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한길, 김혜순 한복 명인
김혜순(58) 한복 명인의 작업실이 있는 공간, 흐드러지게 핀 들꽃과 까치밥으로 남긴 빨갛고 탐스러운 홍시가 먼저 오는 이를 반긴다. 그녀의 취향을 단박에 알 수 있는 풍경이다. 자칫 강하고 뚜렷한 인상 때문에 말 한마디 건네기 쉽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은, 남도의 정이 듬뿍 담긴 사투리와 함께 사람을 편하게 만들 줄 아는 재주가 있다.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사람들이 말도 못 붙일 지경이죠. 다들 차갑게 보시니 손님이나 주변 분들이 거리감을 느끼지 않도록 일부러 틈을 보이거나 푼수 떠는 연습을 해야 한다니까요.”
정감 어린 말투로 유화된 인상이지만 이따금 엿보이는 일에 대한 신념과 고집은 감출 수가 없다. 김혜순은 어떤 국내 디자이너보다 국제무대에 한복을 가장 많이 소개한 이다. 그것만이 자신의 방향으로 알고 33년을 걸어왔다. 그간 그녀는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과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등 15개 국가 23개 도시에서 약 50회의 한복 패션쇼를 열었다. 김혜순의 해외 행사는 정부나 기업의 후원을 받고 진행한 경우는 드물다. 모두 그녀가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직접 진행해 이룬 쾌거라 더 놀랍다. 사명감 없이는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작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모 글로벌 패션지가 주최하는 웨딩 박람회인 ‘루브르박물관 웨딩 페어’에 한국 혼례복 패션쇼를 진행하면서 조선왕조의 혼례복 등 총 6벌을 소개했다. 이 행사에 한국 옷이 소개된 것은 처음이다.
“작년 10월 5일에 루브르박물관에서 우리나라 왕실 혼례복 패션쇼를 열었어요. 일명 패션의 종주국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우리 옷으로 쇼를 했고, 현지인들에게 호평을 받은 건 디자이너로서 감개무량한 일이죠.”
한복을 처음 접한 이들은 생소한 패턴들과 화려한 색감에 반해 탄성을 지른다. 한복은 그들이 쉽게 접했던 중국이나 일본 전통복과는 다르다. 치파오, 기모노, 아오자이 등 동양 여인의 전통복은 대부분 하나의 조각, 원피스로 이뤄져 있지만 한복은 기능성과 함께 음양의 의미까지 담은 윗옷과 아래옷으로 나뉘어 차별성을 두고 있다.
“다들 무척 좋아하죠. 화려하고 색의 매치가 독특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보기는 좋지만 무대 뒤에서는 여느 패션쇼보다 두 배는 치열합니다. 서양 옷과 달리 한복은 모델이 직접 입을 수도 없고, 옷을 갈아입을 때는 하나하나 풀고 다시 묶어야 하니까요. 하도 고돼서 옷을 입히다가 정신을 놓아버리고 쓰러진 적도 있어요.”
눈에 보이는 화려한 작업만 한 것도 아니다. 끊임없이 복식 연구를 거듭해 전통 한복에 대한 복원 작업도 꾸준히 해왔다. 손이 많이 가고 힘들어 웬만한 한복 디자이너도 꺼리는 작업이다. 그녀의 복원작은「아름다운 우리 저고리」와「왕의 복식」이란 책으로 묶여 출간되기도 했다. 또 2013년 KBS-1TV 다큐멘터리 ‘의궤, 8일간의 축제’를 통해 왕실 의상의 복원도 기꺼이 맡았다.
“복식 공부는 끊임없이 했어요. 굴 하나 파면 또 다른 자료가 나오고 그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니까 지금도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분야예요. 한복에 한창 미쳐 있을 40대 초반에 복원 작업을 많이 했어요. 옷감 선정하면 손으로 염색하고 다시 다듬이질하고 한 땀 한 땀 손바느질을 해야 하니 한 달에 한 벌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죠. 지금은 하라고 해도 못해요(웃음).”
김혜순은 이제 남은 일은 후학 양성과 마지막 힘을 다해 국제사회에 좀 더 한복을 알리는 일이라고 했다. 그 첫 번째 프로젝트였을까. 그녀는 올해 전남 순천 청암고등학교에 디자인 스쿨 ‘예정관’을 설립해 기부했다.

오직 한길, 김혜순 한복 명인
앞으로 이뤄야 할 일들
김혜순은 자신의 손으로 장인을 길러내고 싶다. 우연히 연이 닿은 순천 청암고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다 아이들의 빛나는 눈동자를 발견했다.
“아이들에게서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았고, 기회와 여건을 마련해주면 좋겠더라고요. 전남 교육청에 협조를 부탁해서 예정관을 짓게 됐죠. 한복은 물론 총괄적으로 디자인을 가르치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아이들이 자신들의 열정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이요.”
또 예정관을 통해 소외된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다. 옷을 가지고 놀면서 배우고 꿈꿀 수 있는 곳. 예정관의 설립 취지이자 목표다. 그녀는 요즘도 토요일마다 예정관을 방문해 다문화 가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우리 옷 만들기’ 시간을 갖는다.
“아주 재밌어요. 저는 재능기부일 뿐이고요. 교육청과 지인들이 아이들의 옷감이나 부품을 살 비용을 지원해줍니다.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일 수 있는 다문화 가정 학생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또 그녀가 디자인한 생활한복으로 현재 4개의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일주일에 한 번 한복 입기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한복을 입은 아이들은 일단 태도부터 달라진단다.
“2, 3학년 대상으로 시작했는데 고학년 친구들에게서 ‘왜 우리들은 안 해주냐’라는 불만이 나올 정도로 반응이 좋아요. 아이들이 한복을 입으면 바뀌더라고요.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어요. 평소에 하던 욕도 하지 않는다고 해요. 인성교육에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현재 KBS PD님이 현장에 가서 관련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어요.”
김혜순은 옷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옷은 그 사람을 표현한다. 과거 관직에서 물러날 때 ‘옷 벗었다’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제가 영화 ‘광해’ 의상을 제작하면서 느꼈어요. 영화 속에서 거지와 왕이 옷을 바꿔 입잖아요. 그다음부터는 거지가 된 왕이 아무리 ‘내가 왕이다’라고 소리를 질러도 사람들은 무시하죠. 영화 안에서 옷이 곧 권력이었던 것처럼, 옷은 곧 그 사람의 힘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거죠.”
그녀의 한복이 대중의 시선을 가장 크게 사로잡았던 것은 KBS-2TV 드라마 ‘황진이’의 의상을 맡으면서다. 18세기에 실제 예인들에게 유행했던 짧은 저고리와 화려한 수를 놓은 한복을 선보이면서 한복의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녀는 유행처럼 마구잡이로 흐르는 한복 디자인을 보면서 씁쓸한 뒷맛을 보기도 했단다.
“한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격식이에요. 때와 장소에 맞게 올바로 입어야 합니다. 물론 평상시에 생활한복을 입는 것은 문제 되지 않아요. 과거 우리 조상들도 그렇게 편하게 입었으니까요. 그런데 유행이고 예쁘다는 이유로 여자아이 돌복으로 황진이의 기생 옷을 입히는 모습을 보고 정말 아차 싶었어요. 모방을 하더라도 최소한 옷에 담긴 뜻을 이해해야 될 텐데, 안타깝고 제 책임이 커요.”
우리의 한복이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면 자국민에게 더욱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녀가 한복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려는 이유 중 하나다. 김혜순의 숙원, 한복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재다.

오직 한길, 김혜순 한복 명인
장인, 첫발을 내딛다
김혜순은 프랑스 패션쇼를 치르며 한복의 전통과 의미, 그 아름다움에 대한 자료를 준비해갔다. 파리에 위치한 유네스코 본부에 방문해 문화유산으로서 한복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서다.
“과거 저희 가게에 우연히 유네스코 소속 스리랑카 대사가 방문한 적이 있어요. 한복 인형이 전시돼 있는 것을 보고 흥미를 갖더군요. ‘이렇게 아름다운 전통 의상을 세계에 알리지 않느냐?’라고 의아해하더라고요. 가까운 일본의 기모노는 유네스코 본부에서 패션쇼를 수십 번 했고 이미 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됐다는 거예요. 역사적으로 보자면 백제의 옷이 넘어간 것이 기모노거든요. 기모노보다 유구한 전통을 갖고 있는 한복이 지금껏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은 말이 안 되잖아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루브르박물관 웨딩 페어’에서 한국 혼례복 패션쇼를 진행한 김혜순. 조선왕조의 혼례복 등 총 6벌을 소개했다. 이탈리아에서 서양 복식을 공부한 그녀의 딸, 정민경 샐리드레스 대표도 어머니를 물심양면 도왔다.
“일단 욕심이 나서 날짜는 받아놓고 왔는데 막막한 거예요. 국가적인 차원에서 치러야 할 일을 개인이 나서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고, 저 또한 솔직히 감당하기 힘들고요. 그래서 평소 친분이 있던 김금래 전 여성가족부 장관께 요청을 했어요. 그분의 연결로 문화체육관광부 승인과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어요.”
김혜순이 그토록 바라던 바가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무엇을 보여줘야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벌써 마음이 급해진다.
“정통 왕실 옷부터 현대에 우리가 입는 혼례 의상까지 모두 보여줄 예정이에요. 문화란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요. 이번 한 번으로 한복이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제가 길을 닦아놓으면 많은 디자이너들이 패션쇼를 유치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결실을 맺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혜순은 본인의 표현대로, 한복에 대해서는 ‘미치광이’라고 할 정도로 열정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작 대외적으로 입는 자신의 옷은 청색과 백색을 매치한 수수한 한복 단벌뿐이다. 어떤 매체와 인터뷰를 해도 항상 그 옷이다. 이번 촬영을 위해 좀 더 화려한 색상을 요청했지만 결국 백색 두루마기를 하나 더 걸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저같이 이름 걸고 일하는 사람이 튀면 상대방이 불편할 뿐이에요. 적당히 숨어야 해요. 항상 양보해야 탈이 없고요. 예정관 설립 기념식에서도 마이크 한 번 잡지 않았고, 한국복식과학재단을 만들 때도 제 이름은 넣지 않았어요. 그런 것에 어울리는 사람도 아니고 머리만 아파요. 저는 그냥 일하는 사람이에요. 즐겁게 일하다가 때가 되면 훌훌 미련 없이 날아가버리면 그만인 거죠.”
수많은 일들이 김혜순을 거쳐갔지만 결국 그녀가 있는 자리는, 들꽃이 피고 감나무가 사계를 나는 공간인 작업실이다. 누구든 그녀를 만나려면 이곳에 오면 된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33년간 한 가지 생각만을 한 후의 결론이다.
“한복을 업으로 살았지만 어려워도 생계를 걱정하지 않았어요. 그냥 끝까지 하는 것을 임무로 알고 수행했을 뿐이에요. 저에게는 날마다 이 자리에 출근하는 것이 행복이에요. 제 그림자는 저 감나무예요. 감나무는 겨울이 되면 몸에 수분을 쫙 빼고 추위를 견뎌요. 자연에 순응하며 사계절을 나는 것, 그게 제 삶이에요.”
묵묵히 한 생각으로 한길만을 걸어왔다. 자연스럽게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이 생겼고 그것을 수행해왔다. 큰 부귀영화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 놓인 일을 하나씩 이뤄가며 순간을 만끽하는 것. 장인의 삶은 이런 게 아닐까.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김동연(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