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함 중에 독특함이라 패션 디자이너 황재근

독특함 중에 독특함이라 패션 디자이너 황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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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그램들의 다양한 포맷과 신선한 시도로 전문직에 종사하는 이들이 방송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요즘이다. 그중 가장 핫한 인물은 패션 디자이너 황재근. MBC-TV ‘복면가왕’에서 매주 독특한 가면을 선보이는 디자이너로 활약 중이고,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는 본인이 직접 출연해 거침없는 입담과 재치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고 있다.

독특함 중에 독특함이라 패션 디자이너 황재근

독특함 중에 독특함이라 패션 디자이너 황재근

타고난 방송인, 황재근
크리에이티브한 삶을 살고 있는 디자이너들은 기본적으로 매우 독특한 사고방식의 사람들인데, 황재근(39)은 다른 의미로 독특하다. 디자이너들을 인터뷰 혹은 작업으로 만날 때 한결같이 드는 생각은 무척이나 개성 강한 캐릭터라서 그들과 쉽게 어우러질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들이 만드는 컬렉션용 의상만큼이나 접근하기 힘들다. 그런데 황재근만은 예외였다. ‘아하하하학학’ 하는 특유의 웃음으로 가로막힌 장벽들을 순식간에 무너뜨린다. 그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데 거리낌이 없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포용력을 보여준다. 실제로 만나본 그는 역시나 유쾌하고 편안했다. 그런 그에게 출연을 앞둔 예능 프로그램 리스트가 쌓여 있다고 한다.

“‘라디오스타’는 다음 주에 녹화할 예정이에요. 추석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 ‘능력자들’ 녹화를 막 마쳤고요. ‘세바퀴’, ‘나 혼자 산다’에서도 섭외가 들어온 상황이에요. 요즘 ‘MBC의 아들’로 불리고 있습니다. 아하하하학학….”

전문 방송인도 아닐뿐더러 평소 TV조차 잘 보지 않는다는 그. 그러나 처음부터 마치 자신의 자리인 것처럼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그는 타고났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 짐승 같은 적응력은 어디에서 샘솟는 걸까?

“방송에 관심이 없는 편이라서 섭외 요청이 와도 뭔지 잘 모르고 그냥 나가는 거예요. 언제, 어떻게 끼어들어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옆에서 김구라 형님 같은 분들이 ‘하다 보면 늘어~’라며 맘 편히 하라고 말해주시죠.”

패션 디자이너임에도 패션 피플들이 넘쳐나는 연예인에 대해 정작 잘 모른다는 사실도 이채롭다. 촬영을 위해 방문한 스튜디오의 한쪽 벽에는 지난 호의 「레이디경향」 표지들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그는 유심히 표지 사진을 바라봤지만 누가 누군지 잘 모르는 듯했다. 유일하게 지난달 표지 모델인 김서형을 두고 “이분, ‘아내의 유혹’에 나왔던 분이죠?”라고 할 정도니, 그 둔감함에 정말 ‘핫’한 디자이너 맞나 되묻고 싶은 심정.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는 알려고 노력 중이에요. 여파가 크더라고요. 몰라도 알아야 하고 알면 더 알아야 하고…. 디자이너가 연예인을 알게 되는 과정은 다분히 마케팅적인 측면이 있어요. 저는 그런 것이 좀 편치 않았어요. 가식적으로 남을 대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고요. 저는 편하게 살자는 주의예요.”
카메라 앞이든 아니든 그는 언제나 자유 영혼 황재근이다. 좋아하는 대로, 즐거운 대로 사는 것이 그의 라이프스타일이다.

“TV 출연 이후에 10년 넘게 소식이 뜸했던 지인들에게 연락이 와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데, 그 여전함을 TV로 보니 무척 웃기다, 라는 평이 대부분이에요.”

그가 앞으로 방송을 이어나가더라도 전문 기획사에 소속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돋보일 것인가 전략을 짜지도 않을 것이다. 무언가에 억압되는 것은 싫다. 그는 그저 방송에 출연해 웃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길 뿐이다.

독특함 중에 독특함이라 패션 디자이너 황재근

독특함 중에 독특함이라 패션 디자이너 황재근

그저 웃긴 디자이너가 아니다
방송 출연이 잦다 보니 본업인 의상 제작에 소홀한 것은 사실이다. 그와 통화하기 위해 몇 차례 작업실로 전화를 했지만 그는 늘 부재중이었다.
“제가 요즘 매장에 없어요. 옷 만들 시간이 없는 거예요. 디자이너라면 풀 컬렉션으로 의상을 선보이는 것이 수순인데, 지금 상황에서 그러려면 제가 두세 명은 있어야 해요. 방송을 하면서 느꼈는데요. 디자이너가 인정받는 길이 꼭 해외 페어나 컬렉션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죠. 그래서 일반인도 입을 수 있는 편안한 아이템들을 구상 중이에요.”

그에게 명색과 허울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마리텔’ 출연으로 디자인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밝혔다. 디자인은 평범함과 평범하지 않은 것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반 사람들과 소통해보니 그들의 취향이 모두 비슷해 보여도 그 안에서 각자의 니즈와 개성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 가지 접근법만으로 그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디자이너로서 생각해왔던 것들을 고집하기보다 좀 더 다양한 시각을 가져야겠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도 생각하고 있고요. 강아지 옷이라든가 화장품, 차량용 쿠션, 생활용품 등 패션 디자인이 미칠 수 있는 영역에 다 도전해보고 싶어요.”

황재근을 그저 ‘웃기는 디자이너’라고 판단하기에는 그의 이력이 범상치 않다. 홍익대학교 미대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의 패션스쿨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다. 그가 제작한 의상에 수작업이 유독 많은 것도 도예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지만 공예라는 것이 워낙 개인 작업 위주라 외부와 단절된 채 고립되는 부분이 있는데, 보시다시피 그런 거 안 좋아했어요. 그래서 패션 전공으로 유학을 다시 떠났죠.”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는 세계 3대 패션스쿨로 꼽히며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 드리스 반 노튼을 배출한 명문 학교다. 교육과정은 3학년까지의 학부생활과 마지막 4학년의 석사과정이었는데, 워낙 엄격한 심사 기준으로 졸업이 정해지기 때문에 도중 낙제하는 이들이 태반이다. 황재근은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의 첫 번째 한국인 졸업생이었다.

“2002년에 가서 2007년에 졸업했는데, 지금껏 한국인 졸업생은 5명이에요. 그 정도로 어려워요.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성적순으로 학생을 자르거든요. 1학년 때 60, 70명이 있었다면 4학년 석사과정까지 많게는 10명, 적게는 4명 정도 남아요. 학교에서 트레이닝을 잘한 덕분에 지금까지 꾸역꾸역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웃음).”

동종 업계 사람들 중에는 옷으로 유명세를 떨친 것도 아니고, 단지 웃기다는 이유로 방송에 나오는 그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의 이력이나 실력을 알고 나면 쉽게 시선이 바뀌는 것도 사실. 그는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의 패션 서바이벌 리얼리티 쇼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올스타’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그는 생애 첫 방송 출연이었던 이 프로그램에서 출연자 간의 경쟁으로 분위기가 살벌한 가운데에도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를 보시고 복면가왕 제작진이 제게 가면을 디자인해달라 의뢰했죠. 지금까지 만든 가면이 100점이 넘을 거예요. 2주에 10점은 만드니까요. 이제 시스템이 잡혀서 제작진이 어떤 걸 원하는지 금방 감이 와요. 무대 특성상 컬러나 질감도 고민하지 않고 맞출 수 있고요.”

가면은 90% 이상의 과정을 그가 스스로 작업한다. 방송에 따라 기존의 정공법 이상으로 응용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 가면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이에게도 한계가 있었다. 모든 과정이 크리에이티브한 그에게는 적격이었다.

“100점 이상 만들었지만 아이디어는 한도 끝도 없어요. 가면으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고,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오브제예요. 조합의 차이인 거죠. 사랑 노래랑 같은 것 아닐까요? 결국 같은 내용이지만 수백 년이 지나도 다른 표현 방식으로 여전히 불리고 있는 것처럼.”

독특함 중에 독특함이라 패션 디자이너 황재근

독특함 중에 독특함이라 패션 디자이너 황재근

변한 건 없다, 그의 심플한 인생관
워낙 방송 출연이 잦다 보니 알아보는 이들도 늘었다. 가식이나 허세를 모르는 그는 대부분 흔쾌히 사진을 찍어주고 반기지만 갑작스러운 순간에는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저는 일하러 왔다 갔다 할 때는 무릎 나온 편한 운동복만 입는데, 그때 알아보시면 좀 민망해요. 그래서 모자를 쓰면 알아보시는 분이 절반으로 줄고요. 수염을 내리면 또 절반이 줄어요.”

그의 살짝 올라간 콧수염 끝은 본드로 고정시킨 것이라고. 워낙 코믹 캐릭터로 유명해진 덕에 사람들은 상황과 분위기에 상관없이 그에게 쉽게 접근하는 편이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 그가 앉아 있다면 누구라도 말을 걸어보고 싶을 것이다.

“바쁘게 길을 가고 있는데 앞을 딱 막아서요. 삿대질을 하며 ‘마리텔 디자이너 맞지?’라고 물어보거나, 식당에서 바로 뒷자리에 앉아 뻔히 들리는데 ‘걔 아니야? 웃기는 애?’라고 하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아요.”

그의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가 쉬는 날 대중목욕탕에서의 힐링이다. 땀을 흠뻑 빼고 난 뒤 상쾌함을 즐기는데, 방송에 나온 이후부터는 쉽지 않은 일 중 하나가 됐다.

“목욕탕 입구에 있는 샤워장에서 씻고 있는데 들어오는 분과 눈이 딱 마주쳤어요. 그분이 저를 알아보시고 놀라서 앞으로 자빠지신 거예요(웃음). 저도 당황해서 사우나실로 숨어들어갔죠. 그런데 점점 뜨거워져서 결국 참지 못하고 나왔는데, 탕 속에 앉아 계신 분들이 일제히 저를 쳐다보고 계세요. 그 민망함이란!”

황재근은 유명세에 비해 사생활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일단 미혼이며 여자친구가 아직 없다는 사실은 확인했으나, 그를 지지하는 이들은 궁금한 것도,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그는 곧 책을 출간할 계획이다. 사진 몇 장 뿌려놓은 디자이너 스타일 북 같은 구태의연한 것은 아니라고.

“옷 리폼하는 방법부터 디자이너가 되는 법까지 다양한 면모를 담은 책을 만들고 싶어요. 아직 보여주지 못한 제 진중한 모습도 담길 것이고, 사생활이든 뭐든 디자이너라는 매력적인 직업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어요.”

황재근에게는 자신의 브랜드인 ‘제쿤옴므’를 좀 더 키우겠다는 계획은 존재하지 않는다. 디자이너로 덜 유명하더라도, 의상이 덜 팔려도 그는 스스로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편하게 살아갈 따름이다. 정체성을 잃지 않고 떳떳할 수만 있다면 디자이너로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심플한 인생관이다. 그는 간절하거나 애쓰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즐길 줄 아는 그의 모습은 브라운관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해져온다. 하고 싶은 일만 해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판타지를 그가 꼭 보여줬으면 한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김석영 ■소품 협찬 / 개나리벽지(www.gniwallpap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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