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방송에 인문학 꽃을 피우다, 김학순 PD

아침 방송에 인문학 꽃을 피우다, 김학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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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TV 아침 프로그램은 늘 비슷했다. 살림 비결, 건강 정보, 연예인 근황, 가정불화 솔루션 등 돌림 노래 같은 레퍼토리에 싫증을 느끼는 시청자도 부지기수. 그런데 KBS의 간판 아침 방송 ‘여유만만’이 180도 달라졌다. 다시 TV 앞에 앉고 싶어질 만큼 흥미롭게!
아침 방송에 인문학 꽃을 피우다, 김학순 PD

아침 방송에 인문학 꽃을 피우다, 김학순 PD


하루를 여는 인문학 담소
KBS-2TV ‘여유만만’은 지난 1월에 과감한 개편을 단행했다. 역사, 심리, 문학, 예술 심지어 철학까지 주제로 삼고 철학자, 역사학자, 변호사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나와 이야기를 나눈다. 좀처럼 깨지지 않는 방송가 불변의 공식이었던 전통적 아침 방송 포맷을 대체 누가 이처럼 과감하게 바꿔놓았는지, 그 주인공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찾아갔다. ‘여유만만’의 김학순(55) PD를.

방송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익히 알던 그 ‘여유만만’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방송을 본 분들은 다들 그러더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른 방송이나 인터넷 뉴스에서도 연예인의 신변잡기적인 이야기가 넘쳐나는데 굳이 우리까지 다뤄야 하나 싶었다. 그런 종류의 내용도 필요한 면이 있지만 그보다는 삶과 관련된 본질적인 주제를 다루고 싶었다.

본질적인 이야기라니 심오하다. 그동안 어떤 주제를 다뤘나?
원초적 본능, 화를 다스리는 법, 두 발로 생각하는 걷기의 힘, 생각의 힘을 키워주는 슬로 리딩, 인생을 바꿔주는 질문의 힘, 그림 속에서 나를 만나다, 무엇이 우리 사회를 악하게 만드나 등등 삶과 연관된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장자」, 「동의보감」으로 해석한 여성의 몸 이야기 등도 쉽게 전달이 됐다며 반응이 좋았다. 매주 목요일은 역사 문화 기행으로 꾸며서 지역마다의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철학자 강신주·탁석산 박사, 기생충 전문가 서민 교수, 문학평론가 고미숙 등 소위 ‘주부 프로그램’에서는 보기 힘든 패널들이 나온다.
섭외에 공을 들여 모셨는데 시청자 반응이 아주 좋았다. 특히 철학자가 TV 프로그램 패널로 나오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우리 프로그램에는 그분들의 생각이 필요할 때가 많다. 모두 프로그램 취지에 공감한 것 하나만으로 흔쾌히 출연해주신 분들이다. 심지어 출연료도 묻지 않으신다. 패널들을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뿐이다.

‘주부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라는 오프닝 코멘트가 인상적이다.
사실 꼭 주부에 한정된 말은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를 가만히 보면 물질적으로는 충분히 차고 넘친다. 그런데 내가 여태까지 살아본 것에 비춰보니 물질로는 행복할 수 없다. 의식적으로라도 사람들이 정신적인 부분에 더 관심을 두고 살아야 하는 때가 아닌가 싶다.

시청자 게시판이 호평 일색이다. 한 편의 명강의를 듣는 것 같다고 하더라.
요즘은 지역 문화센터나 도서관에도 다양한 시민 강의가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TV는 리모컨만 누르면 되니까 더 쉽게 만날 수 있지 않나. 쉽게 볼 수 있는 토론 강의 같다는 면에서 호평해주시는 것 아닐까. 또 워낙 지적 호기심이 있는 분들께서 우리 프로그램을 봐주시는 것 같다. 그런데 시청자 게시판에 칭찬만 있다는 건 시청률이 안 나온다는 증거다(웃음).

KBS니까 해야 하는 이야기
시청률이 아쉽나?
방송은 철저히 시청률 지상주의다. 그런데 시청률이 낮더라도 KBS니까 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공영방송 KBS는 좀 재미가 없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여유만만’ 시청률이 낮다고 하는 얘기가 아니고(웃음).

동시간대 아침 프로그램 중에서 단연 튄다. 어려움은 없나?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시청자에게 가 닿지 않으면 소용이 없지 않나. 쉽게 전달하는 방법을 찾는 게 고민이다. 나를 비롯해 우리 스태프의 숙제다. 다행히 지금 KBS 조대현 사장이 교양 부문을 강화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고, 전체적으로 그런 쪽으로 개편되고 있어서 힘이 되는 부분이 있다.

스태프에게 숙제를 많이 낸다고 들었다.
작가들, 현장 PD들에게 일주일에 1권씩 책을 사준다. 나는 프로그램의 큰 판을 짜는 역할이지만 세세한 결은 나보다는 그들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주일에 5개의 주제를 정해야 하는 프로그램인데 당연히 만드는 이들부터 공부를 해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회의할 때마다 숙제 점검을 하는데, 아마 힘들 거다(웃음). 방송 만들면서 생소한 책 읽고 공부한다는 게 힘들겠지만, 그래도 나중에 큰 자산이 될 거라 믿으니 계속할 거다.

애독가일 것 같다.
애독가를 넘어 활자중독인 것 같다. 호기심이 많아서 한 번에 5권 정도씩 동시에 읽는 스타일이다. 어렸을 때 집에 책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책에 빠졌다. 다섯 번 읽는 걸 한 번 본 걸로 칠만큼 반복해서 읽는 편이다. 청소년기에는 그저 글자를 읽다가 대학교 때 문장의 아름다움을 느끼고는 시도 좋아하게 됐다. 요즘에는 한시를 필사해서 지인들에게 SNS로 배달하는 게 취미다.

요즘 어떤 것에 관심이 많은지 궁금하다.
역사를 좋아한다. 나중에 은퇴하면 역사에 관련된 책을 써보고 싶은 소망도 있어서 자료도 꾸준히 모으고 있다. 조선시대 산문집도 끊임없이 관심이 가는 것 중 하나다. 박지원, 정약용 선생의 글을 보면 얼마나 미문(美文)이 정말로 많다. 서양에만 문장가가 있는 것이 아닌데 사람들이 잘 모른다. 기회가 되면 방송에서도 다뤄보고 싶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꼭 철학자 같은 느낌이다.
내가 원래 재미가 없다(웃음).

주부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프로그램을 해보니, 어떤가?
원하는 이야기를 하니 재밌기도 하고, 전달하는 면에서는 어렵기도 하다. 시청자들이 아침에 잠깐 우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평소에 잘 몰랐던 ‘다른 세상’을 느낄 수 있다면, 생각의 단초를 제공하는 전달자 역할만 잘할 수 있다면 만족한다.

Profile 김학순 PD는…
1987년 KBS 공채로 입사. ‘6시 내 고향’, ‘신세대보고 어른들은 몰라요’, ‘문화탐험 오늘’, ‘VJ 특공대’, ‘기적체험 구사일생’, ‘성공예감 경제특종’, ‘TV 책을 말하다’, ‘문화지대’, ‘생로병사의 비밀’, ‘아침마당’, ‘생생정보통’ 등 KBS 간판 프로그램을 거쳐 지난해 11월부터 ‘여유만만’ 프로듀서를 맡고 있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정성민(프리랜서) ■사진 / 김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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