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트업계를 이끄는 젊은 여성 CEO들의 대담
신문과 뉴스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스타트업(Start-up)’이란 단어. 설립한 지 오래되지 않은 신생 벤처 기업을 일컫는 말이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기반으로, 대부분 직원 4, 5명 정도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출발하는 게 특징이다. 초기에는 IT업계 위주로 스타트업 창업이 봇물을 이뤘지만 요즘은 IT, 문화, 예술, 여행 등 딱히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성공 신화를 쓴 스타트업 회사들이 대거 등장하며 국내 스타트업계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샤오미’ 역시 시작은 스타트업이었다는 사실. 2010년 창업한 샤오미는 5년 만에 460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창출하며 삼성전자는 물론 애플까지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 무일푼의 벤처 회사의 기적 같은 성공담은 그야말로 스타트업의 ‘좋은 예’다. 하지만 화려한 외양에 눈이 멀어 약육강식의 생존 본능이 지배하는 이곳을 얕봐서는 안 된다. 업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두 여성 CEO 김미균(29) 시지온 대표, 김가영(28) 호텔 나우 대표와의 대담을 통해 스타트업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각자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김미균 IT 벤처 회사 시지온의 대표입니다. 국내 최초로 SNS 계정으로 인터넷 댓글을 남길 수 있도록 하는 소셜 댓글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어요.
김가영 호텔의 남은 빈방을 시중가보다 훨씬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중계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호텔 나우의 대표입니다.
스타트업에 뛰어들게 된 특별한 배경이 있었나요?
김미균 대학교 때 전공이 신문방송학이었어요. 미디어를 공부하면서 인터넷에 만연한 악성 댓글이나 사이버 테러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대학교 2학년 때 IT 스타트업에 뛰어들었어요.
김가영 저는 대학 졸업 후 로스쿨 진학을 앞두고 있던 때였어요. 별 계획 없이 부산 해운대로 여행을 떠났는데 휴가 당일에 묵을 숙소를 구하느라 크게 애를 먹었어요. 분명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 빈방이 있을 텐데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걸 정리해서 보여주는 서비스가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제가 겪은 불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케이스에요.
김미균 대표는 연세대, 김가영 대표는 서강대 출신이에요. 흔히들 명문대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하는 삶을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잖아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벤처 사업을 시작했으니, 주변의 만류도 있었겠죠?
김미균 지금의 20대는 IMF 때 학창 시절을 보낸 세대라, ‘안정’이 삶의 주요한 화두에요. 게다가 저희 부모님은 사업하면서 어려움을 꽤 겪으셨어요. 취업 준비는 안 하고 스타트업을 하겠다고 하니 내색은 안 해도 놀란 눈치셨어요.
김가영 저는 원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성격이라(웃음). 주변의 걱정이나 우려 같은 건 별로 신경 안 썼어요.
김미균 저는 이해를 많이 받은 편이지만, 함께 창업한 멤버 중에는 부모님 반대가 심해서 힘들어하는 친구도 있어요. 명절 때 친척들 앞에서 회사 소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왔다는 직원도 있고요(웃음). 아무래도 대기업이 아니니 부모님들은 나가서 뭘 하는지, 어떤 회사인지 궁금해하시더라고요.
기존 기업과 스타트업 회사. 아무래도 가장 다른 건 업무 환경이 아닐까요?
김미균 위계적 상하 구조에서 자유로운 편이에요. 모두가 즐겁게 일하는 게 목표예요. 덕분에 직원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친해요. 이제는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김가영 스타트업은 사람이 가장 중요해요. 그게 회사의 유일한 인프라거든요. 저희가 공장을 가지고 있다거나 기계로 일을 하는 게 아니니까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회사의 생사를 결정하고, 어쩌면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할 거예요.

김가영 호텔 나우 대표
대학 2학년 때 창업을 해 벌써 7년 차 CEO라는 김미균 대표와 2년 전, 벤처라는 전쟁터에 뛰어든 김가영 대표. 이제 겨우 20대 후반인 이들은 연매출 수십 억원대의 탄탄한 스타트업 기업의 수장이다. 우아해 보이는 백조도 수면 아래에서는 오리처럼 부지런히 발을 놀려야 하는 법. 이미 꽤 많은 것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현재 역시 온통 노력으로 점철돼 있다.
20대 여자가 짊어지기에는 ‘대표’라는 왕관이 무거웠을 거예요.
김미균 일 시작하고 처음엔 정말 많이 울었어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20대 젊은 여자이기에 겪어야 하는 핸디캡들이 있거든요. 고객사 중에 언론사나 대기업이 많은데, 나이 지긋하고 보수적인 임원진으로부터 인정받는 게 힘들었어요.
김가영 맞아요. 어떤 때는 대표가 어리니까 회사도 약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이 회사가 얼마나 갈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죠.
김미균 직원들 챙기는 일도 빼놓을 수 없죠?
김가영 그 생각만 하면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러요. 가끔씩 일이 뜻대로 안 될 때면 문득 ‘길에 나앉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연스럽게 직원들과 그 가족들의 얼굴까지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죠(웃음).
지금은 어때요? 여자 그리고 나이의 장벽에서 좀 자유로워졌나요?
김미균 물론이죠. 경험이 쌓이면 여성 CEO라서 더 좋은 점도 많아요. 우선,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유하게 대하고 부드럽게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는 힘이야말로 여성 대표의 강점이죠.
김가영 나이는 어리지만 매끄럽게 일 처리를하는 모습을 보면 거래처 사장님들도 든든한 파트너로 인정해주시더라고요. 편견을 뛰어넘으니까 전보다 더 신뢰를 받게 되구요.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는 또래와 다른 길인데 불안하지 않아요?
김가영 회사 생활 하면서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 친구들이 없던걸요?(웃음) 오히려 제가 더 즐겁게 사는 것 같아요.
김미균 불안했던 시간도 있지만, 기간이 길진 않았어요. 다행히 사업도 차근차근 잘 성장해왔고요. ‘쟤는 취업 안 하고 뭐 하냐?’라는 식의 시선을 견디는 건 좀 힘들었어요. 물론 지금은 역전됐죠. 회사 다니는 친구들이 만날 때마다 창업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봐요.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여성들을 위한 정부 지원 정책들은 어때요?
김미균 사실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여성 대표들이 생각만큼 많지 않아요. 꼭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기보다 스타트업 자체를 위한 정부 지원이 예전보다 많아지긴 했어요.
김가영 제가 시작했던 2년 전보다 지원 프로그램이 훨씬 다양해졌어요. 지원 자금도 그렇고 투자 환경도 점점 나아지고 있어요.
김미균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스타트업 회사들이 정부 지원에 의지하는 걸 경계하는 편이에요. 힘들어서 숨이 꼴딱 넘어갈 지경이라도 스스로 버텨봐야 하는데, 어려울 때마다 정부의 도움을 받는다면 의존적이게 될까 봐 두려워요. 먹이 잡는 법을 알려줘야지 먹이만 입에 넣어주는 건 아니라고 봐요.
포기하지 않는 게 목표
스타트업을 통해 엄청난 성공을 하고야 말겠다는 욕심은 없다. 그저 포기하지 않고 지금 하는 일을 잘 가꿔나가고, 앞으로도 유연한 생각과 두둑한 배짱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데 주저함이 없길 바랄 뿐이다. CEO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여자로서의 인생과 가정도 잘 꾸려나가고 싶다.

김미균 시지온 대표
김가영 나이가 들어도 이런 일을 계속 하는 것.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도 괜찮아요. 묵묵히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보고 싶어요.
김미균 동감이에요. 벤처라는 게 겉에서 봤을 때나 화려해 보이지, 실제로는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기특할 정도로 고된 일이에요. 발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젊음을 다 바쳐서 만들어낸 거잖아요.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요.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은 언제였나요?
김미균 같이 일하던 사람이 떠날 때. 연인과 이별하는 심정이랄까? 여러 이유로 떠나는 건데도, 모든 게 제 탓 같아요. 그리고 이건 어쩔 수 없이 반복돼야 하는 일이니까 앞으로도 잘 이겨내는 수밖에 없겠죠.
김가영 일할 사람 찾는 것도 힘들어요. 관련 업계에서 오래 몸담았던 게 아니라서 인력 풀이 늘 부족해요.
대화 주제가 주제인지라 몇 시간째 일 얘기만 하고 있는데도 두 분은 더더욱 활력이 솟아 보여요. 이쯤 되면 워커홀릭이 분명해 보입니다만….
김미균 하하! 맞아요. 진정한 워커홀릭이에요. 근데 요즘은 일만큼이나 개인의 삶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신없이 일만 하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김미균이라는 사람으로 산 시간이 너무 적더라고요. 성격도 변했어요. 예전에는 드라마도 챙겨 보고, 액세서리도 좋아하고, 시시콜콜한 연애사도 털어놓으면서 또래 여자들처럼 지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전혀 아니에요.
김가영 취향이 꽤 풍부한 사람이었는데 그게 없어졌어요.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네요. 일을 빼면 남아 있는 제 자신이 별로 없어요.
김미균 그런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사람들과의 교감도 어려워져요. 모두가 저를 CEO로만 보니까 깊이 있는 속내를 털어놓지 않게 되고요. 일을 잘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제 라이프를 잘 꾸려야 할 것 같아요. 여자로서 사랑받고,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고,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으며 살아야죠.
예전 여성 CEO들은 가정보다 일을 중시하는 모습이었어요. 여성의 부드러움보다는 CEO로서의 강인함을 드러내려 했고요. 두 분을 보니 요즘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김가영 연애나 결혼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가정을 꾸린 직원들도 많은데, 저 또한 아내 그리고 엄마가 돼봐야 그분들 마음을 100% 이해할 수 있을 거고요. 그리고 대표니까 남자처럼 일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건 싫어요. 그냥 제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게 좋아요.
김미균 여자로서의 삶도 중요하죠. 언젠가 지금의 열정이 완전히 소진될 때가 올 텐데, 회사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늘 준비하고 생각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김가영 근데 아이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정말 모르겠어요. 선배님들도 다들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저 때가 되면 잘 헤쳐가겠거니, 하고 바랄 뿐이에요(웃음).
끝으로 스타트업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조언이 있다면요?
김가영 창업 후 첫 1년을 이 악물고 버텨내세요. 그 기간 동안에 성과가 없거나 여러 어려운 일이 생겨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참아보셨으면 해요.
김미균 제 또래 여자분들이나 주부님들이라면 큰 자본을 들여 창업하기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는 게 어떨까요? 그 분야의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도 좋고, 물건을 만들어봐도 되고요. 자신 있는 영역을 꾸준히 가꿔 나가다 보면 반드시 기회가 와요. 창업이라고 굳이 거창할 필요는 없어요. 집에서 작은 소득을 내는 것도 스타트업의 일환이라고 생각해요.
■글 / 서미정 기자 ■사진 / 김성구 ■헤어&메이크업 / W 퓨리피(02-549-6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