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안부 소녀들의 이야기 ‘귀향’ 그리고 조정래 감독
오랜 기간 동안 야외 촬영 현장을 누비며 작업하느라 검게 그을린 조정래(42) 감독의 첫 인상은 무척이나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소위 영화판 특유의 깡이랄까, 거친 느낌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외유내강이라고 했던가. 외부의 숱한 압력과 방해, 제작비 부족으로 촬영은 수시로 중단됐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13년을 매달려 기어이 촬영을 마친 보이지 않는 강한 오라에 절로 긴장이 됐다.
봉사로 시작된 만남, 실상 알고 충격에 빠져
묻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서로 마주보고 앉아만 있어도 그간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지 저절로 알아지는 경우가 있다. 조 감독이 그랬다. 조 감독은 미 의회에 상영됐다는 압축 영상을 인터뷰 시작 전에 보여줬다. 압축 영상만으로도 아픈 마음을 추스르기가 버거웠다. 눈물을 감출 길이 없어 말을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연신 “죄송하다”라고 사과했지만 한동안 말을 잇기 어려웠다.
“제가 죄송해요. 저야 남자니까… 더 죄인이에요. 촬영하면서 배우들이랑 스태프들과 함께 진짜 많이 울었거든요. 왜 내가 이걸 해야 하나, 누구한테 하는지 모를 원망도 많이 하고요. 그래도 13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영화를 찍을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님들과의 약속 때문이었죠.”
조 감독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우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 같았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어딘가 함께 울고 있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조 감독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처음 만난 것은 2002년이었다. 영화감독이지만 국악에도 조예가 깊다. 그리고 판소리 고수이기도 하다. 판소리와 민요를 하는 친구들과 경기도 광주 퇴촌 나눔의 집에 봉사활동을 가게 되면서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아름답고도 긴, 하지만 어쩌면 조금은 모진 인연이 시작됐다. 매달 봉사활동을 가면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 조 감독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강일출 할머님께서 심리치료를 받을 때 그리신 ‘태워지는 처녀들’이란 그림이었어요. 당시 끌려갔던 조선 소녀들의 평균 나이가 16세라고 해요. 요즘 신체 나이로는 12세 정도밖에 안 돼요. 거의 초경도 안 한 어린 소녀였죠. 아프거나 쓸모가 없어지면 고쳐준다고 부대 밖으로 데려가서 할머님의 그림처럼 소각장 같은 데서 태워 죽이는 거예요. 증거를 없애는 거죠.”
조 감독은 표현이 조심스럽다면서 당시에는 일본군들에게 조선인 소녀들이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고 실상을 공개했다. 정조 관념이 있어 깨끗하고, 병사들에게 연애하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부분은 어린아이들이었다. 짧게는 3일, 길어야 한 달이나 두 달 정도면 다 죽었다. 성병에 의한 죽음은 거의 없었다. 초경도 하지 않은 어린아이들이었기 때문에 신체 파열, 즉 자상으로 인한 출혈로 숨을 거둔 것이었다. 그리고 일본군의 구타에 의한 죽음도 많았다. 위안소에 들어가서 여자아이들을 무자비하게 때린 것이다. 막연하게 성적인 학대로 죽음을 맞았을 거라고 예상한 조 감독은 이 사실을 알고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와달라는 할머니들의 부탁
“영화를 찍으면서 많이 듣는 말이 뭔지 아세요? ‘정말 사실이야?’, ‘이게 사실이야?’예요. 얼마 전 미얀마 국경 지대에 버려졌던 시신들이 조선인 위안부로 판명됐다는 조사 결과도 발표됐잖아요. 할머님들의 증언집을 보면 같이 있던 사람들이 다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고 하세요. 본인도 구사일생으로 살았다고. 거의 죽을 뻔했는데 중국인 농부가 구해줬다, 뭐 이런 식이에요.”
조 감독은 지금 살아 계신 위안부 할머니들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결심은 굳어갔다.
13년간 촬영한 영화 ‘귀향’의 시작이다. 시놉시스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리플릿부터 자료집까지 온갖 것을 제작해 13년간 안 다녀 본 곳이 없다고 했다. 조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구걸’을 하며 다녔다고. 도움을 주려던 큰 회사들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론 투자를 받는 데 모두 실패했다. 소재가 상업성과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홀로코스트를 만든 영화는 무척 많은데 말이죠. 이런 건 한국 영화에선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한 선배는 마지막 남은 영화 금맥인데 왜 영화가 안 만들어지겠냐면서… 우리는 안 해본 줄 아냐고, 안 된다는 거예요. 단언컨대 안 된다고요.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어요. 제가 할머니들을 책으로 만난 게 아니잖아요. 이야기로 전해 들은 게 아니잖아요. 직접, 직접 만나서 들었잖아요, 증언을. 어떻게 멈춰요.”

‘태워지는 처녀들’
“지금도 살아 계신 분들이 계시지만… 제가 아는 할머님들은 다 돌아가셨어요. 올해만 해도 여덟 분의 할머님들이 세상을 뜨셨고요. 한 분이라도 더 살아 계실 때 영화를 완성해드리고 싶어요. 할머님들에게 ‘도와달라’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어요.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달라고요. 무엇으로 지금껏 버텼는가 물으셨죠? 할머님들의 말씀과 눈빛이요.”
조 감독은 자신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집도 가난하고 가진 것도 없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만든 것은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 수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게 영화다. 집 팔고, 차 팔아서 될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조 감독은 정말 집 팔고, 차 팔아서 영화를 찍었다.
“100% 후원으로 제작된 영화죠. 개인적으로 저희 홈페이지를 통해 클라우드 펀딩으로 후원을 받았고요. 사전에 티켓을 판다는 형식이었죠. 여기 후원자분이 4만2,000명이 넘어요. 그러니까 저희 영화는 상영 전임에도 4만 명 넘는 관객을 확보한 거예요. 또 포털 사이트 다음의 뉴스펀딩이란 코너를 통해 2억5,000만원이란 기적적인 후원금을 지원받기도 했고요.”
촬영은 마쳤지만 후반 작업비 등 제작비 문제에 부딪혀 다시 한번 뉴스펀딩 후원을 받았을 때다. 후원 기사 업데이트 1시간 만에 목표 금액을 다 채우는 기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자기 돈 들여가며 영화 찍은 스태프
후원의 기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영화 ‘귀향’은 스태프의 기적도 한몫 단단히 했다. 돈이 없는 상황에서도 “이건 무조건 잘 찍어야 하는 영화”라고 먼저 결의를 다졌던 것은 스태프였다. 차를 팔고, 전세금을 빼고, 심지어 장모님 집을 팔기도 했다.
“세트 만드는 스태프도 투자했고요. 적금도 깼어요. 스태프가 카드론 받아서 업체들 월급 주고요. 진짜 장난 아니었어요. 후원자들도 감사하지만, 우리 스태프들도 세상에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충무로 예산으로 액면가 환원을 하면 40억, 50억원 예산의 영화가 나온 셈이라고 했다. 섭섭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조 감독은 이 영화에 한해 말하자면 돈 많은 분들은 안 도와주고,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이 도와줬단다. 영화사 사무실에 나와 다양한 작업을 하며 일을 돕고 있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다 자원봉사로 시작해 여태 남아 자신들의 몫을 묵묵히 하고 있단다.
“저희가 미 의회에 초청받아 6분 압축 영상을 상영했잖아요. 그리고 뉴욕타임스 한 면 전체에 기사로 소개도 됐고요. 그때 그 영상을 보고 제가 제일 많이 받은 질문이 ‘정말 그랬냐’라는 거였어요. 정말 사실이냐고요. 말씀드렸다시피 이 영화는 하루 찍고, 또 돈 빌려서 하루 찍고, 돈 갚은 다음 또 빌려서 하루 찍고 그렇게 왔어요.”
영화에서 끌려가는 연기를 한 여배우가 실제 중학교 3학년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진짜 이렇게 끌려갔냐”라고 묻는다. 그러나 실제 일본군에게 끌려갔던 가장 어린 소녀의 나이는 11세. 상상도 못할 일이다. 영화가 갖는 힘을 조 감독은 물론이고 스태프들까지 잘 알고 있었기에 자기 돈을 들여가며 영화를 찍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초등학교 교사이신 후원자 분이 그러시는 거예요. 수업 시간에 위안부 할머니들 이야기를 했더니 아이들은 소녀들이 아닌 할머니들이 끌려간 줄 알더래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 그런 오해는 안 하죠. 시각적인 효과, 영화가 갖는 힘이죠. 왜 이런 걸 만드는가 하는 비아냥거림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눈으로 보지 않고선 알 수 없는 것들, 그런 게 있더라고요.”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된 배우들도 재능 기부에 가깝다. 배우들은 중학생도 있고 재일교포 4세들도 있다. 일본어 구사 문제 등이 있다 보니 재일교포 4세 배우들이 많이 출연한다. 재일교포 배우들이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삯까지 전부 개인이 부담해가며 영화에 출연했다고 했다. 무엇이 그렇게까지 그들을 움직이게 했을까.
“재일교포가 우리 영화에 출연한다는 건 한국 배우와는 다른 의미거든요. 만약 이 영화가 잘돼 세상에 알려지면 그들은 당장 생업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고, 신변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배우들 한 명 한 명이 그런 말을 제게 하더군요. 자긴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늘 조선 사람이었다고. 자신은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귀향할 수 있었다고요.”
그날도 촬영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그렇게 영화 ‘귀향’은 저마다에게 진정한 귀향을 선물하고 있었다.

위안부 소녀들의 이야기 ‘귀향’ 그리고 조정래 감독
한 장면, 한 장면 가슴 아프지 않은 장면이 없지만 그래도 촬영하면서 유독 힘들었던 장면이 있었을 것 같았다.
“강일출 할머님의 그림처럼 태워지는 처녀들 찍을 때 제일 안 좋았어요. 배우도 스태프도 다 정상이 아니었죠. 그날은 촬영 시작 전에 제사도 지냈어요. 저는 촬영할 때마다 처음에 절하고, 끝나고 절해요. 신기한 게, 광주 나눔의 집에 가면 지하에 위안소 모형이 있어요. 관계자분 말이, 거긴 한여름에도 영하에 가깝게 서늘하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촬영장이 그랬어요. 너무너무 추웠어요. 계절에 상관없이요.”
조 감독이 알 수 없는 서늘함마저 무심히 흘려보내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소녀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십시일반 제작비를 모아준 수많은 선량한 국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런 영화는 만들지 않는 게 좋겠다, 전쟁 나면 제일 먼저 여성과 아이들이 피해를 받는 건 당연하다, 굳이 그런 걸 들춰내 영화화해야겠느냐고 하는 이들도 많았다. 조 감독은 가장 나쁜 논리라고 일축했다. 모 신문사의 기자는 “좌파가 도와주고 있나?” 하고 물어오기도 했다. 조 감독은 이 영화만큼 보수적인 아이템이 어디 있냐며 항변했다. 아직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분들을 영화 속으로나마 모셔 밥 한 끼 드시게 하는 게 잘못된 거냐고 반문한다.
“우리 영화는 반일 영화가 아니에요. 반전 영화예요. 할머님들이 도와달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셨다고 했잖아요. 앞에 말까지 덧붙이자면 ‘후세에는 자신들처럼 이런 일을 겪지 않도록’ 알려달라, 도와달라 하신 거예요. 전쟁 없는 평화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총성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고 봐요. 일본은 벌써 평화헌법 없애고 전쟁헌법으로 가고 있고요.”
할머니들은 그런 걸 체감하고 있으신 것 같다고 했다. 조 감독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잔인한 범죄라고 단언했다. 일종의 시스템을 만들고, 어린아이들에게 하루 스무 명씩 상대하게 한 후 아프거나 더 이상 위안부를 할 수 없으면 부대 밖 소각장으로 끌고 가서 태워 죽였다는 건 아우슈비츠 가스실을 능가하는 엄청난 전쟁 범죄다. 조 감독은 그래서 이 영화를 꼭 완성해 가능한 한 많이, 오래 상영하고 싶다. 한 번 영화가 상영될 때마다 한 분의 소녀가 돌아오신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 투자자분들 후원 조약에 보면 유튜브 조항이란 게 있어요. 배급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영화를 유튜브에 올린다고요. 다 동의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조항 때문에 투자해주신 분도 계세요. 비공식적으로 20만 명이 넘는 피해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어요. 전 그분들이 모두 돌아오시도록 20만 번 상영됐으면 해요. 그게 목표예요.”
조 감독은 대체 이 어마어마한 무게를 어떻게 감당해왔을까. 늘 힘들어서 힘든 줄 몰랐다는 조 감독이지만 무서울 때는 있단다. 바로 300명의 배우와 스태프, 4만 명이 넘는 후원자들까지 셀 수 없을 만큼의 후원과 수고다. 부족한 자신이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하면서 말이다. 후원금이 쌓이는 게 하나도 기쁘지 않다고 했다. 꼭 필요한 돈이지만 그 어느 것보다 무섭다. 영화를 반드시 만들라는 일종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감격과 두려움을 동시에 주는 것이 바로 후원금이다. 하지만 영화가 만들어지는 동안 하나하나 역사 아닌 게 없었던 만큼 이 역사를 완성해가려 한다. 그래서 조 감독은 오늘도 뛰고 있다.
■기획 / 노정연 기자 ■글 / 강은진(객원기자) ■사진 / 김동연(프리랜서) ■사진 제공 / 제이오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