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봉선의 ‘원칙’(주부, 73)

우아하게 나이 들기

최봉선의 ‘원칙’(주부, 73)

댓글 공유하기
서래마을 한복판. 오래된 타운하우스. 붉은 돌계단을 올라가니 서초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드넓은 무릉도원이 펼쳐진다. 옥수수, 가지, 고추, 토마토, 파프리카, 상추, 파, 부추, 도라지, 더덕, 어성초가 국군의 날 삼군 행진 뺨치게 도열해 있다. 말끔한 쇼트커트 헤어스타일과 애플 힙을 가진 최봉선 여사가 이들의 사령관. 1943년생, 일반적 의미의 할머니를 만나러 왔는데 일흔세 살 노인이 없다. 에너지 넘치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악수를 청한다. 늙거나 낡은 느낌이 범접하지 못하는 원숙한 젊음이 거기 있었다.

[우아하게 나이 들기]최봉선의 ‘원칙’(주부, 73)

[우아하게 나이 들기]최봉선의 ‘원칙’(주부, 73)

젊어지려는 목적, 늙지 않으려는 노력 같은 것은 그녀에게 없다고 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원칙이 있을 뿐이라고. 약을 먹는 것보다는 운동을 하는 것이 건강에 더 좋은 걸 알게 됐고, 정리된 모든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편리했다. 그 결과 30년이 넘도록 같은 시간 동안 운동을 하고 있고, 마흔 살이 훌쩍 넘은 자녀들에게도 엄마의 정돈 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규칙이 있다는 건 무척 편한 일이에요. 지키면 그만이니까. 삶에서 지켜야 할 게 참 많은데 내가 스스로에게 세워놓은 원칙까지 있어야 하다니… 사람들은 그걸 어렵겠다, 힘들겠다, 합니다. 그런데 그 규칙이 몸에 익으면 하지 않는 것이 더 힘들고 어려워져요. 맞는 옷처럼 편하고 결과도 좋은데 안 지킬 이유 있나요?”

새벽 5시에 일어나 밤을 잘 지낸 기특한 푸성귀 등 속을 살피기 위해 밭에 올라간다. 농사를 짓는 것이 그녀에게는 자연에게서 인생과 삶을 배우는 매일의 수업이라고 말한다. 또 정직한 수확의 기쁨, 나눠주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도 보탠다. 계절을 달리하며 화수분으로 나오는 수확물을 지인에게 나눠줄 때의 신선한 기분은 그녀에게 큰 엔도르핀이라고. 일흔셋. 조금 풀어지고 흐트러지고 느슨해져도 좋을 시간. 그녀는 여전히 서른 즈음의 긴장으로 일상을 일군다. 방금 감아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 속옷 바람, 막 놓고 먹는 식사, 아무렇게나 내려놓은 자세 등은 그녀에게 없다.

“엄마, 할머니, 아내. 모두 여자이고 사람이지요. 그렇다면 포기하지 않아야 할 원칙도 있는 겁니다. 다 늙어가는 노인을 누가 본다고 그러냐고요? 내가 보잖아요. 내 자신이. 내가 마음에 드는 나로 나이 들고 싶어요. 내가 나를 좋아해야 타인도 나를 좋아합니다. 내가 나를 좋아하려면? 내 마음에 들어야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작은 원칙을 세우고 몸에 익혀 편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국수를 삶는 방법을 가르쳐주듯 쉽게 말한다. 운동할 것, 내 눈이 가는 모든 것은 정리하고 가꿀 것, 서두르지 않도록 미리 준비할 것. 어쩐지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매일 하면 그만이에요. 쉬워요.” 그러게요! 그건 그녀가 직접 보여준 젊은 모습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최봉선 여사. 노화, 노쇠, 노회, 늙어감, 낡음. 이 많은 단어는 결국 스스로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어렴풋한 느낌이 완벽한 그녀의 정원을 빠져나오며 든 감상이었다.

■글 / 장회정 기자 ■사진 / 박재찬

화제의 추천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TOP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