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가족과 마포구 사장님들이 함께한 ‘선물 같은 하루’

장애인 가족과 마포구 사장님들이 함께한 ‘선물 같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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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을 좋아하는 마포구 사장님들이 유쾌한 작당 모의를 했다. 매달 장애인 한 가족을 초대해 메이크오버, 가족사진 촬영, 저녁 식사까지 특별한 하루를 선물하는 프로젝트를 마련한 것.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한없이 행복했던 어느 봄날의 하루를 함께했다.

장애인 가족과 마포구 사장님들이 함께한 ‘선물 같은 하루’

장애인 가족과 마포구 사장님들이 함께한 ‘선물 같은 하루’

PM 2:00 오테르 살롱
따뜻한 공기가 봄을 알리는 3월의 어느 날.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헤어숍 오테르 살롱 직원들은 손님맞이에 분주했다. 바라봄 사진관 나종민(53) 대표, 오테르 살롱 홍대점 김진광(33) 원장, 카페 슬로비 한영미(45) 대표가 함께 초대한 귀한 손님이 오는 날이기 때문. 그 주인공은 이일수(29)·오승희(29) 부부와 귀여운 딸 유리(3)다. 부부 모두 장애가 있는 이 가족은 “며칠 전부터 손꼽아 오늘을 기다렸다”라며 들뜬 모습이었다. 하루 동안 가족을 안내하는 역할은 나종민 대표가 도맡았다. IT 업계에서 20년 넘게 일하며 외국계 회사 지사장을 맡았던 나종민 대표는 자발적 은퇴 후에 장애인 사진을 찍기 위해 국내 최초 장애인 전용 사진관인 바라봄 사진관을 열었다. 그는 전국의 장애인 시설 및 소외된 이들을 찾아다니며 꾸준히 사진 봉사를 하는 ‘나눔 마니아’로 유명하다. 이날 장애인 가족을 초대하는 나눔 행사를 하게 된 것도 나종민 대표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일이다.

“제가 만난 대부분의 가족들이 어렵게 생활하시다 보니 미용실에 가서 단장을 하거나 마음 편히 외식을 하는 일이 드물더라고요.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이런 것이 그분들 일상에 활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머리 손질하고 사진도 찍고 식사까지 대접하는 ‘코스’를 마련하고 싶었죠. 그래서 이 프로젝트 이름을 ‘선물 같은 하루’로 붙였어요.”

나종민 대표의 ‘선물 같은 하루’ 프로젝트는 그의 뜻에 공감하는 좋은 이웃들을 만나 비로소 완성됐다. 나눔 대상인 장애인들 대부분이 이동이 쉽지 않은 것을 고려해 바라봄 사진관 근방에 있는 곳을 물색했다. 그 결과 오테르 살롱과 카페 슬로비가 동참하게 된 것. 나종민 대표의 제안을 들은 두 사장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환영의 뜻을 밝혔다.

“좋은 일에 함께할 수 있어서 오히려 기뻐요. 나눔을 하고 싶어도 구체적인 실행 방법이 막막했는데, 나 대표님이 워낙 경험이 많다 보니 저희는 마음만 열고 따라가면 되거든요. 게다가 ‘선물 같은 하루’ 프로젝트는 직원들에게도 반응이 무척 좋아요. 미용실 일이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 업종이다 보니 아무래도 심신이 지칠 때가 많은데, 이 ‘나눔’이 있는 날이면 직원들이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게 눈에 보여요. 마음이 좋은 기운으로 채워지는 기분인가 봐요.”

장애인 가족과 마포구 사장님들이 함께한 ‘선물 같은 하루’

장애인 가족과 마포구 사장님들이 함께한 ‘선물 같은 하루’

오테르 살롱 홍대점을 이끌고 있는 김진광 원장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가족을 맞이하는 직원들의 얼굴을 바라보니 도식적인 서비스용 표정이 아닌, 진정 즐거운 모습이 느껴졌다. 스타일 변신을 위해 이일수·오승희 부부는 원하는 머리 모양을 놓고 김진광 원장을 비롯해 디자이너들과 상의를 했다. 남편 이일수씨가 특히 더 신난 모습이다. 그는 시력을 거의 잃어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시력을 상실하기 전에는 누구보다 멋 내는 것을 좋아해 지인들에게 멋쟁이로 불렸단다. 옛날에 즐겨 했던 것처럼 화려한 색상으로 염색을 해달라고 주문한 그는 예전 자신의 멋진 모습을 상상하는 듯 연신 흐뭇해했다.

미용실 나들이에 들뜬 것은 아내 오승희씨도 마찬가지다. “몇 년 동안 미용실에 가질 못했어요. 더구나 이렇게 좋은 미용실은 처음이에요”라며 거울 속 점점 변신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선물 같은 하루’ 프로젝트에 참여한 스태프의 인기를 독차지한 것은 바로 부부의 딸 유리양이다. 인형같이 깜찍한 외모에 낯도 가리지 않고 방실방실 웃어대는 유리양의 재롱에 모인 사람들 모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몇 시간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끝에 가족은 한층 말끔하고 예쁜 모습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마쳤다. 아내 오승희씨는 변신한 딸과 남편의 모습을 연신 ‘찰칵찰칵’ 휴대폰 카메라로 찍으며 추억을 저장했다.

PM 5:00 바라봄 사진관
근사해진 가족이 다음으로 향한 곳은 오테르 살롱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바라봄 사진관이다. 나종민 대표는 이곳에서 가족에게 생애 첫 가족사진을 선물하기로 했다. 딸 유리양의 돌 사진도 함께 말이다. 가족이 사진 스튜디오에 도착하자 온전히 가족만을 위한 커다란 조명들이 설치됐다. 정갈한 의자와 배경도 마련됐다. 거동이 불편해 늘 휠체어 위에서 생활하는 아내는 모처럼 휠체어에서 벗어나 의자에 자리를 잡고 카메라를 마주했다.

“처음으로 찍는 가족사진이라 더 감격스러워요. 게다가 딸아이 백일 사진도, 돌 사진도 못 찍어줘 늘 마음 한구석이 안타까웠는데…. 오늘 잊을 수 없는 큰 선물을 받네요(웃음).”

김진광 원장

김진광 원장

아내 오승희씨는 소녀 같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딸 유리양은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천진한 모습이다. 처음 와보는 스튜디오 안을 신기한 듯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날 촬영은 이 프로젝트의 소식을 전해 듣고 힘을 보태고 싶다며 자원한 젊은 사진가가 맡았다. 장애인 가족의 사진은 찍어본 적이 없기에 결코 쉽지 않은 촬영이지만, 꼭 동참하고 싶은 마음에 나종민 대표를 졸랐다고. 사진가는 딸 유리양의 독사진 촬영을 위해 자신의 딸이 입었던 고운 한복을 직접 챙겨오는 열성까지 보였다. 순서대로 부부의 커플 사진, 한복 입은 딸의 단독 돌 사진, 세 식구의 오순도순한 모습을 담은 가족사진을 촬영했다. 부부가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오누이처럼, 연인처럼 정답다.

나종민 대표

나종민 대표

지난 2013년 가정을 꾸린 부부는 결혼 후 예기치 않은 험난한 일도 함께 겪어냈다. 두 사람이 결혼할 때까지만 해도 아내만 장애가 있었는데, 남편 이일수씨에게도 장애가 생긴 것이다. 딸의 분유를 사러 가던 길에 사고를 당했으나 어려운 형편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결국 원래 앓고 있던 당뇨에 합병증 등이 겹쳐 점차 시력을 잃기 시작했다. 병세가 빠르게 악화됐고, 지금은 거의 앞을 볼 수 없는 상태다. 이날 부부의 하루 일정을 돕기 위해 동행한 사회복지사 김선화씨는 이런 사연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사진 촬영하는 부부를 보며 짙은 감회에 젖는 모습이었다.

사실 나종민 대표에게 이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을 제보한 사람이 김선화씨다. 복지관에서 부부를 알게 된 그녀는 ‘페친’인 나종민 대표의 페이스북에 부부의 사연을 알리고 ‘선물 같은 하루’의 주인공으로 추천했다. 그리고 이날 부부가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도록 휴가까지 내고 달려왔다.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나눔’ 한 것이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의 주변에는 선한 마음들이 자석처럼 모여드는 법인가 보다. 바라봄 사진관을 열기 전까지 외국계 회사의 지사장을 맡았던 나종민 대표에게 이런 주변의 변화는 신기하고도 소중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날 하루가 기대되세요? 저는 기대돼요. 직장생활을 할 때는 매일 많은 사람들을 만나도 모두 이해관계의 만남이었어요. ‘내가 얻을 건 뭐고 줘야 할 건 뭔가’ 이런 걸 계산하면서 사람을 만나니 지치더라고요. 그런데 장애인 사진을 찍고부터는 제 인간관계가 완전히 뒤집어졌어요. ‘나눔’을 주제로 만나는 사람들은 다들 같은 마음으로 좋아서 모이고 만나거든요. 그러니까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피곤하지 않고,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매일 즐거워요(웃음).”

PM 6:00 카페 슬로비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가족은 하루 종일 평소에 안 하던 머리 손질 받으랴, 사진 촬영하랴, 낯선 일과에 즐거우면서도 조금 피로한 기색이다. 이제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며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할 일만 남았다. 일행은 엄마가 만든 집밥 같은 건강한 밥과 요리로 유명한 카페 슬로비로 향했다. 홍대 인근 골목에 위치한 카페 슬로비까지 10여 분 남짓한 거리. 공기에 묻어나는 봄기운을 느끼고 싶었는지 가족은 차를 탈 것 없이 천천히 도보로 가고 싶다고 했다. 휠체어에 앉은 아내가 딸을 안고 남편이 휠체어를 밀었다. 남편은 눈이 보이지 않지만 아내가 말해주는 대로 손과 발이 돼 아내와 딸을 안전하게 보호한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힘겨워 보이고 안쓰럽지만, 세 식구는 이미 ‘척척’ 손발이 맞을 정도로 익숙해졌다며 씩씩하다.

장애인 가족과 마포구 사장님들이 함께한 ‘선물 같은 하루’

장애인 가족과 마포구 사장님들이 함께한 ‘선물 같은 하루’

가족은 사람 많고 볼거리 많은 홍대 거리를 지나면서 눈을 떼지 못했다. 조금 전 사진 촬영을 마치고 지쳐 보였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소풍 나온 어린아이처럼 신나는 모양이다. 부부는 “이렇게 멀리 나와보는 게 무척 오랜만이라 재미있다”라며 짧은 산책을 마음껏 즐겼다. 한영미 대표가 이끌고 있는 카페 슬로비는 전부터 ‘나눔’ 활동을 꾸준히 실천해오던 곳이다. 지난해부터는 복지시설 등 따뜻한 식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슬로비의 건강 밥상을 차려주는 밥상 기부 프로젝트 ‘슬로비가 간다’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빈 그릇 운동’으로 나눔을 실천하려고 한다. 카페 슬로비 손님 중 밥과 반찬을 남기지 않고 모두 먹고 가는 손님 10명당 1인분의 식사를 마련하는 식으로 한꺼번에 합산해 하반기에 밥상을 들고 시설을 찾아갈 계획이다.

“우연히 나종민 대표님을 알게 됐는데, 장애인들을 찾아가 사진을 찍어주고 나누는 데 열심인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호감이 갔어요. 그래서 이번 ‘선물 같은 하루’ 프로젝트 설명을 들었을 때 망설임 없이 참여하겠다고 한 거죠. 저희야 늘 만드는 밥인데 뭐 어려울 게 있나요. 나 대표님이 이 프로젝트 중 저녁 식사 코스의 만족도가 무척 크다고 말씀하시는데, 밥으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저희는 언제든지 환영이에요.”

가족이 카페에 들어서자 직원들은 미리 준비해둔 넓은 자리로 안내했다. 휠체어에 앉아서도 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미리 의자를 빼둔 모습, 다른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는 자리로 마련해둔 것에서 가족을 정중히 대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슬로비의 밥상이 정성껏 차려졌다. 하루 종일 가족의 곁을 지키며 여러모로 도움을 준 사회복지사 김선화씨도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밥그릇에 바쁘게 수저 부딪히는 ‘달그락’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잘 보낸 하루의 힘
하루 종일 가족의 일정을 따라다녀보니 새삼 이 모든 것을 아이디어에서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모으고 행동으로 옮겨 현실로 만든 나종민 대표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는 일을 하는 데 주저할 필요가 있나요? 저만 특별히 대단한 게 아니라 다들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도움이 필요한 분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방법을 모르는 분들을 잘 연결해주는 고리 같은 존재고요. 제게는 이 모든 것이 즐겁게 살기 위한 실천의 일환일 뿐이에요.”

나종민 대표는 앞으로 ‘선물 같은 하루’ 프로젝트를 더 활성화시키고 싶다고 덧붙였다. 장애인 가족들에게 의류 협찬과 메이크업 서비스를 나눔 해줄 곳까지 찾아서 지금보다 더 멋진 가족사진을 찍어주고 싶다고 했다.

“그저 식사 한 끼, 사진 한 장일 뿐이고, 파마한 머리칼도 언젠가는 풀어지겠지요. 그렇지만 오늘 하루가 이분들에게 살아갈 활력을 주는 색다른 추억, 좋은 에너지로 남는다면 이 프로젝트를 계속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요?”
오늘의 주인공인 이일수씨 가족의 소감을 들어보니 나종민 대표와 그의 선한 동행들의 바람은 이미 이뤄진 듯하다.

“오늘 소감이요? 뭘 물으시나요. 당연히 최고죠(웃음). 요즘 들어서 오늘처럼 즐거운 외출이 없었어요. 복지관이나 병원 말고는 외출하기가 어려웠으니까요. 기회가 된다면 이런 날이 또 있으면 좋겠어요. 찍어주신 가족사진 보면 두고두고 오늘 일들이 생각날 거예요.”

나종민 대표는 장애인 가족들에게 소박한 추억을 선물해주는 ‘선물 같은 하루 프로젝트’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많은 이들이 이 활동을 보고 동기부여가 돼서 나름의 나눔 활동을 해도 좋고, 설사 똑같은 내용으로 활동해도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재능과 마음을 나누게 되면 세상이 더 따뜻하고 즐거워질 것이라며 말이다.

오테르 살롱 홍대점 김진광 원장과 카페슬로비 한영미 대표 그리고 바라봄 사진관 나종민 대표.

오테르 살롱 홍대점 김진광 원장과 카페슬로비 한영미 대표 그리고 바라봄 사진관 나종민 대표.

‘선물 같은 하루’ 프로젝트
바라봄 사진관, 오테르 살롱, 카페 슬로비가 함께하는 재능 기부 나눔 프로젝트로 지난 2월에 시작됐다. 매달 장애인 한 가족을 선정해 헤어 메이크오버, 가족사진 촬영, 저녁 식사가 순서대로 진행되는 특별한 하루를 선사하고, 촬영 후 가족사진은 액자로 만들어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선물한다. 4월부터 바라봄 사진관의 SNS를 포함해 각 업체의 홈페이지를 통해 사연을 접수받아 진행한다.
바라봄 사진관 www.baravom.co.kr, www.facebook.com/baravom
오테르 살롱 www.oterre.co.kr
카페 슬로비 blog.naver.com/slobbie8, www.facebook.com/slobbie8

■기획 / 노정연 기자 ■글 / 정성민(프리랜서) ■사진 / 안지영 ■사진 제공 / 바라봄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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