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칼럼니스트 서윤영_집이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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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칼럼니스트 서윤영_집이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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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집은 가족 구성원이 거주하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건축 칼럼니스트 서윤영은 인문학적으로 건축을 바라보면서 어떠한 방식으로 집이 우리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주부를 변화시키는 지상특강]건축 칼럼니스트 서윤영_집이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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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반영하는 ‘집’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축을 공학적이거나 예술의 한 분야로 생각한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재테크 측면으로 보는 이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건축은 인문학적이기도 하다. 옷이 단순한 패션을 넘어 시대를 반영하고 유행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듯 건축 역시 사회·문화 현상이라는 것. 집은 의외로 사회를 굉장히 민감하게 반영하고 있다.

“한국의 현대 주택은 핵가족 위주로 내향돼 있을 뿐만 아니라 사적 공간들로 구성돼 있어요. 이와 달리 조선시대의 주택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응접실, 식당 등 공적인 영역에서는 손님을 초대해 맞이했고, 사적 영역이라곤 침실밖에 없었죠. 그 당시엔 거실이나 어린이 방과 같은 개념이 없었어요. 지금은 어느 집이나 거실, 안방, 식당 겸 부엌과 자녀 방으로 구성돼 있죠. 밥 먹고 잠자는 침식 기능이 많이 강화됐고 응접실같이 외부 사람을 맞이하는 공적 개념이 사라지고 내밀한 공간이 됐습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주택 역시 개인화된 셈이죠.”

자녀 위주라는 것 역시 현대 주택이 갖는 특징이다. 한 가정에서 낳는 자녀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개인적 영역인 독방을 제공했다. 게다가 교육열이 높아져 자녀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게 되면서 주택 내에서도 자녀의 영역이 점점 비대해졌다.

“어떤 가정은 방이 3개 있는데, 어른 둘이 방 하나를 쓰고 아이가 혼자 방 2개를 쓰는 거예요. 이유를 물었더니 아이가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게 공부방과 자는 방을 나눴다고 하더라고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린아이 하나가 방 2개를 쓴다는 게 굉장히 이상하죠. 집도 결국 이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불과 100년 전만 해도 남성 가장이 쓰는 주인실과 여성의 주부실이 따로 있었고, 아동실은 뭉뚱그려져 있었어요. 당시에는 아이가 더 많았는데도 말이죠.”

집은 여성의 지위 변화도 담고 있다. 20세기 초반 많은 남성들이 전쟁에 나가서 죽거나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에 여성들은 군수산업에 종사하며 가정을 이끌어야 했다. 산업노동을 하기 위해서는 가사 노동시간을 줄여야 했는데, 이에 따라 ‘주거 근대화’가 나타났다. 부엌 설비를 현대적으로 개량한 것이 대표적이다.

“부엌에 아궁이와 부뚜막을 없애고 싱크대를 놓으면서 입식 부엌을 갖추게 됐죠. 부엌의 위상이 높아지니까 남성의 가사 분담을 유도하기도 쉬워졌어요. 부엌을 현대화했을 뿐만 아니라 화장실의 위생 상태를 개선하고, 여성의 공간이라고 알려진 안방을 화려하게 꾸몄어요. 드레스룸이나 파우더룸 같은 공간을 두기 시작하면서 안방이 비대해졌죠.”

조선시대 사대부의 집은 사랑채와 안채 영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남성이 머무르는 사랑채는 접객의 공간이자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는 공간이었지만, 여성에게는 가사와 휴식의 기능을 하는 안방과 주방만이 주어졌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주택은 주방을 현대화하고 안방에 드레스룸을 부가하는 등 여성의 공간이라고 알려진 곳의 위상을 높여왔다. 혹자는 이에 대해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켰다고 하지만, 그 이면엔 또 다른 이데올로기가 숨겨져 있다.

“결국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출산과 육아, 가사뿐이라는 의미인 거예요. 우리 사회에서는 방이 하나 남으면 남성의 서재로 꾸미는 경우가 많아요. 아직까진 여성을 위한 서재, 아내를 위한 서재는 생소하죠. 요즘 새로 짓는 아파트를 보면 ‘맘스 데스크’, ‘맘스 오피스’라고 해서 엄마의 공간을 두곤 하는데, 하나의 방이 아니라 부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어요. 여성들이 베란다를 개조해서 ‘나만의 공간’으로 꾸몄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베란다는 집의 주된 공간이 아니죠. 이렇듯 집이 여성의 높아진 지위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보긴 어려운 면이 있어요.”

아파트의 숲, 이상과 현실의 괴리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아파트가 많은 대한민국의 도시들. 본래 아파트는 19세기 영국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에게 양질의 주거지를 제공하기 위해 세운 일종의 집단 노동자 주택이었다. 서양에서는 아파트가 빈민 주거지라는 인식이 지배적인데 반해 우리 사회에서는 그 반대의 인식이 강하다.

“1960, 70년대 급격한 근대화 시기에 아파트는 부유층이 사는 선진화된 서구식 주거지라는 인식이 매우 강했어요. 산업화로 인해 이촌향도 현상이 발생하면서 심각한 주택 부족을 겪게 되자 정부는 아파트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주택정책을 펼쳤죠. 사람들이 계속 도시로 몰리면서 집값은 크게 올랐고, 그 과정에서 집은 가장 손쉬운 자본 증식의 수단이 될 수 있었어요. 인식과 대량 공급, 투자 가치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서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아파트가 잘 발달하게 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지만 그들의 이상적 주거 형태는 ‘아파트’가 아니다. 아파트에서의 삶은 일시적이고, 어쩔 수 없이 산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가 이상적이고 완결된 주거 형태로 단독주택을 꼽는다.

“사람들은 10세 이전에 살았던 집의 형태를 무의식중에 주거의 원형이라고 생각하고 이상적 주거 형태로 평생 기억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러한 경향은 특히 6·25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에서 많이 나타나요. 그들은 어렸을 때 단독주택에 살았고, 상당수가 지방에서 대학 입학을 위해 상경했고 직장을 다닌 경험을 집단으로 공유하고 있어요. 이들에게 아파트는 부박한 삶을 견디는 일시적인 주거지일 뿐이에요. 연어가 회귀하듯이 은퇴 뒤에 전원주택을 지어 살고 싶다는 꿈을 꾸죠. 이런 것도 시대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삭막한 아파트의 숲에서 살아야 하는 걸까. 서 작가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한다. 한 번 아파트를 짓고 나면 계속 아파트 부지로 사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아파트 한 동에 100가구가 산다고 해보죠.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한다면 100가구를 수용할 만한 아파트를 지어야 해요. 아파트를 헐고 단독주택을 짓는다고 하면 10채밖에 못 지어요. 그럼 90가구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90가구가 다른 곳으로 이사할 수 있는 비용을 부담하고 10가구만을 위한 집을 짓는다는 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쉽지 않은 일이죠. 오래되고 가구 수가 적은 소규모 아파트를 헐고 공원을 만든다든지 다른 용도로 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최근 많이 형성되고 있는 대단지 같은 경우 계속 그 부지에 아파트가 자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처리할 방안이 마땅하지 않으니까요.”

좋은 집의 의미
우리 사회는 집을 소유, 재산 증식의 수단, 사회적 지위를 대변해주는 매개체로만 바라보고 있다. 투기가 만연해지면서 집은 삶의 공간이 아니라 되팔아서 돈 버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자본주의 내에서 상품에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는 2가지 가치가 있어요. 사용가치는 물건의 유용함을 의미하고, 교환가치는 되팔 수 있는 정도를 말하죠. 그림 1장이 2억원이라면 그것이 비싼 이유는 지금 내가 2억원에 사도 10년 뒤에 5억원에 되팔 수 있다는 교환가치가 월등하기 때문이에요.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주택도 교환가치가 매우 높았는데, 지금은 집값의 거품이 꺼지고 있어요. 이런 현상은 집에서 그동안 부풀려졌던 교환가치가 사라지고 실제 사용가치만이 남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품이 빠진다는 건 결국 교환가치가 소멸되는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이에요. 주거 공간으로서 집의 의미가 강화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좋은 집이란 과연 뭘까. 아파트보다는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에 사는 것일까. 서 작가는 끝내 답을 내놓지 못했다. 대신 그녀는 우리에게 한 가지 주문을 한다.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는 아주 어려운 질문이에요. ‘언젠간 전원주택 지으실 거죠?’, ‘집 지으셔야죠?’ 이런 질문을 많이 들어요. 대중은 손수 집을 짓는 것이 가장 좋은 거라고 말하는데, 사실 집이라는 것에 답은 없습니다. 단독주택이 언젠가 완결돼야 할 이상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집을 잠만 자는 곳이라는 단순한 장소로만 여기게 되면 우리의 삶 역시 그저 먹고 자는 것의 연속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예요.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집을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시야를 넓히는 것이 곧 내가 사는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니까요.”

Profile 서윤영(47)
수학을 전공해 석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어릴 적 꿈이었던 건축을 포기할 수 없었다. 명지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건축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건축 설계사무소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건축 칼럼니스트가 됐다. 주로 건축을 사회·문화·역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글을 쓰고 있다.

■글 / 노도현기자 ■사진 / 안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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