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 사이,  진선미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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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은 토끼같이 예민한 귀를 가져야 한다. 화제에 대한 여론의 목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짚어낼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진선미 의원은 여러모로 눈에 띄는 정치인이다. 불합리함에는 칼같이 냉정하고 약자와 대중에게는 따스한 손길을 내미는 모습에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한다. 소설로 치자면 유연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다.

냉정과 열정 사이,  진선미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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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게 그리고 뜨겁게
진선미(48) 의원은 2012년 비례대표 초선 의원으로 정치계에 입문했다. 처음부터 싹이 보였다. 진 의원은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국정 조사에서 적극적인 문제 제기와 대안을 제시해 세간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초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는 부동산 투기 의혹과 차남의 국외 소득세 탈루 의혹을 날카롭게 지적해 ‘저격수’, ‘탈곡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전투력 ‘만렙(최고 레벨)’의 여전사 포스였던 진 의원은 세월호 유족들의 손을 잡고 뜨거운 눈물로 그들과 공감하기도 했다. 진 의원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서로 다른 얼굴이다.

“저는 제 성격대로 감성적인 정치를 하고 싶어요. 슬픈 상황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이 감성이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차갑고 단호한 것도 감성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본질일 겁니다. 반응하는 지점이 있는 것이고, 그 반응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거죠.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저는 기본적으로 따뜻한 사람입니다(웃음).”

거슬러 올라가면 진 의원은 변호사 시절부터 미처 빛이 닿지 않는 곳, 좀 더 낮은 곳을 살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여성 인권, 양심적 병역 거부자, 성소수자에 대한 변호에 힘을 쏟았고, 2005년에는 호주제 폐지 관련 민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렇게 국회에 입성하게 된 진 의원은 현재 호주제의 연장선상이라 볼 수 있는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이나 ‘형제복지원 진상조사 관련법’에 대한 입법 활동을 하고 있다. 진 의원은 정계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인물처럼 보이는데, 정작 그녀는 그 버거움에 대한 속내를 먼저 털어놓는다.

“비극적인 일들이 무척이나 많이 일어나고 있어서 그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어요. 정치인의 역할은 우리가 가장 절망적인 밑바닥에 있더라도 그렇지 않다고 설득하고 희망을 보여줘야 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저 스스로를 먼저 다독이고 회복하려고 노력해요. 국정원 대선 개입,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길지 않은 정치 경력에 받아내기 힘든 일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에요.”

정계는 예상했지만 쉬운 곳이 아니다. 선과 악이 이분법처럼 나뉜 세계관이라면 오히려 처신이 쉽겠지만 어제의 적이 오늘의 협력자가 돼야 하는 복잡 미묘한 곳이다.

“정치의 본질은 병행이에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늘 논쟁하고 싸울 수만은 없어요. 제 의정 활동에서 상대는 제가 설득해야 할 한 사람의 유권자가 되기 때문이에요. 한 사람이 극렬하게 반대하면 제 법안은 통과되기 어려워요. 마주하기 싫은 상사와도 밥을 먹어야 하는 직장 생활과 비슷해요(웃음). 인간관계 유지는 정치력의 밑바탕이에요. 현실 정치에서 정치인이란 가장 고귀한 직업이면서 또 가장 비굴한 직업이기도 하죠.”

냉정과 열정 사이,  진선미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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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정치인의 삶은 무겁다. 민생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는 만큼 책임감도 배가된다.

인복 많은 여자
정치인 인터뷰는, 특히 여성 정치인은 진지하고 다소 고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며 여성성을 감추게 마련이다. 그러나 진 의원은 그저 유쾌했다. 촬영을 위해 준비한 옷이나 소품을 살펴보며 신나 하고 장난스럽고 과장된 포즈를 취하며 주변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어릴 때는 수줍음이 많은 소녀였어요. 오빠 둘에 막내딸로 태어났는데, 아버지께서 그렇게 딸을 바라셨대요. 당신이 생각하신 가장 예쁜 이름인 ‘진선미’로 지어주신 거죠. 원래 집안 돌림자는 ‘봉’자였는데 말이죠(웃음).”

영숙, 봉선이 여자 이름의 대세였던 시절, 진선미라는 세련된 이름 탓에 친구들에게 “네가 미스코리아냐?”라는 놀림도 많이 당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에게 이름만 불려도 얼굴이 홍당무가 됐다. 요즘 많이 쓰는 인터넷 용어로 ‘부끄부끄’ 소녀였던 진 의원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 모습이 매우 생경할 것이다. 진 의원의 어머니마저도 “내 딸 맞냐?”라고 물어볼 정도니.

“제가 사법연수원에 들어갈 때만 해도 여자가 별로 없었어요. 총 500명 중에 34명뿐이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조를 짜고 나면 홍일점이 되는 거예요. 분위기를 맞춰야 하니 적극적으로 어울리려고 하고 술도 마시려고 노력했어요. 숨겨졌던 성격이 새롭게 발현된 건지 연수원 2년 차 때는 응원단장상까지 받을 정도로 흥이 많아졌죠.”

진 의원은 고교 진학부터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또 사법고시도 오랜 기간 공부해 어렵게 통과한, 운이 그다지 좋지 않은 삶이었으나 인복만큼은 타고났다고 자평한다. 그녀의 밝은 기운 덕분에 주변엔 친구도 많다.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셨던 김홍남 교수님은 ‘변호사를 가까이하는 건 네가 처음이야’라고 하셨어요. 정계에 들어와서도 제일 많이 들은 말이 ‘이런 캐릭터 처음이야’거든요. 제가 워낙 리액션이 커요. 의정연수원에서는 국회의원들을 위한 강의를 해요. ‘이렇게 좋은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다니’ 하고 저는 거의 방청객 모드로 박수를 치며 들었어요. 그랬더니 강사분들이 절 많이 반기시더라고요(웃음).”

모든 일은 상호관계로 이뤄진다. 먼저 즐겁고 신나게 다가가면 상대방도 박자를 맞추게 마련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에서는 좋은 걸 좋다고 표현하는 것이 필요해요. 일단 반응이 크니까 어른들이 귀엽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한 번이라도 챙겨주려 하시고 도움이 되는 말도 건네시고요. 그래서 다양한 분야의 좋은 분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냉정과 열정 사이,  진선미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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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의원의 인복의 비결은 상대에게 집중하고 반응하는 것이었다. 좋은 사람을 옆에 두는 것만큼 삶은 풍요로워진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진 의원의 가장 큰 인복은 그녀의 동반자, 남편일 것이다. 첫사랑과 14년간의 긴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다만 혼인신고는 하지 않은 채다. 그녀가 힘을 쏟아왔던 호주제 폐지 운동을 펼치다 자연스럽게 그리 됐다.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두 사람에게 법률적 장치가 큰 의미를 갖고 있지 않아 보인다.

“남편과 저를 보면 인간관계란 서로 주고받으면서 영향을 받고 성장하는 것이란 걸 절실히 느껴요. 저희 둘은 정말 달라요. 저는 천방지축이고 잘 웃고 술도 잘 마시지만 남편은 진중하고 염세주의자고 술도 못 해요. 그렇지만 저에 관해서는 무한 긍정이에요. 항상 제게 ‘넌 뭐든 잘할 수 있다’라며 힘을 주거든요.”

평소 말이 없는 남편이지만 진 의원이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할 때마다 선지식을 준다.

“제가 의견을 듣고 싶어 조르는 입장이에요. 여러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 한마디씩 해줄 때가 있어서 그의 통찰력에 도움을 많이 받아요.”

진 의원은 곧 정치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맡게 된다. 내년 4월에 실시되는 제20대 총선에서 서울 강동갑의 새정연 후보로 지역구 의원에 도전장을 낼 예정이다.

바닥까지 경험해야 거듭난다
진 의원이 지역구 의원으로 재선 도전을 결심한 것은 지난 6·4 지방선거 때다. 그녀는 최문순 강원도지사 후보 수석대변인을 맡아 선거를 치렀고 승리했다.

냉정과 열정 사이,  진선미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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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대표 의원과 지역구 의원은 차이가 있어요. 지역구 주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선거를 통해 의원이 되는 거니까 주민들과 매우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거죠. 이런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비례대표로 정치 이력이 종료된다면 절반의 경험으로 끝나는 거죠.”

처음 정치 입문 때보다 고민은 더 많았다. 비례대표란 자신이 그 이전에 전문으로 했던 영역에서 해오던 일들을 평가받아 의원 자격을 얻는 것이다. 대중과 직접적으로 만날 필요는 없다. 지역구 의원이 되면 그동안 단호하게 접근하고 행했던 여러 가지 사안들에 좀 더 신중해져야 한다.

“저는 감사하게도 정치를 시작하자마자 수행대변인을 많이 맡아서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났어요. 공원, 시장, 상가 등을 다니는 것에 익숙하죠. 다만 그동안은 훌륭하신 선배님들을 알려왔지만 이젠 스스로를 알려야 하니 좀 두렵죠.”

현재 강동갑은 새누리당 신동우 의원의 지역구다. 과거 해당 지역에서 3선을 지냈던 이부영 새정연 상임고문이 정계 은퇴를 하며 진 의원을 자신의 지역 기반이던 강동갑에 공천을 지지했다.

“이부영 전 상임고문께서 개인적으로 연이 없는 후배인 저를 추천하셨어요. 정계에서는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의 성원을 받았으니 열심히 뛰어보겠습니다.”

진 의원은 전투적인 의정 활동으로 젊은 층의 지지자들이 많은 편으로, 제대로 야당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 의원의 지지자들 중에는 그녀에게 좀 더 쉬운 길이 주어져 순조로운 의정 활동을 했으면 하고 바랐던 이들도 많다. 예를 들어 야당 강세 지역인 그녀의 고향에서 공천을 받는다면 비교적 쉬운 싸움을 기대할 수 있으니 말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  진선미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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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 생각한다면 진보적이고 예민한 안건을 다루는 만큼 안정적인 지역 기반을 가진 곳으로 가고 싶긴 하죠. 그렇지만 이미 운 좋게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고 있으니 유리하게 시작하는 거라 생각해요. 현재는 강동갑이 여당 지역구인 만큼 쉽진 않겠지만 제가 승리한다면 제 정치적 입지는 올라가고 또 당의 세력 확장에도 기여할 수 있겠죠. 원래 저는 뭐든 쉽게 살아온 스타일이 아니라서 괜찮습니다(웃음). 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진 의원은 이미 지역에 사무실을 개소했고 발 빠르게 주민들과 소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녀는 스스로 바닥까지 경험해보지 않고는 진정한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없다고 말한다. 진 의원에게 닥칠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정치인 진선미로 더욱 성장할 밑거름일 것이다. 당당하게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아가길.

Profile 진선미 의원은…
전북 순창 출생.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38회 사법고시에 합격해 ‘법무법인 덕수’에서 변호사를 시작했다. 2012년에는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으로 정계 입문, 원내 부대표와 문재인 대통령 후보 대변인을 맡았다. 올해의 성평등 디딤돌상,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지도자상 등을 수상했고 2013년, 2014년 연속 경실련 선정 국정감사 우수의원에 선정됐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박재찬 ■장소 협찬 /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02-2275-1101) ■헤어&메이크업 / 김소희 ■스타일리스트 / 김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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