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관련 서적 번역한 다섯 엄마가 말하는 출산, 그 놀라운 현실

출산 관련 서적 번역한 다섯 엄마가 말하는 출산, 그 놀라운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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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학을 함께 공부한 대학원 동기 다섯 명이 의기투합해 출산의 역사에 관한 책 「출산, 그 놀라운 역사」를 번역했다. 관련 분야 전공자에, 출산을 경험한 뒤 엄마가 됐지만 풀리지 않은 궁금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출산은 질병이 아님에도 철저하게 환자 신세가 되고 마는 한국의 현실에서 출산의 주인공이 되고자 한 번역자 엄마 다섯 명의 생생한 이야기다.

출산 관련 서적 번역한 다섯 엄마가 말하는 출산, 그 놀라운 현실

출산 관련 서적 번역한 다섯 엄마가 말하는 출산, 그 놀라운 현실


레이디경향(이하 Lady) 저자가 아니라 번역자 인터뷰는 실로 오랜만이다. 「출산, 그 놀라운 역사」(티나 캐시디 저, 후마니타스)를 훑어보고 바로 인터뷰를 계획했다. 출산에 관한 책을, 출산을 경험한 엄마 다섯 명이 번역 작업을 하셨더라. 본문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역자들의 출산 후기까지 실려 있어서 더 인상적이었다.
최세문 원래는 더 길었는데 많이 줄인 거다(웃음).

Lady
남자들에게 군대와 축구 얘기가 있다면 여자들에겐 임신과 출산 얘기가 있다고 한다. 아마 긴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다.

일동
(웃음)

Lady
단순히 출산 경험이 있는 번역자가 아닌 보건학을 전공한 관련 분야 전문가들로서 출산에 관한 책을 번역한 계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이 책이었나?

최세문
미국 유학 시절 출산을 경험했다. 셋째 출산을 앞두고 있을 때, 둘째 아이가 다니던 미국 어린이집 선생님이 출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추천해주셨다. 산업화된 출산 시장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는데, 그 프로그램 안에 우리가 번역한 책의 저자 인터뷰가 나왔다. 그 발언들이 인상적이어서 그녀의 책을 찾아보고 읽었는데… 무척 재밌었다. 그간 가지고 있던 궁금증들에 대한 답이 풀렸다고나 할까.

Lady
어떤 궁금증들을 가지고 있었나?

최세문
나는 제왕절개를 하지 않았지만 그 역사가 가장 궁금했다.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절개 부위(비키니 컷)를 택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서를 처음 읽을 때도 제왕절개 부분부터 읽었다. 또 첫째는 한국에서, 둘째와 셋째는 미국에서 낳으며 한국과 미국에서 출산 경험을 하게 됐는데, 두 문화가 참 많이 대비되더라. 축적됐던 출산에 대한 궁금증과 고민들이 실제 경험과 맞물려서 이 책을 번역해 한국에도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됐다.

Lady
공동 번역 작업을 한 다섯 분은 대학원 동기라고 들었다.

주지수
보건대학원 보건정책관리 전공 입학 동기들이다.

Lady
다들 간호학이나 보건학을 전공한 의료 관련 전문가들이다. 일반 여성들보다 임신과 출산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럼에도 이 책을 번역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있었나?

최영은
굴욕 3종 세트에 관한 것이다. 한국의 병원에서 임신부가 출산을 하려면 제모, 관장, 회음 절개로 구성된 처치를 받아야 한다. 병원에서 출산을 한 나 역시 당연히 그 처치를 받았다. 그 과정에 어떠한 의문 없이 누구나 하는 거라 생각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한국 산모들이 굴욕 3종 세트라 부르는 그것을 미국에서는 이미 1970, 80년대부터 하지 않고 있더라.

Lady
그런데 대체 그 처치는 왜 하는 건가?

주지수
감염 예방이 목적이다. 표방은 그렇다. 하지만 이미 미국이나 선진국에선 상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 증거가 있는데도 우리나라 의료계에서는 여전히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다. 산모가 아닌 의사 중심의 처치라고 볼 수 있다.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보가 산모들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

출산 관련 서적 번역한 다섯 엄마가 말하는 출산, 그 놀라운 현실

출산 관련 서적 번역한 다섯 엄마가 말하는 출산, 그 놀라운 현실



출산 과정에서 불필요한 처치들 많아

정윤선 번역을 한 이 책을 읽기 전에 첫아이를 낳았고, 번역 작업을 할 때 둘째를 낳았다. 같은 병원에서 낳았기 때문에 전후 차이가 분명하다(웃음). 첫째 때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애한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 오라면 가고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했다. 또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순종적으로 다 했다. 그렇게 따르니 나에게 친절한 것 같고, 간호사들도 나를 잘 챙겨주는 것 같더라.

Lady
그런데 책을 읽고 나니 어떤 생각이 들었나?

정윤선
같은 병원임에도 시스템화된 공장 같은 느낌이었다. 이 단계에선 뭐 하고 저 단계에선 뭐 하고…. 내게 맞춰준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맞춰져 있더라.

Lady
이후 달라진 게 있었나?

정윤선
이전에는 병원에서 지시하거나 권유하는 것은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인 줄 알았다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나와 아이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 불필요한 검사라고 생각되면 “이 검사는 꼭 해야 하나요?”라고 묻기도 하고, 보건소에서 받을 수 있는 검사는 모두 보건소에서 받았다. 무통에도 동의하지 않았더니 나를 약간 의아하게 보더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출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보다 능동적이 됐다는 점이다.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제왕절개 일정까지 잡아놓았는데 결과적으로는 자연분만을 하게 됐고 회음절개도 피할 수 있었다.

Lady
다섯 분 모두 병원에서 출산을 했나?

최세문
첫째는 조산원에서 출산했다.

Lady
지금도 조산원 출산이 보편적인 것은 아닌데, 어떻게 초산모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최세문
대학 시절 병원에서 실습하면서 아이 낳는 과정을 봤다. 아이가 나오는 광경은 눈물이 맺힐 정도로 감동적이었지만, 그 이후엔 양수와 후태라는 게 나오는데… 그야말로 양동이에 그냥 쏟아졌다. 산모는 상체를 일으키지도 못하고 누워서 낳는데, 그때 난 이렇게 낳지 말아야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또 당시에 미셀 오당의 「농부와 산과의사」란 책을 읽었는데, 인용된 연구 중에 유도 분만을 한 아이들 중 성인이 된 뒤 약물중독이 될 확률이 높다는 네덜란드의 연구가 소개돼 있었다. 그 책에는 출산 과정에서 일어나는 의료적 개입과 아이들의 성장 후 지능 발달이나 행태에 대한 연구들이 실려 있었다. 그 책을 읽고 더욱 그런 생각을 했다.

Lady
출산 과정 자체가 중요한다는 것을 느꼈나 보다.

최세문
맞다. 그러다 동기가 조산원에서 회음 절개도 하지 않고 어떤 인위적인 의료적 개입 없이 순산한 것을 알게 됐다. 회복도 빨랐다. 그래서 확고하게 마음을 먹었다.

Lady
주변이나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

최세문
당장 친정 부모님부터 시부모님까지 다 걱정하셨다. 하지만 석사 때 세미나에서 다뤘던 책에 시대에 따라 의료제도도 바뀌고 질병에 대한 인식도 바뀐다고 돼 있었다. 생각해보면 출산은 질병이 아니잖나. 그렇다면 의료적 개입이 꼭 필요할까, 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다행히 남편이 지지해줘 조산원에서 내가 원하는 출산을 할 수 있었다.

Lady
무섭지는 않았나?

최세문
무섭지 않았다.

정윤선
사실 나는 무서웠다. 보건학을 전공했지만 정책에 관한 것이었고, 임신과 출산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 같다. 그저 남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세문 언니가 조산원에서 낳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결혼 계획도 출산 계획도 없었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었다. 하지만 이게 내 일이 되고 보니 당시에 언니가 참 대단한 결심을 했었구나 싶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할 거야?’라는 물음들에 나는 자유롭지 못하더라.

시스템화된 병원 체계에 맞춰진 출산 환경

Lady 병원 출산 외의 다른 출산 방법도 고려했었나?

정윤선
물론이다. 여기 있는 언니들이 둘라(Doula: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으로 출산 과정을 돕는 사람)를 해준다고도 했다. 그런데 가족이 하도 걱정을 해서 가정 출산이나 조산원은 고려하기 어려웠고, 의사가 있지만 인위적 개입 없이 자연 출산을 하는 병원을 찾아봤더니 가까운 지역엔 없더라. 또 비용도 보통 자연 분만이 30만~40만 원 정도이면, 병원에서 자연 출산을 하면 200만~300만 원이었다.

Lady
어떻게 의료적 행위를 안 해주는데 값이 더 비싼 건가?

일동
그런 셈이다(웃음).

정윤선
의료진들이 한 산모를 전담해서 계속 기다려줘야 하고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어 본인 부담금이 더 늘어나는 것이라고 하더라. 또 둘라 한 명당 50만원 뭐 이런 식으로 금액이 추가되는데 사실 쉽게 결정이 안 되더라.

Lady
최세문씨는 그런 비용을 다 감수하신 건가?

최세문
아니다. 나는 조산원에서 낳아 당시 본인부담금 29만원이 들었다.

정윤선
세문 언니는 보건소에서 진료를 받고 조산원에서 낳아 저렴했다. 그런데 의사가 있는 자연 출산 비용은 높다.

Lady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는 것 같다. 여기 계신 다섯 분도 ‘다른’ 출산 방법에 대해 고민을 했었고, 출산에 관한 궁금증으로부터 시작해 책까지 번역했다. 병원에서 하는 일반적인 분만에 대해 왜 의문을 품게 됐는지 궁금하다.

주지수
모 유명 연예인이 아이를 낳는데 병원에서 굴욕 세트 중에 제모를 하려 하니까, 왜 해야 되냐며 되물었더니 병원 측에서 별 말 없이 순순히 안 했다더라. 사회적인 권위가 있는 사람들이 거부하면 안 한다? 어쩌면 충분히 사라질 수 있는 건데, 일반 여성들에겐 그런 판단의 여지마저 안 준다는 거다. 할 때 하더라도,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가문희
솔직히 분만은 누구에게나 첫 경험이다.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임신을 확인한 순간부터 많은 고민들이 시작된다. 특별한 소신이나 확신이 없으면 관련 분야 전공자인 우리도 병원에 가면 약자다. 정보 자체도 오픈돼 있지 않고, 의료진도 더 안전하고 확실한 분만을 권한다. 우리는 따를 수밖에 없다.

Lady
임신과 출산에 관한 책은 많지만 대부분은 지식 대백과 식의 단편적인 내용 위주다.

가문희
맞다. 문제의식을 가지기 어렵다. 우리도 이 책을 읽고 번역하면서 그동안 경험한 출산 과정을 다시 보게 됐다. 과거에는 애도 많이 낳고, 여러 과정에서 잃는 아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많아야 하나둘을 낳는다. 그렇다 보니 출산은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모두를 짓누르는 것 같다. 나도 그랬다. 제왕절개를 하면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니 의사 말 잘 따라서 자연 분만을 해야지, 모유 수유도 해야지 그리고 애한테 최선을 다해야지, 하고 산모와 아이가 모두 건강한 완벽한 출산을 바라기에, 그렇지 않게 되면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순종적이 됐던 것 같다.

Lady
결국 출산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봐야겠다.

정윤선
어쨌든 모두에게 출산은 다 처음 겪는 일이고, 또 많이 경험하는 일은 아니니까.

굴욕 3종 세트, 꼭 해야 할까?

주지수 두 번의 출산 모두 같은 의사 선생님에게서 했다. 첫째 때 제왕절개도 안 하고, 인위적인 것을 안 했다고 자부하기는 한다. 하지만 옥시토신을 엄청나게 맞았다. 의사 선생님 딴에는 퇴근하기 전에 우리 애를 받아주고 가시려고 노력을 하신 거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은 옥시토신을 많이 맞은 아이가 나중에 약물중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 나온 미셀 오당의 책을 결국 안 읽은 거 아니냐(일동 웃음). 그런 식으로 지나간 과거의 출산에 대해 복기가 된다.

Lady
옥시토신을 맞으면 어떻게 되나?

주지수
자궁 수축이 엄청나게 강해진다. 인위적으로 막 조이는 거다. 미셀 오당은 나중에 태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들으니 ‘아! 뭐야, 속았다’ 싶더라. 만약에 그런 사실을 출산 당시 알았더라면 강하게 거부했을 거다. 아이가 예정일보다 4일 늦어졌을 뿐인데 조금 더 기다려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둘째 때는 옥시토신 안 맞겠다고, 다짐을 하고 순 진통으로만 애를 낳았다. 큰아이가 성격이 좀 급한데, 가끔 그 약 때문인가 싶다(웃음).

일동
아니야~(웃음).

가문희
아마도 추적연구가 필요할 듯하다. 우리 같이 연구해볼까?(웃음)

주지수
어쨌든 내가 이 정도인데, 다른 산모들은 아예 정보조차 없는 거 아닌가.

Lady
왜 이렇게 출산에 대한 대안들을 찾는 걸까?

최영은
나는 우리나라에서 산부인과로 제일 유명한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다. 유도 분만해야 한다고 해서 옥시토신 엄청 맞고, 제모에 관장까지 굴욕 3종 세트 다 했다. 그래도 애가 안 나오니까, 아침 7시쯤 됐나? 회진을 도는 인턴이며 전공의들이며 내가 본 사람만 해도 다섯 명이 넘는데 다 나를 둘러싸고 난리였다. 힘 있는 전공의 두 명이 배에 올라타서 밀어내고. 정말 수치스러웠다.

Lady
듣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최영은
그런데 나는 사전에 선택 진료로 여의사를 선택했다. 하지만 막판에 어떤 상황에 다다르니, 내가 여의사를 선택한 이유 따위는 사라졌다. 수치스러웠다. 산모 인권이 저절로 떠오르더라. 애를 낳아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라 이의 제기 한 번 없이 고스란히 당했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 책 작업을 하면서 보니 굴욕 3종 세트도 할 필요 없고 제모도 산모의 출산을 도와주기보다는 회음절개 부위의 봉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하는 거라더라. 관련 분야 전공자라는 말을 계속하게 되는데, 정말 책을 번역하면서 드는 생각은 ‘와! 내가 무식했구나’였다. 그러면서 예비 산모들은 이런 내용들을 미리 알았으면 좋겠다 싶더라.

최세문
시중의 임신, 출산 관련 책들에는 어떻게 낳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다.

정윤선
임신과 출산에 대한 백과사전 같은 책들도 자연 분만과 제왕절개 두 가지 경우만 소개한다.

Lady
병원 중심이 아닌 산모 중심의 이야기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해가 쉽다. 한국의 산부인과에 대해 쓴소리를 부탁하고 싶다. 전공자로서 혹은 관련 책 번역자로서, 아니면 한국 산부인과에서 출산을 경험한 엄마로서 말이다.

최세문
첫째는 조산원에서 낳았지만 둘째와 셋째는 미국 하버드의대 부속 병원에서 낳았다. 둘째 임신 7개월쯤 되니 병원에서 일종의 출산 계획 선택지를 주더라. 우리 병원은 제왕절개가 몇 퍼센트고, 회음절개율이 몇 퍼센트고, 아들일 경우 태어나자마자 포경수술을 하는 사람은 몇 퍼센트고 등등 자기네 병원의 현황을 이야기해줬다. 그러면서 “경막외 마취 할래, 안 할래? 자연 열상을 원하니?” 등등 다양한 항목에서 내가 원하는 출산 방식에 의견을 낼 수 있는 출산 계획표였다. 산모가 기입한 후 출산 계획표 한 부는 산모가, 한 부는 병원이 갖는다. 그 과정을 통해 내가 내 아이를 어떻게 낳을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더라. 그리고 실제 그렇게 실행된다. 그런데 한국 병원은 어떤가. 관련 분야 연구자인 나조차도 그 계획표를 받고 놀랐으니까 말이다.

일동
우린 동의서만 받는다.

출산 계획표 주는 미국, 동의서만 주는 한국

주지수 한국은 의료적인 문제의 수에 걸리거나 회피하려는 목적의 동의서만 있다. 미국 같은 나라가 왜 선진국인가 하면, 전에 호스피스 연구를 했었는데 죽음을 앞뒀을 때 출산 계획표처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인공호흡기를 할 건지, 심폐술을 할 건지 등을 결정할 수 있는 여지를 주더라. 우리는 그런 게 없다. 소비자인 산모는 정보가 없고 의사인 전문가에게만 정보가 있으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최세문
보건의료 체계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미국이 항상 옳다고 할 수는 없다. 한국과 미국의 의료수가 차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으니 말이다. 다만, 우리는 우리나라의 경우 산모 중심의 출산이냐, 의료인 중심의 출산이냐 하는 맥락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최영은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에 둘라 제도가 빨리 도입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됐다. 둘라는 출산 경험이 있으면서 출산시 산모 옆에서 건강한 출산을 북돋아주고 마사지를 해주면서 신체적·정신적으로 지지하는 여성을 말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둘라의 존재 자체도 몰랐다. 우리나라는 1인 분만실, 가족 분만실 등이 이미 보편화돼 있으니 둘라를 들일 수 있는 환경이라 본다.

가문희
나는 모든 걸 빨리 결정해야만 하는 병원의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엄마이기보다 환자이기에 병원의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기형아 검사를 보건소에서 받겠다고 하면 의아하게 본다. 병원이 짜놓은 계획에 따라 모든 검사를 일률적으로 해야 되고,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문제다. 물론 수가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긴 하지만 우리의 임신과 출산 환경은 선택의 폭이 거의 없다. 그 순간 결정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미국처럼 출산 계획표를 출산 3개월 전에 미리 주면서 생각해볼 시간을 주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당일 진료가 끝나자마자 “다음에 뭐뭐 하실 거죠?” 하고 바로 다음 예약을 잡는 식이다.

정윤선
“하실 거죠”도 아니다. “다음엔 ○○검사예요. ○○로 가세요!”다.

주지수
사실 병원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게 쉬운 건 아니다.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출산이 질병이 아니라면 굳이 의사만 나서야 하는 일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와 같은 우려할 만한 일이 발생하면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또 의료수가나 수익 창출 부분도 무시 못한다. 무조건 의사에게 공공성만 강요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그럼에도 일반인은 더 모르니까 결국 전문가가 먼저 나서줘야 하는 건 맞다고 본다.

산모 중심의 출산 환경 만들어져야

Lady 분위기를 조금 바꿔보자. 자연 분만과 모유 수유에 대한 엄마들의 묘한 자부심이란 게 있다. 남자들 상황으로 치환하면 자연 분만에 모유 수유면 현역 제대했다는, 뭐 그런 자부심?

정윤선
있다. 산후조리원만 가도 “자연 분만했어요?”부터 묻는다. 그 안에는 어떤 뿌듯한 감정이 깔려 있다.

가문희
완모한 엄마는 더 자부심이 있다. 모유 수유하지 못한 엄마는 아이에게 많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모유가 잘 안 나와도, 아이가 아파도 죄책감을 갖게 된다.

주지수
모유 수유를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산모를 많이 봤다.

최세문
난 가슴이 작거나 다른 문제가 있어 모유 수유를 끊고 싶어 하는 사람을 외려 많이 봤다.

주지수
하지만 모유 수유가 대세다. 그런데 직장 다니는 엄마들은 실시간 모유 수유를 못 한다. 그런 미안함도 크다. 모유 수유로 고민하거나 고생하는 친구들에게 열심히 하다가 정 안 되면 분유 먹이라고 격려해준다. 그래도 된다고. 대신 먹일 때 “예쁘다, 사랑한다” 말해주라면서 말이다. 괜히 죄책감 갖지 말라고 그런 식으로 위로해준다. 아무도 위로해주는 곳이 없으니까.

최영은
내가 다닌 병원은 모유 수유를 적극적으로 권했다. 처음에는 ‘와, 병원에서 나와 아이의 애착 형성에 이렇게 애를 써주는구나’ 하고 감동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병원 평가 지표와 관련이 돼 있더라(웃음).

일동
모유 수유 안 한다면 모성애 없는 엄마처럼 보고!(웃음)

최영은
출산휴가 동안 나는 잘 못 챙겨 먹었다. 젖이 나오게 국물을 먹어야 한다고 해서 종종 아침마다 라면을 먹었다. 또 양심은 있어서 자연주의 유기농 무슨 그런 라면을 먹었다(웃음). 그런데 돌이켜보면 영양가나 뭐 이런 걸 따져봤을 때도 정말 좋았을까, 의문이 가더라.

최세문
그렇다고 해서 분유가 모유보다 낫다는 결론은 위험하다.

최영은
맞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조건 주변의 말을 맹신하지 말고, 필요 이상의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는 거다. 가뜩이나 애를 낳고 키우는 걸로도 힘든데.

Lady
여기 다섯 분은 경험에 지식이 더해졌다. 다시 출산을 한다면 어떤 출산을 하고 싶은가. 요즘 수중 분만, 그네 분만 등등 다양한 출산 방법이 많은데.

일동
가정 출산이다!

최세문
가족과 탄생의 순간을 함께하고 싶다.

일동 그거 좋다!

가문희
자연 출산은 아니었지만 병원에서 자연 분만을 했고 모유 수유도 했다. 운 좋게도 분만에 대한 기억이 두 아이 모두 나쁘진 않았다. 자연 분만을 할 수 있게 해준 의사에 대한 믿음도, 의료진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아, 이런 건 안 해도 됐구나’ 하는 불필요한 요소들이 있었다. 다시 출산을 한다면 의사의 코치하에 조산사의 도움으로 아무런 의료적 개입이 없는 자연 출산을 하고 싶다.

Lady
마지막으로 출산 경험을 가진 엄마의 마음으로 번역한 이 책이 어떤 역할을 했으면 좋겠나?

최세문
책 후기에도 썼지만 최면 출산으로 유명한 메리 몽간이 “출산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출산을 어떻게 하는가 역시 바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제 우리 차례가 아닌가 싶다.

출산 관련 서적 번역한 다섯 엄마가 말하는 출산, 그 놀라운 현실

출산 관련 서적 번역한 다섯 엄마가 말하는 출산, 그 놀라운 현실

주지수 (38)
간호학에서 출발해 보건학을 거쳐 정책학을 공부하고 현재 강동구 보건소에 재직 중이다. 연년생 아들 형제를 키우고 있는 엄마로, 첫아이는 분만 예정일이 지났다는 이유로 옥시토신을 퍼붓듯이 맞아 자연분만을 못했다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가 둘째는 자연분만에 성공했다.
출산 관련 서적 번역한 다섯 엄마가 말하는 출산, 그 놀라운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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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희(38)
두 딸의 엄마로 자연 분만과 완전 모유 수유에 성공했다는 자부심이 있었으나 완전한 자연 출산은 아니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소아중환자실 간호사였으며, 보건학을 공부하고 현재 중학교 보건교사로 재직 중이다.

출산 관련 서적 번역한 다섯 엄마가 말하는 출산, 그 놀라운 현실

출산 관련 서적 번역한 다섯 엄마가 말하는 출산, 그 놀라운 현실

최영은(36)
보건학을 전공했고 보건정책 분야의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유도 분만으로 또래보다 일찍 만만치 않은 출산을 경험했다. 둘째를 낳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첫 출산의 두려움 때문인지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출산 관련 서적 번역한 다섯 엄마가 말하는 출산, 그 놀라운 현실

출산 관련 서적 번역한 다섯 엄마가 말하는 출산, 그 놀라운 현실

최세문(38)
국제보건을 전공하고 보건정책을 연구하는 세 아이의 엄마다. 첫째 아이는 한국에서, 둘째와 셋째 아이는 유학 중 미국 보스턴에서 낳았다. 서로 다른 두 나라의 보건의료 체계에서 출산한 경험을 통해 출산정책과 다문화 가정에 관심을 갖게 됐다.

출산 관련 서적 번역한 다섯 엄마가 말하는 출산, 그 놀라운 현실

출산 관련 서적 번역한 다섯 엄마가 말하는 출산, 그 놀라운 현실

정윤선(37)
네 살 아들과 돌쟁이 딸을 둔 엄마다. 이 책의 번역에 참여하면서 둘째 아이를 출산했기에 이 책의 내용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보건 정책 분야의 연구원으로 일하다 출산과 함께 잠시 중단하고 현재는 의료경영을 전공으로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강은진(객원기자) ■사진 / 장태규(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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