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의 소녀상, 언제나 그 자리에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
한·일 양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28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과 관련해 이렇게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에게 이해를 구하지도 않았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문제도 논의되지 않아 거센 비판 여론이 형성됐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도쿄 한복판에 소녀상을 세워도,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고 해도 시원찮을 텐데 건방지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소녀상을 철거할 것을 꾸준히 한국 정부에 요구해왔다. 한국 정부는 이런 요구에 대해 ‘소녀상은 민간이 자발적으로 설치한 것이다’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정작 합의문에는 소녀상 문제가 언급됐다. 일본 측은 소녀상 이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협상을 타결한 뒤 일본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소녀상에 대해 “적절히 이전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현재 일본 정부는 ‘불가역적’, ‘최종적’이라는 표현이 담긴 한·일 외교 장관 합의문을 방패 삼아 더 이상의 사죄와 반성은 필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 같은 상황에서도 합의문에 있는 내용이 전부라는 해명만 되풀이하고 있다.

1 2011. 12. 15. 수요집회 1,000회를 맞아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지 하루가 지난 날. 누군가가 목도리로 맨발을 감싸놓았다. 2 2011. 12. 26. 전국 곳곳에 한파 경보가 발령된 이날 소녀상도 털모자, 목도리, 담요로 중무장했다. 3 2012. 2. 13. 1970~80년대 청계천과 경기도 화성 등지에서 빈민 구제 활동을 벌였던 일본인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가 소녀상 앞에서 ‘울 밑에 선 봉선화’를 연주하고 있다. 4 2012. 1. 4. 2012년 첫 번째 집회에 나온 길원옥 할머니가 생각에 잠긴 채 소녀상을 바라보고 있다. 5 2012. 8. 29 경술국치일 102주년. 경찰관들이 일본의 우익 테러에 대비해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앞선 2012년 6월 일본 극우 정치인 스즈키 노부유키는 위안부 소녀상에 ‘말뚝테러’를 가했다. 당시 그는 소녀상에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고 적은 말뚝을 묶어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6 2013. 1. 2. 새해를 맞아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다. 7 2013. 9. 25. 수요집회에 참여한 학생들이 빈 의자 위에 올려놓은 화분.
평화의 소녀상은 수요집회 1,000번째를 맞이한 2011년 12월 14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건너편에 세워졌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이 계획했고, 김운성·김서경 작가 부부가 소녀상을 공동 작업했다. 소녀상 옆 돌바닥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1992년 1월 8일부터 이곳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시위가 2011년 12월 14일 1,000번째를 맞이함에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를 잇고자 이 평화비를 세우다.”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과거사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가 열린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짧은 단발머리 소녀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주먹을 움켜쥔 채 일본대사관을 바라보고 있다. 시민들은 날씨가 추워지면 소녀상에 목도리를 둘러주고, 비가 오면 우비를 입혀준다. 혹시나 손발이 시릴까 봐 핫팩이나 장갑, 신발을 갖다놓기도 한다. 이렇게 시민들의 각별한 애정을 받고 있는 소녀상은 높이 130cm로 생각보다 작다. 수요집회 현장에서는 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은 동상이 갖는 의미는 거대하다. 맨발 차림은 일본군 위안부들의 고단했던 생활을 보여준다. 발꿈치가 들려 있는 모습에는 고향에 돌아와서도 편히 정착하지 못한 할머니들의 설움이 담겼다. 소녀의 단발머리는 일본군이 댕기머리였던 위안부들의 머리를 강제로 잘라낸 것을 표현하고 있다. 거칠게 잘린 머리카락은 부모와 고향으로부터 강제로 단절됨을 상징한다. 꽉 쥔 주먹은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1 2013. 3. 2. 1066차 정기 수요집회가 열린 날. 비가 온 탓에 노란 우비를 입었다. 2 2014. 5. 7. 어버이날 하루 전. 소녀상의 두 손 위에 놓인 카네이션. 3 2015. 7. 9. 소녀상 아래 놓인 꽃신. 이날 열린 1186차 정기 수요집회는 고 최금선 할머니의 영정과 함께였다. 2016년 1월 현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46명뿐이다. 4 2016. 1. 14.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한·일 협상안 폐기 대학생 대책위원회’ 소속 학생들이 한·일 위안부 협상을 규탄하는 문화제를 열고 밤샘 농성을 하고 있다.
소녀상 제작자인 김운성 작가는 소녀상 이전 문제가 불거진 데 대해 “(일본이) 타 국가의 조각품을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라며 “‘불가역적’이라고 표현하며 다시는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것은 진정한 사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진심으로 사죄한다면 소녀상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글 / 노도현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