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를 변화시키는 지상특강]세계문화 전문가 조승연_예술,삶의 기준이 되다](http://img.khan.co.kr/lady/201505/20150510154053_1_lady05_357.jpg)
[주부를 변화시키는 지상특강]세계문화 전문가 조승연_예술,삶의 기준이 되다
우리 모두는 돈을 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얼마만큼 벌어야 충분한가?”라고 물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스스로 어떤 삶을 살 때 행복하다고 느끼는지,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한지 머릿속에 정확하게 그리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삶의 지표가 없을 때 돈이라는 건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실체가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인생의 지표로 삼고 살아가요. 지표라는 건 뭘까요? 내가 추구하는, 내 인생이 향해 가고 있는 도착점이죠. 하지만 돈은 도착점을 알려줄 수 없어요. 어느 정도의 돈을 가져야 충분한가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쉽게 생각하면 지표란 ‘이미지로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60이 되면 작은 정원이 있는 주택에서 나무를 가꾸며 살고 싶다’라든지 ‘아들과 함께 주말마다 캠핑을 다니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와 같은. 그리고 이것들은 우리 삶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적어도 실체가 있는 것들이란 말이다. 삶의 지표란 그런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명확한 삶의 방향성을 가질 수 있다.
“흔히 돈을 좇는 사람들을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하죠. 하지만 그 반대예요. 우리가 돈을 버는 동안 현실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은행에 있는 컴퓨터 하드드라이버에 미세한 마그네틱 먼지 몇 개 바뀌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현실이라는 건 내 곁에 존재하는 가족과 사람들, 아들의 축구 경기를 지켜보는 것, 비 오는 날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풀 향기, 이런 것들이에요. 우리 삶에서 진짜인 것들을 망각한 채 돈을 추구하는 건 마치 구름을 좇는 것과 같아요. 어떤 것이 진짜고 가짜인지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는 현재 진짜와 가짜가 혼재된 사회에 살고 있다. 넘쳐나는 물질과 가치에 뒤엉켜 내 삶의 지표로 삼을 만한 진짜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뭘까?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바로 예술이에요. 그것이 곧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거든요. 아름다움의 대상은 예술품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떠한 사상이 될 수도 있어요. 그리고 본능적으로 대상을 탐구하고 본질을 추구하게 되죠. 왜 아름다운지, 내가 왜 그것을 아름답다고 느꼈는지 생각해보면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답이 나와요. 삶의 지표가 되는 거죠. 그렇게 느끼는 삶을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고요. 그러한 삶의 지표가 없다면 돈은 그저 허상일 뿐, 진짜가 되지 못해요.”
취향을 가진 삶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흔히 예술이라고 하면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은 우리 생활 아주 가까이에 있다.
“봄이 되면 여의도에 벚꽃 보러 가잖아요. 예쁘고 아름다운 것에 끌리는 건 인간의 본능이에요. 본인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장소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며 사는 것이 예술적인 삶이죠. 어렵지 않아요.”
본능은 가장 솔직하면서도 경제적이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는 이러한 본능마저 마비시키는 요인이 많다. 사회적인 지위와 평판,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맞추느라 자신이 무엇에 아름다움을 느끼는지 살피지 못하는 것이다.
“가까운 나라를 예로 들어볼까요? 일본은 남의 눈을 굉장히 신경 쓰는 나라예요. 자신과 맞닿아 있는 특정 소수사회 내에서는 굉장히 시선을 의식하지만 그 외에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죠. 우리나라는 주변 사람들은 물론 나와 상관없는 불특정 다수의 시선까지 의식해요. 이런 경우 실용적인 선택과 주관적인 삶의 방식을 찾기가 더욱 힘들어요.”
풍요 속 빈곤이라고 할까? 범람하는 재화와 물질 속에서 무엇이 필수고 무엇이 옵션인지 그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진 것도 문제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에 실제로 나에게 필요한 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그것만 제대로 판단할 수 있어도 행복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죠. 그러기 위해선 확고한 자기 기준이 있어야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남 하는 만큼만’이라는 말이에요.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하면요. 그 ‘남’이 누굴까요? 항상 자기 위에 있는 사람을 바라봐요. 남의 집 연봉, 남의 집 아파트 평수, 재산…. 이런 것들이 삶의 지표가 돼버리면 늘 부족함에 허덕일 수밖에 없어요. 불행한 삶을 사는 거죠.”
나에게 필요한 것, 나에게 맞는 것이 무엇인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을 돕는 것이 예술이다. 내가 어떤 것에 아름다움을 느끼는지를 꾸준히 관찰하다 보면 일관된 공통점을 발견되는데, 그게 바로 취향이다.
“수백 세대가 사는 대단지의 40평짜리 아파트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25평짜리 아파트. 같은 값이라면 어떤 걸 고르시겠어요? 25평짜리 아파트를 선택하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에요. 집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취향에 집을 맞출 줄 아는 사람이죠. 물론 선택은 개인의 자유예요. 하지만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방향으로 인생을 설계해가는 사람과 타인의 시선이 정해놓은 소위 ‘급’에 맞춰 사는 사람이 느끼는 행복의 차이는 어마어마해요. 자신의 취향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취향도 존중할 줄 알죠.”
문화적 자생력을 가진 아이
미적 감각이나 취향은 예술적 감흥을 얻는 활동을 통해 길러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활동은 우리의 일상 속 작은 부분에서도 가능하다. 비 오는 날 산책이나 하루에 1시간 시집을 읽는 것, 미술 전시나 음악회 등 꾸준히 예술과의 접점을 찾아가는 것 역시 도움이 된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더욱 취향을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
“아이와 함께 미술관에 갔을 때 아이에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돼요. 특히 ‘이게 유명한 작품이니 이 작품은 꼭 봐야 해’라는 말은 불특정 다수의 기준을 아이들에게 주입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아이가 반응하는 작품이 무엇인지 보고 왜, 어떤 점이 마음에 드는지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세요. 그렇게 아이가 스스로의 취향을 알게 하고 부모도 아이의 취향을 알아가는 것. 그게 아이의 행복을 좌우해요.”
스스로로부터 행복을 끄집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자기의 공간과 환경을 자신의 취향으로 채워나갈 수 있는 아이는 행복한 삶의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그 문화적 자생력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아이들 중 1, 2%를 제외한 98%는 성공하지 못해요. 성공이라는 정의 자체가 모든 사람이 한다면 성공이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98% 안에서 행복을 찾는 능력은 취향에 달렸어요. 취향이 정확한 사람은 자기 취향에 맞게 공간을 만들어내고 스스로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해나가거든요. 아이들은 부모를 모방하며 자라는 존재이기 때문에, 엄마가 꼭 필요한 것과 옵션을 가르는 기준을 가졌다면 아이들도 그에 영향을 받아요. 자신에게 중요한 것, 취향을 포기하지 마세요. 취향을 가진 엄마가 문화적 자생력을 가진 아이를 키울 수 있어요.”
Profile 조승연(35)
뉴욕대 경영학교(NYU Stern School)를 졸업하고 프랑스 최고 미술사 학교인 에꼴 드 루브르에서 수학했다. 영어와 불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라틴어 등 7개 국어에 능통한 언어 전문가이자 세계문화 전문가로 공부법과 인문학, 비즈니스,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저술 활동과 강연을 펼치고 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안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