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秀자매, 착한 카메라 여행을 떠나다
“둘 다 고등학교 때부터 여행에 관심이 있었어요. 특히 공정여행에 관심이 많아서 언젠가 좋은 뜻을 가지고 함께 여행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러던 중 우연히 「여행하는 카메라」라는 책을 통해 문화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곳의 아이들에게 사진 찍는 법을 가르쳐주고 함께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알게 됐어요. 책의 마지막에 ‘카메라 우체부를 모집합니다’라는 글을 보고 우리가 우체부가 돼보기로 했죠.”
책의 저자인 김정화 작가에게 자문을 구한 두 사람은 곧 여행 준비에 돌입했다. 목적지는 인도와 태국으로 각각 3주간의 일정이었다. 2박 3일 짧은 휴가여도 준비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카메라를 들고 이국의 낯선 아이들을 찾아가는 과정은 준비부터 만만치가 않았다. 우선 필요한 것이 카메라이고, 현지에서 아이들과 접점이 돼줄 사람도 찾아봐야 했다.
“카메라는 주위에서 알음알음 보내주셨어요. 흔히들 ‘똑딱이’라고 하는 조그만 자동카메라예요. 찾아보니 저희 집에도 안 쓰는 디지털카메라가 있더라고요. 인터넷 여행 카페나 사이트를 통해 현지에서 NGO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에게 메일을 보내 저희 뜻을 말씀드렸어요. 취지에 동감해주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셨죠. 봉사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찾아와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가는 사람들이 많대요. 여행을 준비하며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알게 되더라고요. 아이들을 도와주러 가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는 일을 하러 가는 거라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
20대 초반의 두 딸이 인도 빈민가로 배낭여행을 떠난다니, 2년 전 큰딸 수진이 홀로 인도 여행을 떠났을 때 한창 마음을 졸이셨던 아버지의 반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자매는 머리를 맞대고 묘수를 짜냈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보내드린 제주도 여행에서 좋은 분위기를 틈타 승낙을 얻어내는 데 성공.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또 있었다. 출발 일주일 전, 여행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진행했던 소셜펀딩이 무산되며 최대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3개월 동안 여행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때 모은 돈에 소셜펀딩으로 경비를 충당할 계획이었는데 모금이 무산되며 위기를 맞았죠. 다시 모금을 시작하기엔 시간이 없었고. 결국 현지에서 쓰는 경비를 최소화하기로 하고 일단 떠나기로 했어요.”
막내 여동생과 10년 지기 친구도 합류, 총 네 사람은 15개의 카메라를 배낭에 나눠 메고 인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떠나는 기분이 어땠을까? 나름 비장한 질문에 하이톤의 웃음이 대답으로 돌아왔다.
“카메라와 충전기가 어찌나 무겁던지, 14kg짜리 배낭을 하루 동안 메고 다니다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기절할 뻔했어요(웃음).”

秀자매, 착한 카메라 여행을 떠나다
자매가 인도에서 처음 만난 아이들은 인도 북서부 우다이푸르 지역의 빈민가 아이들이었다. 초호화 호텔이 즐비한 화려한 도시 이면에는 어려운 가정환경에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조용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전까지 한 번도 카메라를 만져보거나 사진 속 주인공이 돼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한국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날아온 선물은 마냥 신기한 물건이었다.
“묵고 있던 게스트 하우스 옥상을 아지트 삼아 아이들에게 카메라 다루는 법을 가르쳐줬어요. 카메라는 15대뿐인데 동네 아이들이 다 몰려왔을 정도로 호기심이 많더라고요. 처음 카메라를 잡은 아이들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아이들이 카메라 플래시 터지는 걸 참 좋아하거든요. 플래시만 터지면 까르르 웃음도 같이 터져요.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니 그간 준비하며 힘들었던 게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더라고요. 오길 잘했구나 싶었어요.”
아이들에게 카메라는 어려운 물건이 아니었다. 금세 카메라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자신과 가족, 친구, 풍경이나 물건 등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사진을 찍은 뒤에는 왜 그것을 찍었는지, 찍으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그날의 사진 일기도 썼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가장 멋지다고 생각되는 나의 표정’, ‘가장 좋아하는 친구’ 이런 식으로 미션을 줘요. 한번은 ‘꿈’에 대한 미션을 준 적이 있는데 한 아이가 ‘저는 군인이 돼서 인도를 지킬 거예요’라고 썼더라고요.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인 줄 알았는데 생각도, 속도 참 깊구나 싶었어요. 태국에서는 여덟, 아홉 살 아이들이 ‘우리는 자연의 소중함을 느껴야 한다’라고 사진 일기를 써요. 태국 아이들은 불교의 영향 때문인지 자연을 참 소중하게 생각하더라고요. 아이들을 보며 저희도 배우고 느낀 게 참 많아요.”
물론 환경적으로는 고된 여행이었다. 네 사람의 하루 예산은 1만원. 여행 경비를 최소화하다 보니 식비가 모자라 감자와 토마토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45℃에 육박하는 태국의 더위도 예상치 못한 강적이었다.
“3월에는 인도를 다녀오고 4월에는 태국에 갔는데, 당시 현지 기온이 45℃였어요. 1년 중 가장 더운 시기라고 하더라고요. 날은 덥지, 배는 고프지, 너무 일찍 일어나면 배고프니까 늦게 일어나자 했을 정도예요(웃음).”
힘든 일도 많았지만 아이들과 카메라로 소통하고 함께 울고 웃었던 시간은 잊지 못할 기억이 됐다. 아이들이 찍은 사진으로 전시회를 열었을 때 자기가 찍은 사진이 전시된 걸 보고 폴짝폴짝 뛰며 좋아하던 모습, 카메라를 보고 배시시 수줍게 웃던 미소, 맑은 눈망울과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까지, 이번 여행을 통해 두 사람은 많은 걸 얻어왔다고 말한다.
“인도에서 숙소에 매일 놀러 오던 여자아이가 있었어요. 그 아이 꿈이 가수였는데, 하루는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나중에 가수가 돼서 언니들처럼 다른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그때 정말 감동했어요. 태국에서 떠나기 전 아이들에게 편지를 받고 울었던 기억도 나고요. 사람들은 저희가 봉사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는데,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고 온 것보다 아이들이 저희에게 준 게 더 많아요.”
이제 20대 초반인 자매는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은 ‘더 많은 이들과 나누며 사는 삶’을 살고 싶다는 자매의 인생관에 확신을 심어준 값진 경험이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김동연(프리랜서) ■사진 제공 / 권수정, 권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