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에 담아내는 느림의 아름다움 사진작가  김진석

찰나에 담아내는 느림의 아름다움 사진작가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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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그는 두 달 동안 프랑스 파리 1구에 있는 20개의 길을 모두 걸었다. 매일 새벽 일어나 그날 걸어야 할 목표를 정해 걷고 또 걸었다. 공원에서,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찍었다. 그 결과물을 엮어 얼마 전 8번째 사진집 「라비 드 파리」(큐리어스)를 펴냈다. 사람들의 삶에 찰나의 여유라도 전해주고 싶은 마음, 그가 사진기를 들고 걷는 이유다.

찰나에 담아내는 느림의 아름다움 사진작가  김진석

찰나에 담아내는 느림의 아름다움 사진작가 김진석

올 해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생긴 임시 공휴일에 사진작가 김진석씨(41)를 만났다. 그의 첫인상은 흔히 말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같았다. 덥수룩한 헤어스타일과 짧지 않은 수염이 멋스럽게 어울렸다. 심지어 그 스스로도 역마살 혹은 자유분방함을 언급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다가 그의 오른손에 눈길이 갔다. 붕대를 칭칭 동여맸는데, 얼마 전 수술을 했다고 설명한다.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고요. 보름 전에 연골 부위 수술을 했는데, 다행히 결과가 좋다고 해요.”

그는 매체 사진기자로 활동하던 2008년에 제주 올레길을 처음 걸었다. 그 길에서 사진에 깊이 매료됐다. 이후 방향성은 오로지 길 위에서 만나는 것들에 초점을 맞췄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뚜르 드 몽블랑, 히말라야, 헝가리와 프랑스 등 지금까지 그는 매년 세상 곳곳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지낸다. 1년에 100일가량을 집 떠나 타지에서 보내고 있다며 웃었다.

“한 공간에 있는 것이 답답해 어딘가로 나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전 여행의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이거든요. 종종 제가 여행을 사랑해서 이러한 작업을 하는 것인지 묻는 분들이 계신데요. 그건 절대 아니에요. 사진을 위해 걷는 거죠.”

재미있게도 그가 사진을 업으로 삼게 된 계기는 결혼이다. 그는 26세에 꽤 이른 결혼을 했다. 신혼 초 아내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는데, 그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첫 출사지는 과천시립미술관이었다. 그 사진 한 장이 그의 삶을 사진작가로 이끌었다. 당시 한 언론사의 광고부 영업사원으로 근무 중이었던 그는 이후 사진학과 만학도가 됐다.

“아내의 월급으로 등록금을 냈어요. 첫째가 세 살이었고 둘째는 엄마 배 속에서 자라던 시기에 대학에 입학했죠. 인화지와 필름 살 돈이 없어 과 동생들에게 많이 얻어 쓰고 다녔어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고마운 일이죠.”

고교 재학 중 집회 참가 등의 사유로 퇴학 처분을 받았던 경험이 있는 그에게 배움의 공간은 누구보다 더 특별했을 것이다. 탈춤부에서 만난 대학생 형들을 통해 당시 나라 상황과 역사를 접하면서 자연스레 집회에 참가하는 날이 잦았는데, 결국 고교 2년 때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딱히 대학에 큰 뜻도 없었고…. 술도 많이 마시고 전국을 실컷 유랑하며 지냈죠.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어 좋네요. 저는 야간 자율 학습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늦은 나이에 입학한 대학 생활을 참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납니다.”

에스카르고 프로젝트, 매일 10시간 걸으며 만난 파리
지난해 9월 그는 ‘에스카르고(프랑스어로 달팽이 혹은 나사 모양) 프로젝트’의 완성을 위해 파리를 찾았다. 두 달 가까이 그곳에서 지내며 하루에 10시간씩 걸었다. 네댓 차례 출장으로 찾았던 파리에 대한 인상은 늘 낭만적이었다. 그곳에서 요즘 사람들의 너무나도 바쁜 삶에 쉼표를 찍을 수 있는 작업, 느릿느릿 살아가는 달팽이를 상징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한다. 파리의 길은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달팽이처럼 생겼단다.

찰나에 담아내는 느림의 아름다움 사진작가  김진석

찰나에 담아내는 느림의 아름다움 사진작가 김진석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출장을 가려면 경제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소셜 펀딩을 통해 에스카르고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는 자금을 모을 수 있었어요. 총 13분께서 후원하셨는데, 촬영을 마치자마자 그분들을 위한 사진부터 작업해 선물로 드렸죠. 이를테면 제 사진을 미리 구입하신 분들인 거죠.”

그가 파리에서 걷기로 정한 길은 1구에 있는 20개의 길이다. 걷는 순서는 지도를 보고 정했다. 한인 민박집에서 지내면서 매일 새벽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하루 평균 25km를 걸으며 파리의 순간을 기록했다.

“파리에서 지내는 이들의 자연스러운 순간을 담고 싶었습니다. 에펠타워나 몽마르트 언덕 같은 상징적 장소에서 인위적인 느낌이 나는 사진보다는 길을 걷다 제 눈에 들어온 그 찰나를 촬영했어요. 초상권 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도 했죠. 제 결론은 사진을 찍을 때 찍히는 사람이 렌즈를 그대로 보고 있다면 암묵적 동의라고 생각했어요.”

그의 말처럼 「라비 드 파리」에 등장하는 파리지앵들은 그와 눈을 맞추고 있다. 여유로워 보이는 이들의 모습도 또 웃음을 자아내는 이들의 모습도 담겼다. 가끔은 그에게 다가와 사진을 지워달라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이들을 촬영할 때는 반드시 부모에게 동의를 구했다.

“어른과 달리 아이들은 사진을 찍는다고 해도 어색해하지 않아요. 사진을 찍겠다고 하면 어른의 표정은 제가 본 첫 순간과 다른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먼저 찍은 후 사진 촬영을 해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한 적도 많아요.”

집을 떠나면 모든 것이 짐이 된다. 그는 20kg에 육박하는 무거운 사진 장비 이외에 그 어떤 준비물도 많이 챙겨 다니는 스타일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현지에서 구입해 쓰는 편이다. 속옷도 단 두 벌만 가져가며 구멍이 날 경우 버리고 다시 사 입는다고 했다. 세상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닮아 있기에 현지에서도 필요한 물건을 구하자는 주의다.

“샤워하면서 바닥에 양말과 옷을 두고 휘휘 간단히 빨래를 해 입었어요. 사진기와 노트북, 외장하드, 충전기 등 촬영 관련 용품만 챙겨가도 짐이 어마어마하거든요.”

파리에서 아침과 저녁은 민박집에서 해결하고 점심은 간단하게 샌드위치나 과일을 먹었다. 그가 진행한 에스카르고 프로젝트의 이름처럼, 달팽이 요리도 먹어봤는지 농담 삼아 물었다. 그는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펀딩을 받아 출장을 왔기 때문에 약간의 심적 부담이 있었다. 만약 여행가였다면 현지의 유명 음식인 에스카르고를 먹어봤겠지만, 음식에 많은 비용을 지출하지 않았다는 것.

“파리 사람들의 관용 문화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대단한 사건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상점을 들어갈 때 뒷사람을 위해 몇 초간 문을 잡아주는 매너 같은 점이요.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문화가 많이 생기긴 했지만 아직 파리만큼은 아닌 것 같아요. 내가 잠깐 문을 잡아주는 친절은 다음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고, 또 그는 다른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겠죠. 그런 점이 참 마음에 와 닿았어요.”

그가 앞으로 걸어갈 길들
현재 그는 7년째 제주 올레의 공식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제주 올레에서 여는 축제, 행사 등을 기록하고 소정의 고료를 받는다. 그가 처음 올레를 방문해 촬영했던 사진을 홍보 브로슈어에 기부한 것이 인연이 됐다고.

“제주 올레는 세상 그 어떤 길보다 아름답고 다이내믹한 길입니다.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감동도 있고…. 인간이 가진 표정을 다양하게 가진 길이라고나 할까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간은 10코스예요. 화순포구에서 모슬포로 이어지는 길인데, 제주의 시원한 해안가와 서쪽 끝을 바라보는 길이에요.”

찰나에 담아내는 느림의 아름다움 사진작가  김진석

찰나에 담아내는 느림의 아름다움 사진작가 김진석

지금까지 그가 걸었던 길에 대해 물었다. 그는 2010년 5월 카미노라고 불리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걸었다. 아무 계획도 없이 간 그곳에서 하루도 안 쉬고 36일간 총 820km를 걸었다.

“카미노는 굉장히 힘든 길입니다. 즐거운 길이 아니에요. 가톨릭 신자에게 큰 의미가 있는 길이기도 하고요.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던 첫날의 오전, 저는 그 길을 포기하려 했습니다. 시작한 첫날에요! 그러다 아주 천천히 걸으며 계속 갈등을 했어요. 그때 만난 한 할아버지의 한마디에 용기를 냈죠. ‘천천히 와’. 그 말에 큰 전율을 느꼈어요.”

당시 그가 만나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 가운데에는 일종의 치유를 위해 걷는 이들이 많았다고 했다. 아내와 사별했거나 자식 혹은 부모의 죽음을 받아들이려 그 길로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워하는 대상의 사진 한 장을 품고 걸으며, 그들과의 헤어짐에 대한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 했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그 길 위에서 치유를 받았다. 그 이유로 지금도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순례자의 길로 향하고 있다.

“16년 차 기자 생활에 이골이 나 있던 터라, 저도 그 길에서 치유를 받고 싶었습니다. 나를 돌아볼 시간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살았던 제 모습이 싫었어요. 여정을 끝낼 때 즈음 그런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들이 사라진 듯했습니다. 걸으며 치유를 받았던 거겠죠. 그 이후로 무작정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요. 어떤 목적도 없이 그저 낯선 곳에서 원 없이 걷고 싶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시사 월간지에서 객원기자로 본격적인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여러 매체를 거쳐 국회의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밀착 취재해 해당 지역구에 송고하는 여의도통신을 공동 운영하기도 했다. 그 치열한 현장에서 벗어나고 싶던 시기에 그에게 걷기라는 돌파구가 열린 셈이다. 이후 히말라야의 3대 트레킹 루트 중 하나인 EBC(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가는 코스를 종주했고,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 둘레를 일주하는 뚜르 드 몽블랑도 완주했다. 또 주한 헝가리대사관의 제의로 부다페스트의 길을 촬영해 부다페스트와 서울에서 각각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에베레스트에서는 고산병으로 고생을 좀 했어요. 제 인생의 멘토인 심산 선생님을 포함한 몇 분과 함께했었는데 두통은 물론이고 얼굴과 손이 퉁퉁 부어 상태가 심각했어요. 그렇지만 매일 약을 먹으면서 사진을 찍었죠. 제 두 손에 사진기가 있는데, 그냥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지난 2004년부터 그는 신촌 심산스쿨과 합정동 이문회우 등지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사진 기초반과 중급반을 운영하고 있다. 또 인터뷰를 마친 직후에는 일본 규슈 올레로 출장을 간다고 했다. 제주 올레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조성된 규슈 올레는 현지인은 물론 한국 올레꾼들의 방문도 꾸준한 명소가 됐다. 매년 제주 올레의 스태프가 규슈를 방문해 걷기 좋은 올레길을 발굴·평가해주고 있는 덕분이다.

“사람이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보전하며 걷는 길이 제주 올레의 정신입니다. 그 정신을 바탕으로 저도 계속 걸으며 만나는 사람과 풍경을 담고 싶고요. 올해는 제 고향인 전라도를 걸어볼까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수다도 떨면서요.”

너무 쫓기며 살지 않았으면, 한 숨 쉬어갈 수 있는 삶의 여유를 찾았으면.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간절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앞으로도 사진을 통해 그가 만들어갈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앞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예측할 수 있는 점은 지구 어딘가를 또 걸을 것이라는 것. 길 위의 사진가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그가 두 발을 통해 더 깨달아갈 무언가가 몹시도 기다려진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정은주(객원기자) ■사진 / 안지영 ■사진 제공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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