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순찬 화백의 장도리 인생
장도리를 20년 동안이나 연재했어요. 금방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참 긴 세월 동안 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날그날 뉴스를 중심으로 사건 사고들을 대략적으로 살피고 네 컷 안에 담아내는 작업이다 보니, 돌이켜보면 지난 20년이 참 변화무쌍한 세월이었네요. 우리 사회도 많이 바뀌었고요.
대학에서 천문대기학을 전공하셨다고요. 의외인데요? 제가 자라던 시절에는 국가적으로 과학을 많이 강조했어요. 매스컴에서도 그런 면을 많이 비춰주다 보니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됐죠. 과학자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도 있었고요. 원래 만화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특히 SF물을 즐겨 봤어요. 대학에 진학해 만화 동아리에서 활동했죠.

메르스와 가뭄으로 민심이 흉흉했던 지난 6월 21일자 장도리에는 영화 ‘매드맥스’ 패러디가 등장했다.
입사 때 나이가 스물여섯이었어요. 그때부터 화백이라 불린 건가요? 저같이 막 시작한 사람에게도 화백이라고 하더라고요. 신문사 관행이었나봐요. 처음엔 명칭 자체가 부담이 많이 됐어요. 그 당시 신문에 만화를 연재하시던 분들이 전부 원로들이었거든요. ‘왈순아지매’의 정운경 화백, ‘고바우 영감’의 김성환 화백을 비롯한 대선배들 틈에서 만화를 그리려다 보니 긴장할 수밖에 없었죠. 그분들이야 오래 활동하셨으니 ‘화백’ 칭호가 매우 자연스러웠지만 저는 전혀 그렇지 않았거든요. 제가 신문 만평으로 데뷔했기 때문에 조금 특수한 경우이긴 했죠.

박순찬 화백의 장도리 인생
인터뷰차 박 화백을 섭외하려고 했을 때 그는 2주간 여름휴가를 떠나 있었다. 경향신문 지면에서도 장도리를 만날 수 없었다.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기자는 개인 연락처를 구하기 위해 사내 정보 시스템을 조회했다. 그런데 그의 휴대전화 번호 앞자리가 ‘017’로 시작하는 게 아니던가. 분명 업데이트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고 선배들에게 연락처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돌아온 대답은 “그 번호로 전화하면 돼”. 아직까지 ‘017’ 번호를 쓰는 사람이 있다니, 분명 독특한 매력을 지닌 사람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017’ 번호를 고집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지금 제가 사용하는 번호가 휴대전화를 처음 개통했을 때 번호예요. 소비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010’ 번호로 바꾼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조금 화가 나더라고요. 항의 차원에서 유지하고 있는 면도 있어요. 소수의 기업과 정치 세력에 의해서 다수의 소비자들이 이끌려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 그래도 전화랑 문자 다 가능해요. 스마트폰이 따로 있어서 그걸로 카카오톡도 하고 있어요(웃음).
휴가는 잘 보내고 왔나요? 요즘엔 주 5일 연재를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 6일 연재했어요. 극심한 경쟁 때문에 신문을 매일 발행할 땐 쉬지 않고 연재한 적도 있었어요. 만화가로서 독자와의 관계도 있지만, 저도 한 회사에 소속된 직원이니 휴일을 챙겨야 될 권리도 있잖아요. 정해진 휴가 일수가 있어서 최대한 활용했죠. 그냥 여기저기 다니면서 푹 쉬다 왔습니다.
연재를 잠깐 쉰다고 하니까 ‘비판의 강도가 워낙 세서 잡혀가신 거 아니냐’라는 반응이 있던데요. 요즘 시대가 대통령을 풍자했다고 해서 잡아가거나 고문하는 시대는 아니죠(웃음). 또 그렇게 한다고 해서 어떤 효과를 볼 수 있는 시대도 아니고요. 특정 정치 세력이 행동으로 정치적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불가능해요. 대신 지금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통제가 이뤄지고 있겠죠. 한창 언론에서 많이 보도되고 있는 ‘해킹’처럼요.
정말 외압을 받은 적이 없나요?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 때까진 권력층이 신문사를 통해 만화를 수정해달라고 요구한 경우도 있었어요. 노무현 정부 때부터 그런 요구가 없어진 것 같아요. 지금은 아주 자유롭게 그리고 있습니다.

박순찬 화백의 장도리 인생
장도리의 논조는 혼자서 결정하는 건가요? 네, 제가 하죠. 따로 회의를 하진 않아요. 가급적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담으려 하고 있어요. 그런데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 나오는 게 꼭 나쁘지는 않다고 봐요. 그것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조정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장도리의 내용도 편향됐다고 볼 수 있어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거죠. 어떤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장도리 인기 보너스, 이런 건 없나요? 인센티브는 전혀 없어요. 저도 회사에 소속된 직원 중 한 명이니까 똑같이 월급 받으면서 살고 있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라는 말이 절로 나올 때가 있어요. 예전에는 패러디를 할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 만한 소재를 택하려고 했어요. 영화를 패러디했는데, 독자들이 그 영화를 보지 않아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매우 조심스러웠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찾기 어렵다 보니 웬만하면 패러디를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괜찮은 소재를 발견하면 과감하게 패러디해요. 이해가 가지 않으면 인터넷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장도리에 주로 등장하는 대상이 대통령이에요. 작업하다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돼 있다 보니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제가 김영삼 정부 말기부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까지 그리고 있는데, 각각 차이가 있죠. 최근 들어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이 집권하게 되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다시 권위주의적으로 퇴행하는 모습들이 보여서 만화를 그리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죠.
만화로 호흡하다
초창기 만화 속에서 나름 적극적으로 발언하던 장도리가 언제부터인가 아예 등장하지 않고 있다. 그저 장도리라는 제목 옆에서 시무룩한 얼굴로 자전거를 타고 있을 뿐이다. 사회에 비판적인 주인공의 모습을 담아냈던 과거보다 오늘날의 현실이 더욱 암울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권력자들은 만화 공간에서조차 장도리가 들어설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는다. 그들의 허를 찌르며 매일 한 편씩 쌓여가고 있는 장도리는 지금까지 총 4권의 책으로 출간됐다. 만평을 넘어 기록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는 의미다.

만화집의 표지.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뛰어난 풍자와 은유를 담고 있다.
‘만화 그리길 참 잘했다’라고 생각되는 순간이 있나요? 글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 그리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어느 순간을 꼽을 순 없는 것 같아요. 늘 제가 해오던 것이어서 후회하거나 잘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요. 만화는 제 생활이니까요.
만화를 그리는 게 ‘생활’이어서 힘든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일이 있을까요? 저 같은 경우도 매일 마감 시간이 있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를 덜 받을지 연구하고 있긴 한데, 어쩔 수 없는 것 같더라고요. 20년을 해왔지만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아직 명확한 답이 나온 건 아닌가 보군요. 한 가지 답이 있긴 해요. 아이디어를 짤 때, 계속 고민한다고 해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건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고민하면 스트레스만 쌓여요. 생각을 비우는 게 아이디어가 나오는 빠른 길인 것 같아요. 어차피 안 떠오르는 아이디어, 고민을 하나 안 하나 똑같아요(웃음). 사람이 바쁘면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아요.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노는 시간이 필요하죠. 스트레스 받으면 건강에도 안 좋고, 그럼 나만 손해니까요.
스스로 시사만화 장도리에 바라는 점이 있나요? 저는 일단 ‘시사만화’라는 용어 자체가 구시대적이라고 생각해요. 소설이 현실 문제를 얘기한다고 해서 ‘시사소설’이라고 하지 않잖아요. 소설이 소설인 것처럼, 만화도 만화예요. 시사만화를 따로 구분짓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봐요. 과거에 미술을 순수미술과 아닌 걸로 구분했잖아요. 정치사회 문제를 다루면 순수하지 않다고 틀 지어버리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거죠. 시사만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굳이 표현한다면 ‘신문 만화’나 ‘네 컷 만화’라고 하는 게 낫겠네요. 개인적으로는 장도리에서 인간의 여러 가지 측면을 좀 더 다양하고 깊이 있게 다룰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부조리 없는 사회가 빨리 와야겠죠.
어떤 만화가로 기억되고 싶은지도 궁금하네요. ‘열심히 하는 만화가’로 남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매일 만화를 통해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잖아요. 독자들과 항상 호흡하는 모습으로 기억해주셨으면 해요.
■글 / 노도현 기자 ■사진 / 안지영 ■사진 제공 / 박순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