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대인시장 ‘천원 밥상’, 김선자 할머니가 떠난 그 후

광주 대인시장 ‘천원 밥상’, 김선자 할머니가 떠난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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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원. 든든하게 밥 한 끼 먹기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비용이다. 광주 대인시장 ‘해 뜨는 식당’의 ‘천원 밥상’. 이 식당을 운영해오며 김선자 할머니가 받은 1,000원은 상처받을지 모르는 그들의 속내까지 생각한 깊은 배려였다. 김 할머니의 밥 한 공기는 그 이상의 따뜻한 온기로 이웃들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지난 3월, 할머니는 대장암 투병 중 향년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 할머니의 온기를 이어받은 이들이 ‘천원 밥상’을 지키고 있다.

취재 도중에도 도움의 손길은 끊이지 않았다. 광주 대학생 연합 봉사단체 ‘착한 사람들의 모임’에서 쌀을 기증해왔다. 김선자 할머니는 떠나지 않았다. 할머니의 사랑과 온기는 여전히 식당 안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취재 도중에도 도움의 손길은 끊이지 않았다. 광주 대학생 연합 봉사단체 ‘착한 사람들의 모임’에서 쌀을 기증해왔다. 김선자 할머니는 떠나지 않았다. 할머니의 사랑과 온기는 여전히 식당 안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더없이 따뜻한 밥 한 공기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시장에 자리한 김선자 할머니 식당의 정식 이름은 ‘천원 밥상’이 아닌 ‘해 뜨는 식당’이었다. 1,000원이면 밥 한 공기와 소박한 반찬으로 어려운 이들의 빈속을 채워준 김 할머니의 미담이 점점 퍼져나가면서 자연스레 식당 이름은 ‘천원 밥상’이 됐다. 김 할머니는 지난 2010년 8월부터 2012년 5월까지 시장에서 1식 3찬과 된장국이 나오는 백반을 1,000원에 팔아왔다. 이 밥상은 주로 시장에 채소를 팔러 온 노점상 할머니나 끼니를 거르기 쉬운 독거노인들을 위해 차려졌다. 할머니는 한 달 평균 100만~200만원의 적자를 봤지만 그만두지 않았다. 자신도 어려웠던 시절, 남들에게 받은 도움을 여생을 통해 베풀고 가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실패했을 때 누구한테 쌀 없다는 말을 못해서 굶어보기도 했거든요. 아, 세상 살다 보면 이렇게 ‘자존심 상해서 밥 한 끼를 못 먹는 사람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시작한 거예요.” (SBS-TV ‘궁금한 이야기 Y’ 중에서)

손님들에게 받는 1,000원의 온기 어린 의미도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비록 어려운 처지이지만 밥을 얻어먹는다는 자괴감을 갖지 말고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할머니의 배려였다. 그렇게 이웃에게 행복을 전해주던 김 할머니가 지난 2012년 5월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말았다. 그 탓에 할머니의 ‘천원 밥상’도 잠시 중단의 위기에 놓였다. 식당을 자주 찾던 노인이나 어려운 이들도 갈 곳이 없어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 이런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대인시장의 상인들과 기업, 시민들이 나서기 시작했고, 가게는 다시 문을 열 수 있었다. 할머니 역시 예전의 건강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암 수술을 받은 뒤 매일 식당에 나와 오는 이들의 손을 잡고 반가운 미소를 건넸다. 그러나 2년 뒤 김 할머니는 “식당을 계속 운영해주길 바란다”라는 유언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떠났지만…
금요일 오후 2시. 점심시간은 조금 지난 때였지만 꽉 찬 손님들로 식당은 활기가 넘쳐흘렀다.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이들은 주로 식당이 문을 막 여는 오전 시간에 찾는 경우가 많았고, 점심시간이 지난 뒤에는 유명세를 찾아, 혹은 후원하기 위해서 일부러 찾는 발길들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식사를 한 다음에 자율 계산대에 놓인 통에 알아서 식사 비용을 지불하면 된다. 취재차 왔지만 김 할머니의 나눔이 담겨 있는 밥 한 공기를 꼭 먹어보고 싶었다. 깔끔하고 깊은 맛의 된장국, 김치를 포함한 3가지 나물반찬 그리고 윤기 나는 흰쌀밥.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단연 차지고 맛있는 쌀밥이었다. 보통 식당에서 볼 수 있는 입 안에서 겉도는 찐쌀의 느낌이 아니었다. 집에서 먹는 가정식 백반 그대로였다. 식당을 대신 맡아 운영 중인 홍정희 대인시장 상인회 회장의 대답으로 이유를 쉽게 알았다.

식사비는 100% 자율적으로 지불하는데, 투명한 요금통에 돈을 넣는 방식이다. 천원 밥상에는 쌀밥과 된장국, 3가지의 나물 그리고 어르신의 단백질 보충을 고려한 생선 1가지가 늘 준비돼 있다.

식사비는 100% 자율적으로 지불하는데, 투명한 요금통에 돈을 넣는 방식이다. 천원 밥상에는 쌀밥과 된장국, 3가지의 나물 그리고 어르신의 단백질 보충을 고려한 생선 1가지가 늘 준비돼 있다.

“쌀이 좋은 건 당연해요. 특히 쌀을 정기적으로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분들이 이곳에 보내주시는 쌀은 주문하실 때 신경 써서 품질 좋은 쌀을 보내달라고 하신대요. 그러니 쌀이 좋지 않을 수 없죠.”

밥 한 그릇을 비울 때쯤 ‘착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광주 지역 대학생 40여 명으로 구성된 봉사 단체의 남녀 대학생 둘이 쌀 한 포대를 들고 들어왔다. 벌써 두 번째 방문이라고 한다. 할머니는 떠나셨지만 그분의 나눔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고마운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광주 신세계백화점에서는 고가의 비용이 드는 식당의 시설 부분을 봐주시고, 겨울에는 꾸준히 난방 연료도 넣어주셨어요. 그래서 식당을 찾는 분들이 따뜻하게 한 끼 드실 수 있었고요. 또 2013년부터 매월 빼놓지 않고 쌀을 두세 포대씩 보내주시는 분이 계세요. 김설희씨라고, 이름도 예쁘시죠? ‘천원 밥상’ 덕분에 그런 분들을 만나고 접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에요.”

‘홍 회장은 일정 금액의 후원금이 들어오거나 물품을 기증받았을 때는 날짜, 기부자 이름, 받은 물품명 등 모든 사항을 기록해놓는다(기증품 전달 주소: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 194번길 7-1 대인시장 천원 식당). 그녀는 2003년부터 김 할머니와 친분을 쌓았고, 할머니가 암 투명을 시작한 2012년부터 실질적으로 ‘천원 밥상’을 맡았다.

김선자 할머니의 뜻으로, 끝까지
김선자 할머니의 마지막 길. 홍 회장이 그 자리를 지켰지만 할머니가 그리 허망하게 세상을 뜨실 줄 몰랐다고 회상했다.

“병상에 누워계셨어도 ‘금방 나아서 식당에 나오겠다’라고 하셨어요. 저랑 장난도 치시고 표정이 정말 밝으셨거든요. 하늘나라에 가게 되더라도 배고파서 밥 굶는 사람이 없게 해달라고 하시더니, 그렇게 이틀 만에 떠나시더라고요.”

김 할머니는 투병 중에도 식당에 매일 출근했다. 항암치료로 입 안이 다 헐어 음식을 먹지 못할 때도 이곳의 된장국은 맛있게 드셨단다. 그렇게 조금씩 웃음을 되찾는 김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할머니가 정말 아프다고 한 것이 마지막 1개월 반 정도였어요. 그리고 끝까지 걱정했던 한 가지는, 당신이 식당을 운영하며 낸 적자 때문에 생긴 남에게 갚지 못한 빚이었죠. 다행히 할머니의 자녀분들이 다 해결해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떠나셨어요. 장례식 내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할머니의 뜻을 기리며 슬퍼했죠.”

홍 회장은 많은 사람들의 애도를 받으며 떠나는 김 할머니를 보면서 진정한 부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녀는 현재 3명의 시장 상인들의 도움을 받아 나눔을 이어가고 있다.

홍정희(대인시장 상인회 회장)

홍정희(대인시장 상인회 회장)

“저를 포함해 네 분이 도와주고 계세요. 백정자, 홍순자, 박연옥씨입니다. 모두 시장에서 각자 장사를 하시며 상인회 임원도 맡고 있죠. 저 때문에 고생이 많아요. 특히 식당 앞에서 생선 가게를 하는 백정자씨는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고양이가 생선을 훔쳐가는 바람에 손해가 막심해요(웃음). 대인시장 사람들은 정겹고 마음의 여유가 있어요.”

앞으로 만약 후원이 좀 준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천원 밥상’을 이끌어가겠다는 약속은 비단 김 할머니와의 약속이 아닌, 자신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이 정도라면 내가 부담할 수 있는’ 정도의 기분 좋은 적자를 유지하고 있어요. 후원이 줄더라도 두렵지 않아요. 제 마음이 있는 곳에 이웃의 마음이 함께할 것이고, 부족하다면 하늘에서 채워주는 몫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저 저에게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해준 김 할머니에게 감사할 따름이죠.”

생전에는 사람들에게 괜한 오해를 받기도 했던 김 할머니였다. 그 모든 것을 옆에서 지켜본 홍 회장은 할머니의 뜻을 이어나갈 적임자다.

“할머니가 사람들에게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받기도 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정부로부터 몇 억원 상당의 후원금을 받아 빌딩을 샀다고 떠들기도 했고요. 할머니는 늘 ‘개의치 말자. 억울한 것은 밝혀질 테니 지금은 묻어두자’ 라고 하셨어요.”

홍 회장 역시 수많은 오해, 경제적 부담감 모두 견딜 수 있다고 다짐한다. 식당 문을 열기도 전에 비척비척 넘어질 듯한 걸음으로 가깝지 않았을 거리를 걸어왔을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힘이 절로 난다.

“식당에 오셔서 두 그릇이나 밥을 비우시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저희가 조금 노력해서 그분들이 든든하게 식사하실 수 있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김선자 할머니의 뜻을 기리는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천원 밥상’은 오늘도 변함없이 따뜻한 밥 한 끼를 내어주고 있다.

■글·사진 /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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