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민 여자 축구 심판이 사는 법

김경민 여자 축구 심판이 사는 법

댓글 공유하기
김경민 부심은 월드컵 3회 연속 출전의 기록을 가진 첫 국제심판이자 K리그를 누비는 유일한 여자 심판이다. 여자 심판으로서는 유일무이한 이력에, 미모까지 겸비했으니 비록 선수들에 비해 심판은 마치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존재지만 그녀만큼은 금세 눈에 들어온다.

김경민 여자 축구 심판이 사는 법

김경민 여자 축구 심판이 사는 법

심판에 대해 몰랐던 것들
김경민(35) 부심을 대면하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까맣게 그을린 피부였다. 야외 스포츠인 축구 경기의 심판으로 뛰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특유의 환한 미소에서는 여성미가 물씬 느껴진다. 축구팬들에게 그녀는 이미 미녀 심판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그런 그녀가 왜 거칠고 험하기로 유명한 남자 축구의 세계에서 뛰어들었는지 새삼 의구심이 들었다. 국내 여자 축구 심판은 16명인데, 그중 남자 축구인 K리그(챌린지)에서 뛰는 심판은 김경민 부심 한 명뿐이다.

“때로는 여자 부심이라는 이유로 불신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래서 제가 실수를 했을 때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다른 남자 심판들보다 큰 경우도 있죠. 일단 눈에 띄니까요. 그렇다고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에요. 여자라서 비교적 꼼꼼하게 경기를 판독한다고 인정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요.”

게다가 그녀는 소위 학연과 지연에 연관된 ‘파벌’에 대한 오해에서도 자유롭다.

“남자 심판들은 축구선수 출신들이 다수여서 실제로 인맥도 넓고 은사 관계로 연결되기도 하니 상대편에서 지레 불신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저는 여자라서 그런 것에서 좀 자유로워요. 그러나 누군가 ‘심판이 편파 판정한다’라는 말을 하면 그것이 꼭 저를 향한 것이 아닐지라도 무척 속상합니다. 실제로 심판들은 경기 중에 인맥까지 생각할 정도로 여유가 있지 않아요.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몇 초 안에 판단해야 하는데 ‘친하니 봐줘야지’ 하는 생각을 누가 할 수 있을까요?”

심판도 한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선수만큼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경기가 끝나는 것으로 심판의 일이 끝난 건 아니다. 전문 분석가들이 그날의 판정에 대해 다시 검토하고 해당 심판들은 메일을 통해 피드백과 점수를 받는다. 이런 자료들은 심판의 커리어로 남게 된다. 잘못된 판정에는 사후 징계도 엄격하다.

“징계도 징계지만 제 실수를 자책하는 시간이 더 고통스러워요. 그런 상황이 때로는 트라우마로 남죠. 심판은 늘 뒤에서 일하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하는 면도 있어요. 승부 조작이나 편파 판정은 심판에게는 자신의 신념이나 자부심이 걸린 문제라 매우 예민하죠.”

심판은 경기 전날이 돼서야 자신이 참여할 경기 장소와 팀에 대해 알 수 있다. 경기 전에는 모든 정보에 대해 누설이 금지된다. 김 부심은 본인도 모르게 정보를 누설할까 싶어 SNS 활동을 하지 않고 있으며 경기 전날에는 친구 간의 문자메시지도 삼간다.

김경민 여자 축구 심판이 사는 법

김경민 여자 축구 심판이 사는 법

“예를 들어 친구로부터 내일 제가 살고 있는 강릉에 올 건데 만날 수 있냐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쳐요. 내일 경기가 잡힌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안 돼, 나 내일 출장 가’라고 하면 이 역시 발설의 일부가 될 수 있어요. 일단 내일 참여할 경기의 팀이 직전에 참여했던 경기의 두 팀은 아닌 거니까요.”

‘어떤 팀의 팬이다. 어떤 팀이 우승할 것 같다’ 등의 개인적인 의견도 심판들이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절대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입장인 만큼 사생활도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김 부심의 남편은 최민병 심판으로, 부부 심판으로도 스포츠 업계에서 화제를 모았다.

“한번은 부모님과 함께 가족 여행을 하던 중 휴게소에 들렀는데 손님들 중 한 분이 남편을 알아본 거예요. ‘축구 심판이다!’라는 그분의 한마디에 저희는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한 거죠. 서둘러 휴게소를 나와야 했어요. 배정 누설뿐만 아니라 평상시 언행도 늘 조심합니다.”

경기를 즐기는 관중의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심판의 고충이 있었다. 그럼에도 김 부심은 심판은 자신의 천직이라고 말한다.

축구선수에서 심판이 되기까지
김 부심은 중학교 때부터 축구를 시작해 대학 졸업 때까지 선수로 활약했다. 처음부터 심판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우연히, 자연스럽게 그 기회는 찾아왔다.

“운동을 하면서 정강이 쪽이 늘 안 좋았어요. 대학교 때 병원에서 골종양일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죠. 결국 오진으로 판정이 났지만 정강이가 약해진 탓에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었고 주위에서 선수보다는 초등학교 지도자로 전향해볼 것을 추천했어요. 지도자를 하려면 경기 규칙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심판 교육도 함께 받으면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선수 시절에는 느껴본 적이 없는 또 다른 성취감이 있더군요.”

축구는 늘 단체 생활을 통한 협업이 강조됐다. 그러나 공부를 시작하면서 혼자도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를 이룰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선수 출신이다 보니 경기 흐름이나 선수들 생각을 빨리 읽을 수 있겠더라고요. 그리고 외부에서 장기간 경기를 할 때는 심판들도 단체 생활을 하는데, 선수 시절의 숙소 생활이 적응에 큰 도움을 주죠. 부상 때문에 심판의 길로 들어선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선수 시절에는 늘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는 딸이었어요. 부상을 당하지 않을까 늘 애를 태우며 보시던 부모님이 이제는 제대로 즐기고, 끝나면 제 판정에 대한 훈수까지 하고 가세요(웃음).”

그리고 무엇보다 큰 행운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는 점이다. 2000년 심판 교육을 함께 받은 것이 인연이 됐다. 2009년 두 사람은 결혼했지만 K리그에서 국제 무대까지 활동을 넓히다 보니 정작 부부로서 함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신혼여행 이후로 함께 여행을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웃음). 언제 경기 배정을 받을지 모르고 전날까지 장소를 모르니 예약을 해놓고 못 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예요. 심지어 신혼여행을 마치고 도착한 당일 공항에서 서로 각자 경기가 열리는 지방으로 갔지요.”

덕분에 늘 신혼같이 애틋하지만 그 흔한 기념일조차 잘 챙기지 못한다. 각자의 생일만큼은 챙기자고 다짐했지만 그 역시 쉽지 않았다.

“축구 비시즌인 11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는 심판도 한가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선수들 동계 훈련 경기에서 심판을 봐줘야 하고 또 저희도 말레이시아에 있는 아시아축구연맹(AFC)에서 열리는 심판 세미나에 참석한다든가 1년에 한 번씩 있는 체력 테스트 준비를 하다 보면 사실상 쉬는 시간은 없는 게 맞아요.”

심판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남자 경기의 심판을 보기 시작하면서 스트레스성 탈모와 원인 모를 열꽃이 생겨 7개월간 약을 먹었다. 지금도 경기 중에 술 취한 관객들에게 욕을 먹기도 하고 선수와 부딪쳐 큰 부상을 겪기도 한다.

김경민 여자 축구 심판이 사는 법

김경민 여자 축구 심판이 사는 법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
남편은 의지가 되는 든든한 기둥 같은 존재지만 때로는 서로 채찍질로 독려하며 프로의 길을 가는 조력자이기도 하다.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는 편이지만, 하루는 정말 힘들어서 남편에게 이야기했어요. 그랬더니 태연하게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그렇게 스트레스 받고 할 거면 그만둬. 그 자리에 가고 싶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미안하지도 않아?’라고 하더라고요. 충고도, 위안도 아닌 그 말을 듣고 깨달았죠. 결국 모든 것이 제 자신과의 싸움이고 심판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누구나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라는 것을요.”

혹독한 시련과 자신과의 싸움에 맞서야 하는 심판. 그럼에도 김 부심은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는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달콤한 희열이다.

“가장 기쁜 순간은 제가 어떤 판정을 내렸는데 그것이 비디오 분석을 통해 옳았음이 확인됐을 때예요. 그 감정은 말로 표현 못해요. 정말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힘든 일이지만 분명 그만두지 못하게 하는 매력 있는 일이죠.”

김 부심의 목표는 4년 후 월드컵에 참가하는 것이다. 4번째 도전이 된다. 기회와 능력이 되는 한 끝까지 심판의 길을 걷고 싶다. 심판은 특별한 정년은 없다고 한다. 체력 등 각종 테스트만 통과하면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국내 여자 심판들 중에서도 연령대가 높은 선배들이 있어요. 정말 자기관리가 철저해 존경스러워요. 그분들이 오랫동안 현역에 계시면서 후배들에게 좋은 자극을 주었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션’이라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여자 심판에게 관심이 있어요. 그분이 임신을 해서 지난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했거든요. 과연 얼마 만에 복귀할지 주목하고 있어요.”

가정과 일의 양립을 훌륭히 이뤄내고 있는 선배 심판들의 행보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은 욕심 많은 그녀의 초미의 관심사다. 스스로 빛나는 존재는 아니지만 멋진 경기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심판. 화려한 경기장 뒤에서 그들이 얼마나 숨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 김 부심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축구팬들에게 당부한다.

“경기를 있는 그대로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선수나 심판을 비난하는 걸로 스트레스 해소가 되신다면 그것도 저희가 감수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흠뻑 땀 흘리며 운동장을 종횡무진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경기를 관람하는 것도 더 큰 스트레스 해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축구공은 둥글기에 강자와 약자를 쉽게 나눌 수 없으며 모두에게 공정하다. 김 부심은 둥근 공에 또 하나의 공정함을 올려놓는다. 그래서 축구는 재밌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김동연(프리랜서) ■장소 협찬 / 아이파크몰 아디다스 올인파크(02-2012-3810) ■헤어&메이크업 / 파크뷰칼라빈(02-515-5888) ■스타일리스트 / 박남일

화제의 추천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TOP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