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과 전문의 김진세의 행복을 만드는 힘
얼마 전 만난 대학 동기 A는 학창 시절부터 열심히 살기로 유명한 친구였다. 대학생 ‘답지 않게’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냈고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2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로스쿨에 들어갔다.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유명 로펌의 변호사가 돼 나타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A는 “행복하다”라는 말 대신 “쉬고 싶다”라고 했다. A뿐만이 아니다. 대학 졸업반인 후배도,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는 선배도, 장사를 하시는 옆집 아줌마 아저씨도, 백수 친구도 모두 열심히 산다. 행복해지기 위해. 하지만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 그런 걸까?
오랜 기간 긍정의 힘과 행복을 이야기해온 정신과 전문의 김진세(51) 고려제일정신과의원 원장에게 물으면 뭔가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마침 새 책을 펴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압구정 상담실을 찾았다. 그는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다양한 가치관을 존중받는 사회일수록 구성원들의 행복감이 커요. 하지만 우리는 전반적인 사회적 가치관이 물질적인 것에 치우쳐 있어요. 돈의 가치가 최상단에 위치해 있고 그에 대적할 만한 가치가 별로 없는 거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중요시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문제는 정신적 가치도 함께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돈만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받아들여진다는 거예요.”
현재 인류는 역사상 가장 부유한 시기를 살고 있다. 그렇다고 가장 행복한 시기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사회의 부가 많아진다고 해서 사람들이 다 같이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거다. 돈을 가치의 최상단에 둔 부작용을 우리는 이미 크게 겪었다.
“어떤 일이 벌어지냐 하면요. 안전하고 튼튼한 배를 만들어야 하는데, 사람을 많이 태울 수 있는 배를 싸게 만들어요. ‘세월호 참사’라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어요. 의사들은 돈이 되는 수술만 하려고 하죠. 안전하지 못한 사회, 상대적으로 덜 가진 자가 소외되는 사회에서 행복을 느끼기란 어려워요.”
이 ‘상대적’이라는 말이 참 골칫거리다. 이제 좀 행복해졌다 싶으면 어디선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나보다 더 많이 가지고 더 행복해 보이는 이를 눈앞에 들이댄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남과 자신을 비교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요즘 사람들이 겪는 상대적 박탈감은 예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매스미디어가 너무 발달해서 그래요. 예전에는 우리 남편, 우리 아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이만하면 됐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눈만 돌리면 온통 잘생기고 예쁘고 잘난 사람들이 나오잖아요. 비교가 안 될 수 없죠. 또 매스미디어를 통해 보는 비현실의 세계를 현실이라고 믿어요. 비교의 차원이 달라지죠.”
게다가 비교는 실시간으로 일어난다. SNS를 보면 사람들은 다 호텔에서 밥을 먹고 럭셔리한 여행에 ‘신상’을 사 모은다.
“우리가 루브르박물관에서 ‘모나리자의 미소’를 보고 가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잖아요. 감상만 할 뿐이죠. 매스미디어에서 보여주는 것들은 일종의 픽션이고 전시예요. 소유가 화두가 되는 시대이다 보니 그걸 내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예전에는 그 차이가 몇 천원, 몇 만원이었다면 지금은 몇 백만원, 몇 천만원을 뛰어넘어요. 상대적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죠.”

「행복을 인터뷰하다」(샘터)에는 15명의 인터뷰이들이 각자의 행복에 도달한 방법들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우선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만의 방식으로 가치관을 ‘리셋’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어떻게?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김 원장은 긍정과 행복의 에너지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각계각층의 인물들에 주목했다. 2009년부터 매달 한 명씩 만나 물었다. 산악인 엄홍길, 국제구호 전문가 한비야,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방송인 김미화 등 그가 인터뷰한 15명의 이야기를 엮어 출간한 「행복을 인터뷰하다」(샘터)에는 그들 각자가 행복에 도달한 방법들이 담겨 있다.
“‘행복한 사람들은 어떤 힘을 가진 걸까?’라는 궁금증이 있었어요. 그 힘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죠. 제가 만난 인터뷰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소위 ‘잘난’ 인물들이에요. 하지만 그중 어느 한 사람 고난 없이 행복을 이룬 사람은 없었어요.”
초반에는 정신과 의사가 인터뷰를 한다고 하니 손사래를 치는 이들도 많았단다. 환자들을 포함해 1년에 1만5,000~2만명과 얘기를 나누는 그 역시 인터뷰를 앞두고 만만찮게 긴장했다.
“인터뷰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었어요. ‘행복’과 ‘긍정’에 초점을 맞추자. 그리고 ‘굿 리스너’가 되자. 정신과 의사라고 하니 처음엔 긴장하던 이들도 제가 무언가를 파헤칠 의도가 없다는 걸 알게 되면 무장해제가 돼요. 그때부턴 천천히 즐기게 되는 거죠. 이외수 선생님 댁에는 아침에 가서 저녁까지 얻어먹었고, 최민수씨 아내 강주은씨는 이틀에 걸쳐 인터뷰를 했어요. 가수 이소은씨를 만났을 땐 식구들이 다 같이 와서 김치찌개를 먹었고, 엄홍길 대장과는 북한산에 다녀와서 폭탄주를 마셨죠.”
그렇게 한 명 한 명 교감을 통해 들여다본 그들의 맨얼굴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겉모습만 보면 화려한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그들 역시 결핍을 겪고, 상처를 받고,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했다. 불행한 사람들과 차이가 있다면 자신의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지혜를 가졌다는 것. 그로부터 모아진 몇 가지 공통점은 ‘행복을 만드는 힘’으로 갈무리된다.
그중 첫 번째는 ‘내가 가진 강점에 집중하기’이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비교와 질투 안에는 열등감이라는 녀석이 숨어 있다. 불행한 사람들은 자신이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에 얽매이는 경향이 있다. 남보다 못한 나의 약점이 더 커 보이는 거다. 행복해지려면 바꿔야 한다.
“흔히 자신감이 떨어지면 강점이 보이지 않아요. 약점 덩어리인 자신을 책망하며 어떻게 하면 이 약점을 버릴 수 있을까 고민하죠. 하지만 약점을 고치는 것보다 강점을 발전시키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에요. 나의 강점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훨씬 행복해질 수 있어요.”
행복한 사람들은 불안과 결핍을 대하는 태도 역시 남달랐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불안을 창작의 힘으로 전환시켰고, 방송인 김미화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겪었던 결핍을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불안과 결핍을 메우려는 노력은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강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불안했어요. 오래전 일이지만, 보릿고개 시절에는 먹고사는 것 때문에 불안했고 전쟁의 공포가 늘 따라다녔어요. 먹고살 만해진 요즘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어요. 나이 든 사람은 노후가 불안하고, 젊은이들은 취직 걱정에 미래가 불안하죠. 불안만 없다면 편안하게 살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왜냐하면 불안은 정상적인 생존 반응이기 때문이에요. 살아 있는 한 불안은 계속될 거예요. 도망가고 모른 척한다면 불안은 당신을 불행하게 하지만 당당하게 맞선다면 삶을 나아가게 하는 추진력이 돼요.”

정신과 전문의 김진세의 행복을 만드는 힘
불안이 잘 달래서 친구해야 할 삶의 동행이라면 두려움은 넘어서고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진 사람은 다시는 사랑하지 못할 것 같은 절망감에 빠지고, 교통사고나 화재 등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 또다시 그런 일이 닥칠까 봐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정신적 혹은 신체적으로 엄청난 충격이 가해진 사건이나 사고를 겪고 나면 조금만 비슷한 상황에 처해도 극한의 두려움을 느끼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엄 대장은 연구 대상감이다. 산에서 동료를 잃었고 생과 사를 오갔으며 숱한 공포와 맞닥뜨렸다. 그럼에도 다시 산에 오른다. 의학적으로 겪어야 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상식을 뛰어넘는 의지와 용기 그리고 재도전은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으로 풀어볼 수 있다. 김 원장은 엄 대장을 두고 회복 탄력성이 강한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했다.
“산에 가는 게 겁나지 않느냐고 물으니 겁난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받아들여야지 어쩌겠나, 라면서요. ‘이보다 더 힘든 일도 겪었는데’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두려움을 이겨내는 거예요. 차이가 있다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은 늘 외부의 공포와 싸워요. 그런데 엄 대장은 내부에 있는 자신과 싸운다는 거죠. ‘걱정하지 마’, ‘겁내지 마’, ‘괜찮아’라고 매번 자신을 다독이면서요. 연구에 따르면 이런 사람들은 일반인들과 뇌 구조가 다르다고 해요. 실패의 공포를 이겨내고 원상태로 복구되는 심리적 회복 탄력성이 매우 강하죠. 일반인들이 그렇게 하기는 힘든 부분이지만 그들의 전략을 이용한다면 나를 옭아매는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떨쳐버릴 수 있을 거예요.”
외부의 공포를 애써 피하지 않고 맞서기 위해선 우리에게 일어나는 여러 가지 불행은 없앨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다면 그걸 받아들여야 하는데 자꾸 생각해요. ‘왜 안 좋지?’, ‘옆집은 안 그런데 왜 우리는 그렇지?’라고요. 그냥 시어머니는 그런 사람이고 나와 맞지 않다는 걸 인정 해야 하는데 계속 부정하려 하죠. 왜냐하면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거든요. 행복해지고 싶다면 공포와 불안을 받아들여야 해요. 그래야 이겨낼 수 있어요.”
행복은 노력 없이는 얻을 수 없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라는 말은 그것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이지 노력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매일 책을 사본들, 마음을 수십 번 먹어본들 소용없다. 행복은 행동하는 사람에게만 온다. 행복해지기 위해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움직이고 실천에 옮기는 일이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안지영 ■장소 협찬 / 해피언스 압구정점(02-511-44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