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쇼팽 콩쿠르 한국인 첫 우승, 조성진을 말하다
조성진(21)은 서울예술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한국에서 피아노를 배웠다. 사실상 국내파 연주자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국내 P건설사에 재직 중인 아버지와 가정주부 어머니를 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집안에 음악을 하는 친인척조차 없다고 하니 오히려 드라마틱한 배경이다. 그를 보며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네 피아노 학원 문을 두드리고 싶어질 정도다. 실제로 그는 여섯 살 때 우연히 친구를 따라 동네 음악 학원에 다니면서 피아노를 처음 접했다고 한다. 그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본 피아노 선생님은 “개인 지도를 받는 것이 좋겠다”라고 권유했고, 10세에 예술의전당 영재아카데미에 들어간 이후 12세에 금호영재콘서트를 통해 데뷔했다. 본격적인 피아노 수업을 시작하며 만난 두 명의 선생님인 피아니스트 신수정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와 박숙련 순천대 교수는 지금의 조성진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신 교수는 조성진을 어릴 때부터 아주 특별한 재주를 가진 제자라고 말한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심지가 깊고 의지력이 강했어요. 어릴 때부터 성숙한 마음과 태도를 지녔던 제자, 그래서 한 번도 ‘어린아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천부적 재능을 갖춘데다 목표를 향한 집중력이 대단해요.”
박 교수는 쇼팽 콩쿠르는 클래식 피아니스트들에게 최고의 대회로, 마치 김연아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만큼 굉장한 일이라고 제자의 우승을 자평했다.
“워낙 깊이 있고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은 연주를 하는 성진이지만 첫 번째 연주자로 나왔을 때는 불안했어요. 콩쿠르에서 첫 번째는 모든 것의 기준이 돼버려 정말 잘하지 않으면 우승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심사위원 가운데 한국계도 없었고, 다른 참가자 중에 심사위원 제자도 있었기 때문에 긴장을 많이 했을 텐데 잘해줬어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도 조성진을 도운 사람 중 한 명이다. 그의 실력을 일찌감치 알아본 정경화는 2012년 독주회의 협연자로 그를 선택했다.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겸손하고 똑똑하고 열심히 하는 태도가 좋았다”라고 그에 대한 인상을 밝히기도 했다. 또 그녀는 프랑스 유학에 많은 조언을 해줬고, 쇼팽 콩쿠르를 앞두고는 ‘쇼팽 전문가’라고 불리는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를 소개시켜 조언과 지도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유학을 가기 전까지 아낌없는 후원을 해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도 그를 우뚝 서게 하는 데 일조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기업치고는 대중적인 스포츠보다는 문화예술 분야 후원이 후한 기업이다. 작고한 박성용 회장이 클래식 애호가였으며, 현재도 금호아시아나 본사에서는 문화가 있는 날이라는 이름으로 로비에서 음악회를 열고 있다. 또 지금까지 1,000여 명의 클래식 영재를 발굴하고 후원해왔다. 그의 재능을 제일 먼저 알아본 피아노 학원 선생님부터 두 명의 스승, 음악계 선배들의 크고 작은 도움과 기업의 후원으로 지금의 조성진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만들어진 것이다.

쇼팽 콩쿠르 한국인 첫 우승, 조성진을 말하다
실력만큼이나 바른 성품
조성진을 지금까지 지켜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진중하고 성실한 태도다. 쇼팽 콩쿠르 우승은 물론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국제 피아노 콩쿠르 3위 등 화려한 국제 수상 경력에도 늘 한결같다. 심지어 성남 신기초등학교 6학년 때 출전한 ‘이화경향콩쿠르’ 초등부 우승을 했던 당시에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영원한 1등도, 영원한 꼴찌도 없다고 배웠습니다. 겸손하게 피아노를 공부하겠습니다”라는 어른스러운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부모의 행동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 조성진의 부모는 이번 대회 이후 모든 언론 인터뷰를 피했다. 그저 “조성진을 음악계에 내보내면서 부모는 절대 앞에 나서지 않기로 했다”라는 뜻을 밝혔다. 그의 어머니는 이번 대회장에서 “아들이 우승했을 때 기분이 어땠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죄송합니다”라며 한마디만 하고 자리를 피했을 정도다. 그의 들뜨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곧은 성품은 부모님의 영향도 커 보인다.
지난 11월 18일 일본 NHK 교향악단과의 협연을 앞두고 기자 회견을 가진 조성진은 대회를 마치고 엄청난 양의 이메일을 받고는 유명세를 실감했지만, 유명해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탁월한 음악가가 되는 것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또 음악을 공부하는 이들에 대한 조언 한마디를 요청했지만 “10년 후에는 제가 뭐라고 충고해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저도 아직 불안정한 상황이라서 감히 충고나 조언을 하기에는 이릅니다”라며 겸손한 태도로 답변을 고사했다. 역시나 ‘조성진다운’ 발언이었다.
쇼팽 콩쿠르 역대 수상자들은?
폴란드 출신의 음악가인 쇼팽을 기리는 쇼팽 콩쿠르는 1927년 창설됐다. 참가 자격인 16~30세 연주자들이 오로지 쇼팽의 곡으로만 경연을 펼치는 대회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잠시 중단된 것을 제외하고는 5년마다 계속 열렸다. 한국인 피아니스트의 대회 성적은 2005년 임동민·동혁 형제가 2위 없는 공동 3위를 차지했었다. 쇼팽 콩쿠르는 우승한 피아니스트의 현재 위치만 보더라도 세계적인 스타들의 등용문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현존하는 피아니스트 중 가장 모범적인 연주를 들려주는 인물로 꼽히는 피아니스트인 마우리치오 폴리니,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 쇼팽 콩쿠르 역사상 최연소 우승한 크리스티안 짐머만(그는 조성진의 결선 연주가 끝나자마자 절친한 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에게 ‘대체 이 친구가 누구야? 금메달이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패기와 시적 연주로 ‘부닌 피버’라는 유행어를 만든 스타니슬라프 부닌 등이 있다. 이들은 세계적인 피아노 거장이자 이 대회의 역대 우승자들인 것.

조성진의 음반이 발매된 첫날, 그의 음반을 구입하기 위해 클래식 전문 매장 ‘풍월당’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
조성진 열풍, 클래식 대중화로
조성진 열풍으로 무엇보다 기대되는 것이 클래식의 대중화다. 이번에 발매된 「2015 쇼팽 콩쿠르 실황 앨범」은 초판 5만 장을 찍었으나 모두 동이 났다. 유니버설뮤직 측은 연내에 초도 물량이 소진될 것으로 내다봤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인기로 인해 5만 장을 추가 발주했다고 알렸다. 클래식 음반으로도 이례적인 기록이지만 웬만한 아이돌 그룹도 5만 장의 판매량을 넘지 못하는 요즘 업계 동향과 비교해봐도 그의 열풍을 실감할 수 있다. 조성진의 한국에서 첫 무대는 2016년 2월 2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와 입상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갈라 콘서트로 입장권은 이미 매진됐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제공 / 유니버설뮤직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