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미 작가가 담아낸 반려동물과 사람의 현대 동거 생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선 시대. 반려동물을 자신의 가족처럼 여기는 ‘펫팸족’이 늘고 있다. 펫팸족은 애완동물(Pet)과 가족(Family)의 합성어로, 키우는 동물을 마치 가족처럼 여기며 아끼는 사람들을 뜻한다. ‘반려동물’전은 바로 이 펫팸족과 동물의 관계를 조명한 윤정미(47) 작가의 개인전이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거쳐 홍익대에서 사진디자인을,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서 석사과정(Photography, Video and Related Media)을 마친 그녀는 성별에 따른 색상 선호를 담은 사진 작업을 통해 성에 대한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비춰보는 ‘핑크&블루 프로젝트’로 유명해진 사진작가다.

‘선규네 가족과 코코와 건달이, 서울, 삼성동, 2014’
윤정미 작가는 자신도 우연히 반려동물 ‘몽이’를 키우면서 시나브로 깊은 정이 들어 펫팸족이 됐다고 고백했다.
“예전부터 아이들이 강아지를 키우자고 졸라댔어요. 집이 좁으니까 계속 반대하다가 성화에 못 이겨서 2년 전에 몽이를 입양해 키우기 시작했죠. 근데 녀석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몽이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더라고요. 결국 산책시키고, 씻기고, 밥 주는 모든 일이 엄마인 제 차지가 돼버렸죠(웃음).”
인간과 언어가 통하지 않지만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상대를 파악하곤 한다. 몽이는 자신에게 매일 밥을 주는 주인이 누구인지, 누가 제일 손길을 많이 주는지, 그래서 누가 자신을 가장 아껴주는 사람인지 정확히 알아챘다. 가족 중에서 윤 작가와 몽이가 가장 정이 많이 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일상에서 반려동물의 존재가 참 커다란 위로가 되더라고요. 우울하고 힘들 때마다 몽이에게 어마어마한 위안을 받았어요. 동물을 키우기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행복이었죠. 지금 제게는 몽이가 소중한 막내아들 같은 존재예요.”
몽이를 산책시키러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반려동물들에게도 눈길이 갔다. 신기하게도 동물과 주인이 서로 꼭 닮은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강아지로부터 비롯된 사적인 관심은 외부 세계로까지 확장됐다. 그렇게 반려동물과 사람을 찍는 사진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꼬박 2년 동안 작업이 진행됐다. 계절이 두 번씩 바뀌는 동안 총 100여 명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번 사진전에는 그중에서 30명의 사진을 선별해 전시했다. 모델이 된 동물은 개, 고양이, 이구아나, 기니피그, 토끼, 거북 등으로 다양하다. 가까운 지인부터 인터넷 커뮤니티, 몇 다리를 건너 소개를 받는 등 가능한 모든 통로를 통해서 다양한 동물과 주인들을 모았다. 작가 본인도 키우는 개 몽이와 카메라 앞에 섰지만, 실패했단다.
“아이들한테 거부당해서 몽이와 단둘이 찍었는데, 그날따라 개가 너무 짖어서 잘 안됐어요. 제 사진이긴 해도 마음에 안 들어서 전시에서 빼버렸죠. 아들은 군인이고 딸은 고1 인데, 예전에 ‘핑크&블루 프로젝트’ 때는 선선히 응해주더니 이제 컸다고 엄마한테 안 찍혀주네요. ‘다른 사람들은 엄마한테 돈 주면서 찍어달라고 한다’ 해도 꿈쩍도 안 해요(웃음).”
모델을 구하는 전단지를 만들기도 했다. 더러는 길을 가다가 눈길을 잡아끄는 동물과 주인을 만나면 용감하게 직접 헌팅을 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모델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그래서 요즘 정말 많은 분들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는 걸 몸소 느꼈죠. 전단지를 보고 먼저 연락이 오기도 했어요. 반려동물과 기념이 될 만한 사진을 꼭 찍고 싶다고 청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요즘은 반려동물을 정말 애틋하게 아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실감할 수 있었지요.”
100마리의 동물, 100개의 사연
사진을 보다 보면 이 사람들은 대체 누구인지, 뭐 하는 사람들인지, 언제부터 이 동물과 함께 살기 시작했는지 호기심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윤 작가의 촬영 동의서에는 100명의 사람과 그들의 반려동물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였다. 그녀는 작품마다 숨겨진 사연들을 하나씩 들려줬다.

‘용산동 할머니와 갑돌이, 서울, 용산동, 2014’
“촬영 당시에는 몰랐는데 후반 작업을 하다 보니 할머니 뒤쪽으로 구석에 ‘효’라는 글자가 붙어 있더라고요. 마치 갑돌이가 할머니께 효도하고 있다는 걸 나타내주는 것 같아서 재미있었어요. 사진을 찍다 보면 이런 우연이 만들어낸 효과도 가끔 있죠.”
길을 가다가 눈길을 끄는 모습에 즉석에서 섭외한 모델은 ‘용인과 쭌이, 서울, 석관동, 2008’이다. 화려한 패션 스타일부터 얼굴 표정까지 꼭 닮은 둘의 모습에 한눈에 반했단다.
유난히 기억에 남는 모델 중에는 ‘세연과 65마리 개들, 한국유기견사랑연합회, 경기도, 화성, 2015’의 주인공이 있다. 개를 한 마리씩 입양하다 보니 65마리의 개 모두와 깊은 정이 든 경우였다. 주변에서 누가 한 마리 달라고 해도 꿈쩍도 안 할 만큼 각별한 애정이 있었다. 세연씨는 65마리를 도시에서 키우기 힘들어지자 아예 지방에 개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원래 다른 종류의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개들을 위해 ‘개 호텔’을 짓기도 했다. 말 그대로 반려동물이 인생을 바꾼 경우다.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촬영을 하는데 그 자리에 딱 한 마리만 없어도 금방 아시더라고요. 개들도 신기하게 자기 이름을 부르면 그 많은 개들 중에서도 알아듣고 딱 쳐다봐요. 한꺼번에 입양했다면 그럴 수 없었을 텐데, 한 마리씩 입양해서 마음을 쏟으니까 개들도 알아보는 거죠.”

‘세연과 65마리 개들, 한국유기견사랑연합회, 경기도, 화성, 2015’
“유기견만 모아놓은 사진이나 죽기 직전 상태의 개의 표정을 보면 불행한 사람들의 표정과 정말 흡사해요. 고통이 사람과 동물을 닮게 만든 경우죠. 그런데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보니 주인이 밝은 성격이면 개들도 그래요. 반려동물과 주인은 깊은 연관이 있는 거죠.”
그들의 공간이 말해주는 것
반려동물과 그 주인을 찍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들이 사는 공간도 함께 담으려 했다. 촬영은 주로 실제로 그들이 사는 집 혹은 그들이 자주 가는 공간에서 이뤄졌다. 이런 방식은 윤 작가가 과거부터 계속 고수해오던 스타일이기도 하다. 덕분에 ‘반려동물’전의 사진들은 다양한 사람들의 집을 구경하는 재미까지 더해져 한층 풍부해졌다. 자신들이 익숙한 공간에서 촬영이 이뤄진 덕분인지 동물과 사람 모두 편안하고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대부분의 모델들은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자신의 가장 사적인 공간인 집을 흔쾌히 개방했다. 아무리 윤 작가가 검색만 하면 알 수 있는 유명한 사진작가이긴 해도 낯선 이방인이건만, 어떻게 그게 쉬웠을까.

‘길수와 철수, 서울, 용산동 2014’
그렇게 찾아간 100여 곳의 공간에서 윤 작가는 아주 사적인 개인의 정체성부터 넓게는 지금의 시대상까지 예리하게 포착해낼 수 있었다.
“어떻게 집을 꾸며놓았는지, 어떤 물건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지가 그 사람의 성격, 나아가 직업까지 드러내요.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메이크업을 하느냐에 따라 자기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처럼 말이지요. 저는 실제 그들이 사는 공간에서 반려동물과 사람을 찍음으로써 그걸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싶었어요. 관계, 교감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담고 싶었고요.”

‘용인과 쭌이, 서울, 석관동, 2008’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의외로 사람들의 집이 많이 닮아 있다는 것도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서초동, 잠실동, 반포동, 판교동, 정자동 등에 있는 아파트의 거실에서 찍은 사진들은 아파트의 전형성을 보여준다. 엇비슷한 가죽 소파며 그림 액자 등 인테리어까지 놀라울 만큼 닮은 분위기다. 한편 동네가 달라지면 공간의 느낌도 달라진다. 용산동, 이태원동, 한남동, 해방촌 등에서 찍은 사진들은 공간을 감싼 공기부터 한결 자유롭다. 문화 예술에 관심이 많은 싱글족들의 개성 넘치는 모습이 화면을 채우고 있다. 사진 너머로 오늘날 한국 사람들의 다양한 특징이 보인다.
‘펫토그래퍼’ 윤정미로
사진전을 하면서 윤정미 작가는 「반려동물」 사진집도 출간했다. 전시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른 반려동물 가족들의 사진을 볼 수 있는 책이다. 최근에는 글도 쓰기 시작했다. 사진전을 흥미롭게 본 한 출판사에서 반려동물 사진뿐 아니라 그들의 사연까지 함께 소개하는 에세이 형식의 사진집을 제안해왔다. 덕분에 요즘은 좀 낯설지만 글 쓰는 작가 윤정미로 사는 중이다. 그녀는 지난 2년간 본격적으로 반려동물을 촬영하면서 변화된 점이 많다. 개인적으로도, 사진가로서도 그렇다.
“예전에는 딱딱한 형식의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굉장히 유형학적인 스타일이었죠. 이번에는 자유롭고 틀에 박히지 않은 스타일로 작업했어요. 이 작업을 하면서 사진이 많이 늘었어요. 워낙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쉽고 빨리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도 배웠고, 인물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도 깨달았고요. 반려동물 덕에 얻은 소득이 정말 많네요.”

‘정미와 몽이.’ 전시에는 합류하지 못한 윤 작가와 반려견 몽이의 사진.
“모델이 되려면 잘 사는 집만 찍을 수 있냐, 얼굴이 예뻐야 되냐, 집이 깨끗해야 되냐 물으시는데요. 제가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청소를 해놓은 분들이 많기도 했고, 또 공간의 일부만 찍어서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진심으로 그런 요소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오히려 꾸미지 않은 모습이 좋다고요!”
외로워서, 궁금해서, 혹은 우연히… 저마다의 이유로 반려동물과의 동거를 시작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유기동물이 증가하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윤정미 작가가 포착한 반려동물과 사람들은 그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새삼 사진 속의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든다. 반려동물과 사람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우리 시대의 또 다른 풍경도 알게 해줘서.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정성민(프리랜서) ■사진 / 이민희(프리랜서) ■사진 제공 / 윤정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