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진혁(42) PD를 소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EBS-TV ‘지식채널e’이다. 2005년 첫 방송을 시작해 얼마 전 10주년을 맞은 ‘지식채널e’는 오로지 영상과 자막, 배경음악만으로 구성된 간결한 형식미로 방송가에 파격을 가져왔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유효기간을 두지 않고 두루두루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방송은 10주년을 맞았지만 그는 그곳에 없다. 2013년 EBS를 퇴사한 이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독립 언론 ‘뉴스타파’의 제작 PD로 ‘김진혁의 5Minutes(이하 미니다큐)’를 만들고 있다. 자리는 옮겼지만 그의 다큐는 여전하다. 미니다큐는 사회적으로 대두되는 문제들을 놓고 합리성과 상식을 되짚어볼 것을 제안하며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것을 권유하다. 불안한 20대를 향한 ‘꼰대질’에 일침을 가한 ‘꼰대 vs 선배’, 메르스 정국과 맞아떨어져 예언가로 ‘의심’받게 한 ‘전염병에 정치를 처방한 학자’, 최근 제작된 ‘부동산 불패 신화와 아이 안 낳는 나라’ 등 그가 던지는 5분 동안의 이야기는 사회 어딘가로 우리의 생각을 가져다놓는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세상을 마주하게 되는 시간이다.

김진혁 PD의 세상을 마주하는 법
아직은 교수라는 호칭이 어색해요(웃음). 다행히 학생들이 선생님이라고 불러줘요. PD가 편해요.
얼마 전 ‘지식채널e’가 10주년을 맞았어요.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김진혁 PD더라고요.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복잡하죠. 일단 오랫동안 프로그램이 생존해 있다는 것 자체는 굉장히 기분이 좋아요. 시청자들이 여전히 봐주신다는 거니까 감사한 마음도 들고요. 한편으로 과연 예전만큼 자유롭게 다양한 이슈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서는, 비단 EBS만의 문제라기보다 전반적인 언론 상황이 썩 좋은 편이 아니라 안타까운 부분도 있어요.
모니터링도 하시나요?
꼼꼼하게는 못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봐요.내적인 완성도는 여전히 높은 것 같아요.
‘지식채널e’는 2005년 첫 방영 당시 형식과 내용면에서 파격적인 다큐였어요. EBS가 수능 방송만 하는 방송국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계기가 됐고요.
어찌 보면 뮤직비디오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광고 같기도 했죠.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해야 한다,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에 틈을 주자, 짧은 영상이 필요하다 등의 요구와 다양한 아이디어가 모여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에요. 구성이나 포맷에서는 시각적인 쾌감이 극대화되길 바랐어요. 그래야 사람들이 볼 테니까요. 개인적으로 영화 예고편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런 영상들의 편집 기법을 참고하기도 했죠. 아주 없던 것에서 저 혼자 ‘뿅’ 하고 만들었던 건 아니에요.
다큐멘터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프로그램이기도 했어요. 다큐가 이렇게도 만들어지는구나 하는. 보는 사람이 집중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지금 하고 있는 ‘미니다큐’ 역시 그런 식으로 만들고 있고요. ‘지식채널e’보다는 좀 더 집중이 필요하긴 하지만요.
현재 뉴스타파에서 제작하고 있는 ‘미니다큐’는 ‘지식채널e’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차이가 있다면 뭘까요?
개인적으로 체감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한 가지는 아이템적인 면에서 ‘지식채널e’보다 좀 더 사회적인 것들을 다뤄요. 넓혀봐야 인문학 정도고요. 좀 무거워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주제의 영역은 좁아졌지만 대신 그 안에선 자유로워졌어요. 또 한 가지는 아무래도 TV를 통해 방송됐던 ‘지식채널e’에 비해 일반 시청자들이 접근하기가 어려워진 부분이 있어요. 그런 면에선 조금 아쉬워요.
아이템 선정 기준이 있나요?
일단 기본적으로 다양성을 추구해요. 특정한 범주에 관심이 있는 분들만 유입되기보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봐주시길 바라요. 그러려면 PD가 한 방향으로 좁게 몰기보다 다양한 관심사와 개인적인 아이디어들을 폭넓게 차용해야 하죠. 전체적인 아이템의 결들이 큰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려 하고요.
최근 ‘미니다큐’에서 다뤘던 주제 중 ‘부동산 불패 신화와 아이 안 낳는 나라 편’을 재밌게 봤어요. 주변에서도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고요.
부동산과 저출산 이야기는 시장이 넓은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연관될 수 있는 수용자층이 넓고 누구에게나 거부감이 없는 이야기예요. 얼마 전에 만들었던 ‘맨스플레인 편’은 그에 비교하자면 시장성이 좁아요. 안티도 많고. ‘미니다큐’를 1년 정도 제작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쌓아놓은 게 있으니 사회적 이슈 외에도 다양한 주제를 다루려고 하고 있어요. 확장의 의미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다큐를 만들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뭔가요?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것, 미뤄둘 수 있는 지점을 남겨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여지를 두느냐 두지 않느냐에 따라 확신 혹은 맹신이 될 수 있거든요. 확신은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둘 수 있지만 맹신은 그런 가능성조차 가지지 않는 거예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둠으로써 보시는 분들이 좀 더 열린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직접적이진 않지만 김 PD의 다큐가 강한 메시지나 여운을 남기는 것도 사실이에요.
물론 모든 메시지가 포함된 콘텐츠는 영상이든, 글이든, 음악까지 설득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에 완벽하게 프로파간다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거예요. 제가 추구하는 건 보시는 분들이 보다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에요. 저널리즘에서 가장 쉽게 하는 방법이 기존 관점에 반론을 제시하는 것인데 그건 너무 기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직접적이지 않게, 뉘앙스라는 범주 안에서 최대한 조절하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저기로 가”와 “저기로 한번 가볼까?”의 차이. 그런 여지의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단순히 정보를 넘어 생각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는 게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관점이나 시각 자체가 소외돼 있으면 새로운 정보가 와도 받아들이기 어렵거든요. 단순히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전하기보다 우리가 어떤 관점에서 소외돼 있는지에 대해 제시하려고 해요. 그러기 위해선 하나의 내용을 두세 가지 관점으로 조명하는 것이 필요하죠. 완벽하게 모르고 있는 것, 알고 있지만 정보의 이가 빠져 있는 것, 한쪽이 너무 강해서 다른 쪽의 관점이 약화돼 있는 것들이 있어요. 다큐를 통해 기존에 알고 있던 것을 다른 각도에서 보거나 중간중간 빠져 있는 것을 채워 넣어 끊어진 맥락을 복원한다는 의미예요.

김진혁 PD의 세상을 마주하는 법
그동안 노동자나 해직 언론인, 세월호 참사 유가족 등 사회의 소외계층과 약자들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뤄왔어요. 꾸준히 그런 부분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들이려고 했고요.
개인적인 차원에서 ‘어떤 사실에 대해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영역을 최소화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순수한 지적 욕망이에요. 똑똑해지고 싶다기보다는 더 알고 싶고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존에 알려진 주류 담론에서 소외된 부분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어떤 것에 대해 알게 되면 모를 때와는 다른 세계가 생겨요. 가슴이 아프거나 화가 나거나 하는 안타까운 지점들이 생기죠. 아는 게 병이라고, 일단 그렇게 되면 본능적으로 제 인식 안에서 균형을 맞추게 돼요.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있는데 외면하거나 혹은 해결하는 것이에요. 저는 해결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고요.
해결하는 방법으로 다큐를 이용한 거군요.
저만 괴로우면 화나잖아요(웃음). 같이 괴롭자, 이거예요. ‘괴로운 사람들이 많아지면 본인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해결하려는 에너지가 생길 것이다’였죠. 저 혼자 바둥바둥할 때보다 훨씬 더 큰 힘이 생기게 되니까요. 사람들이 아주 대단한 사회적인 공감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각자 가지고 있는 이기적인 면에서도 에너지가 충분히 있을 거라고 믿어요. 대신 그러기 위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장벽을 없애고 기존 인식의 연결고리와 잇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죠.
어떤 이슈에 대해 극단적인 관점들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선 오히려 무시하고 외면하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애써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라 생각해버리기도 하고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처럼 보이는 것들이 그렇지 않다는 거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하나하나가 사실은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들이 다투고 있는 것이거든요. 예를 들면 세금과 국정교과서는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관에 있어 어느 쪽을 더 강조할 것인가를 가지고 싸운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아요.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볼까요? 제가 지갑을 책상 위에 두고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돌아왔더니 지갑이 없어졌어요. 그러면 누군가는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제 잘못이라고 해요.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면 지갑이 없어진 건 결국 제 잘못이 되는 거예요. 현재 우리에게 발생하고 있는 문제를 개인의 잘못으로 돌릴 것인가, 사회의 잘못으로 돌릴 것인가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그러한 담론들이 결국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지요.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실은 모두가 연결돼 있다는 말이군요.
은연중에 영향을 받게 되는 거죠. 그것이 자신의 개인적인 일상의 작은 선택 하나하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우리가 하는 선택 중 상당 부분은 도덕에 의한 판단이거든요. 우리는 개인이 가진 옳고 그른 것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선택하며 일상을 살아가요. 그런 판단을 하게 하는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내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해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
개인적인 차원에서 외면과 해결 사이에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사실 외면이라는 건 해결하려는 노력 못지않은 에너지가 소모돼요. 진정한 외면은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상황’이고요. 잘은 모르겠지만 저 지점에 뭔가 있을 것 같다, 뭔가 이상하다, 라는 걸 인식하는 순간부터 외면은 외면이 아닌 것이 돼요.
어떤 문제를 감지하고 알게 되는 순간부터가 시작인 거네요.
내가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영역이 있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지구가 전부라고 생각하고 봤을 때와 태양계를 알고 봤을 때, 내 눈에 비치는 세상은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내가 아는 지도 밖의 세상이 있어요. 가보지 않으면 거기까지가 전부인 거예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해 알고 나면 그다음에는 공부할 것들이 굉장히 많아져요. 볼 수 있는 세계가 넓어지는 거죠. ‘내가 뭘 모르지? 그걸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의문을 가지셨으면 해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겠군요.
생각하는 힘의 핵심은 “왜?”라는 질문이에요. “어떻게”나 “무엇을”보다 “왜?”가 먼저예요. 어떤 대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힘이 세져요. 질문을 하는 순간 머리가 아파지거든요. 그 아픈 머리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보게 되고, 그러면서 드러나는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정리하며 본인의 답을 찾아가게 되는 거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입장이나 시각에 대해서도 자문해야 해요. ‘나는 이 이슈에 대해 왜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런 생각을 하도록 한 걸까?’라는. 결국 그 “왜?”의 정점은 자기 자신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그다음은요?
그런 차원에서 접근을 하고 능동적인 정보 서치를 통해 생각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어요. 인문학도 방법이 될 수가 있죠. 특정 이슈에 대한 해설이나 담론을 찾아볼 수도 있고요. 적어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핫이슈 정도는 관심을 갖는 것이 좋아요. 요즘 뜨거운 국정교과서 논란이라든지요. 사실 일상에서 그런 역할을 해주는 게 언론이에요. 언론은 기사를 전하기만 하는 것 같지만 그 기사를 쓰는 기자와 PD가 나름의 답을 가진 상태에서 쓰거든요. 왜 저런 제목을 뽑았을까? 왜 저렇게 썼을까? 그런 부분에도 질문을 던져보세요. 그런 연습을 하다 보면 충분히 객관적으로 비평적,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내가 몰랐던 세계로 연결시키는 계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충격적인 경험이 있었어요. 2003년쯤 동대문운동장에 청계천에서 쫓겨 온 철거 노점상분들이 계신 걸 보고 쇼크를 받았어요. 동대문운동장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는 곳이거든요. 제가 아는 그곳은 녹색 잔디가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믿기지 않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는 걸 보면서 과연 내가 이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인지, 아니면 이들이 사는 세상과 내가 사는 세상이 다른 건지 혼란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죠. 내가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영역을 무척이나 강렬하게 인식했던 경험이었어요.
그 경험이 다큐 제작에 영향을 미쳤겠네요.
그럼요. 실제로 1년 뒤에 철거민들의 이야기를 다큐로 만들어요. 그게 ‘지식채널e-잊혀진 대한민국’ 시리즈의 첫 번째였어요.
누구도 쿨할 수 없는 시대
사람들이 몰랐던 영역으로 생각을 연결시키는 데는 김 PD의 다큐들도 부지런히 역할을 했어요. ‘지식채널e’가 그랬고 지금 만들고 있는 ‘미니다큐’ 역시 그런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데,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생각을 하시나요?
글쎄요. 솔직히 얼마만큼 영향을 주는지 잘 모르겠어요. 주위의 얘기만 듣고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누락되거나 빠져 있던 관점들을 드러나게 한 데는 일조를 하지는 않았을까 싶어요. 기존에 주류 언론들이 놓치고 있는 지점들, 하지만 꽤 의미가 있는 것들에 대해 “어? 저런 것도 있네”라고 생각하게 한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어요.
수많은 다큐를 만들어왔는데 피드백이 가장 강하게 왔던 편은 어떤 것이었나요?
가장 큰 반향이 있었던 건 광우병 이야기를 다뤘던 ‘지식채널e-17년 후? 편이었어요. 특정 콘텐츠가 사회의 관심을 받기 위해선 완성도 못지않게 이슈 자체가 확 떠올라야 하잖아요. 광우병이 그런 케이스였어요.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되게 피곤했죠. 그런 이슈를 떠나 반응이 뜨거웠던 건 ‘박지성 편’이에요. 은근히 보수적인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기성세대에게도 거부감이 없었고 젊은 층의 호응도 컸고요. 박지성이라는 인물은 가장 넓은 시장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예요. 어떻게 만들어도 뜰 수밖에 없는(웃음). 장벽과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아이템이었어요.
좀 더 많이 회자됐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아쉬움이 남았던 편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세월호 참사 유가족분들의 이야기를 다룬 ‘세월호 유가족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 편’이에요. 알아요. 보는 사람들도 힘들죠, 사실. 무척 고통스러운데 나아지지 않으니, 공감은 하지만 대하기 두려운 그런 것들이 있잖아요. 그렇다고 놔버리면 완전히 사라져버려요.
언론인으로 산 시간들을 돌아보면 어때요?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좌충우돌했어요. ‘지식채널e’를 만들었던 2008년까지는 보람이랄까 그런 것을 많이 느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개인적인 부분이 많이 사라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스스로의 역할에 얽매이는 거죠. 아무래도 회사를 그만두면서 생긴 트라우마죠. 제가 자연스럽게 제 역할을 마무리한 것이 아니라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다 보니 되찾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 롤을 이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어요. 사명감에 매몰된다고나 할까요. 그러다 보니 효율성도 떨어지고 셀프 만족이 되더라고요. 실제 역할도 약화되고요. 그런 걸 경계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그럼에도 보람이라면 피드백이죠. 여전히 제가 만들었던, 지금 만들고 있는 다큐를 잘보고 있다거나, 그런 말들이 저에게는 최고의 보람인 것 같아요.
이제 개인적인 즐거움을 찾는 시간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애는 쓰는데, 이미 너무 인이 박여서요(웃음). 다른 언론인들은 조금 덜 괴로울까 생각해보면, 아닐 것 같아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최소한 이쪽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해도 쿨하기 어려운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앞에 나서든 중간에 있든, 뒤에 찌그러져 있든 다들 찜찜한 마음이에요. 뭔가 뒷머리를 잡아당기는 것 같은.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원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