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남존여비 속 가정 폭력 겪은 자전적 이야기 ‘단지’의 단지

웹툰 작가 인터뷰

② 남존여비 속 가정 폭력 겪은 자전적 이야기 ‘단지’의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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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작가는 여자 연예인 몇 명의 얼굴이 떠오를 만큼 예뻤다. 하지만 정작 작가는 자신이 예쁜 줄 몰랐단다. 더 정확히는 안 지 얼마 안 된단다. 왜냐하면 커오면서 단 한 번도 예쁘단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2화를 통해 소개된 단지 가족의 면면

‘단지’ 2화를 통해 소개된 단지 가족의 면면

지독한 남존여비 풍토에 사로잡힌 가정환경에서 딸이라는 이유로 가족으로부터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받아온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 웹툰 ‘단지(www.lezhin.com/comic/dangi)’는 독립해 살고 있는 단지에게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작한다. 가족을 떠나는 것으로 자신의 상처를 조금 외면하고 있었던 단지는 여전히 자신을 ‘막’ 대하는 가족과 다시 만난다. 함께 사는 아들들은 ‘출근’과 ‘알바’를 이유로 어서 집에 들어가라고 하기 바쁘고, 일을 하고 있는 딸 단지에게는 아버지 병수발을 들라 한다. 작가가 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날의 일이다. 그리고 단지 웹툰 1화의 토대가 됐다.

단지의 엄마는 딸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할 때를 제외하면 단 한 번도 따뜻한 말을 건넨 적이 없다. “병신 같은 년”이라는 말이 일상이어서 더 심한 욕이나 안 하면 고마울 정도랄까. 집안 살림은 다 부숴도 “애들은 안 때렸다”라고 자긍심을 갖는 게 단지의 아빠다. 오빠는 엄마와 아빠를 반반씩 닮은 모습으로 단지를 대한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요즘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 “바로 내 얘기”, “우리 집 얘기”라고 하는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 할 말을 잃게 된다.

“페이스북으로 독자들의 사연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예상 밖으로 많은 사연이 신청돼 놀랐어요. 저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놀랐고, 제가 보기에도 심각한 사연들이 많아서 또 놀랐고요. 성폭행이나 칼부림 같은 일들이 부모 자식 간에 났다면서 말이에요. 그 순간 알았죠. 이 땅엔 정말 많은 단지들이 있구나, 하고요.”

혼자서 아무런 독자의 피드백 없이 아픈 자신의 과거 그릴 때가 정말 힘들었다는 단지(32) 작가는 “살아주셔서 감사해요”라는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서야 비로소 묵은 감정을 꺼낼 수 있었다고 했다. 독자들의 위로에 작업할 때마다 “사실 좀 많이 울었다”라고 했다. 왜 그제야, 왜 그렇게 울었을까.

“이전에 작업할 때는 ‘아! 그런 일도 있었지’ 해도 울 만큼의 여유가 없었어요. 그리고 아무리 한풀이 만화라지만 감정적으로 흐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나의 가족 이야기고, 그들이 왜곡될 수 있으니 그냥 오로지 사실에만 집중했죠. 그러면서 보는 사람은 열받게? 그런데 지금은 옛날 감정에 울컥도 하고요. 독자들의 말에 눈물도 나고요.”
독자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너 힘들었지, 울어도 돼!’라고 느껴진다고 했다.

[웹툰 작가 인터뷰]② 남존여비 속 가정 폭력 겪은 자전적 이야기 ‘단지’의 단지

[웹툰 작가 인터뷰]② 남존여비 속 가정 폭력 겪은 자전적 이야기 ‘단지’의 단지

가족의 학대, 만화로 그려낼 꿈꾸며 버텨내
혹자들은 말하기 쉽게 작가의 본격 한풀이 만화라고 한다지만, 어디 한풀이가 쉬운가. 자기 얘길 한다는 게 쉬우냐는 말이다. 이 작품을 위해 작가가 얼마나 큰 용기를 냈을지….

“어려서부터 꿈이 만화가였어요. 단 한 번의 의심 없이 당연한 꿈이었죠. 그래서 힘들 때마다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 내 이야기를 만화로 그릴 거야!’ 하면서 견뎠어요. 하지만 지금처럼 날것의 사실을 그리게 될 줄 몰랐어요. 그 소스로 재창작을 할 생각만 했죠.”

많은 사람들이 작품 ‘단지’가 단지 작가의 데뷔작인 줄 알고 있지만 사실 이미 세 편의 웹툰을 그린 기성 작가다.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탓에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감추고 필명도 바꿨다. 전작들의 인지도, 후광 도움 없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걱정에도 불구하고 ‘단지’는 연재 44일 만에 누적 조회 수 300만을 돌파하며 큰 화제를 끌었다. ‘단지’를 연재하고 있는 레진코믹스 전체 Top 100에서 2위(8월 기준)까지 기록했다고 한다. 로맨스나 판타지가 아닌 장르로는 이례적인 결과라고. 그리고 독자들뿐 아니라 언론의 주목도 크게 받았다.

“이렇게 주목을 받을지 몰랐어요. 기사를 보면 여성 문제, 가정 내 폭력을 다뤘다고 돼 있던데…. 저는 사실 사회적인 문제를 제기하고자 의도한 건 아니에요. 그저 순수하게 나 이런 거 겪었다, 하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보시는 분들이 제 의도보다 더 깊게 봐주시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에요. 하지만 밝은 이야기는 아니니까 큰 관심이 부담도 돼요.”

주목을 받으니 작가 입장에선 좋지만, 아무래도 순수 창작물인 전작들은 묻히고 자전적 이야기가 인기를 얻다 보니 묘한 기분까지 숨길 수는 없다고 했다. 자전적 만화 ‘단지’도 네 번째 차기작을 준비하다 탄생한 것이었다. 당시 다른 회사와 차기작을 준비 중이었는데, 유독 담당 편집자가 심하게 ‘컷’을 해서 단지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6개월을 시달렸다고.

[웹툰 작가 인터뷰]② 남존여비 속 가정 폭력 겪은 자전적 이야기 ‘단지’의 단지

[웹툰 작가 인터뷰]② 남존여비 속 가정 폭력 겪은 자전적 이야기 ‘단지’의 단지

우리 모두는 소중한 존재라고 말해주고파
“담당 편집자가 자꾸 ‘이거 진짜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 맞아?’라고 묻는 거예요. 사실 제가 하고 싶은 소재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난 뭘 하고 싶지?’ 하고 고민에 빠졌을 때 단지 1화 시작처럼 아빠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들은 거죠. 꽤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병원에서 다시 마주한 가족과 부딪히면서 옛 기억이 떠오르고 불안에 떠는 저를 다시 봤죠.”

아팠던 옛 기억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담당 편집자의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라는 물음이 들렸단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고. 작품을 준비하기로 하고 바로 본가에 가서 옛날 일기를 가져왔다. 하지만 차마 볼 용기가 나지 않아 3주간 덮어두기만 했다고.

“지금도 그 일기를 보면 당시의 분노가 느껴져요. 어렸을 때니 자제할 줄도 몰랐으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아픈 기억이라도 시간 지나 보면 창피해요. 분노가 글로 남겨져 있는 게요. 제가 작품을 하면서 감정을 최대한 절제한 이유도 그거예요. 제 만화가 나중에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더 큰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같아요.”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그려냈을 정도면 어느 정도 극복이 된 것일지 궁금했다. 단지 작가는 신기하게도 무뎌지긴 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극복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자신도 그것을 극복이라고 착각했으며 무뎌진 것이지 치유된 것은 아니라서 언제든 다른 감정들이 부딪혀오면 여전히 툭하고 터져버린다고 한다. 그래도 자신이 극복하려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단지’의 엔딩이 궁금하다.

“지금은… 하(깊은 한숨)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내용으로 가고 있어요. 사실 처음 구상했을 때는 가족에게 말해주는 거였어요. 가슴속에 묻어두기만 했던 얘길 말하는 것 자체가 목표였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연재가 계속될수록 이게 현실적인 문제다 보니, 보여드릴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처음과 달리 고민돼요. 겁도 나고요.”

아직 연재가 끝나지 않았으니 작가의 고민은 진행형일 것이다. 단지 작가는 마무리를 하면서 다른 많은 단지들에게 자기감정에 충실하라고 말해줬다. 뻔한 말이지만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꼭 알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자신은 그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는 고백과 함께. 마지막으로 ‘나는 소중하다’, ‘나는 예쁘다’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당부 또 당부했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강은진(객원기자) ■사진 / 김동연(프리랜서) ■자료 제공 / 레진코믹스, 미역의 효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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