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친화적인 성인용품점 플레져랩의 곽유라·최정윤 공동대표
“성인용품에 대한 호기심은 남녀가 비슷한데 남자들은 웹 사이트부터 쇼핑몰, 용품점까지 욕구를 풀 수 있는 공간이 많지만 여성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안전한 기분을 느낄 수 있으면서 아름답고, 새롭고 재미있는 자극을 얻어갈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고민의 결과가 플레져랩이에요.”
플레져랩의 최정윤(29) 대표는 자신도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성들이 가지는 성에 대한 비슷한 고민을 해왔다고 했다. 그래서 성인용품점이라지만 “아니 이런 것도 모르세요?” 하고 우월한 위치에서 고객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알아가는 기쁨’을 함께 찾는 동행자이고 싶다고. 그래서일까, 플레져랩의 내부는 적어도 세련되면서도 전문적인 느낌이 물씬 묻어났다. 성인용품점인 듯, 성인용품점이 아닌 듯.
전직 간호사와 외신 기자의 유쾌한 의기투합
성인용품점의 대표가 여성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세간의 이목을 끌기엔 충분하다. 그런데 거기에 젊음과 아름다움이 더해지니 대체 뭐 하시던 분들이기에 이런 사업을 시작한 거냐고, 투박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창업 전문가 지인을 통해 2년 전에 만나 의기투합하게 됐다는 두 대표의 답은 의외였다. 전문적이고 적합한 자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저는 간호사였고, 최정윤 대표는 외신 기자로 활동하던 통·번역가였어요. 최 대표나 저나 건강한 성문화나 성인용품에 각각 다른 계기와 이유로 관심이 많았어요. 저는 우연찮은 기회에 한 번 써봤는데…. 그 이후에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다른 나라의 성인용품점은 어떤지 찾아가보게 됐어요. 호기심으로 시작했는데 나중엔 재미있었죠.”

여자들만의 은밀한 부티크 플레져랩 곽유라·최정윤 대표
“중환자실 간호사였는데요. 중년 여성 환자들 중에 남편이나 파트너 등의 외도나 그런 상황으로 인해 성 매개 감염 질환에 걸린 경우가 있어요. 급성이 아니다 보니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우연한 기회에 병원에 와서 피검사 등을 통해 매독이나 임질 등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는 안타까운 사례들을 많이 봤어요. 또 잘못된 성 지식으로 인해 병원에 오는 경우도 봤고요.”
건강하게, 바르게, 제대로 된 성생활을 알려야겠다는 소명의식이 들기도 했다고 한다.
“저도 곽 대표와 비슷한데요. 저는 10대 후반에 미국 유학을 갔어요. 여성학에 관심이 많았고, 지역 여성 단체에서 봉사를 하면서 처음 성인용품점에 가게 됐죠. 처음엔 그곳이 케이크 가게인 줄 알았어요. 가게가 무척 예쁘고, 직원들도 다 여자고, 제품 설명도 프로페셔널하고요. 그렇게 성인용품을 처음 접하니 매우 긍정적인 인상으로 남더라고요.”
거부감 없이 성인용품을 접한 최 대표가 잠시 귀국했을 때였다. 친구들과 이대 앞에 갔다가 재미있고 다양한 물건을 많이 파는 콘돔 전문 체인점을 발견하고는 구경하자고 이끌었더니 친구들이 하나같이 “너 혼자 들어가, 우린 여기 있을게!”라고 했단다. 콘돔 체인점을 구경하는 게 왜 부끄럽고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인지 큰 의문으로 남았었다고.

1 콘돔, 윤활제, 손세정 티슈가 들어 있는 플레져랩 자체 상품 인티머시 키트, 6천원. 2 (왼쪽부터) 독일의 섹스토이 제조 전문 업체인 OVO사의 남성용 진동 실리콘 링(Cock Ring), 4만5천원. 세계적 섹스토이 제조업체인 스웨덴 LELO의 바이브레이터 Noa, 18만6천원. 커플 아이템으로 여성이 착용 가능하다. 3 (위) 침실 분위기를 돋우는 천연 아로마 오일이 들어간 내추럴 소이 왁스 7 Days Candle, 1만5천원. (오른쪽 두 제품) 바르고 문지르면 열이 나는 다양한 향의 프랑스제 마사지젤, 가격미정. (왼쪽) 니플 커버(유두 가리개 스티커) 4천원.
플레져랩을 찬찬히 둘러봤다. 일반적인 남성용, 여성용 성인용품부터 LGBTQ(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 등을 부르는 용어)로 대표되는 성소수자들을 위한 제품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국내엔 아직 론칭이 안 된 해외 유명 브랜드 제품과 친환경 에코 제품도 만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성을 모티브로 한 각종 엽서, 팬시 제품, 잡지까지 위탁 판매하고 있다. 제품 하나하나 깐깐한 여성 대표 둘의 심사를 거친, 몸에 좋은 ‘건강한’ 것들이었다.
“곽 대표나 저나 건강하고 밝은 성문화를 만들어가는 게 굉장히 절실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미 어린 초등학생들까지 온갖 성적 문화에 노출돼 있는데 이걸 사회가 그저 쉬쉬해서 변태적이고 건강하지 못하게 발현한다면? 지금까지 그래왔고요. 이제부터는 우리 세대가 그에 대한 답을 찾을 때라고 봐요. 그렇다면 더욱 건강한 사회가 될 거예요.”
플레져랩의 두 대표가 단순한 판매 사업만을 하는 건 아니다. 다양한 성에 관한 궁금증과 고민들을 함께 해결해가기 위해 좌담회와 건강 세미나, 또 유쾌한 파티 등도 준비 중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한 섹스’라면서.
플레져랩을 찾는 고객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최 대표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여성들이 훨씬 편하게 제품에 대한 질문을 하는 등 적극적이라고 전했다. 외려 함께 온 남성들이 쭈뼛거리는 편이라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으로는 “여성 전용이에요? 남자는 가면 안 돼요?”란다. 여성 친화적인 공간이지만 남성 고객도 언제나 환영이라고 곽 대표가 귀띔했다. 앞으로는 남성을 위한 전용 플레져랩, 소외된 노인의 성을 위한 플레져랩 등으로 세분화시킬 계획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외부인과의 쇼핑이 불편한 고객들을 위해 일요일은 프라이빗 쇼핑이 가능하도록 100% 예약제로 운영한다.
“주변의 시선에 대해 많이들 물어보세요. 하지만 저나 최 대표 모두 이 사업을 준비하면서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거나 그런 편견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은 적은 감사하게도 아직까진 없었어요. 저희 어머니는 가출 청소년들을 위한 성교육을 하고 계시는데요. 저희에게 ‘너희는 한국을 건강한 사회로 만드는 거지, 음란한 사회로 만드는 게 아니다’라고 말씀하세요.”
곽 대표의 말을 듣고 있자니 얄팍한 호기심을 안고 플레져랩의 문을 열었던 마음이 부끄러웠다. 처음엔 흥미로운 창업자 정도로 생각했는데, 인터뷰 말미가 되니 한국 성문화 인식 개선에 나선 여전사들처럼 보였다. 두 대표는 자신들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의 주체가 되는 여성의 롤모델이 돼주고 싶기 때문이다. 플레져랩이 건강하고 안전한 성인용품의 대명사로 통하며 아시아 시장까지 진출했으면 한다는 포부도 밝히면서 말이다. 아주 멋진 한류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그녀들의 성공은 모두의 ‘기쁨’으로 이어지니까.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강은진(객원기자) ■사진 / 안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