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작가 인터뷰] ① 가족 간 성폭력, 낙태, 미혼모 소재로 작품 그려낸 ‘아! 지갑 놓고 나왔다’의 미역의 효능](http://img.khan.co.kr/lady/201510/20151005142722_1_womanwebtoon.jpg)
[웹툰 작가 인터뷰] ① 가족 간 성폭력, 낙태, 미혼모 소재로 작품 그려낸 ‘아! 지갑 놓고 나왔다’의 미역의 효능
“미리 받은 인터뷰 질문지를 보고 저도 생각해봤어요. ‘내가 이걸 왜 시작했지?’ 하고요. 그런데 그 답이란 게… ‘그냥, 잘, 그리다 보니 나온 건데’뿐이더라고요(웃음). 가끔 실제 모델이 있느냐는 질문의 쪽지를 받긴 해요. 저는 애도 없고 주인공이 겪은 일들 중 하나도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말이에요.”
‘그냥’이라 답하는 작가지만 작품은 그냥이 아니다. 미역 작가의 웹툰 ‘아! 지갑 놓고 나왔다’는 미성년자 미혼모 선희와 죽은 어린 딸 노루가 주인공으로 두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돼 나온다. 특히 선희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비둘기, 닭, 백조 등 조류로 보이는 환각 증세가 있다. 자신의 얼굴도 기괴하게 뒤틀려 있다. 유일하게 사람 얼굴로 보이는 이가 죽은 딸 노루였다. 하지만 딸 노루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선희는 다시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혼자가 된다.
사람이 없는 세상이라 함은 어린 시절 당한 성폭력의 상처, 가족의 책임 회피, 소문과 낙인, 무책임한 남자친구와 낙태 고민 등등에서 자신에게 가해진 상처의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어느 날 갑자기 모두가 나를 걱정하면서 동시에 징그러워하고 있었습니다”라는 선희의 말은 이 땅의 많은 선희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잔인한 시선은 아닐는지. 무엇인가 들켜버린 기분을 지울 수가 없게 만든다. “애 아빠는 어디 있느냐”라는 신파 같은 질문을 했다. 미역 작가는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현실처럼”이라고 답한다. 듣는 귀가 아파온다.

1 딸 노루를 잃고 혼자가 돼 충격에 빠진 선희의 모습. 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장면이다. 2 ‘미혼 여성의 낙태에 대하여.’ 작가가 연재를 통해 밝힌 견해다. 많은 여성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공감을 얻었다.
사실 미역 작가의 작품뿐 아니라 작품에 덧붙은 ‘미혼 여성의 낙태에 대하여’라는 작가의 말이 다양한 여성 커뮤니티 등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작가는 오로지 여성에게만 책임을 물으며 ‘낙태충’이라는 혐오 단어까지 사용하는 세태를 비판했다. 또 피임의 중요성과 미혼모 지원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까지 제시했다. 미역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낙태에 관한 견해를 밝힌 이유를 “낙태에 관한 사회의 분위기에 화가 많이 났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낙태충이라는 혐오 단어로 여성을 공격하는 것에 분노했다. 여성 자신의 몸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낙태를 할 수도 있다’라고 결정할 수도 있는 것이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그러면서 최근 남자 지인과 여성 혐오 관련 이슈나 임금 혹은 승진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일화를 소개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저보다 다섯 살 많은 남자 지인은 제게 ‘너는 사회생활 안 해봤고 만화가니 몰라서 하는 소리다’라며 임금 덜 받고 하는 게 당연하다는 거예요. 회식이나 야근 안 하는 것은 사실이지 않느냐면서요.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제 경험을 가지고 말할 순 없었지만(웃음) 저보다 몇 번 더 경험한 걸 가지고 세상의 진리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틀린 거 아닌가요?”
미역 작가는 엄연히 사회적 통계로 여성 임금이 적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요즘 넘쳐나는 ○○녀부터 ○○충까지, 남성이 주체고 여성이 객체로 프레임화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어린 시절 동네 골목의 주점을 지날 때면 아저씨들의 토사물을 종종 본 이야기를 했다. 당시 누구도 그 남성들을 향해 ‘토사남’이나 ‘토사충’으로 부른 적인 없지 않느냐며 ‘맘충’이란 단어의 등장에 놀랐다고 했다.
![[웹툰 작가 인터뷰] ① 가족 간 성폭력, 낙태, 미혼모 소재로 작품 그려낸 ‘아! 지갑 놓고 나왔다’의 미역의 효능](http://img.khan.co.kr/lady/201510/20151005142722_3_womanwebtoon3.jpg)
[웹툰 작가 인터뷰] ① 가족 간 성폭력, 낙태, 미혼모 소재로 작품 그려낸 ‘아! 지갑 놓고 나왔다’의 미역의 효능
이 작품이 특히 화제가 되는 건 붓으로 휙휙 그려낸 그림이다. 선희의 이야기와 짙은 검은색 붓질의 하모니가 주인공의 감정을 잘 전달한다. 유일한 사람 얼굴이었던 딸을 잃고 처연하게 앉아 있는 선희의 모습은 백 마디 말을 무색게 한다.
“잘할 수 있을지 스스로 자신이 없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큰언니를 따라 민화 전시에 갔는데… 막 그린 그림이 많더라고요(웃음). 조상님들이 그린 그림들, 잘 그린 것부터 해학적으로 그린 낙서까지 다양한 민화를 보면서 제게 필요한 건 자신감이란 걸 알았죠.”
서예를 하던 아버지 덕분에 집에 좋은 재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일부러 돈을 들여 재료를 사느니 집에 있는 걸로 그려보자 한 것이 지금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미역 작가에게 이번 작품은 데뷔작이다. 신인 작가가 데뷔작으로 이런 만만찮은 주제를 다뤘음에도 독자 입장에선 능수능란하다고 느껴지는 대목들이 많다. 특히 선희가 미혼모가 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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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작가 인터뷰] ① 가족 간 성폭력, 낙태, 미혼모 소재로 작품 그려낸 ‘아! 지갑 놓고 나왔다’의 미역의 효능
대학에서 심리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작가는 대학 시절 우연히 한 커뮤니티에 웹툰을 연재하면서 만화와 인연을 맺었다. 취업과 대학원 진학 사이에서 갈등하다 ‘사무실에서 앉아 있는 것은 잘하지 못할 것’ 같아 좋아하는 일을 하고자 했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웹툰이라고 한다. 네티즌의 ‘좋아요’ 추천 숫자에 일희일비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작품을 봐주는 팬들에게 고마워 늘 마음을 다잡는다는 미역 작가는 인터넷에 오이, 당근 같은 걸 검색하면 효능 등이 뜨는데, 미역을 검색하면 자신의 활동 닉네임이 더 먼저, 더 많이 뜰 수 있을 만큼 열심히 하고 싶다고 했다. 그야말로 영리하고 똑똑한 작가라 그렇게 되고도 남을 것으로 보였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강은진(객원기자) ■사진 / 김동연(프리랜서) ■자료 제공 / 레진코믹스 단지, 다음 만화속 세상 미역의 효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