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전우용_역사가 오늘을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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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전우용_역사가 오늘을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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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트위터에서 우리 사회에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는 역사학자 전우용 한양대 교수. 그는 과거를 성찰하지 않는 자세가 우리 사회를 어지럽힌다고 말한다.

[주부를 변화시키는 지상특강]역사학자 전우용_역사가 오늘을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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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현재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등불이며 미래로 안내하는 등대라고.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는 역사학자 카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다. 그 속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가장 오래된 역사학의 용도는 ‘교훈’이죠. 역사뿐만 아니라 인문학 전체가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어요. 세상을 변화시키고, 만들어내고, 무엇인가 추가해내진 않아요. 다만 해석할 뿐이죠. 과학기술이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었어요. 이런 변화들이 행복이나 인간다움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맡고 있는 것이 역사를 비롯한 인문학이에요. 역사는 인간이 새로운 것에 반응하면서 만들어왔던 문화, 태도, 관습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평가하고,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과연 후세의 눈에 어떻게 비쳐질 것인가를 고민해요. 과거를 다루는 동시에 미래학인 거죠.”

과거와 현재, 미래가 상호작용한다는 점을 놓치면 역사학은 단순한 ‘골동품 감정학’이 돼버리고 만다. 역사는 현실과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봐야 하는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성찰’의 자세가 매우 부족하다.

“19세기 초부터 문명의 중심이라고 불렸던 제국주의 국가 사람들은 역사가 단선적으로 발전할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기술 문명과 과학 문명의 발전이 신과 자연으로부터 해방시켜줄 것이라는 굉장히 낙관적인 미래관을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허무주의와 낭만주의가 유럽 전역을 휩쓸었어요. 사람들은 전쟁 이전까지 기술 문명을 추동하는 실질적인 힘이 ‘경쟁’이라고 생각했어요. 경쟁이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 것이라고 믿어왔는데 그 끝에 ‘전쟁’이 있었던 거죠. 과학기술 문명이 인간을 해방시키기는커녕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후 사람들은 경쟁만능주의, 식민지 지배 체제, 노동 착취 등을 반성하고 개선하면서 30, 40년을 보냈어요. 그런데 1980년대 무렵부터 세대가 바뀌면서 전쟁의 참화를 잊게 됐어요. 다시금 새로운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했죠.”

역사의 교훈을 잊어버린 결과 수많은 이념·종교·문화적 대립이 세상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 사회라고 예외는 아니다.

“과거에도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과 비슷한 일들이 있어왔어요. 1988년 ‘5공 비리’ 청문회 때 5공화국 정치인들의 비리가 낱낱이 드러났죠. 1993년 서해 페리호 침몰 사고는 세월호 사고와 거의 쌍둥이 같은 사건이었고요. 그 당시 우리 사회는 저래선 안 된다며 반성했어요. 물질만능주의와 압축 성장의 후유증이었다는 진단은 그때 이미 나왔었죠. 기본을 놓친 채 당장의 성과에 급급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단 말이에요. 근데 이 반성의 기조가 채 20년을 못 갔어요. 어느 정도 성장을 이룬 사회에서 계속 빠른 성장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 윤리적일까요? 성장에 대한 욕망을 제한하지 못하다 보니 여전히 고성장을 외치며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거죠.”

지금, 우리 사회는
이대로 성찰과 반성의 자세를 쉽게 잊어버리면 또다시 외환위기가 올 수도 있고, 제2, 3의 세월호 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전 교수는 말한다.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는 ‘잊지 않는 것’이다.

“세대가 지나면 과거 사건에 대한 충격도 약해져요. 근데 잊어버린다고 또다시 그 일이 생기지 않는 건 아니에요. 잊을수록 더 큰 일이 생기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성찰하기에는 무척이나 수동적인 삶을 살고 있어요. 가장 편한 삶은 시키는 대로 사는 삶이라는 의식이 잠재돼 있죠. 대중 스스로 소통을 원치 않는 경우가 많아요. 오히려 말을 하지 않는 게 옳다고 판단한 거죠. 소통은 막힌 것을 뚫는 거예요. 지금 대중에게 필요한 덕목은 소통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스스로가 주권자로서 생각의 주체가 돼야 해요. 시키는 대로만 하고 뒤에서 불평밖에 하지 않는 건 무책임한 거죠.”

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의견을 표현하기엔 너무나 이분법적으로 갈려 있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사람은 말로 세상을 해석해요. 이름을 붙여 넣고 세상을 거기에 짜 맞추죠. 진보니 보수니 틀을 만들어놓는 걸 가볍고 우습게 생각해요. 정확한 기준도 없이 틀 속에 가둬버리는 건 정말 무책임한 짓이죠. 이념을 걷어내고 무슨 말을 하는지를 들어야만 좀 더 합리적인 토론과 소통의 장이 열릴 수 있어요. 선입견을 갖고 접근하면 싸울 수밖에 없게 되죠.”

하나의 큰 역사가 악보라면 그 속엔 각자의 삶인 수많은 음표들이 있다. 어떤 역사는 개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데, 우리는 그런 일들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성찰하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계속 벌어져요. 우리 인류가 절대 잊어선 안 되는 사건은 전쟁이에요. 전쟁 속에서는 일상이 파괴되고 모든 것이 비정상적으로 변하죠.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과 타협하고자 하는 의지를 키워나가야 해요. 한국 사회에서는 대화 자체가 잘 안 돼요. 대통령과 국민의 소통뿐만 아니라 사회 자체가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의 과제예요. 소통하지 않으면 안전한 미래를 보장할 수 없어요.”

누구보다 먼저 성찰해야
우리가 성찰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역사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일본에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사과를 요구하는 행동의 기저에는 우리가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도덕적 우위는 피해자와 가해자 관계에서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반성과 성찰을 먼저 요구하려면 우리가 비슷한 일에 대해 반성과 성찰을 보여줘야 도덕적 우위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유대인이 독일인에게 학살당한 사실이 유대인의 도덕성을 입증해주진 않아요. 오히려 독일인의 부도덕성을 입증하는 거죠. 유대인들이 과거의 경험을 가지고 팔레스타인인들을 똑같은 방식으로 학살한다면 그것 역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에요. 역사란 내가 살아온 것을 객관적으로 보는 훈련이에요. 그런 훈련을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역사란 마치 자랑스러운 과거를 드러내고 부끄러운 과거를 숨겨야 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죠. 지금 일본을 반성하지 않는 나라로 만든 것도 자신이 잘못했던 역사를 지우고 자랑스러운 역사만 남기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역사를 왜곡한다면 반성할 줄 모르는 국민을 만들고, 인류에 대해 범죄를 저지르게 돼요. 우리는 그걸 경계해야 돼요.”

반성 없는 현실. 후세에 비쳐질 현재 우리의 모습이 살짝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의 역사학은 과거의 승자 중심의 역사, 지배자 중심의 역사, 영웅 중심의 역사에서 벗어나 보통사람들의 희망, 관습, 행태 등 보다 작은 것들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모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의 주인공은 평범한 시민들이잖아요. 시민이 주인이니까 역사라는 카메라의 앵글도 시민에게 돌려야 돼요. 승자의 역사라는 테마에서 벗어난다면 실제로 사람들의 인식과 생활이 어땠는지를 보게 될 거예요. 지배층이 아무리 역사를 의도적으로 꾸민다 하더라도 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고 봐요. 반성적 사고가 부족한 역사, 세상을 기만하는 역사는 사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왜곡된 역사는 확실히 굳어지지 않고 수많은 반론을 마주하게 되죠. 역사학의 자정 능력이 있기 때문에 앞날에 대해 크게 우려하진 않아요. 다만 우리 사회가 좀 더 건강해지려면 학계 자체에서 역사를 거르고 자정하는 일에 힘을 실어줘야 해요. 그런데 지금은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한 가지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굉장히 위험한 말이 나오고 있어요. 그래선 안 된다는 것이 우리 역사의 교훈인데 말이죠.”

Profile 전우용(53)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이자 서울시 문화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역사가 좀처럼 다루지 않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알고 싶어 트위터를 시작했다. 9만 명의 팔로어들이 그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날카로운 일침에 공감하고 있다.

■글 / 노도현 기자 ■사진 / 김동연(프리랜서) ■장소 협찬 / 산 다미아노(02-6364-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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