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꼭대기에 있는 영화감독 강의석(29)의 작업실을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 차도 닿지 않는 골목을 들어서고야 초록색 대문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시골집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집 안에는 사진에서 보던 것과 달리 키가 크고 살집이 있는 강의석 감독이 있었다. 인터뷰 당일이 이사 온 첫날이라 집 안에 있는 가구라곤 달랑 책상뿐이었다. 결국 마룻바닥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2004년, 학교 내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며 두 차례 단식 농성을 벌였던 열아홉의강의석. 10년이 넘는 세월이 훌쩍 지난 현재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 ‘미션스쿨’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종교의 자유 외치던 학생에서 영화감독이 된 강의석의 오늘
‘미션스쿨’은 자전적인 영화예요.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한 이유는 뭔가요? 우연히 모교인 대광고등학교 앞을 지나가다가 입학식을 한다는 걸 알았어요. 한번 들어가봤는데 예전과 똑같은 거예요. (예배 형식으로 진행된 입학식) 영상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렸는데 반향이 있었어요. 10년 전에는 사람들이 강의석이라는 사람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학생회장에 공부도 잘하는 애가 단식한다는 가십거리에만 주목해서 많이 불편했어요. 진정으로 원하는 건 내가 초점이 되는 게 아니라 ‘변화’였으니까요. 그런데 입학식 영상이 반향을 일으키는 걸 보면서 영상의 힘을 느꼈어요. 제가 수차례 “학교에서 종교를 강요당해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게 백번 나았던 거죠. 때마침 그 영상을 본 인권 단체에서 제작비를 지원해줄 테니 영화 한번 만들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거예요.
얼마나 실화에 바탕을 뒀는지 궁금해요. 종교 강요에 반대하는 학생이 1인 시위를 했다는 것과 단식한 것, 두 가지를 반영했어요. 다른 부분들은 보통의 학생들이 흔히 겪는 상황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미션스쿨에 다니는 어느 누구라도 겪었을 보통의 일이요.
그럼 큰 틀만 실제와 닮았다는 건가요? 네. 원래는 아예 다른 캐릭터로 가려고 했어요. 남성을 여성으로 바꾸는 식으로요. 자전적 이야기라는 것보다 (종교를 강요하는) 상황들을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런데 주변 분들에게 피드백을 받아보니 단식 같은 포인트가 빠지면 극적인 느낌이 덜할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분은 차용했죠. 일정 부분은 10년 전 상황과 비슷한 게 많고, 세세한 묘사는 새로운 부분들이 있을 거예요.
지금의 미션스쿨을 취재해보니 예전과 달라진 게 있던가요? 이제는 다들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은 하고 있어요. 그런데 강요하는 건 여전한 것 같아요.
모교에는 자주 갔나요? 저를 가르치시던 선생님들이 계시니까 가끔 찾아뵙곤 해요. 그런데 제가 모교를 방문하는 마음은 기쁘고 반가운 마음이라기보다는 불편한 마음이에요. 제가 가면 학교 분위기가 되게 묘해지거든요. 보통 졸업생들이 학교 찾아가는 것과는 다르죠.
사회적 문제를 다루다 보니 제작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요. 제일 부족한 부분은 시나리오였어요. 처음에는 작가에게 시나리오를 맡기려고 했어요. 그런데 작가는 영화 속 설정을 납득하지 못하더라고요. 학생이 잘못된 현실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부터 SF영화 같다고 했죠. 그리고 학교에 반대되는 의견을 내다가 잘린 선생님이 있어서 학생들이 그를 보고 변화하는 과정을 담아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제가 얘기하고자 했던 바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것 같았어요. 학생이 순응적이고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무지한 존재로만 그려지는 듯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시나리오를 썼는데, 정말 어려웠어요.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아요.
캐스팅은 수월했나요? 굉장히 수월했어요. 저희 조감독님이 굉장한 능력자라서 전혀 걱정할 부분이 없었죠. 다만 로케이션(현지 촬영)이 힘들었어요. 다분히 비판적인 영화이기 때문에 촬영할 학교를 섭외하기가 어렵더라고요. 학교 측에서는 계속 검토해보겠다고만 하고 답을 주지 않았죠. 촬영 시작 2주 전까지 그랬는데, 운 좋게 막바지에 결정돼서 다행이었어요.
허경영 민주공화당 총재와 김재연 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도 출연한다던데. 미션스쿨이 허경영씨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허경영씨는 ‘나를 보면 다들 아름다워진다’라는 식인데, 종교 재단의 학교에서도 그렇게 강요하는 부분이 많잖아요. 그래서 그를 이사장 역으로 섭외해서 블랙코미디 느낌을 내고 싶었어요. 김재연 전 의원은 국회의원 역할로 출연했는데, 친하니까 편하게 섭외했죠. 그런데 두 분 다 최종 편집본에서 빠졌어요. 생각보다 허경영씨 이미지가 너무 세서 제 의도가 잘 전달되지 않더라고요. 또 갑자기 국회의원이 등장해서 도와주는 장면도 너무 해피엔딩인 것 같아서 아쉽지만 들어냈죠. DVD에만 삽입할 예정이에요(웃음).
종교를 비판하는 건 아니지만 종교가 기본 바탕이 되는 영화예요. 반발은 없었나요? 전혀요. 저는 이 영화가 종교를 공격하는 영화로 인식되지 않았으면 해요. 그렇게 되면 본질이 흐려지잖아요. 기독교를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종교를 강요하는 걸 비판하는 거예요. 사실 기독교 학교를 다른 종교로 바꾸고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제가 디테일을 잡아내지 못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기독교 학교를 배경으로 했죠. 저희 촬영감독님과 주연배우 모두 크리스천이에요. 그분들도 이건 특정 종교를 공격하는 영화가 아니라 학생 인권 영화라고 말씀하세요.
첫 개봉작이에요. 관객들에게 진짜 말하고 싶은 바는 뭔가요? ‘학생도 사람이다’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학생 무시하지 말라, 반말하지 말라고요. 학생 때는 제가 ‘강의석군’이라고 불렸는데, 스무 살이 되니까 ‘강의석씨’로 바꼈어요. 이게 참 웃긴 것 같아요. ‘군’이나 ‘양’이라는 말의 밑바탕에는 학생들을 무시하는 태도가 깔려 있는 듯해요. 예전에 인터뷰하다 보면 저한테 반말하는 기자들도 많았거든요. 학생도 생각이 있고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종교의 자유 외치던 학생에서 영화감독이 된 강의석의 오늘
성인이 된 뒤에도 그의 일상은 평범할 날이 없었다. 군대의 폭력성을 주장하며 펼친 병역 거부 활동으로 그는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2008년 국군의 날 행사장에서 벌인 알몸 시위는 이미 유명하다. 더 이상 학교에 있을 필요성을 못 느낀 그는 재학 중이던 서울대학교 법대를 자퇴하기도 했다. 이후 병역법 위반 혐의로 1년 2개월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그곳에서도 단식을 하며 재소자 인권을 보장해달라고 외쳤다. 지금도 다양한 창작 활동을 통해 이 사회에 끊임없이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그이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따뜻하지만은 않다.
자신이 유별나다고 생각해요? 유별난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죠. 제가 생각보다 되게 소심해서 낯을 많이 가려요. 근데 어떤 활동을 하려고 하면 사람들을 만나야 하잖아요. 그래서 그럴 땐 어쩔 수 없으니까 앞에 나서곤 하는데 그 이후에는 잠수 기간이 필요해요(웃음). 전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에요.
사람들이 강의석 감독을 바라보는 시선이 호의적이지 않아요. 요즘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는데 찍는 대상이 변희재씨예요. 사람들이 변희재씨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저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그냥 ‘관심병 종자’로 보고 있죠. 그런데 저는 이런 시각들이 오히려 사회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봐요. 뭐가 100% 옳은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시위를 하거나, 세미나를 열고, 입법 발의를 하기도 하죠. 하지만 사람들이 목소리를 듣지 않아요. 연예뉴스에 더 흥미를 두죠. 목소리 낼 수 있는 부분이 점점 줄어들게 되다 보니 할 수 있는 건 단식처럼 극단적인 행동뿐이에요. 아니, 21세기에 단식이라니(웃음). 저는 단식하고 머리카락이 엄청 빠졌어요. 고등학교 땐 다시 났는데, 감옥에서 단식한 이후로는 다시 안 나더라고요.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더 과격한 방법을 쓴다는 건가요? 자기 목숨을 갉아먹는 일을 해야만 관심을 가지니까요. 그런데 이 사람들을 허물어버리는 게 ‘관심병 종자’라는 너무 쉬운 말이죠.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본다는 자체가 매우 비겁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목소리 내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옳은 길을 간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요. 저에 대해 오해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봐요. 한 번 안 좋게 보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안 좋게 보게 되는 거잖아요. 우리가 10시간 얘기한다고 해서 서로를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자신에 대해 비방 글을 쓴 일부 누리꾼을 고소했어요. 예전에는 누리꾼을 고소한 적이 없었어요. 변희재씨가 저를 ‘친노종북’이라고 표현해서 그때 처음 고소했죠. 결국 변희재씨가 저한테 사과해서 고소를 취하했어요. 인터넷상에는 저에 대한 터무니없는 말들이 나돌아요. 제가 여자친구와 성관계한 경험담을 올렸대요. 사람들은 그걸 믿더라고요. 해명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을 앞두고 나니 달라지더라고요. 여자친구 아버님께서 저에 대한 이상한 글을 보셔서 일이 엄청 커졌어요. 원래 5월에 결혼할 계획이었는데, 무기한 연기됐죠. 이런 것들을 사람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진 않아요. 다만 이 (유언비어를 퍼뜨린) 사람들이 강력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고소까지 했던 변희재씨와 작업한다는 사실이 재미있는데요. 원래 (종북 콘서트 논란으로 국내에서 추방당한 재미동포) 신은미씨를 취재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변희재씨가 ‘종북’의 반대인 ‘종남’ 콘서트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이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갖게 됐고 왜 이렇게 서로 싸우면서 사는가, 궁금해 미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콘서트에도 가보고, 변희재씨가 이끄는 ‘애국산악회’와 함께 산을 타면서 그에게 다큐멘터리를 찍어보고 싶다고 제안했죠. 산까지 오르면서 열심히 취재하는 모습이 좋게 보였는지 그냥 찍으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변희재씨 주변에서 제가 곧 뒤통수를 칠 거라면서 많이 말렸대요. 그런데 그분이 느끼기에는 제가 본인을 끌어내린다고 해서 얻을 이익도 없고, 오히려 같이 욕먹는 상황이니까 허락해준 것 같아요. 내년까지는 쭉 촬영할 예정이에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화한 사진을 두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적이 있어요. 요즘 ‘일베’ 문제로 시끌시끌한데, 이것도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해요? 일베 활동이든 뭐가 됐든 어느 정도 선이 있다고 생각해요. 일단 좀 분리해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예컨대 변희재씨를 보세요. 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죽일놈처럼 보이겠지만 가끔은 잘하는 게 있을 거예요. 박근혜 대통령도 욕을 많이 먹고 있지만 잘하는 것도 있을 거고요. 그런데 무조건 자기편 감싸주기 식의 태도는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최근에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한 젊은 혁신위원이 당 내에서 한명숙 전 의원을 지나치게 옹호하는 것 아니냐는 발언을 했다가 곧바로 사과한 일이 있었는데, 정말 웃긴 것 같아요. 잘못을 지적할 수도 있어야죠. 일베의 경우도 무조건 혐오라고 결론짓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잃는 게 많은 것 같아요. 지금은 서로에 대한 혐오심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대화 자체가 안 되고 있어요. 대화할 수 있는 장들이 마련되면 좋겠는데 말이죠.
오늘을 충실히
이제 겨우 서른. 하지만 그보다 두세 배는 더 산 것처럼 굴곡이 많았다. 온갖 역경을 겪어봐서일까. 그는 오히려 미래에 대한 별 걱정 없이 오늘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기자가 만난 그는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고, 여자친구와 행복한 삶을 꿈꾸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예민한 괴짜’일 줄 알았는데 의외의 반전이었다.
대학을 제대로 졸업했다면 탄탄대로의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후회가 남진 않아요? 오늘도, 내일도 항상 ‘이거 했어야 했는데, 저거 했어야 했는데’라고 분명 후회할 거예요. 항상 후회는 하죠. 그런데 어쩌겠어요. 다시 되돌릴 수도 없고, 다 똑같죠 뭐.
강 감독이 해왔던 일련의 활동들이 평화를 추구하지만 그 방식은 조금 폭력적이었어요. 글쎄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데 저한테는 되게 큰 문제로 다가오는 게 있어요. 욱하게 되는 지점들이 있죠. 군대 문제도 저한테는 납득이 안 되는 일인데, 계속 벌어지고 있으니까 퍼포먼스를 하게 된 거고요. 사람들은 옷을 벗고 뛰어들었던 저에게 굉장히 과격하다고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렇게 질문하고 싶어요. “그 사진 속에 나만 있냐? 탱크도 있고 군인도 있는데 그 폭력은 도대체 안 보이냐?”라고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모르게 화가 나서 목소리를 내게 되는 지점들이 있어요. 저를 구속하는 것들을 특히 못 견뎌요. 딱히 정치적 노선은 없다고 봐야죠.
계속 영화감독으로서 작품을 만들 건가요? 요새 들어 연출보다 제작 일을 잘하는 것 같고, 그 일이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거지, 제가 꼭 연출을 해야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아직 젊으니까 진로는 찬찬히 생각해보려고요.
‘강의석필름’이라는 제작사를 운영한다고요. 직원이 3명뿐인 작은 영화사예요. 그래서 1년에 두 편을 제작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럼 우리가 굶어죽진 않겠다고 생각해서(웃음). 고민이 많긴 한데 열심히 해야죠. 이번에 ‘맥 프로(애플의 고성능 컴퓨터)’도 장만했어요. 이제 저 돈을 뽑아내야 돼요.
어떤 영화를 좋아해요? 작년에 ‘족구왕’을 가장 재미있게 봤어요. 독립영화인데도 관객 수가 3만을 넘었죠. 저는 재미있는 영화가 좋아요. 다들 재미있다고 느끼는 걸 저도 재미있다고 느껴요.
아까 잠깐 결혼 얘기를 꺼냈는데, 여자친구는 어떤 분이에요? 드라마 보조 작가 일을 하고 있어요. 제가 2013년 말에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한다고 여권을 불에 태우는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어요. 그 친구도 다른 퍼포먼스를 하고 있어서 알게 됐죠. 여자친구가 ‘몸짓’을 전공해서 퍼포먼스를 많이 해요. 그래서 제가 영화 만들 땐 같이 작업하고, 그 친구가 퍼포먼스할 때는 제가 가서 도와주고 그래요.
또 새롭게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 글쎄요. 지금 하고 있는 거나 잘해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사실 굳이 잘하고 싶은 것도 없고요. 밥 먹을 정도의 돈에 여유롭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이를 먹으면 열정이 식어간다고 하잖아요. 10대 강의석과 지금의 강의석은 어떻게 다른가요? (그를 지지해서 학교와 마찰을 빚고 사표를 낸 전 대광고등학교 교목실장) 류상태 선생님을 보면서 ‘그때의 결정이 정말 쉽지 않으셨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에겐 가족의 생계가 달린 문제였으니까요. 그 당시 저는 ‘이게 문제니까 바꿔야 된다’라고 하나만 생각하고 결정했거든요. 저도 이제 뭔가 하려면 가족을 신경 써야 하나 싶어요. 지금 진짜 하고 싶은 건 4K 고화질의 야동을 만드는 거예요. 근데 막상 약혼녀부터 반대를 하니까 못하고 있어요. 뭔가 억눌린 듯한 느낌이지만 하지 말라니까 말 들어야죠(웃음).
하반기에는 어떤 활동을 이어나갈 건가요? 우선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피칭(기획개발 단계의 프로젝트를 공개하는 일종의 투자 설명회) 준비를 하고 있어요. 추석 때는 귀여운 조카들이랑 즐겁게 놀아야죠. 그 이후로는 어떻게든 영화사 직원을 고용하려고 힘쓸 것 같아요. 기술보증기금에서 어느 정도 운영비가 나오긴 하는데 많이 부족해요. 어디서든 돈을 끌어와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리고 ‘미션스쿨’에서 수익이 생기면 결혼해야죠. 올 하반기에는 꼭 결혼을 하고 싶어요.
■글 / 노도현 기자 ■사진 / 장태규(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