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황윤이 제안하는 박물관을 보는 새로운 방법

역사학자 황윤이 제안하는 박물관을 보는 새로운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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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매뉴얼의 시대다. 작은 전자제품 하나에도 매뉴얼은 빠지지 않는다. 무엇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그만큼 높다. 그런데 우리 문화유산을 담은 박물관에 대한 매뉴얼은 어디에도 없다. 역사학자 황윤의 「박물관 보는 법」은 그래서 반갑다.

역사학자 황윤이 제안하는 박물관을 보는 새로운 방법

역사학자 황윤이 제안하는 박물관을 보는 새로운 방법

요즘 한 분야에 몰두하는 사람을 일명 ‘덕후’라고 부른다. 「중국 청화자기」, 「박물관 보는 법」의 저자 황윤씨는 ‘박물관 덕후’다. 지금도 국립중앙박물관을 무시로 다녀가고, 한 달에 한두 번은 국립경주박물관 방문을 위해 경주로 향한다. 새벽 첫차로 내려가서 박물관을 둘러보고 막차 타고 올라오는 식이다. 왜냐고 물으면 “박물관이 좋아서”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다. 앙드레 말로는 박물관을 가리켜 “인간의 가장 위대한 생각을 보여주는 장소”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박물관의 존재 가치는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듯하다. 박물관에 압도된 사람은 많아도 가깝고 친숙하게 여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박물관은 그래서 오랫동안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에 싸여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로비

국립중앙박물관 로비

‘박물관 덕후’가 알려주는 박물관 매뉴얼
지금도 박물관 관람을 즐기는 그이기에 박물관을 보는 그만의 특별한 비법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혹시 있다면 박물관의 매력을 깨닫지 못한 아이들에게 그 비결을 제일 먼저 알려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박물관을 싫어하는 건 강제성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수학여행이나 방학 숙제로 뺑뺑이 돌 듯 박물관에 억지로 가니까 어른이 돼서도 가기 싫어지는 거죠. 또 너무 거시적인 것은 감이 오지 않습니다. 500~1,000년 이전의 역사는 범위가 잡히지 않을 정도로 방대한 시간이거든요.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아주 작은 부분부터 시작하고 접근하는 게 좋습니다.”

그는 하나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도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고려청자로 국한해 그 한 가지만 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익숙해지면 12세기와 13세기 고려청자의 차이점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후에는 백자만 보다가 외부적인 요인을 찾아 아시아 전시관의 백자와 비교해보기도 하며 관심의 영역을 점차 넓혀가라고 조언했다. 그림과 불상 역시 마찬가지다.

“책 읽는 거랑 똑같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책을 읽을 때 좋아하는 장르부터 시작하잖아요. 연애소설 읽다가 역사나 대하소설로 영역을 점점 확대하는 것처럼 박물관도 그렇게 이해하고 접근하시면 됩니다. 책을 읽다가 궁금해지는 게 있으면 다른 책을 살펴보기도 하잖아요? 박물관 관람도 그렇게 하는 거죠.”

이런 관람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면 어느새 보는 눈이 달라져 있을 거라고 말했다. 황윤씨는 스스로를 “박물관에 대해 재미있게 떠드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실제로도 어려운 학술 용어나 특별한 이론 없이 박물관 이야기를 풀어갔고, 열정적인 그의 말은 쉽고 명쾌하게 꽂혔다. 그는 그저 즐겁게 떠들 뿐이었다. 마치 싸우지 않고 이기는 장수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직접 몸으로 터득한 실전 매뉴얼이기 때문이리라. 그는 관람 못지않게 휴식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관람 안내를 해보니 집중을 잘하는 사람들도 1시간 30분이 넘어가면 힘들어 하는 기색을 보이더군요. 밀폐된 공간에서 계속 서서 관람한다는 건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관람을 잘하기 위해서라도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는 일이 무척 중요합니다. 또 가방이나 카메라처럼 무거운 짐은 관람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관람 전에 물품 보관함을 이용해 몸을 가볍게 하는 게 좋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관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관


3D 교과서, 국립중앙박물관 뜯어보기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인 만큼 공간과 전시 유물의 규모 면에서 국내 최대 수준을 자랑한다. 그래서 처음 방문하는 경우에는 크고 복잡한 공간에서 혼란을 겪기도 한다.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보고 싶은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황윤씨는 국립중앙박물관처럼 자국의 역사를 시대 순으로 잘 보여주는 곳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들다고 말한다.

“한국 역사 전반을 훑어보고 싶다면 1층 전시관만 한 곳이 없죠. 거의 ‘3D 교과서’ 수준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른편 첫 번째 전시실인 선사시대를 시작점으로 고조선, 삼한,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로 이어지고, 경천사 10층 석탑 안쪽으로 들어가면 통일신라, 발해, 고려, 조선, 근대의 유물까지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한 번의 관람으로 한국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결국 자주 방문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모습과 감동을 얻게 되는 것이 박물관의 묘미 중 하나다.

“유물로 역사에 재미를 붙였다면 2층 서화관과 3층 조각관, 공예관에서 깊이를 더해봐도 좋습니다. 1층 전시와 2, 3층 전시를 잘 연계하면 우리 역사와 문화를 거시적으로 혹은 미시적으로 즐길 수 있거든요. 이렇게 두 가지 형식의 관람에 눈을 뜨게 되면 어느 날 수준 높은 안목을 갖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2층 서화관의 경우 서예실과 회화실이 특히 인기인데, 귀에 친숙한 작가의 작품이 망라돼 그 시대의 문화와 정신의 족적을 가늠케 한다. 도자기와 불상 등이 전시된 3층 역시 마니아층이 두텁게 형성돼 관람객이 항상 많은 편이다. 유물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전에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면면을 발견하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사람들은 박물관을 정적인 공간으로 인식하지만 역설적으로 박물관만큼 역동적인 공간도 드물다. 박물관은 이처럼 얼굴을 달리하는 야누스적인 존재다. 아는 만큼 보이기도 하고, 상상하는 만큼 마음을 열어주기도 한다. 박물관은 인간에게 시대 감각을 부여하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시간 속의 나, 역사 속의 우리 시대를 확인하고 받아들이고 의식하게 만든다.

“박물관은 일종의 족보 탐험이에요. 박물관을 하나의 족보로 보는 거죠. 이곳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탐험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쉬워요. 박물관을 처음 만든 영국, 프랑스 등도 자국의 유물을 배치하다가 이후에는 그것에 영향을 준 르네상스 유물을, 또 이후에는 로마와 그리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유물로 점점 영역을 확대해갔어요. 전시물을 볼 때도 이런 식으로 점점 확대해서 살펴보다 보면 우리의 근원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보는 눈도 훨씬 크고 넓어지죠.”

국립중앙박물관 1층 역사관 관람동선.

국립중앙박물관 1층 역사관 관람동선.


보관하는 박물관에서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박물관은 근대적이고 공동체적이며 도시적인 장소다. 박물관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파악하고 이를 분석하는 과정은 결국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이해하는 길로 이어진다.

“박물관은 소장품이나 전시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공간 자체도 의미 있습니다. 같은 주제의 전시라도 박물관이 지닌 철학과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죠. 박물관을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설립하고 운영하는지 주목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통해 각 박물관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소개해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고 싶기도 했고요.”

그의 말처럼 박물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가 된다. 건축물 자체가 박물관의 특성을 대변한다. 무엇을 하는 곳이며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는 박물관의 건물에서도 드러난다. 그 자체로 하나의 건축 예술물이기도 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전통 성곽의 개념을 재현하고 있다. 성곽은 외부와의 단절이라는 긴장과 넉넉하고 평화로운 곳이라는 안정감 모두를 상징한다. 밖으로는 역경을 극복해온 우리의 민족성을, 안으로는 문화유산의 보관과 전시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전통적인 건축 정신을 재해석한다는 의미로 길게 뻗은 두 개의 건물 가운데 우뚝 솟은 텅 빈 공간은 한옥의 마루를 상징하며 열린 마당의 구실을 한다. 이곳은 사람들의 집결지이자 박물관의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시작점을 나타낸다. 일제강점기와 문화재 수탈, 한국전쟁을 거치며 60년간 여섯 번이나 이동했던 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를 생각하면 건축물 하나에서도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다.

박물관마다 전시물과 전시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관람법도 달라야 한다. 민속박물관은 생활사 중심으로 접근하고, 고고역사박물관은 유물의 가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역사 유적지는 역사적 가치 판단을 요구하기 때문에 배경지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

“박물관의 전시물은 별다른 의식 없이 수용하고 감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전시는 이미 어떻게 보여줄 것이냐 하는 의도가 반영됐기 때문에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관람해야 합니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감상자의 안목’입니다.”

생각을 키우는 힘은 비판 능력에서 나온다. 책을 읽을 때 비판적인 독서를 하지 않으면 문제의식을 키우지 못하는 것처럼 박물관 관람도 마찬가지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대부분의 유물은 당대 권력층의 소유였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권력자 이외의 사람들의 생활상을 상상해보거나 화려한 도자기나 성벽을 만들기 위해 동원됐을 노동력을 짐작해보는 것도 좋은 교육이 된다. 인물기념관의 경우 당대의 업적과 기념물에 설립자 의도가 내포돼 있어서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집무실인 ‘이화장’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을 짐작할 수 있는 물품과 사진은 많지만, 하야 성명이나 4·19혁명에 관한 언급은 빠져 있다. 이렇듯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며 보이지 않는 부분을 찾아서 읽을 수 있어야 객관적인 안목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관람자는 역사의 진실을 바로 보기 위해 자신의 눈과 귀를 총동원해 전시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10년 전 영국으로 유학 갔던 친구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집주인 아저씨가 주말마다 즐거운 외출을 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어디를 그렇게 가는가 물었더니 대영박물관을 간다면서 ‘이집트 문자 해석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라고 하더랍니다. 지금 들어도 무척 신선한 충격이죠.”

황윤씨는 박물관과 관람객이 그 나라의 수준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국민소득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문화와 정신의 수준이다. 같은 소득이라도 이집트 문자를 공부하는 문화와 박물관을 등한시하는 문화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큰 강이 존재한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 우리의 관람 수준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돌아보게 되는 시점이다.

역사학자 황윤이 제안하는 박물관을 보는 새로운 방법

역사학자 황윤이 제안하는 박물관을 보는 새로운 방법


Mini Tip 박물관의 고수 황윤이 알려주는 어린이와 함께하는 관람법

아이의 흥밋거리로 시작하라!
관람할 내용이 방대하면 시작 전부터 질리게 마련이다. 박물관 나들이를 하기 전에 아이의 흥밋거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자연과 동물에 대한 관심이 가장 많을 때다. 먹이사슬이나 공룡 등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이럴 때는 ‘자연사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 자연사박물관은 지구의 탄생부터 땅속과 땅 위의 세계를 전시하고 있어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거대한 공룡 뼈와 알, 발자국 등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것 위주로 몇 가지만 보고 아쉬운 듯 돌아오는 것이 좋다. 한꺼번에 다 보겠다고 욕심내다간 아이가 박물관을 다시 찾지 않게 될 수도 있다.

박물관 홈페이지를 주기적으로 방문하라!
박물관 홈페이지는 박물관에서 기획하고 있는 행사들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최근 박물관의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 중 하나는 교육에 대한 관심이다. 박물관에서 내놓은 프로그램은 초등학생 대상의 교과 연계학습 프로그램이나 가족 프로그램이 주를 이룬다. 교과 연계학습은 교과서에 언급되는 실물들을 볼 수 있도록 박물관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다. 사회나 미술, 과학 등의 학습을 돕는 형식이다. 선착순이나 추첨 방식으로 대상을 모집하는 만큼 홈페이지를 주기적으로 방문하면 관련 정보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

물품 보관함을 이용하라!
박물관 관람은 서서 보는 활동이기 때문에 방문할 때는 편한 복장이 좋다. 가방이나 기타 짐들을 들고 관람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따라서 관람 전에 반드시 물품 보관함에 짐을 놓고 간편한 복장과 최소한의 필기구만 소지한 채 관람하자. 간편한 차림으로 전시실에 들어서면 발걸음은 물론 마음까지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안내지를 보물 지도로 활용해라!
규모가 큰 박물관을 이용할 때는 안내지를 보면서 이동하는 것이 좋다. 전시 안내는 물론 휴게실과 화장실, 물품 보관함 등이 자세히 표시돼 동선을 짤 때 유용하다. 탐험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보물 지도로 인식하게 만들어도 좋다. 안내지에 실린 유물을 찾아 떠나는 과정은 아이들의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자료를 읽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시각 훈련이 돼 다른 자료를 찾을 때도 큰 어려움 없이 해낼 수 있다.

휴식 시간을 충분히 가져라!
폐쇄된 공간에서 1시간 이상 머무른다는 것은 무척 피곤한 일이다. 40분가량인 초등학교 수업 시간을 감안하면 1시간 이상의 연속 관람은 무리다. 관람 중간중간 휴식을 취해야 피로를 덜고 흥미를 잃지 않게 할 수 있다. 특히 배고프거나 목이 마른 것은 지체 없이 해결해줘야 한다. 기본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아이들은 관람에 집중할 수 없다. 한 전시실이 끝나고 다른 전시실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탁 트인 밖을 보며 간식을 먹는 일도 박물관 관람의 묘미 중 하나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강보라(프리랜서) ■사진 / 김동연(프리랜서), 경향신문 포토뱅크 ■자료 제공 / 「박물관 보는 법」(황윤 저,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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