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골프계의 한류 스타 ‘스마일 캔디’ 이보미 선수
일본에서 2015년도 전반기 시합을 모두 마친 이보미(27) 선수가 2주간의 휴식을 얻고 잠시 한국에 왔다. 전반기 마지막 대회였던 JLPGA 투어 어스 몬다민컵에서 연장 승부 끝에 우승을 차지했으니 화려한 귀국이다. 이 선수는 현재 일본에서 여성 골퍼 상금 랭킹 1위며 2014 일본 호치 프로 스포츠 대상에서 올해의 골프선수상을 수상했고, 「골프 다이제스트」에서 일본 팬들이 선정한 여자 골프선수 인기 투표 1위를 차지했다. 이 선수가 해외 진출 선수 중 ‘현지화에 가장 성공한 골퍼’라고 불리는 이유다. 그녀의 일본 팬들은 자국 경기에 출전한 외국인에게 아낌없이 응원과 박수를 보내는 셈이다. 왜? 무엇이? 국적의 벽을 넘어 그녀에게 열광하게 하는 걸까?
한국에는 얼마나 자주 오나요? 일본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시합이 있어요. 시합을 마치고 나면 짧게 한국에 한 번씩 들어와서 쉬죠. 전반기 시합을 모두 끝낸 덕분에 2주간 한국 집에서 푹 쉴 수 있게 됐어요.
뭘 하고 지내나요? 처음으로 긴 휴가를 받았어요. 첫 일주일 동안은 한 번도 클럽을 잡지 않았어요. 골프를 시작하고 처음 있는 일이에요. 길어봐야 3일 정도였거든요. 후반기 시합에 지치지 않도록 후회 없이 놀고 싶었죠. 그런데 일주일이 참 짧아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다 보니 눈 깜짝할 새 지나가버렸어요.
그렇게 놀면서 체중이 늘거나 하지 않나요? 클럽만 잡지 않았을 뿐, 일본에서 개인 트레이너가 와주셔서 규칙적인 웨이트트레이닝은 해야 돼요. 며칠만 쉬어도 근육이 풀어져버리거든요. 당장 8월에 대회가 있고, 9월에도 아주 중요한 대회가 있어서 웨이트트레이닝을 게을리하면 체력이 달려서 안 돼요. 체력은 정신력에도 영향을 주거든요.
휴가 온 이보미 선수를 따라 일본에서 개인 트레이너가 왔다고요?
감사한 일이죠. 일본 에이전시에서 많이 신경을 써주세요. 원래 스포츠 에이전시가 아닌 다른 분야의 기업체인데 저를 영입하기 위해 에이전시 회사를 만들어주셨어요. 특히 재일교포 3세이신 회장님께서는 아버지처럼 잘해주세요. 저희 아버지께서 암으로 투병하셨는데, 일본에서 고칠 수 있는지 알아봐주시고 또 돌아가셨을 때는 직접 문상도 오셨어요. 진심으로 응원해주세요. 일본에 있으면 제가 인복이 참 많다는 걸 느껴요.
일본에서 인기가 많은 이유가 뭘까요? 겸손하다는 칭찬을 많이 들어요. 저는 시합 중에는 골퍼, 그 외에는 평범한 이보미로 살고 싶어요. 운동선수가 연예인은 아니잖아요. 나 자신을 과도하게 내세우면 보는 사람도 불편할 거라 생각해요. 운동할 때는 열심히 하고 평소에는 소탈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 그 균형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이번에 일본 아사히 신문에서 여론 조사한 결과 ‘한국인 하면 떠오르는 사람’으로도 뽑혔잖아요? 알고 있었어요? 저는 몰랐어요. 일본 미즈호 은행의 회장님과 라운딩을 돌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신문을 건네시는 거예요. 펴봤더니 그 기사더라고요. 그러시면서 “외국인이라고 기죽지 말고 운동 열심히 하세요. 자부심을 가져요”라고 격려해주셨어요. 사실은 그런 부담감이 있어요. ‘외국인인데 너무 잘 치면 이 사람들이 반감을 갖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그런 것이 아무래도 경기에 영향을 끼치지요. 하지만 많은 분들의 이런 응원 덕분에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어요. 저는 이곳에 한국 사람으로 온 것이 아니라 골퍼로 온 거니까 최고의 성적과 플레이를 보여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팬 서비스도 굉장히 좋은 걸로 알고 있어요. 제 이름을 불러주시면 그분들을 향해 웃어주는 게 다예요. 그분들은 돈을 지불하고 경기를 보러 오시는 거잖아요. 입장료 가격이 4일에 2만 엔이고 또 교통비도 따로 들여서 오실 텐데 그 정도는 해드려야지요. 그런 팬 서비스를 가르쳐준 사람은 따로 있어요. 바로 YG 엔터테인먼트예요.
YG 엔터테인먼트요? 제가 Mnet에서 방송된 ‘Who is Next’라는 서버이벌 프로그램에 나왔던 iKON의 래퍼 바비를 좋아하거든요. 일본에서 열린 YG 패밀리 콘서트에 갔는데 바비의 이름을 크게 불렀더니 저를 보고 웃어주는 거예요. 끝나고 사진도 찍어줬는데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내 팬들에게도 똑같이 해주면 좋아하시겠구나’ 하고 느꼈어요.
바비라면 갓 스무 살 된 친구 아닌가요?(웃음) 막내 동생뻘이죠(웃음). 어린 나이에 가수가 되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서 노력하는 모습이 예뻐 보였어요. 제가 예전에 운동 하던 때도 생각나고요. 그러다 보니 팬이 됐네요.
‘박세리 키즈’로 우연히 시작한 골프
강원도 인제군에서 태어난 이보미 선수는 12세에 골프를 시작했다. 그녀 역시 당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였던 박세리에게 영향을 받은 ‘박세리 키즈’였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해 부모님 몰래 태권도 학원을 다니고 있었단다. 학원비가 필요했던 그녀는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에게 들켰다. 그때 “여자가 무슨 태권도냐”라며 마침 골프를 하는 옆집 친구를 보고 “운동하고 싶으면 차라리 골프를 배워라”라고 하신 한마디가 지금의 이보미 선수를 만들었다.
우연히 시작했지만 골프에 소질이 있었나 봐요? 소질보다는 그냥 열심히 했어요.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후회 없다”라는 대답이 나올 정도로 최선을 다했어요.
골프가 재미었었나요? 그저 잘해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18세 때는 엄마와 단둘이 수원으로 와서 생활했어요. 부모님의 관심이 모두 저에게만 쏠려 있으니 다른 자매들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죠. 지금도 미안함이 커요.
솔직한 이야기를 하자면, 국내에서도 상금 랭킹 1위를 했었고 아직 전반기라고는 하지만 일본에서도 현재 1위잖아요. 가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네. 더군다나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제가 실질적인 가장이 됐잖아요. 가족의 소중함도 알았고 또 저 때문에 희생했던 가족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커요. 수원에 스크린 골프장을 차려드려서 엄마가 운영하고 있고요. 그 옆에서는 언니와 막내가 미용실을 하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이번에 아버지가 계신 곳에 다녀왔다고요. 가족과 함께 다녀왔어요. 그리고 가평 펜션에서 조카들을 데리고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작년에는 아버지의 빈자리로 인해 갑자기 밀려든 책임감과 중압감 때문에 힘들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에 대한 슬픔도 컸고, 세금 문제나 금전 관리를 모두 아버지가 해주셨는데 갑자기 막막하고 무섭더라고요. 엄마나 다른 가족의 건강도 걱정되고.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어요.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약속한 것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우선 상금 랭킹 1위 하는 것이 첫 번째 약속이고요. 두 번째 약속은 2016년 브라질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거예요. 아버지께서는 유언으로도 “보미가 한국 대표로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라고 하셨어요. 세계 랭킹으로 한국 대표를 뽑는다고 하니 나이가 좀 있는 제게는 다소 불리한 조건이지만 아버지 유언인 만큼 최선을 다해봐야지요.
한국 대표 선수 뽑는 것도 참 치열하겠네요. 한국 여자 골퍼들이 정말 강하죠? 잘하는 선수들이 많아요. 왜 그런 걸까요? 한국 여자 선수들은 기본기가 좋아요. 우리나라는 워낙 어릴 때 시작하고 일단 정확한 스윙자세를 가르치잖아요. 외국이나 일본은 일단 세게 치고 나중에 선생님을 만나서 자세를 고쳐나가거든요. 그러니까 손 감각이나 창의력이 좋은 소수의 선수들만이 살아남는 거예요.
골프에서 창의력이 좋다는 건 무얼 말하는 거죠? 예를 들어 A 지점까지 공을 쳐야 해요. 한국 선수들은 모두 똑같이 배운 한 가지 방법만을 사용하죠. 그런데 A 지점으로 공을 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다양하거든요. 외국 선수들은 그런 방법들을 창의적으로 생각해내요. 그런 점이 부러워요.
골프는 4일간 혼자 하는 경기인 만큼 정신력도 중요할 텐데요. 정신력이 가장 중요하죠. 더불어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하고요. 자기 샷을 믿으면 돼요. 하느님도 보이지 않지만 믿잖아요? 그런 것처럼 일어나지 않는 상황도 믿고 해야 하는 게 골프예요.
그렇긴 하나 근소한 점수 차이의 라이벌 선수가 “오늘 잘 쳤다”라는 소리를 들으면 신경 쓰이지 않나요? 신경이 쓰이지만 인식하면 제 게임을 못하게 되더라고요. ‘우승해야지, 상금 타야지’ 하고 지나치게 스스로를 자극하면 결국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는 경기가 골프예요. 그것보다는 ‘한 홀 한 홀 좋은 샷을 보여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임하면 후회하지 않는 게임이 돼요.
골프 하기 좋은 성격은 따로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맞아요. 좀 단순하고 긍정적인 성격이 유리할 거예요. 제가 그렇거든요.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금방 잊어버려요. 1분 1초라도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이 바로 정신력이잖아요.
일본 골프계의 한류 스타 ‘스마일 캔디’ 이보미 선수
이 선수는 일본 무대로 진출한 지 5년 차다. 올해의 목표는 일본에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상금왕’이다. 전반기는 목표를 달성했으니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달릴 것이다. 톱클래스의 여성 골퍼들만이 기록한 JLPGA 20승 달성이 그녀의 가장 큰 목표다.
일본에서 컨디션이 좋던데 자신에게 여건이 좀 맞는 것 같나요? 안 되는 것은 절대 안 되는 곳이라서 처음에는 융통성이 없어 보이고 답답했지만 이제는 그런 규칙에도 익숙해져서 편하고 좋아요. 결국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거니까 한편 이해가 가요. 그러면서 이곳에서의 매너도 배우게 되고요.
일본 어디에 살고 있나요? 작년까지는 시합 일정에 맞춰서 호텔 생활을 했어요. 그러다 점점 짐이 불어나니까 집을 구해야겠더라고요. 고베에 맨션을 얻었는데 아주 편해요. 조용하고 바다와 산도 있어서 살기 좋은 곳이에요. 10분만 걸어 나가면 시내라서 쇼핑하기에도 좋고요.
골퍼로서 일본의 시장 상황이나 시스템은 어떤가요? 코스도 깨끗하고 어프로칭이나 퍼팅 연습장 환경도 좋아요. 일본에서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시합이 있으면 선수들 백을 모두 택배로 골프장으로 이동시켜줘요. 시합이 끝나면 연습을 시작하는 화요일에 연습장에서 받을 수 있게 하고요. 이게 참 편해요. 우리나라는 각자 가지고 다녀야 해서 차가 꼭 필요하거든요.
제일 궁금한 질문을 이제 물어보네요. 일본에 남자친구는 없어요? 없어요(웃음). 참고로 한국에도 없어요. 지금은 경기하기 바빠서 만나도 만나는 것이 아니니 서른이 넘으면 주변에서 좋은 분들을 소개해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게다가 골프선수일 때 저를 만나면 인간 이보미로 보지 않으실 거 같아요. 골퍼 이보미로 과대 포장해서 보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그런 분들에게는 저에 대한 기대치가 있어서 불편하더라고요.
서른 넘어서 결혼을 하겠다면 곧 그때 선수 생활을 은퇴하겠다는 말인가요? 저는 제가 우승할 수 있을 때까지만 플레이를 하고 싶어요. 그 이후에는 과감하게 은퇴할 거예요. 워낙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고 30대에는 또 그때의 인생이 있지 않을까요? 학교를 다시 다니면서 공부를 해도 좋을 것 같고요. 꼭 골프에 매달리고 싶지는 않아요.
결혼 상대자의 국적은 상관없나요? 한국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웃음). 아무리 가까운 나라라 해도 문화가 다르더라고요. 일본은 연인 사이라고 해도 사생활을 지켜야 한대요. 전화 통화도 하루에 한 통 이상 하면 실례로 보는 사람도 있어요. 연인 사이인데! 저는 그렇게 눈치 보면서 연애하고 싶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일본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요? 가깝게는 스폰서 대회인 마스터즈CG에서 우승을 하고 싶고, 더불어 후반기에 메이저 대회가 3개나 있어서 잘하고 싶어요. 현재 일본에서 10승을 했는데 앞으로 10승만 더하면 KLPGA에서 평생 시드(토너먼트 방식의 경기에서 우수한 선수 팀끼리 처음부터 대전하게 되지 않도록 강자를 특정한 대전 위치에 배정하는 것)를 줘요. 지금까지 시드를 받은 프로는 1세대 골퍼이신 구옥희 프로님을 비롯해 박세리, 신지애, 전미정 프로님 정도예요. 저도 꼭 그 안에 들어가고 싶어요.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박재찬 ■의상 협찬 / 르꼬끄 골프(02-2007-8583) ■헤어&메이크업 / 서일주, 강보라(파크뷰 칼라빈, 02-515-58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