상황. 지난해 11월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들로 구성된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는 수중 수색을 종료한다는 정부의 결정에 동의하면서 동시에 세월호를 인양해 선체 내부를 수색할 것을 요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월호 내부 격실이 빠른 속도로 붕괴되고 있어 무리하게 수색 작업을 계속하면 또 다른 사고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피해 가족들은 수색 작업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잠수사 가족들이 자신들처럼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길 원치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11일 수중 수색을 종료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인양 문제는 조금도 진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가족대책위원회는 올해 1월 26일부터 2월 14일까지 20일간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릴레이 도보 행진을 했다. 이는 세월호 인양과 실종자 수습 등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행진은 각 반별로 30여 명이 1박 2일간 하루 10시간 25km를 걸은 뒤 매일 저녁 7시에 다음 반과 교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정말 힘들었어요. 새벽에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죠. 하지만 한 발자국 움직일 때마다 세월호의 진실에 두 걸음, 세 걸음 다가가고 있는 것 같았어요. 이른 아침에 함성 한 번 지르면 힘든 게 싹 풀려서 걷고 또 걸었어요.”

지난 2월 22일, 이완구 국무총리가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그는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총동원해서 여러분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겠다”라며 세월호 피해 가족들을 위로했다. 이날 일부 실종자 가족은 세월호를 인양해달라며 무릎을 꿇고 이 총리에게 호소했다. 이 총리는 그들의 손을 잡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1월부터 세월호 인양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전남 진도 인근 사고 해역을 관측·조사해오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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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세월호 피해 가족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이들의 행동에 함께 동참하는 시민들이다. 그들은 정부나 언론은 바뀌지 않았더라도 시민들은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항상 쉽게 잊는 우리가 대한민국을 이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희생됐다”라고 말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청와대 앞에서 농성할 당시, 가족들 반대편에서 농성을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었던 주민들도 피해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엔 이내 피켓을 내리고 그들을 응원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시민들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가족들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도보 행진 때 한 노인은 그들에게 ‘빨갱이’라고 부르며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이유는 지겹다는 것이었다. 도언 엄마는 더 이상 세월호 피해 가족들을 정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죽은 애들이 너희 애들밖에 없냐고 대놓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저희는 순수하게 내 새끼를 위해 외치는 거예요. 아이들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잖아요. 저희를 ‘빨갱이’나 ‘종북좌파’ 같은 단어와 엮지 않으셨으면 해요. 저희를 나무라는 어르신들을 보면 가끔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해요. 내가 시민 한 명도 설득하지 못하는데 외국에 나가서 교민들을 설득하려고 하다니.”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은 가족들의 마음에 또 한 번 상처를 남겼다. 지난 1월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에 단원고 교복을 입고 어묵을 먹는 한 남성의 사진이 올라왔다. 글의 제목은 ‘친구 먹었다’였다. 세월호 사고 이후 일베에는 배 안에 갇힌 사람들을 비유해 ‘오뎅탕이 돼버렸다’라고 비하하는 댓글이 올라왔다. 어묵을 먹는 사진 역시 세월호 피해 학생들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분향소에 한 청년이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말했다. 엄마들은 흔히 어른들이 하는 위로의 말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청년은 무릎까지 꿇고 죄인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봉사를 하게 해달라고 했다. 엄마들이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대답하자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봉사라도 좀 하게”였다. 그는 바로 그 비하 글과 관련된 가해자였다.

“가해자가 두 명이에요. 한 명은 직접 글을 올린 사람이고, 다른 한 명은 글 올리라고 자극한 사람. 우리는 자극한 사람을 몰랐던 거죠. 문을 열고 당장 끌어냈어요. ‘이 정도 했으면 용서해야지’라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절대 용서할 수도 없고, 용서를 논할 가치도 없는 일이에요. 주한 미국 대사가 피습당했을 때도 사실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누가 배 타고 가라 했냐’라며 우리를 비하했던 사람들이 미국 대사 앞에서는 회복을 바란다며 사랑한다고 외치고. 진정한 부모라면 그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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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서 사라진다는 것
세월호 피해 가족들은 세월호가 우리 사회에서 점점 잊히고 있는 게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정부에서 사고의 진실을 덮으려고만 한다면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몇 배 더 많이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참사 1주기를 한 달 앞둔 지난 3월 16일과 17일 세월호 피해 가족들은 팽목항과 청와대 앞에서 조속히 선체를 인양하고, 아홉 명의 실종자를 수습해달라고 정부에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인양 계획조차 없이 참사 1주기를 맞을 수 없다면서 전국을 떠도는 가족들의 절박함에 응답해달라고 외쳤다.

세월호 사고 이후 그 어느 지역보다 비통함에 빠졌던 안산에도 봄이 오고 있다. 세월호 합동분향소가 있는 화랑유원지 근처 화정천 길엔 새싹이 돋았다. 날씨가 좀 더 따뜻해지면 나무에 연분홍빛 벚꽃들이 만개해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고 한다. 화정천 길은 하늘로 떠난 단원고 학생들이 아침마다 등교하던 길이기도 하다. 세월호 피해 가족들은 다가올 1주기를 어떻게 맞이할까. 이들은 4월 15일 다시 한번 사고 현장에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도언 엄마는 배 안에 있던 아이들이 곧 구조가 될 거라고 굳게 믿으며 기다리고 있었던 현장을 다시 바라볼 수 있을지가 걱정이란다. 아이를 떠나보낸 엄마들끼린 가끔 이런 얘기도 나눈다고 한다. 벚꽃 피면 벚나무 꽃봉오리를 다 따고 다닐 거라고. 아직 이들에게 4월은 너무 가혹한 듯하다.

세월호는 지금…
세월호 참사 1주기 전까지 세월호 선체 인양 여부가 결정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이 3월 9일 해양수산부에서 받은 서면 답변 자료에 따르면 해수부는 “세월호 선체 인양 관련 기술 검토 태스크포스팀이 3월 말까지 기술 검토를 완료할 계획이며, 검토 결과 공표는 4월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는 4월에도 선체 인양 계획이 확정될지 불투명하다는 의미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책임 등에 관한 진상 규명을 위해 설치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세월호 특위)는 아직 정식으로 출범하지도 못했다. 지난해 11월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고, 2월 17일 세월호 특위 설립 준비단이 마련한 시행령 안이 정부로 넘어갔다. 그러나 세월호 특위가 정부에 시행령 안을 송부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정부는 공식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적시에 직제·예산 마련에 필요한 지원을 하지 않으면 세월호 특위의 독립성 보장이 어려워질 수 있다. 세월호 특위 측은 정부 보고서를 재검토하는 수준으로 특위 활동을 마치진 않겠다는 입장이다.

■글 / 노도현 기자 ■사진 / 안지영,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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