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나눔 캠페인]전격 인터뷰! 2030세대 향수 불러일으킨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http://img.khan.co.kr/lady/201508/20150729164141_1_kimyman1.jpg)
[스타 나눔 캠페인]전격 인터뷰! 2030세대 향수 불러일으킨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198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던 20, 30대들에게 알람 같은 목소리. 지난 7월 18일 MBC-TV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에 등장한 김영만(65)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이 연일 실시간 검색어를 휩쓰는 스타로 떠올랐다. 30년을 한결같이 종이접기와 함께해온 그는 여전히 그때 그 모습으로 ‘동심’을 접고 있다. 그가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천안의 어린이 미술 체험 공간, 아트오뜨에서 그를 만났다. 오랜 시간 종이접기를 통해 동심을 나눠온 그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 아빠에게 들었던 칭찬만큼이나 따뜻하고 포근했다.
방송 이후 반응이 뜨거워요. 인기를 실감하세요? 어제 서울에 다녀오며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나왔는데 밖에 젊은 커플이 저를 기다리며 서 있더라고요. “저기요” 하더니 사진 찍으면 안 되겠냐고 해요. TV에서 절 봤대요. 깜짝 놀랐어요. 제가 밥 먹고 있는 걸 보고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 거예요. 너무 예쁘더라고요. 제가 ‘예쁘다’, ‘착하다’ 하는 말이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예뻐서 하는 말이에요. 얼마나 착해요.
지상파에는 10년 만의 출연이라 들었어요. 출연을 결정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처음 제의를 받은 것이 한 달 전이었는데,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린이 프로그램을 하던 사람인데 예능에 나가는 게 어울릴까 싶었거든요. 제가 그전에 방송을 본 적이 없어서 처음 마리텔 PD 명함을 받고 “마리텔이 뭐예요?”라고 물었어요. 집에 와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요놈들 얼마나 컸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예전 코딱지들을 채팅으로 만나보자 싶은 마음이 들었죠. 한 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승낙을 하고 출연하게 된 거예요.
오랜만에 출연하셨는데 긴장되지는 않으셨어요? 그동안 어린이집, 유치원, 교사 세미나, 대학 강의까지 30년을 했어요. 유치원 교사 400~500명 앞에서 3시간 넘게 강의도 해봤고요. 사람들 앞에 서는 건 떨리지 않는데, 그것보다 어느 정도 수준에 맞춰야 하나 고민스러웠어요. 보는 사람들이 어른이니 어른 수준으로 강의를 해야 하나, 아니면 아이들 수준으로 해야 하나 고민하다 ‘그래, 예전처럼 하자’라고 결정했죠. 대상이 어른들인데 과연 종이접기를 봐줄까, 은근 걱정이 되더라고요.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다는 반응들이었어요.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예상하셨나요? 전혀 못했어요. 처음 나가서 1등을 해야지 그런 건 생각도 안 했죠. 나이 든 사람이 나왔다고 뭐라 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좋아해주니 저도 모르게 울컥하더라고요. 그 우는 영상이 나가서 난리가 났어요. 내가 창피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웃음).
방송 중에 접속자 폭주로 서버가 다운됐을 때 스태프에게 했던 말도 화제가 됐어요. 중간에 채팅이 멈춰서 PD가 와서 설명을 해줬어요. “아유, 예쁜 것들 글씨도 많이 올렸네”라고 했는데, 그게 그대로 방송에 나갔더라고요. 제가 우는 것도 편집해달라고 했는데, 편집해달라는 건 다 나오더라고요(웃음).
요즘 젊은이들과 실시간으로 소통을 하셨는데, 어떤 점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100% ‘선플’이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제가 악플 보고 상처받을까봐 제작진이 걱정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누가 간혹 악플을 달면 선플로 그걸 밀어내요. 이런 경우가 없다고 하던데 고마울 따름이에요. 지금 참고 있는 악플러들이 보여요(웃음). 저에게 학점을 못 받았다고 써서 올린 학생들이 죄송하다며 장문의 문자를 보냈어요. 괜찮다고 말해줬죠. 방송 나가고 와글와글하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조용해질 거라고 봐요.
방송을 보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는 20, 30대들이 많아요. 왜 그런 걸까요? 우리가 전반적으로 너무 메말라 있어요. 스스로 피폐해졌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모래바람 날리는 사막 한가운데에 제가 시원한 물 한 바가지를 쏟아부은 느낌이 아닐까 싶어요. 다들 힘들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특히 더 힘들잖아요. 악플을 달게 되는 이유도 세상에 지치고 치여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아이들이 저로 인해 위로를 받는다는 게 마음 아프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괜찮아요”, “잘했어요”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다들 잘 자라줘서 고마워요.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나요? 어렸을 땐 빨강, 노랑 알록달록 색종이로 세상을 접었는데, 지금은 눈에 보이는 종이로 한참을 접고 보니 이력서였다는 얘기가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선생님은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가셨다). 지금 20, 30대들이 고생을 참 많이 했어요. 학창 시절에 IMF를 경험했고, 그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죠. 취업은 또 얼마나 힘들어요. 그 과정을 이겨내오며 많이 지쳤을 거예요. 예쁜 아이들을 우리가 사회에 던져놓은 거예요.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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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나눔 캠페인]전격 인터뷰! 2030세대 향수 불러일으킨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그동안 뭐 하고 지냈냐는 질문 많이 받으시죠?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종이문화재단과 함께 해외 교류도 하고, EBS와 케이블 방송도 하며 부지런히 지냈어요. 종이접기는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어요.
미대를 나와 대기업 디자이너로 일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맨 처음 종이접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직장생활을 5, 6년 정도 하다가 사업을 하겠다고 뛰쳐나왔는데 실패했어요. 일본에 사는 친구 집에 갔다가 거기서 종이접기에 눈을 뜨게 됐죠. 우리나라에도 도입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당시 우리나라는 ‘종이접기’라는 단어조차 낯선 황무지였거든요. 그때 저희 아이들이 두 살, 네 살이었어요. 이걸 해서는 도저히 먹고살 길이 막막하더라고요. 결국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딱 1년만 도와달라고 말씀드렸어요. 고맙게도 아내도 허락을 해줬고요. 처음엔 1년 약속했는데 3년이 갔죠(웃음). 혼자 공부하고 시장조사 하면서 틈틈이 디자인 회사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어요. 그러다 1988년 올림픽 중계방송이 끝나고 프로그램들이 재편성될 무렵 방송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어떤 분야든 처음 길을 개척해나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고생을 감수하게 한 힘은 뭐였나요? 제가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에요. 종이가 가진 감성과 재미를 나눠주고 싶었어요. 네모난 색종이 안의 세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거든요. 언젠가는 우리나라 아이들과 다 같이 종이접기를 할 날이 올 거라는 확신과 꿈이 있었죠.
저 역시 ‘TV 유치원 하나 둘 셋’을 보며 아침을 보낸 세대예요. 매일 보던 선생님이 갑자기 방송을 그만두셔서 많이 아쉬웠어요. ‘TV 유치원’에 처음 출연했을 때 제가 서른아홉이었어요. 마흔여섯까지 7년을 하고 그만뒀죠. 오래 하기도 했고 좀 쉬면서 책도 만들고 싶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그러다 KBS-2TV에 ‘혼자서도 잘해요’가 생기며 옮기게 됐고요. 언제부터인가 각 방송사의 어린이 프로그램이 천덕꾸러기가 됐어요. ‘뽀뽀뽀’도 이 시간대, 저 시간대로 옮기다가 종영됐죠. 그러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지상파에서 사라지게 된 거예요.
어린 마음에도 매일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선생님이 참 신기했어요. 이제까지 만드신 작품이 몇 점 정도 될까요? 총 1만 점이 넘어요. 종이접기를 하며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 고민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지금은 만들어놓은 작품들이 워낙 많아 기존의 작품들을 변형시키는 작업을 많이 하는데, 요즘에도 수시로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잠잘 때도 가위와 풀, 색종이를 옆에 두고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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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나눔 캠페인]전격 인터뷰! 2030세대 향수 불러일으킨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종이접기 기술을 특허로 등록해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다고요? 저는 종이접기를 통해 아이들과 선생님을 가르치는 교육자예요. 선생님이 자기가 개발, 연구했다고 특허를 걸어 다른 사람이 못 쓰게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항상 더 많이 알려주고 더 많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에요. 유치원 선생님들이 제가 만든 종이접기 하시면 가서 안아주고 싶어요. 박수 쳐드릴 거예요.
종이접기와 함께 한 나눔의 삶
종이문화재단에 계시며 해외 재능 기부 활동도 많이 하셨죠? 매년 종이문화재단의 원장님들과 선생님들이 모여서 필리핀, 몽골, 러시아와 같이 아직 종이접기가 대중적으로 보급되지 않은 개발도상국에 가서 재능 기부를 해요. 그곳 선생님들께 종이접기를 가르쳐주고 아이들과 함께 종이비행기도 날리는데, 몽골에서는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올 정도로 반응이 뜨거워요. 갈 때마다 다음해에 또 와달라고 해서 수년간 인연을 맺어오고 있어요. 나눈다는 게 참 기분 좋은 일이잖아요.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열일 제쳐두고 가요. 올 4월에도 필리핀에서 그곳 선생님들을 만나고 왔어요.
우리나라 아이들은 이제 종이접기가 친숙하잖아요. 그곳은 어떤 분위기인지 궁금해요. 정말 좋아해요. 제가 맨 처음 우리나라에서 종이접기를 시작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에요. 그곳 사람들도 손으로 하는 공예가 많고 손재주가 뛰어나다 보니 배우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요. 가르치면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보람도 느끼고 갈 때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오래전부터 재능 기부와 봉사를 해온 것으로 알고 있어요. ‘TV 유치원’을 할 때부터 몰래몰래 보육원에 다녔어요. 그때는 차에 색종이를 꽉 채워 갔다가 다 비워서 왔어요. 그 기분은 말로 표현을 못해요. 그렇게 해오다 작년에는 저와 뜻이 맞는 선생님들이 모여 전국 도서산간 지역의 분교를 찾아 아이들을 만나보자는 계획을 세웠어요. 종이접기 커리큘럼도 짜고요. 그렇게 해서 학교들을 찾아 전화를 돌렸는데, 예상 밖의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와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물건을 판대요. 처음엔 순수한 봉사인 줄 알고 오라고 했다가 장사꾼들에게 많이 당하셨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생각만큼 쉽지가 않아요. 저는 지금이라도 문화 혜택이 필요한 곳에서 저를 부른다면 색종이를 트럭에 싣고 달려갈 수 있어요. 혹시 이 기사를 보시는 분들 중에 도서 지역 분교 선생님이 계신다면 연락 주셨으면 좋겠어요. 북한 빼고 다 갈 수 있어요(웃음).
그러고 보면 함께 종이접기를 하는 것 자체가 나눔이군요.
그게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나눔이라는 게 일방적인 게 아니에요. 종이접기를 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제가 그만큼 좋아요. 각자 즐겁게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한번쯤 꼭 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종이접기와 함께한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어떠세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 열정과 마음은 똑같아요. 맨 처음 종이접기를 시작했던 그때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아요.
혹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나요? ‘TV유치원’ 그만두고 쫑파티 할 때 많이 울었어요. 그때 집에 와서 이걸 계속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근데 저밖에 할 사람이 없더라고요. 부지런히 연구하고 세미나 다니고, 유아교육과 시간 강의 나가고 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니 오늘과 같은 날이 왔어요. ‘마리텔’ 제작진과 우리 코딱지들에게 고마운 마음이에요.
딸 시집보낼 때도 안 흘린 눈물을 흘렸다고 하셨는데, 어떤 아버지일까 궁금해요. 방송 전에 아들이 문자메시지를 보냈어요. ‘아빠 악플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런 친구들 격려해주세요’라고요. 걱정이 됐나봐요. 아이들 어렸을 땐 다른 집 아이들 종이접기 가르치러 다닌다고 잘 못 놀아줬어요. 그래도 나름 같이 여행도 많이 다니고 재밌게 보냈어요. 손주가 셋인데 아들 딸보다 제가 더 잘 놀아줘요.
종이접기는 언제까지 하실 생각이세요? 종이 접고 가위질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죠. 저는 지금도 아이들이 종이접기를 완성해나가며 즐거운 표정을 지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세요? 제 꿈이 미술관을 짓는 거였는데, 아트오뜨를 지으며 그 꿈을 이뤘어요. 지금 바라는 건 꼬맹이들이 아무 탈 없는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거예요. 지금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땐 저 같은 추억의 인물을 끌어내지 않아도 행복한 그런 세대로 자라났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전국의 수많은 코딱지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힘들죠? 다 알아요. 그래도 포기하지 마세요. 젊음은 도전이에요. 여러 가지 일을 해봐도 좋아요. 그러다 실패를 해도 좋고요.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하다 보면 언젠가 마음에 들어오는 걸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도 많은 도전과 실패를 했고, 그게 이어져 여기까지 왔어요. 부모님 자주 찾아뵙고. 결혼한 코딱지들은 아이들에게 칭찬 많이 많이 해주세요.
해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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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방송캡쳐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김동연(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