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를 변화시키는 지상특강]인문학자 김경집_ 엄마의 혁명을 이야기하다](http://img.khan.co.kr/lady/201505/20150510153943_1_lady05_355.jpg)
[주부를 변화시키는 지상특강]인문학자 김경집_ 엄마의 혁명을 이야기하다
높은 교육열과 자식을 위한 희생은 오랜 시간 대한민국을 발전시킨 미덕으로 여겨져왔다. 좋은 대학은 곧 성공적인 인생을 의미했고 실제로 그것이 가능한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명문대 출신 취업 준비생들이 줄을 잇고, 미래를 보장받지 못한 청년들이 삶의 중요한 것들을 포기하며 살고 있는 곳이 2015년의 대한민국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여전히 엄청난 대가를 치르며 입시에 매달리고 있다. 어떤 부모가 아이를 고생스러운 삶으로 밀어 넣고 싶을까마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아이들은 행복과 점점 멀어지는 삶을 살고 있다.
“중학교 1학년 아들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네다섯 살짜리 아이들을 보고 ‘야~ 좋을 때다’라고 하더라고요. 충격을 받았어요. 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은 ‘우리 아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수 있을까’인데, 과연 우리 세대가 지금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있는지 진지하게 되짚어봐야 합니다.”
보통 엄마들이 바라는 아이의 직업군은 300~500개 정도다. 그중 대학에서 취업으로 인정하는 직업, 즉 4대 보험이 되는 직업을 갖게 되는 아이들은 전체 학생 중 3%에 불과하다. 12년간의 공교육과 4년간의 대학 교육, 최하 16년을 죽어라 공부했는데 그중 3%만이 부모가 바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좀 더 세분화하면 현실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3% 중 1%는 특목고가, 1%는 8학군과 목동, 대전 대덕, 부산 해운대에서 가져갑니다. 실질적으로 나머지 1%를 두고 전국의 수험생들이 혹사하면서 공부하는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보통 주식 투자를 할 때 이익을 낼 확률이 50%를 넘지 않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투자를 주저합니다. 지금 우리는 16년 동안 어마어마한 비용과 수고를 들여 성공할 확률이 최대 3%, 현실적으로 1%인 게임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 1%에 투자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 희박한 확률을 위해 최소 15년에서 20년 동안 아이는 아이대로 힘들고 부모는 그 뒷바라지에 등골이 휜다. 즐거움을 누리고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는 애초에 가지지 못한 채 말이다. 김 교수는 이제까지의 교육이 99%가 1%를 쫓아가는 프레임이었다면, 이제 과감하게 그 프레임을 버리자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려면 엄마들의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인류의 평균수명은 갈수록 늘고 있어요. 이제 평생직장이 아니라 여러 개의 직업을 갖고 살아가게 될 겁니다. 엄마들이 이를 인식하면 교육 방식과 아이의 삶이 바뀔 수 있어요.”
엄마가 움직이면 사회가 따라온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일치하고 그에 맞는 직업을 가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적이라는 건 곧 비현실적이라는 말과 같다. 소위 ‘쿨’한 엄마들은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하게 한다”라고 하지만, 사실 그게 더 어렵다. 어린 나이에 취향과 능력을 명확하게 찾아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아이가 스스로 원하는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큰 주제를 갖춰주는 거예요. 앞으로는 20년 주기로 삶의 패턴이 바뀌게 됩니다. 아이에게 ‘너희들은 이제 앞으로 80년 동안 일하게 될 거야. 그렇다면 직업을 가질 기회가 적어도 네 번은 되겠지. 네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찾아봐’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잘하는 일을 찾거나, 좋아하는 일을 점차 잘하는 일로 바꿔보는 것이죠. 자기계발을 통해 인생을 재설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해요.”
그리고 그 힘은 학원에서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요즘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아이가 학원에서 스토리를 만들까요? 학원 대신 가족 여행을 가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져요.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죠. 지금 사교육에 쏟아 붓는 돈의 3분의 1만 그렇게 써보세요.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어요.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 더 큰 가치를 만들어냅니다.”
죽어라 입시에 매달려 좋은 위치에서 스타트를 하더라도 30년 뒤 인생 재설계가 되지 않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 시작은 좋았지만 정체되고 퇴보하는 삶을 사느냐, 본인의 페이스에 맞춰 점점 나아지는 삶을 사느냐. 어떤 삶이 더 행복할까? 이미 프레임은 바뀌고 있다.
“두 번째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 정치예요. 민주주의는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고, 키우고, 가르치기 위한 필수조건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을 하면 곧바로 정치담론이 되고 진영논리가 돼요. 민주주의는 정치담론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와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흔히들 ‘1997년 외환위기를 피나는 노력 끝에 3년 만에 졸업했다’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인한 대량 해고가 이어졌고 수많은 실직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 이후 20년 가까이 무던히 노력해왔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살림은 나아지지 않는다. 사회의 상부는 바뀌지 않은 채 하부 구조만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최악의 실업률과 경제 위기 등 현재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문제들은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거예요. 우리에겐 선거권이 있잖아요. 이 표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결정됩니다. 내 자식이 대한민국에서 노예로 살지, 주인으로 살지가 걸린 중요한 문제예요. 그리고 이러한 위기를 가장 강하게 느끼는 사람이 바로 엄마입니다. 남자들은 권력을 담보로 혁명을 하지만 엄마들에게는 권력이 중요하지 않아요. 유연하게 사고하고 옳다고 생각하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죠. 엄마들이 제대로 서야 바뀔 수 있어요. 엄마가 움직이면 사회가 따라옵니다.”
자유로운 개인으로 서기
그렇다면 기존의 프레임을 바꾸기 위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우선 엄마 스스로의 자존감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남편의 사회적 성공과 소득, 자녀의 성적과 진학이 아닌 자유로운 한 개인으로서 말이다. 삶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철학을 가진 엄마는 단단한 추와 같다. 흔들리는 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책읽기예요. 세상을 보는 눈을 확장시키고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와 내가 마무리할 미래에 대해 성찰하게 하죠. 다양한 사회현상을 해석하는 통찰력을 키울 수 있어요. 주방과 거실 사이에 작은 테이블 하나 두고 서재를 만들어보세요. 그곳에서 엄마가 책 읽고 음악 듣고 이런저런 일들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집안 분위기가 달라져요. 아이가 따라 하고 남편도 변해요.”
도서관은 우리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고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거점이다. 역사, 경제, 과학 등 매달 분야별로 주제를 정해 일정 수의 책을 읽는 방법을 추천하다. 협동조합이나 독서 소모임 등 토론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모임에도 적극 참여하라고 말한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엄마들에게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됩니다. 1%를 따돌려야 합니다’라고 얘기하면 ‘뜻은 공감하지만 내 아이에 대해 책임질 수 있나요?’라는 반응이었어요. 그런데 3년 전부터는 달라졌어요. ‘바꿉시다. 근데 혼자는 힘드니 함께합시다’라는 반응이에요. 엄마들도 이대로는 불행해진다는 걸 아는 거죠. 혼자는 힘들지만 모이면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 엄마의 힘을 믿으세요.”
Profile 김경집(56)
서강대학교 영문학과와 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다. 가톨릭대학교 인간학교육원에서 학생을 가르치다가 25년은 배우고, 25년은 가르치고, 25년은 마음껏 읽고 쓰겠다던 뜻에 따라 충청남도 해미의 작업 공간인 수연재에서 삶의 세 번째 단계를 누리고 있는 중이다. 교양과 지적 자산으로서의 인문학이 아닌, 창의적 융합과 연대의 중심에 위치해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인문학을 추구한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안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