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엄마와 요즘 아이가 함께 보는 만화, ‘안녕?! 자두야!!’ 의 이빈 작가

그 시절 엄마와 요즘 아이가 함께 보는 만화, ‘안녕?! 자두야!!’ 의 이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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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어린이 세 명 중 한 명은 봤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애니메이션 ‘안녕?! 자두야!!’. 작가의 유년 시절을 바탕으로 한 이 만화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1970, 80년대 생활상과 정서를 고스란히 그려내 엄마와 아이가 함께 보는 만화로 더 유명하다. 후속 만화 자료 조사차 미국에 체류 중인 원작자 이빈 작가와 이메일로 인터뷰를 나눴다.
그 시절 엄마와 요즘 아이가 함께 보는 만화, ‘안녕?! 자두야!!’ 의 이빈 작가

그 시절 엄마와 요즘 아이가 함께 보는 만화, ‘안녕?! 자두야!!’ 의 이빈 작가


두 세대를 잇는 공감

‘안녕?! 자두야!!’가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원작자가 보는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요?
TV 애니메이션 ‘안녕?! 자두야!!’는 제가 만든 원작과는 조금 차이가 있어요. 원작은 7080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추억 회상용 생활 만화’ 같은 느낌인데, TV 애니메이션은 제작을 맡은 ‘아툰즈’가 그 대상을 주 시청자인 ‘어린이’에 철저하게 맞춰서 시나리오부터 새로 기획한 거죠. 원작에는 전혀 없는 에피소드도 있고 다른 점이 많습니다. 저는 기획 과정에서 애니메이션을 함께 보는 엄마, 아빠들도 공감할 수 있도록 원작에 있는 에피소드를 최대한 활용해줄 것을 적극 부탁드렸습니다. 원작은 1997년부터 시작해 아직도 연재 중인 나름 스테디셀러인데, 저는 그 비결을 부모와 자녀 세대를 이어주는 ‘공감’에서 찾았거든요. 자녀들은 자신들만이 겪고 있는 일과 감정인 줄 알았는데 엄마, 아빠도 20, 30년 전에 똑같이 겪은 거예요. 그것이 두 세대를 공감으로 이어주는 거죠.

만화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다니 감회가 새로울 텐데요.
만화 원작자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영예라고 생각합니다. 제 머릿속에 있던 이야기를 손으로 그리고, 그것을 다른 분들이 다시 다른 시점으로 움직이는 그림으로 만들어주시고, 거기에 목소리까지 입혀 3차원 영상으로 만들어내 TV에서 방영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다는 감동은 솔직히 지금도 믿기지 않는답니다. 제 자식이 훌륭하게 잘 커서 TV에 나오는 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랄까요.

‘안녕?! 자두야!!’가 작가님의 유년 시절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던데요. 어떻게 처음 구상하게 됐는지, 그 시작이 궁금해요.
지금은 웹툰이 많이 활성화돼 생활툰이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제가 활동하던 출판 만화 시절에는 그런 영역이 거의 없었어요. 저는 만화 그리는 것도 좋아했지만 글쓰기를 좋아하는 문학소녀였습니다. 제가 살았던 시대와 어린 시절을 수필 같은 형식의 만화로 그리고 싶다는 바람을 어릴 때부터 품고 있었어요. 마침 학산문화사에 제 기획이 받아들여져 연재가 결정돼 기회를 얻을 수 있었죠.

작가님의 이야기를 작품화시킨다는 것이 구상했던 것과는 달리 실제 작업에서 어려웠던 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처음 만화잡지 「파티」에 연재를 시작할 때는 연재 작가들도 많아서 제가 허락받은 분량이 12페이지였어요. 작은 페이지에 줄줄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구겨 넣다 보니 정말 힘들었어요. 그렇다 보니 대사와 내레이션이 엄청 많아져서 담당 기자님이 “페이지는 가장 짧은데 식자(대사 텍스트)는 제일 많다”라고 하셨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나면서 제 기억이 왜곡돼서 분명치 않은 기억을 쥐어짜며 스토리를 쓸 때… 가족들에게 자문을 하면 어떻게 된 영문인지 각자의 기억이 전부 다 달라서 더 미궁 속에 빠져버렸던 기억이 종종 있네요(웃음).

극 중 캐릭터와 실제 가족이 얼마나 닮았나요?
극 중 캐릭터와 제 실제 가족의 구성은 전부 일치해요. 하지만 자두 엄마 난향씨는 실제 저희 엄마와는 다르게 가장 많이 재창조된 캐릭터입니다. 아무래도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또 극 중 자두와 함께 비중이 큰 인물이니까 더욱 과장을 많이 해서 입체적으로 만들었어요. 실제 저희 엄마는 난향씨랑 달리 날씬하시고, 멋 부리는 것과 쇼핑을 좋아하시는,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여성적인 성격이셨습니다. 난향씨 같은 호탕한 여걸형이 절대 아닙니다. 공부에 집착하시는 것만 똑같다고나 할까요?(웃음) 마음이 아픈 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TV에서 방영되는 것도 못 보시고 암 투병을 하다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제일 먼저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TV를 보셨으면 아마도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셨을 거예요. 차라리 자두 엄마처럼 호탕하게 사셨으면 스트레스 안 받고 암 같은 것도 안 걸리지 않으셨을까, 혼자 실없이 이런 생각도 한답니다. 자두 엄마는 제가 ‘우리 엄마는 이랬으면 좋겠다’ 하고 만들어낸 이상형의 엄마인 것 같아요. 힘세고 강인하고 억척이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생활력 강하고…. 그것은 제가 되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고요.

1 단행본 표지에 실린 자두 엄마 난향씨의 실제 모델인 이 작가의 어머니. 만화 속 자두 엄마와는 달리 외모를 잘 가꾸는 멋쟁이셨다고. 2 자두, 미미, 애기의 모델이 된 삼 남매의 어린 시절. 맨 오른쪽이 자두의 실제 모델인 이빈 작가다. 3 돌돌이 캐릭터에 영감을 준 남편 만화가 전호진씨와 아들 호빈군.

1 단행본 표지에 실린 자두 엄마 난향씨의 실제 모델인 이 작가의 어머니. 만화 속 자두 엄마와는 달리 외모를 잘 가꾸는 멋쟁이셨다고. 2 자두, 미미, 애기의 모델이 된 삼 남매의 어린 시절. 맨 오른쪽이 자두의 실제 모델인 이빈 작가다. 3 돌돌이 캐릭터에 영감을 준 남편 만화가 전호진씨와 아들 호빈군.


어느새 나의 분신, 난향씨

자녀분의 반응도 궁금해요. 엄마의 어린 시절을 보는 셈이니까요.
열두 살짜리 말썽꾸러기 아들이 하나 있는데, 아들은 연재분이 출판되기 전에 가장 먼저 보고 “재미있네, 없네” 하고 적극 모니터를 해주는 독자 1호입니다. 저학년 때는 자두 캐릭터 학용품을 여자친구들에게 선물해 관심을 끌어보고자 했던 전력이 있으나 본인은 극구 부인합니다(웃음). 지금도 제 책과 만화영화를 적극 홍보해주는 열혈 서포터죠. 현재 저희는 미국에 살고 있는데, 여기 여자친구들에게 유튜브로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고 그 친구들과 함께 주제가도 따라 부른답니다. 나름 한류 전도사이지요.

주인공 자두를 제외하고 작가님이 가장 애정을 품고 있는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당연히 난향씨, 자두 엄마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엄마가 됐으니까요. 연재 초반에는 자두 캐릭터에 감정이입되며 스토리를 썼는데 이젠 난향씨에게 감정이입이 돼요. ‘내가 어렸을 때 엄마가 왜 그랬을까?’ 하던 의문들이 이젠 ‘그땐 엄마가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지금의 그 거칠고 못된(?) 난향씨는 저의 분신입니다. 아들이랑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저랑 똑같다고…!

작가들은 캐릭터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기도 한다는데, ‘나는 못했으나 자두는 하게 만든 것’이 있다면요?
자두는 제 어린 시절 모습을 모태로 만든 캐릭터이긴 하지만 다른 면도 많아요. 일단 천방지축 말괄량이 여자애였던 것은 맞고요(웃음).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고학년은 남녀 짝꿍을 안 시켰거든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제일 까불고 떠드는 남녀 한 명씩 지목해서 벌로 같이 앉게 하셨는데 그게 바로 저였어요(웃음). 또 만날 칠판에 이름 적히는 ‘떠드는 아이’였어요. 자두와 다른 점이라면 자두는 공부를 상당히 못하는 아이로 나오지만 저는 공부는 아주 잘했어요. 초·중·고 졸업할 때 모두 우등상을 탔고, 학창 시절 내내 반장, 부반장 도맡아 하고 학생부 임원도 했어요. 그리고 교내외 백일장을 휩쓰는 문학소녀였지요. 중학교 때는 영어 동시로 세계 청소년 문학상 시 부문에서 상을 탄 적도 있어요. 제 생각에 제가 학창 시절에 놀기도 잘 놀고 공부도 열심히 했던 모범생이라고 생각했는데, 동창들은 ‘괴짜에다 엉뚱한 아이’라고 기억하더군요. 만날 목에다 빨간 보자기 두르고 담장에서 뛰어내리고, 뜀틀 뛰다가 붕~ 하고 날아가 운동장 바닥에 얼굴 긁히고, 친구 그네 밀어주다가 그네에 맞아서 앞니 부러지고, 학예회에서 탈출 마술한다고 스스로 묶었다가 못 빠져나오는…. 그러고 보니 엉뚱한 괴짜 맞네요.

자두를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셋이 있잖아요. 돌돌, 성훈, 윤석이요. 이 셋 중에 작가님의 실제 남편도 있다고 하던데요!
남편(만화가 전호진씨)은 같은 만화가라서 만화가 모임에서 만나 결혼하게 됐고요. 자두 친구들 캐릭터는 학교 때 친구들 캐릭터와 실제 주변의 친구들 캐릭터를 합쳐서 만들었어요. 그게 돌돌이와 딸기, 재현이 등이에요. 윤석이와 성훈이는 어릴 때 친구들이고요. 물론 실제 이름은 다르지만요. 그중 남편이 모델이 된 건 돌돌이예요! 남편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참고했어요. 소아비만의 통통한 외형에 만날 학교에 게임기를 가져가져 애들 관심을 끌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모습이라 돌돌이와 하나도 안 닮았어요. 외려 우리 아들이 돌돌이랑 똑같이 생겼다는 것이 함정이랄까요(웃음).

이빈 작가가 꼽은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아름다운 시절’

이빈 작가가 꼽은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아름다운 시절’


행복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

작가님이 특별히 아끼는 에피소드는 뭔가요?
‘아름다운 시절’인데요. 어릴 때 쑥 캐러 동네 뒷산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했던 아름다운 연분홍색 꽃나무를 나중에 다시 몇 번이나 찾아봤지만 결국엔 찾을 수가 없었다는 내용이에요. 그때 우리 집 뒷산에 개살구나무나 개복숭아나무가 많아서 엄마는 그중 하나였을 거라고 했지만, 저는 그 나무가 다시는 돌아갈 수도 없고 다시 찾을 수도 없는 ‘나의 어린 시절’일 거라고 만화에 그렸죠. 엄마, 아빠가 젊고 건강한 모습으로 계시고(지금은 두 분 모두 작고하셨습니다만) 우리 못난이 삼 남매가 같이 꼼지락거리며 살던 행복했던 그 시절… 이젠 꿈에서도 잘 안 보이네요.

지금까지 다양한 팬들의 반응을 접하셨을 텐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요?
제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수업이 끝나고 남는 시간에 담임선생님이 ‘안녕?! 자두야!!’를 보여주셨대요. 아이가 얼마나 신기하고 놀랐을지! 저희 어렸을 때는 이런 것은 상상도 못했는데, 요즘은 수업의 일환으로 ‘검정 고무신’이나 ‘아기 공룡 둘리’, ‘안녕?! 자두야!!’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대요. 아이가 자랑스럽게 말하는 걸 들으니 무척 행복했습니다. 더욱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야지, 하는 사명감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만화가가 되셨나요?
저희 엄마는 딸이 교사가 되기를 강력하게 희망하셨기 때문에 만화 그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셨어요. 제가 그린 만화들을 다 찢어버리고 불에 태워버리셨죠. 그래서 원망도 많이 했어요. 요즘은 아이들이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하면 부모님들이 적극 밀어주시고, 저한테도 찾아와서 자문을 하시더라고요.

만화가의 삶이 녹록지 않았을 것 같아요. 만화가로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저는 20대 초반에 일찍 데뷔했어요. 하지만 연재를 하며 안정적인 전업 작가가 되기까지는 투잡을 뛰며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광고회사에 다니기도 했고, 학습 만화 프로덕션에서도 근무했고요. 외주로 만화와 영화 콘티 그리는 일을 하기도 했어요. 그 외에도 제가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다 해본 것 같아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밤에는 만화 원고를 그렸습니다. 그것도 잡지사에서 청탁을 받은 원고가 아니라 실어달라고 들고 갈 원고였지요. 미래도, 돈도 없었습니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해 10kg 넘게 살이 빠지고, 위장병과 디스크에도 걸린 적이 있어요. 회사에서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을 받으면 만화 재료를 샀는데 대부분이 일제라 가격이 굉장히 비쌌어요. 그래서 수중에 단돈 1,000원이 없을 때도 있었지요. 원고를 갖다 주면 당시엔 바로 원고료를 줬는데, 그날따라 담당하시는 분이 그걸 잊으셨는지 안 주시기에 달라고 말할 숫기도 없어서 출판사가 있던 서교동에서 집이 있는 흑석동까지 걸어온 적도 있었어요. 버스비 500원이 없어서요. 가장 빛나고 예쁠 20대였는데, 얼굴은 누렇게 떴고 등과 허리는 굽어 있었어요. 그렇지만 포기할 생각은 한 번도 안 했고 그 덕분에 전업 작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젊음을 다시 준다 해도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을 정도로 힘들었답니다.

그럼에도 만화가가 되길 잘했다 싶은 순간도 있겠죠?
구태의연한 대답이 되겠지만 제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씀해주시는 독자분들의 말이나 글을 읽었을 때죠. 최근에 한 인터넷 만화 게시판에서 ‘안녕?! 자두야!!’에 대해 쓰신 어떤 분의 글을 읽었는데, 저보다 제 작품을 잘 이해하고 계시더라고요. 만나서 차 한 잔 하며 오랫동안 얘기 나누고 싶을 정도로요. 그리고 ‘안녕?! 자두야!!’로 대한민국 콘텐츠 어워드에서 수상했는데, 상이란 것이 받으면 기분이 좋기는 좋더라고요(웃음). 혼자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누가 ‘참 잘한다~’ 하고 칭찬해주는 느낌이랄까요.

만화가로서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제가 팔에 힘이 없어 더 이상 펜을 들지 못해 만화를 그릴 수 없을 때까지 ‘안녕?! 자두야!!’는 계속 그릴 거고요. 아이가 이제는 많이 커서 어릴 때만큼 제 손이 많이 필요하지 않아 이제 슬슬 본업이었던 순정 만화를 다시 그려 볼까, 하고 계획하고 있어요.

‘안녕?! 자두야!!’가 앞으로 세상에 어떤 작품으로 남길 바라는지, 원 작가로서의 소망을 듣고 싶어요. 또 이 작품을 보고 있는 많은 자두들에게도 응원의 한마디 해주세요.
아이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검정 고무신’, ‘아기 공룡 둘리’, ‘뽀롱뽀롱 뽀로로’가 실려 있어서 정말 반가웠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죠. 그렇게 오래돼도, 다시 봐도 재미있고 좋은 만화, 우리 삶이 진하게 녹아들어간 ‘한국적인’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그리고 ‘안녕?! 자두야!!’를 보고 있는 많은 자두들께는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 주제곡) 어릴 때가 아니면 그 시절의 추억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 추억은 평생 동안 가지고 가는 가장 큰 재산입니다. 나가서 노세요! 노는 게 제일 좋습니다.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고 재미있게 놀 수 있도록 해주세요. 지켜주세요. 어릴 적, 제가 그렇게도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었던 그 아름다운 연분홍색 꽃나무는 ‘나의 어린 시절’입니다.

그 시절 엄마와 요즘 아이가 함께 보는 만화, ‘안녕?! 자두야!!’ 의 이빈 작가

그 시절 엄마와 요즘 아이가 함께 보는 만화, ‘안녕?! 자두야!!’ 의 이빈 작가

대한민국 대표 가족 만화 ‘안녕?! 자두야!!’는…
1997년부터 월간 순정만화 잡지 「파티」에 연재 중인 ‘안녕?! 자두야!!’는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을 ‘자두’라는 자전적 캐릭터를 통해 여러 에피소드를 풀어나가는 옴니버스 형식의 만화다. 주인공 자두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가 작품의 배경인 까닭에 지금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여닫이문이 있는 흑백 TV, 학교 앞에서 팔던 이름도 모르는 불량식품, 카세트테이프, 재래식 화장실, 채변 검사, 연탄가스에 대한 추억 같은 30, 40여 년 전 서울의 평범한 가정과 학교생활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술 좋아하는 아빠, 짠돌이 엄마 그리고 미스코리아가 꿈인 여동생과 독자로 태어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남동생. 이런 가족과 개성 강한 친구들 사이에서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자두의 일상은 시간을 초월해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2011년부터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제작돼 현재 SBS-TV에서 시즌3을 방영 중이다. 오늘의 우리만화상(2004), 대한민국 만화대상 우수상(2009) 등을 수상했다.

Profile 만화가 이빈은…
1991년 최초의 순정만화 전문 잡지 「르네상스」에 ‘나는 깍두기’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감성적인 언어와 모던한 그림체로 데뷔 때부터 주목을 받았다. 10대 소녀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Girls’와 ‘Crazy Love Story’ 외에 ‘16년 차이’, ‘마지막 사람들’, ‘쌍둥이와 해결사’, ‘One’, ‘개똥이’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만화가 전호진씨와 결혼하며 대표 만화가 부부로도 잘 알려졌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강은진(객원기자) ■사진 제공 / 이빈, 학산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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