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집에 산다고 가족일까?

EBS ‘다큐프라임-가족 쇼크’ 작가 3인 대담

한집에 산다고 가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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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나날이 깊어지는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 정답이 보이지 않는 육아 전쟁, 불의의 가족 상실로 인한 아물지 않는 상처, 급증하는 1인 가구 등 대한민국의 가족은 위태롭다. EBS-TV ‘다큐프라임-가족 쇼크’를 통해 다양한 가족의 유형을 대해부한 작가 3인과 함께 우리 시대 가족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해봤다.

[EBS ‘다큐프라임-가족 쇼크’ 작가 3인 대담]한집에 산다고 가족일까?

[EBS ‘다큐프라임-가족 쇼크’ 작가 3인 대담]한집에 산다고 가족일까?

레이디경향(이하 Lady)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가족의 문제를 폭넓게 다룬 ‘다큐프라임-가족 쇼크’가 화제였다. 이번에 책으로도 출간됐는데, 어떻게 시작된 기획인가?

김미지 작가(이하 김미지) 가족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워낙 많이 다뤄왔다. ‘가족 쇼크’를 함께한 PD와는 이미 ‘마더 쇼크’와 ‘파더 쇼크’를 작업했다. 가족 내부의 엄마와 아빠의 역할에 대해 알아보다 보니 ‘가족 쇼크’의 분량이 9부작으로 늘어났다. 사회적인 흔들림이 있을 때 가족이 어떻게 될까, 라는 사회적 시선에서 보는 가족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조미진 작가(이하 조미진) ‘가족 쇼크’는 ‘이 시대 가족들이 왜 아플까’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전체 스태프가 공통적으로 느낀 부분이었다. 벌써 사회의 25%를 차지하는 1인 가구부터 외국인 가구의 가족까지 변화하는 시대상도 찾아봤다.

Lady 기획 단계에서 예상했던 것과 현장에서 직접 마주한 가족상이 달랐을 것 같다.

김미지 기획 단계에서 회의만 7, 8개월을 했다. 정말 가족 문제란 가족 문제는 다 나왔다. 다만 이번에는 부부와 자녀 관계는 워낙 전작에서 많이 다뤄왔던 주제들이라서 빼려고 애썼다. 주목했던 유형은 비정규직 가족들이었는데, 몇 개월 동안 공을 들였지만 섭외를 성사시키지 못했다.

Lady 비정규직 가족의 문제라니, 신선하면서도 공감이 간다. 정작 그들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것이 없다.

김미지 덴마크에서는 가장이나 가족이 실직을 하면 국가 차원에서 가족 상담이 가장 먼저 실시된다. 이런 문제는 가족 구성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비정규직 문제만 해도 개인 역량의 문제로 생각한다. ‘나는 실패했다’로 여기는 거다. 그리고 가장 혹은 가족의 실직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김미수 작가(이하 김미수) 9부작 중 하나인 ‘마지막 식사’가 떠오른다. 죽음을 앞둔 가족의 이야기다.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앞에서 가족 안에 있던 경제적인 문제나 심리적인 문제가 가장 현실적으로 터지더라. 갈등을 가졌던 가족이 구성원의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제작진의 입장에서 지켜보면서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누가 내 옆에서 내 손을 잡아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Lady 가족 구성원의 죽음은 그동안의 문제들을 푸는 극적인 계기로 작용했는지 궁금하다.

김미수 사례자 가족 중 한 분은 그 갈등을 풀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여동생과 갈등을 겪었는데 여동생도, 죽음을 앞둔 사례자도 풀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가족인데, 어느 정도는 풀어주고 가야 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묵은 감정이란 게 생각만큼 한순간에 풀리는 것이 아니더라. 당장 풀린 듯해도 장례 문제 등을 진행하면서 돈 문제가 얽히다 보니 다시 원점이 됐다.

가족들이라 더 아팠다
Lady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쓸쓸하게 그 모습이 그려진다. 이 지점에서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한다. 가족의 문제, 꼭 푸는 것만이 정답일까? 안 맞으면 안 맞는 대로 좀 덜 보고 살면 안 될까?

김미수 개인적으로 푸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풀라고 말해주고 싶다. 죽음을 앞둔 사례자 중 한 분이 요리사였는데, 부모님과의 앙금이 깊어 같은 공간에 있어도 대화는커녕 밥 한 끼도 같이 먹지 않았다. 자신이 요리사임에도 부모님에게 음식을 만들어드린 적이 없었다. 부모님이 요리사라는 직업을 격렬하게 반대했고, 사례자가 병에 걸렸을 때도 ‘네가 요리사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셨을 정도였으니까.

<STRONG>김미수 작가(42)
</STRONG>다섯 살짜리 딸을 키우고 있다. EBS ‘다큐프라임’ 외 SBS-TV ‘그것이 알고 싶다’, ‘SBS스페셜’, KBS-1TV ‘KBS 스페셜’, EBS-TV ‘미술기행 시즌 1, 2, 3’, ‘명의’ 등의 작가로 활약했다.

김미수 작가(42) 다섯 살짜리 딸을 키우고 있다. EBS ‘다큐프라임’ 외 SBS-TV ‘그것이 알고 싶다’, ‘SBS스페셜’, KBS-1TV ‘KBS 스페셜’, EBS-TV ‘미술기행 시즌 1, 2, 3’, ‘명의’ 등의 작가로 활약했다.

Lady 그렇게 오래된 갈등이 풀릴 수 있었나?

김미수 가장 하고 싶었던 마지막 식사 대접을 부모님께 했다. 직접 요리한 음식으로 말이다. 옆에서 보기엔 적어도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으며 돌아가셨다.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더라도 행복해 보였다. 그 순간을 선물한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 지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던 여동생과의 갈등을 가진 사례자는 풀지 못했다고 하지 않았나. 앙금을 품고 살 수야 있겠지만 옆에서 보기에 건강한 마음은 아닌 것 같다.

조미진 스무 살 전까지 고향 광주에서 살면서 가족을 사슬처럼 생각했다.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원망도 많았다. 그러다 30대 초반에 아버지의 죽음을 맞았다. 특히 남동생이 아버지와 갈등이 컸다. 10년간 가족 행사에 오지도 않고, 아버지를 아예 안 볼 정도였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이 오니 풀더라. 아니, 풀려고 노력하더라. 그 모습 보면서 가족은 애초에 분리될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을 했다. 가족이 불행한데 내가 행복할 수는 없는 거다. 다섯 손가락이 같이 움직이는 손 같다. 부모님의 죽음 앞에서 가족이 함께 마음 아파하는 것은 갈등으로 감춰진 그 안의 사랑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사슬 같았지만 그 안에 사랑이 있었다.

김미지 나는 경상도 출신으로 6남매 중 다섯째다. 부모님은 나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조미진 작가만큼이나 가족이 싫었다. 30대에 독립을 하면서부터는 아예 가족 이야기를 꺼내기도 싫었다. 계속 뭐가 터지니까. 엄마가 된 다음에는 내가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 될까 봐 무섭더라. 가족 문제도 대물림되지 않나.

Lady 가족 문제는 남의 이야기 같지만 이렇게 누구에게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방송에 소개된 사례가 아니더라도 가족이 좋기 만한 사람은 정말 드물 테니까.

김미지 비슷한 문제를 가진 엄마 100명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엄마들이 하나같이 나와 같은 겁을 내고 있었다. PD에게 내 문제를 이야기했더니 “가족력이 있으면 더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김미지 작가도 좀 더 노력해야 할 사람일 뿐이다”라고 하더라(웃음).

Lady 가족 문제가 이래서 무서운가 보다. 대물림에 가족력이라니!

김미지 그러게 말이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 나는 ‘조금 노력하면 되는 사람, 못하는 게 있어도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 여기기 시작했다. 그러니 편안해지고, 할 줄 아는 것이 생길 때마다 오히려 기쁨을 느꼈다. 또 가족 문제에서도 엄마의 감정을 그대로 전이받아 아빠를 미워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감정보다는 그냥 연로한 아버지로 받아들일 뿐이다. 가족 간의 문제에 대해서도 과연 풀 것인가, 말 것인가 극단적인 생각을 하곤 했는데, 개인적인 경험과 제작진으로서의 경험을 비춰보면 자연스럽게 풀 때가 오는 것 같다. 인생에 한 번은.

가족이 불행한데 어떻게 내가 행복한가
조미진 가족 행사에도 오지 않던 남동생이 아버지가 아프니 다 무너지더라. 마치 다시 소년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지내게 되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가족에게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가족 이외에 어떤 긴밀한 관계를 대체할 만한 관계가 없는 탓도 있다. 나는 대안 가족을 만드는 프로젝트 편을 진행했다. 취재를 하다 보니 1980년대는 4, 5인 가족이 표준 가족이었다. 그런데 현재는 1인 가족이 무려 25%에 달한다. 아마 10년 뒤에는 1인 가족이 표준 가족이 돼 있지 않을까 싶다.

Lady 대안 가족 프로젝트 편을 봤다. 낯선 타인들이 모여서 밥을 먹는 게, 사실은 억지스럽게 보였다.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물론 계속 시청하다 보니 그 이면에는 외로운 내 감정을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다는 속내도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조미진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억지스럽지 않았고, 관계는 분명 변화됐다. 1인 가족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자식들을 다 출가시킨 할머니, 장년층의 이혼남, 외국인, 상경한 직장인, 대학생 등이었다. 우리 프로젝트에서 가장 겉돌던 분이 50대 이혼남과 70대 사별한 할머니였다. 그런데 8주 뒤 프로젝트가 끝날 때는 이 두 분이 가장 많이 우셨다. 할머니는 마지막에 선물로 양말을 사오기도 하셨다. 촬영 기간 중 할머니 생신이 있어서 생일상을 차려드렸는데, 정말 펑펑 우시더라. 가족이 있어도 할머니는 생일상을 받아보신 적이 없었다고 한다.

Lady 프로젝트 참가자들을 통해 무엇을 확인할 수 있었나?

조미진 사람이 산다는 것은 밥을 함께 먹고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런 관계의 필요성은 관계를 가지기 전에는 다들 몰랐던 것이다.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지를 누군가와 함께 먹은 뒤에야 비로소 안다고나 할까. 나는 미혼이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가족이나 배우자 이전에 밥을 함께 먹을 누군가와의 관계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다. 프로젝트가 뜻하지 않은 좋은 결실도 맺었다.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노총각과 우리 서브 작가가 결혼한다. 이 대담이 끝나면 청첩장 받으러 가야 한다(웃음).

Lady 과연 그것이 밥의 힘인가?(웃음)

김미수 억지스러워 보일 수 있어도 함께하는 힘이 분명 있는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은 무척 외롭다. 가족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외로운 게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부모와 함께 사는 일반적인 한국의 가정이라도 같이 밥을 못 먹고, 부모와 자녀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청소년들의 경우 하루 동안 부모에게 듣는 말의 30%가 “공부해!”라더라.

Lady 2년간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많은 가족들의 문제를 목격했을 텐데 대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던가?

김미수 소통이다. 소통이 안 되고 있었다. 경제 상황을 고려한다고 해도 소통 부분이 너무 제한적이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강제로 부여받은 역할에만 충실하다고나 할까. 그것도 강제로 부여받은 엄마라는, 아빠라는, 자식이라는 역할에 함몰돼 ‘이 정도는 내 역할에서 해줘야 한다’라는 의무감에 짓눌려 있다. 그 역할에 미치지 못하면 가족 안에서 자리를 못 잡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고독한지조차 몰라
김미지 우리 사회는 매우 불안해한다. 그런데 그런 불안이 경제적인 위기에서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들은 끝없이 아이들에게 공부시킨다. 그런 부모들은 저소득층이 아닌 중산층이었다. 이 시대의 갑일 수 있는 부모들일수록 ‘내 자식은 나만큼 살 수 없을 것’이란 불안감이 무척 강했다. 그래서 더 시키더라. 그런 가운데 가족은 병들어가고 있었다. 저소득층 역시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학원에도 보내고 더 가르치고 싶은데 능력이 안 되는 것에서 갈등이 생겨났다.

김미수 우리나라는 가족이 뭔가 문제에 봉착했을 때 가족 구성원이 그마나 ‘착하면’ 해결되고, 매정하거나 냉정하면 버림을 받는다고 해야 할까. 도움을 받지 못한다. 고독사를 다룰 때 많이 느꼈다. 고독사는 주변과 단절된 채 홀로 살다 죽음을 맞는 것이다. 이러한 고독사는 시신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고독사 부분을 다룰 때 일부러 고독사는 나와 가장 상관없다고 여기는 20대 대학생을 상대로 취재팀을 선발했다. 이들에게 무연고 사망자 공고문을 나눠주며 죽은 이들의 삶을 복원하는 임무를 줬다. 처음에는 ‘왜 20대인 나에게 이런 걸 시킬까?’ 의아했단다. 그런데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아버지가 떠오르면서 비로소 이게 가족의 문제임을 깨달았다고 하더라.

<STRONG>김미지 작가(43)
</STRONG>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두었다. KBS-2TV ‘추적 60분’, ‘생로병사의 비밀’을 비롯해 ‘아이의 밥상’, ‘마더 쇼크’, ‘학교란 무엇인가’ 등 EBS ‘다큐프라임’의 히트작 다수에 참여했다.

김미지 작가(43)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두었다. KBS-2TV ‘추적 60분’, ‘생로병사의 비밀’을 비롯해 ‘아이의 밥상’, ‘마더 쇼크’, ‘학교란 무엇인가’ 등 EBS ‘다큐프라임’의 히트작 다수에 참여했다.

조미진 고독사 하면 흔히 노인을 생각하는데, 의외로 가족과 떨어진 남자들이 많았다. 여자들은 모임이라도 있는데, 홀로 된 남자들은 가족이 끊기는 순간 혼자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가족 형태든 가족이 온전하거나 이어져 있을 때 남자들이 근근이 버티는 것이지, 가족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 남자들은 무연고 사망자로 고독사 한 채 백골 상태에서 발견되는 게 현실이었다.

Lady 꼭 필요한 고민들인데, 듣다 보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런 아픔들을 늘 봐야 하는 일을 하다 보면 어려움이 많겠다.

김미지 취재 나가기는 힘들어도 또 가면 감동을 받고 온다.

김미수 ‘가족 쇼크’만 해도 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기획 단계에는 거의 ‘멘붕’ 상태였다. 다시는 다큐 안 한다고 하는데, 이게 마약 같다. 또 한다(웃음).

조미진 EBS 다큐는 착해서… 칭찬을 과할 정도로 받는다. 그 덕에 버티나?(웃음)

Lady 그런데 세 작가의 이름이 비슷해서 실수할까 봐 긴장 중이다.

일동 다들 그런다. 미미 시스터스라고(웃음).

Lady 앞서 개인적인 이야기도 해줬지만, 그럼에도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개인적인 문제가 점철돼 힘들었던 위기의 순간이 있었을 것 같다.

김미수 프랑스 육아 현황을 취재하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프랑스에서 취재차 만난 엄마의 아이와 또래 아이를 키우고 있다 보니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로 다가왔다.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고 있는 프랑스 엄마를 보면서 아이에게 온통 “안 된다”라고만 하는 나와 비교되더라. 요즘 엄마들은 육아 관련 책이나 교육서를 얼마나 많이 읽나. 엄마들의 오류가 여기에서 나오는 것 같다. 책에 매몰된다고나 할까. 내 방식이 맞다는 느낌이 있는데도 ‘책에서는 안 그랬는데?’라면서 갈등을 한다. 엄마니까 갖게 되는 아주 자연스러운 정서와 육아법이 있는데 나조차도 그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Lady 몇 년 전부터 또 우리 엄마들을 괴롭히고 있는 게 프랑스 육아법이다. 지금 엄마들은 이미 책으로 프랑스 육아를 만났다(웃음).

김미수 프랑스에서 만난 일란 엄마는 등교 전에 아이가 컴퓨터 게임을 하도록 해주더라. 한국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 엄마는 게임이 인지 기능에 도움이 된다는 논문도 있다면서,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른데 굳이 자기가 어느 것을 선택해 고집스럽게 지킬 필요가 있느냐고 하더라. 육아 기준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아침에 게임을 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엄마의 자세를 주목했다. 그렇게 엄마가 육아를 편하게 느끼니까 아이도 편안해 보였다.

더 늦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해야
Lady 프랑스 육아 취재 후 반성을 많이 했다는데, 무엇이 변했나?

김미수 조금 변했다. ‘안 된다’라는 말을 하루에 100번 했다면, 이제는 50번 하는 정도?(웃음)

김미지 예전엔 내가 엄마 노릇을 참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딸이 다섯 살이 되니까 이제 고집도 생기고 힘겨루기를 하더라. 답을 찾기 위해 6개월 정도 인터넷을 뒤졌다. 내 아이가 어떤 틀에 맞지 않으면 너무 불안하니까. 그런데 내 아이는 내 아이만의 독특함이 있지 않나. 나야말로 내 아이의 전문가라는 생각을 했다. 엄마들이 내 아이에 대해선 자신이 가장 잘 안다는 생각을 어느 정도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조미진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건 스태프들 사이에서 ‘왕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였다(웃음). 통틀어 나만 미혼이다. 1인 가구 말이다. 대한민국 가족 구성 가운데 25%나 차지하고 있지만 내가 너무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그게 세상이 1인 가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닐까 싶었다.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는 선입견 말이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과정이 어쩌면 그걸 확인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Lady 다큐에서 눈길을 끌었던 부분이 세월호 참사 문제였다. 가족이 주제인 다큐에 어떻게 세월호 유가족이 등장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김미지 나는 세월호 참사를 가족 사건으로 봤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증언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첫 촬영 날이 생각난다. 프로그램 참여를 결정한 가족 외에 다른 부모님들도 오셨다. 어떤 얘기를 하는지 지켜보려고 오셨다고 했다. 부모님이 어떻게 만나셨고, 어떻게 아이를 낳고 키웠는지…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평범한 과거들, 좋은 기억들에 대한 얘기 말이다. 이런 걸 회상하는 시간이었다. 어느 날 시부모님이 유가족분들이 나오는 세월호 관련 뉴스를 보시면서 “애국지사도 아닌데,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 거냐”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아버님, 저는 제 딸이 저렇게 되면 저것보다 더 할 것 같은데요”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저걸 꺼내려면 몇 천억이 드는데!”라며 경제 문제를 운운하시더라. 생각할수록 이것은 가족 사건인데 사회 사건이 돼버린 분위기가 안타깝기만 하다.

김미수 우리가 세월호 유가족분들의 사연이 가족 아이템이라고 확신했던 일이 있었다. 안산에서 집회가 있을 때였다. 성호 아버님이 집회가 끝나고 단상에 오르시더라. 한창 인양 작업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을 때라 우리는 서명을 부탁하시려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성호 아버님이 오늘 집회에 가족들과 함께 왔는지 물으시더니…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해주라고 하셨다. 자신은 그 말을 많이 못해준 아빠였다면서 말이다. 이제는 해주고 싶은데 못한다면서. 옆에 있는 내 아이에게, 내 가족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유가족분을 보니, 아니 이게 가족의 일이 아니면 무슨 일인가 싶었다.

<STRONG>조미진 작가(38)
</STRONG>팀 내 유일한 미혼으로 EBS ‘다큐프라임’과 ‘지식채널e’ 등을 구성·집필했다. ‘다큐프라임-오래된 미래, 전통 육아의 비밀’로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KBS-1TV ‘슈퍼피쉬-끝없는 여정’으로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조미진 작가(38) 팀 내 유일한 미혼으로 EBS ‘다큐프라임’과 ‘지식채널e’ 등을 구성·집필했다. ‘다큐프라임-오래된 미래, 전통 육아의 비밀’로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KBS-1TV ‘슈퍼피쉬-끝없는 여정’으로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조미진 세월호 희생자의 부모님들은 죽은 아이의 친구들을 만나면 혹시 자신의 아이 사진이 있는지부터 물어보고 사진을 구하신다. 그러곤 자신의 아이에게 혹시 남자친구나 여자친구가 있었는지 등 많은 것들을 물으신다. 이분들은 아이가 살아 있을 땐 그런 걸 몰랐을까, 물었던 적이 없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오늘 내 아이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내 아이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더라. 그런 시각에서 보면 세월호 참사는 온전히 2014년에 대한민국의 ‘부모’가 겪은 사건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족의 문제, 곧 사회의 문제다
Lady 지금 부모가 된 30, 40대는 전쟁도 겪지 않았고 또 산업화의 혜택을 듬뿍 받은, 어쩌면 역사상 가장 평화롭고 여유 있는 시대의 사람들 같은데… 왜 이렇게 끊임없이 문제가 생기는지 의문이다.

조미진 우리 사회에서 이제는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가족들을 촬영했었다. 마석의 가구단지 근처였는데, 마치 한 30년 전의 가족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큰길의 화려한 가구단지 안쪽으로 들어가면 1970년대 지어진 것 같은 집이 나온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 같다. 집에 창문은커녕 보일러도 없다. 따뜻한 물이 안 나와서 고데기로 물을 데우더라. 그런데 그들은 무척 행복했다. 본인은 힘들고 외롭지만 자기희생으로 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어서였다. 이것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아닐까. 우린 가족과 함께여서 아픈데 말이다. 아껴줄 수 있는 마음, 그것이 본질 아닐까 싶었다. 그런 마음이 우리에게선 왜 사라졌을까, 새삼 돌아보게 됐다. 지금도 힘든 날이면 마석에 간다.

Lady 가족이란 게 뭘까?

김미수 제작 막바지에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 키리위나 섬 사람들을 만났다. 그곳 사람들은 씨족사회이기 때문에 공동체로 본다. 누가 아프면 ‘그 집 문제’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된다. 최소 가족 단위가 행복해야 공동체가 행복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너무 혈연에 집착한다. 거기서 많은 마찰이 생기고 가족이 짐이 되는 것 같다. 소유물이나 혈연 관계로만 묶다 보면 갈등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그 집 문제’로 머물러 있다. 사회가 바라보는 가족에 대한 시각이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더불어 이 같은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도 마련돼야 한다.

Lady 2년 동안 가족 문제를 취재해온 제작진의 입장에서 저마다 무수한 가족 문제를 겪고 있을 독자들에게 한마디한다면?

김미지 처음 다큐멘터리 제작에 입문했을 때는 결혼만 하고 아이가 없었다. 그때는 엄마들이 자연분만을 못하고, 완모(완전한 모유수유)를 못했다는 데 대해 왜 죄책감을 가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가 돼 ‘마더 쇼크’를 만드는 동안 우리가 내린 결론은 ‘아이보다 엄마를 더 사랑하자’였다. 우리나라 엄마들은 자기보다 아이의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 그렇게 하면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엄마 자신을 더 사랑하는 엄마가 아이를 키우면 아이가 반듯하게 크는 것 같다. “엄마들! 엄마 자신을 더욱더 사랑하세요!”

조미진 엄마들은 모이면 아이 공부 얘기만 한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사뭇 심각하다. 취재 중 부모님은 거실에 남고 아이만 따로 제작진과 인터뷰를 나눈 적이 있다. 열 살 아이였는데, 죽고 싶다며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이 무척 아팠다. 예전엔 엄마라고 하면 따뜻함이 있었는데, 지금은 공부시키는 사람, 날 아프게 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크다. 그런 관계 속에서 아이가 서울대를 가면 뭐 하나. 실속이 없다. 큰 걸 놓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인데, 엄마에게는 그게 안 보이나 싶었다. 엄마는 그냥 본인 얘기만 끝까지 하더라. 가족이 원자, 분자 단위로 흩어져 있어서 함께 산다는 느낌이 없었다. 엄마들에게는 이제는 그만 자기가 하던 말을 멈추고 아이들을 한 번 더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김미수 우리 사회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다. 예전엔 그래도 다시 도전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실패하면 끝이다. 그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실패를 해야 도전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조금이나마 그런 사회로 만들어 나가자고 감히 말하고 싶다.

Relation Tip EBS-TV ‘다큐프라임-가족 쇼크’는…
웰메이드 다큐멘터리의 대명사가 된 ‘다큐프라임’의 9부작 대기획이자 인성 및 부모 교육 시리즈의 완결판. ‘왜 유독 요즘 가족은 이렇게 서로를 힘들어할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가족 쇼크’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시작해 불안한 육아의 문제,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거나 질병으로 먼저 떠나보낸 남은 가족의 슬픔, 1인 가구와 고독사 문제 그리고 새로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은 이주 노동자들의 삶까지 가족의 영역을 8가지로 나눠 살펴보는 시도로 눈길을 끌었다. ABU 최우수상, 세계공영TV총회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되는 등 많은 수상을 했고, 최근 그 방송분을 담은 「가족 쇼크: 한 집에 산다고 가족일까?」(윌북)를 출간했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강은진(객원기자) ■사진 / 김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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