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진 감독 “우리 모두는 춤을 춰야 한다.”
서울댄스프로젝트는 ‘누구나 늘 함께 춤추는 서울’이라는 슬로건 아래 서울문화재단이 주최하는 프로젝트로 매년 3월부터 10월까지 연중 진행된다. 춤을 통해 활력과 치유, 공감과 소통의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은 물론 삶을 위한 춤의 가치 확산, 시민 문화 커뮤니티 활성화를 목표로 한 시민 참여형 프로젝트다. 김윤진(45) 감독은 일반인 참여 기획의 제의를 받고 어리둥절했지만 꽤 신선하게 느꼈다. 예술 무대 안무만 했던 그녀에게도 또 다른 도전의 무대가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춤이라는 특정한 장르로 시민들에게 활력과 치유를 전해준다는 취지였는데 처음에는 ‘그게 가능할까?’ 하고 의아해했어요. 춤이라는 게 일반 사람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은 예술이잖아요. 다들 춤은 무대에서 보는 것이지 자신과는 거리가 멀다는 인식이 강할 테니까요. 그래도 춤이 갖는 힘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기꺼이 참여하기로 했죠.”
결과는 놀라울 뿐이었다. 일반 사람들이 이렇게 춤을 사랑하고 춤에 대한 열망이 있는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8세 어린이부터 70세 노인까지 그야말로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층이 댄스 워크숍에 참여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오디션을 통해 100명으로 추리고 지난여름 내내 주말에 모여 춤 연습에 들어갔다.

올해 펼쳐진 서울댄스프로젝트. 반포에서 열린 게릴라 춤판과 선유도에서 열린 서울 무도회의 흥겨운 모습이다.
취미생활의 영역이 늘면서 동호회, 강습학원 등을 통해 춤을 여가활동으로 배우는 이들도 늘고 있다. 김 감독이 기획한 댄스 워크숍은 춤의 테크닉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이곳에서 춤을 잘 추고 못 추고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몸치라고 해서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어요. 오디션을 볼 때도 ‘춤을 얼마나 잘 추나’ 혹은 ‘끼가 얼마나 많나’를 보는 게 아니에요. 그저 타인과의 어울림 그리고 태도만 봅니다.”
오디션은 10여 명의 그룹으로 나눠서 보는데, 5분 동안 음악을 틀어주고 자유롭게 춤을 추게 한다. 마음속 열정을 기존의 사회적 억압으로 분출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먼저 프로젝트 기회를 준다.

김윤진 감독 “우리 모두는 춤을 춰야 한다.”
소통의 춤
춤은 그 어떤 예술보다 빠르게 에너지를 줄 수 있는 매개체였다. 태초에 인류의 소통 방법은 언어가 아닌 몸짓이었다. 과거 우리에게는 ‘신명’이라는 춤의 기운이 있었던 만큼 지금도 DNA 속에는 춤에 대한 본능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류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늘 춤이 있어요. 춤을 통해 공동체임을 확인해왔죠. 서양에서도 결혼식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춤을 추잖아요. 우리도 억압 속에 감춰졌던 본능을 일깨워야 해요. 태양이 내리쬐는 개방된 장소에서 갇혀 있던 자신의 감정들을 풀어주고 또 타인과 소통하는 데 춤만 한 것이 있을까요?”
김 감독 역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참여자들을 통해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나를 알아야 타인을 이해한다.
“자신의 몸을 자각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해요. 학교 폭력도 자기가 아픈지 모르니까 남을 해하는 거지요. 내 안에 생명력과 감각이 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타인의 자유도 존중할 수밖에 없죠.”
그녀가 주도하는 워크숍의 주요 개념이다. 나에 대한 자각 그리고 타인의 움직임에 대한 반응. 경험해보지 못했던 세계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북받치는 감정에 울음을 쏟아내기도 하고 말할 수 없이 찌릿함을 느끼기도 한다.
“몸을 움직여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본능이며 생명활동의 연장이에요. 그 감각을 느낀 분들은 계속 춤을 추실 수 있어요. 그래서 매년 참여하기 위해 오디션을 보시는 분들이 있어요. 100인의 춤단 중에 20여 명이 작년에 참여하셨던 분들이에요.”
내 춤이 남과 다르다고 위축될 필요는 없다.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다운, 각기 다른 꽃들이다. 김 감독이 가장 지양하는 것은 기준화된, 정형화된 아름다움이다.
“뚱뚱하든 날씬하든 개개인 나름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어요. 인위적으로 하나의 미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폭력적인 동일성이죠. 저는 뚱뚱한 무용수도 좋아해요. 그 몸만이 갖는 매력이 있거든요. 사람들 하나하나 춤을 추면 마치 이름 모를 100송이의 꽃이 활짝 피어나는 듯해요. 자신의 몸을 느끼고 드러내는 표현이 되는 춤은 ‘댄싱 9’의 어떤 무용수보다도 아름답죠.”
인터뷰 전날 올해 프로젝트를 마친 3기 춤단의 해단식이 있었다고 한다. 참가자들은 춤단 활동을 통해 얻은 감정들을 쏟아내며 간증 아닌 간증의 시간이 펼쳐지기도 했다.
“1년 동안 어떻게 기다리냐며 동계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는 사람들이 많았어요(웃음). 다들 진정한 자유가 무엇이고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됐다는 이야기를 나눴고요. 40대 한 직장인은 눈뜨면 출근하고 돌아오면 잠자리에 드는 좀비 같은 생활 속에서 숨통이 틔였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서울 곳곳을 춤을 추며 돌아다니다 보니 자기가 사는 공간의 아름다움을 다시 보게 됐다고도 하시고요. 제각기 느낀 점들이 달랐다는 것도 참 흥미로웠죠.”
이런 감상들은 비단 직접 참여한 이들만이 느낄 수 있었던 특혜는 아니었을 것이다. 100명의 춤단이 춤판을 벌이는 현장에 즉흥적으로 뛰어들어 춤을 추는 시민들도 많았다. 서행 운전을 하며 손을 흔들고 클랙슨을 울리며 호응해주는 운전자들도 있었다. 리듬의 파동이 통한 것처럼 잠깐이나마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가 될 수 있었다.

김윤진 감독 “우리 모두는 춤을 춰야 한다.”
그녀가 길거리로 나선 이유
김 감독은 그동안 다양한 무용을 안무하고 감독을 담당했지만 그중에서도 사회적인 주목과 호평을 가장 많이 받았던 작품이 있다. 바로 2011년 페스티벌 봄에서 선보인 ‘구룡동 판타지-신화 재건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저는 일곱 살 때부터 춤을 추기 시작해 중학교 때 무대에 섰어요. 그런데 어느 날인가 무용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에 그 아름다움이 무척 슬픈 거예요. 아무리 훌륭한 무대라도 현실에 그 어떤 영향을 주지 않는 예술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회의가 들기 시작했죠. 같이 공연을 본 친구가 ‘그럼 어디서 춤을 추고 싶은데?’라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구룡마을에서 출 거야’라는 대답이 충동적으로 나왔고 또 전율을 느꼈어요. 그러면서 작업이 시작됐죠.”
강남 상류층의 주거특구 타워팰리스, 그 앞에 마주하고 있는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 극단적인 불균형. 균형의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인 김 감독의 눈에 띈 게 우연은 아닐 것이다. 김 감독은 9개의 용이 있는 신화가 있는 마을에서 선녀춤을 추기로 했다. 3년 동안 리서치 작업이 시작되고 실제 거주하고 있는 아이들과 한 가정의 어머니를 그녀의 무대에 출연시켰다.
“그것이 큰 호평을 받은 거예요. 그때부터 재단이나 공공단체에서 메시지를 담은 프로젝트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2012년 중년 여성을 위한 지역 밀착형 생활 예술 프로젝트인 ‘춤추는 꽃중년 프로젝트’나 2013년부터 시작한 ‘서울댄스프로젝트’는 이런 계기로 시작하게 됐죠.”
무용계 엘리트 코스만 밟아온 김 감독이 생활 밀착, 도시 공동체 예술 쪽에 발을 들인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예술계 사람들도 있다. 그녀는 그것을 스스로 “현재 길바닥 운이 들었다”라고 표현한다. 길거리 활동은 무용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년 5월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강남역 일대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서명운동을 위해 발로 뛰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삶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어요. 한국 사회에서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덜컥 생겼죠. 현재 500일 넘게 SNS에서 만난 시민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강남역에 나가 서명운동을 하고 있어요. 정치색이나 성향과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그저 지금은 무대보다는 길에서 활동하라는 뜻인 거 같아요. 길 위에서 사람들도 만나고 새롭게 세상도 볼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있어요.”
김 감독 스스로도 자신이 무대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또다시 그녀의 세계인 무대로 가고 싶어지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다양한 경험을 하며 그 시기에 대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

김윤진 감독 “우리 모두는 춤을 춰야 한다.”
일과 가정, 공존의 법칙
개성 강하고 똑 부러지는 김 감독은 결혼조차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같지만 사실은 세 아이의 엄마다. 고등학생 딸, 중학생 딸 그리고 초등학생 아들을 돌보고 있는, 아직 할 일이 남은 현역 주부인 것이다(그것도 장손 며느리!). 전 세계 무대에 서는 김 감독이 언제 아이들을 낳고 길렀는지조차 그저 의문이다.
“시어머님 덕분이에요. ‘어머님, 이번에는 정말 중요한 기회라 안 갈 수가 없어요’ 하면 맡아주셨죠. 어머님의 일생을 온전히 자식과 일가친척에게 헌신하시는 부분이 제가 가질 수 없는 부분이고, 그 자체로 숭고한 거라 생각해요. 게다가 자신과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며느리를 별말 없이 받아들이고 도와주시니까요.”
화려하고 당당할 것만 같은 그녀의 일상도 여느 워킹 맘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완벽하지 않아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자신의 일상은 구멍투성이라고 털어놓는다.
“둘째를 가졌을 때는 하도 뛰어다녀서 지하철에서 두 번이나 쓰러졌어요. 가정과 일을 완벽히 양립한다? 말도 안 되는 거죠.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제가 열심히 해서가 아니에요. 결국 주변 분들이 다 도와주셨어요. 물론 저도 최선을 다하긴 했죠. 그러지만 7할은 타인의 도움이에요. 워킹 맘들, 혼자 애쓰지 마세요. 주변 분들에게 도움을 청하세요.”
그러나 자녀들에 대한 엄마로서의 죄의식은 벗어나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으로는 아이들에게 솔직해지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일을 해야 한다, 일을 해서 이런 가치를 얻고 싶다, 그러니 너희가 엄마를 도와줘야 한다, 라고 솔직히 털어놓아요. 그래서인지 저희 애들은 엄마가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요. 큰딸도 엄마가 행복한 걸 알겠다고 이해해주죠.”
아이들은 그런 엄마를 보며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행복과 가치에 대해 배울 것이다. 그것은 더없이 좋은 교육이 된다. 김 감독은 자신이 느낀, 춤을 통해 얻게 되는 자유와 희열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춤을 통해 몸의 소리,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춤이란 예술이 갖는 독보적인 힘. 그녀가 기꺼이 길거리에서 춤 길잡이가 된 이유다.
Profile 김윤진 감독은…
김윤진 무용단 예술감독이며 국민대 공연예술학부 무용 전공 교수다. 2013년부터 서울댄스프로젝트의 기획감독을 맡고 있다. 7세 때부터 무용을 시작해 안무가로 명성을 떨치며 다양한 작업을 진행했다. 2009년에는 ‘뉴욕 댄스 시어터 워크숍’에서 선보인 김 감독의 ‘기생 비컴즈 유(Kisaeng Becomes You)’가 주간지 「타임아웃뉴욕」 선정 베스트 댄스 11에 선정되기도 했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김동연(프리랜서) ■사진 제공 / 서울문화재단 서울댄스프로젝트 ■장소 협찬 / 타임투스튜디오(02-547-5405) ■헤어&메이크업 / 이누리 ■스타일리스트 / 박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