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부 김광자의 ‘럭셔리한’ 제3활동
‘조공’의 사전적 의미는 ‘종속국이 종주국에 때를 맞추어 예물을 바치던 일 혹은 그 예물’을 뜻한다. 우리나라도 과거 중국에 조공을 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역사적 관점에서 그리 좋은 의미의 단어는 아니다. 팬들이 스타에게 선물을 주거나 서포트를 한다는 의미로 쓰이는 ‘조공’ 역시 단어의 뜻은 이와 비슷하지만 팬들은 누구의 강요도 아닌 자발적인 의지로, 그리고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조공품을 바친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우리 오빠, 언니인데 내가 을이면 어떻고 병이면 어떠랴. 불가촉천민이 되더라도 아낌없이 주고 싶은 것이 팬심이다. 하물며 오빠가 ‘좋아요’를 누르며 호감을 표시한 물건이 조공품 1순위에 오르는 건 당연한 일. 조공은 스타를 치켜세우고픈 팬들의 사랑 표현이자 응원 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조공은 실로 여러 상황에서 다양하게 이뤄지며 대상 또한 광범위하다. 기본적으로 스타의 생일이나 데뷔 기념일, 컴백일, 크리스마스 등 특정한 날에 조공품이 전달되는데, 생일과 같은 기념일엔 두어 달 전부터 대형 팬 페이지를 중심으로 조공 팀이 꾸려져 준비에 들어간다. 개인적으로 선물을 살 시간이 없는 팬들은 지정된 계좌로 원하는 만큼의 돈을 입금하는 식으로 생일 조공에 참여하는데, 이렇게 해서 모인 돈으로 작게는 몇백 만원, 많게는 몇억 원에 달하는 조공품을 마련한다.
스타의 생일 조공품으로 부모님을 위한 홍삼이나 한우, 영양제는 필수. 중간에서 선물을 전달하고 관리하는 팬 매니저와 소속사 관계자들을 위한 선물도 함께 준비한다. 드라마 촬영이나 방송 스케줄에 맞춘 조공은 자신이 아끼는 스타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 ‘잘 부탁한다’라는 뜻을 전하는 인사차 조공이다. 방송 관계자와 동료 출연자들, 촬영 스태프를 위한 밥차와 간식, 옷 등 다양한 물품이 스타의 이름으로 전달되는데, 그 규모와 섬세함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남다른 조공 스케일을 살펴보자면 고가의 시계나 명품은 이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슈퍼주니어의 중국 팬들은 앨범 정품 CD 1억4,000만원어치를 구입한 영수증을 선물로 보내는가 하면, 2011년 골든디스크상을 못 타게 되자 팬들이 1억원어치 순금으로 트로피를 직접 제작해 선물했다. 스타의 촬영장에 단독으로 대규모 밥차나 케이터링 서비스를 서포트하는 통 큰 언니들도 있다.
이와 같은 대규모 고가의 조공이 가능한 이유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의 연령이 높아지며 ‘팬질’이 일종의 취미생활로 자리 잡은 영향이 크다.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팬들은 매년 연인(혹은 자식)의 선물을 고르듯 조공 쇼핑을 하고 스타의 해외 공연에 맞춰 휴가를 다닌다. 고가의 조공 문화가 논란이 된 후 선물 대신 스타의 이름으로 자선단체나 좋은 일에 기부까지 하니, 이만하면 럭셔리한 취미생활이 아닐 수 없다.
‘주부 김광자의 제3활동’
2010년 방송된 MBC-TV 추석 특집 드라마로, 평생을 가족에게 헌신한 평범한 주부 김광자가, 가족이 기억하지도 못하는 자신의 생일에 꽃미남 래퍼의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되면서 아이돌 팬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방송 후 덕후들 사이에서 ‘광자언니’는 열정적인 주부 팬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됐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제공 /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