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개의 향을 기억하는 남자…조향사, 장 클로드 엘레나

수천 개의 향을 기억하는 남자…조향사, 장 클로드 엘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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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세계적인 브랜드 에르메스의 수석 조향사 장 클로드 엘레나가 에세이 「나는 향수로 글을 쓴다」 (여운)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향수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프랑스 그라스에서 태어나 평생 매혹적인 향을 좇아온 그에게 직접 들어본 조향사의 삶.

수천 개의 향을 기억하는 남자…조향사, 장 클로드 엘레나

수천 개의 향을 기억하는 남자…조향사, 장 클로드 엘레나

향 수의 고장에서 태어나 조향사 집안에서 자랐으니 조향사가 되는데 이보다 더 결정적인 계기가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은발의 조향사 장 클로드 엘레나(68)는 향을 만드는 과정을 “향에 대한 기억에 상상력을 더해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 정의했다. 2007년 개봉한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자연에서 비롯된 로맨틱한 예술의 영역이라고만 지레 짐작했는데, 의외로 그는 ‘화학’의 영역을 강조했다.

“저에게 향이란 화학입니다. 자연 원료는 50여 가지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화학작용의 결과물이라고 보면 됩니다. 화학작용의 적정한 조화로부터 향은 시작되죠.”

조향은 각각의 원료의 무게를 재고 미세하게 다른 조합을 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조향사가 미리 머릿속으로 만들어낸 향에 다가가는 작업이라고 했다. 때문에 10년을 고민하기도 하고, 때로는 단 3일 만에 완성품을 얻기도 한다. 초대를 받아 방문한 튀니지의 정원에서 지중해의 향을 토대로 3일 만에 만들어낸 그 향수가 바로 에르메스와 합심한 정원 시리즈의 첫 번째 향수 ‘운 자르뎅 메디테라니(지중해의 정원)’다.

전 세계적으로 1년에 2,000개가 넘는 새로운 향수가 쏟아져 나온다. 장 클로드 엘레나는 한 해 평균 3개의 완성품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라고. 그는 시장 논리나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장인이자 예술가로서 가능성을 인정해주는 에르메스와의 작업이 썩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전속 조향사를 두기보다는 향수 공장에 의뢰하고 있는 브랜드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현재 에르메스에는 10여 명의 전속 조향사가 소속돼 있다.

수천 개의 향을 기억하는 남자…조향사, 장 클로드 엘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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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향수의 역사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다. 향수에는 애초부터 성의 구분이 없었다고 한다. 19세기 말에 들어서며 마케팅을 위해 구분됐다는 것. 만약 판매를 위해 남성용, 여성용을 나누지 않았다면 교차 선택을 많이 할 거라며, 굳이 구애받지 말고 마음에 드는 향수를 뿌리면 된다고 조언했다. 또 향수를 구입할 때는 광고나 제품 이미지에 연연하지 말고 반드시 샘플을 피부에 사용해보고 향수가 내 피부에서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 염두에 두고 고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한국의 시장에 방문해 각종 약초와 허브, 향신료를 접하고 그 향을 훔쳐왔습니다. 지금껏 접하지 못한 향을 맡고 또 가져가서 연구하는 게 재밌거든요.”

직업적 특성상 금연을 하고 콜라조차 마시지 않는다는 그는 ‘향을 잘 맡기 위해’ 마늘과 양파와 같은 강한 향신료도 피한다고 했다. 그런 그가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마늘 향을 맡았다는 얘기를 들으니 쿡 웃음이 났다.

“아주 맡기 싫은 향으로도 좋은 향수를 만들 수 있습니다. 김치를 원료로 장미 향을 맡게 할 수도 있을걸요.”

■글 / 장회정 기자 ■사진 제공 /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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