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끝난 21대 총선에서 야당이 대패했다. 그 원인으로 다양한 문제가 지적되는 가운데 야당 후보들의 연이은 막말도 그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모 후보의 세월호 막말과 이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는 야당 수뇌부의 행보에 중도층 유권자들이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 여러 곳에서 나왔다. 전 국민을 충격 속에 빠뜨리며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세월호가 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슬픔의 바다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의 한 기준이 됐다. 세월호 참사의 정부 책임을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으냐, 이를 여전히 슬퍼하느냐 이제 그만 잊자고 하느냐 등으로 의견이 나뉜다. ‘촛불 시민’과 ‘태극기 부대’로 사람이 갈리기도 한다. ‘먼훗날 한국사회를 되돌아보면서 세월호 참사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로 나눠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과 관련한 여러 의혹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그러는 가운데 세월호 희생자와 피해자를 모욕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그 수위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하루속히 세월호 참사의 모든 의혹들을 밝혀내고 책임자들을 합법적으로 처벌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피로감을 빨리 풀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키우는 개인과 단체 또한 늘고 있다. ‘세월호침묵행동’도 그들 중 하나다.
‘세월호침묵행동’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저녁이면 광화문 교차로에 나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스카프피켓행동’을 침묵 속에 진행한다. 또 일요일에는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혜화역 2번 출구 근처에서 세월호 관련 리본이나 배지 등을 나눠 주며 ‘세월호를 기억해 달라’고 호소한다. 더러는 일요일과 공휴일을 빼고 매일같이 청와대 앞에서 진상규명을 눈물로 호소하는 고 임경빈군의 어머니 옆에서 힘을 보태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세월호침묵행동’이 세월호 참사 관련 단체들 중 비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사람의 도리’를 할 뿐이다. 그래서 대표도 없다. 서로가 뭐를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저 세월호 희생자와 피해자들의 아픔을 보듬어 안아주고 싶을 뿐이다. 이를 위해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마다 강원도 원주에서 달려오는 사람도 있다.
이들의 첫걸음은 유희씨(40)가 지난해 5월28일 광화문에서 세월호 리본스카프를 들면서 시작됐다. 전날 청와대는 ‘세월호 특별수사단 설치와 전면 재수사’를 바라는 국민청원에 대한 답변에서 “아직 독립적인 수사체계를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청와대가 문제 해결을 위해 팔소매를 걷어붙이기를 바란 시민 가운데 한 명이던 유씨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청와대 답변에는 의지도 없고, 내용도 없다고 생각했다. 사참위 뒤에 숨어 버린 청와대에 화가 났다. 그래서 홀로 광화문에 나서 침묵한 채 피켓을 들었다. 그런 유씨 곁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유씨는 “오래전부터 노란리본공작소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촛불정부의 책임있는 답변을 기다렸는데, 너무 실망스러웠다. 소리치지 않으면 가슴이 무너져 버릴 것 같았다. 무작정 피켓을 들고 광화문에 섰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11개월. 절대 녹록지 않은 시간이었다.
“지나가면서 아무렇지 않게 세월호 희생자와 피해자를 모독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이 많다. 더러는 ‘못된’ 유투버들이 찾아와 그런 말을 하고 녹화까지 해 간다. 그런 날이면 몸 안의 모든 장기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을 겪는다. 지독한 몸살 같은….”
그러나 모든 이들이 그러는 것은 아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 ‘힘내라’고 응원해 주고, 그럴 때면 정말 힘이 난다고 유씨는 전한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더욱 무장이 되는 느낌이다. 추운 날에는 핫팩을 잘 쓰는 요령이 생겼고,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우비를 입고 버틸 강단이 생겼다. 경빈이 엄마 등 세월호 유가족들이 모든 억울함을 풀었다고 말씀하실 때까지 피켓을 들 것이다.”
유씨 옆에서 함께 피켓을 들고 있는 김지수씨(55)는 “세월호가 점점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세월호는 희생자와 그들 가족의 문제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조차 밝혀내지 못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우리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김씨는 ‘이 일을 하면서 어떤 보람이 있느냐’는 물음에 “보람을 찾으려 하는 일이 아니다. 살려고 하는 일이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수백명이 한꺼번에 생목숨을 잃었는데, 그에 대한 진상규명도 이뤄지지 않고, 진실을 밝혀 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되레 괴물이 되는 곳이라면, 그곳이 곧 지옥이다. 지옥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국회를 향해서도 쓴소리를 내뱉었다. 많은 의원이 가슴에 배지만 달고 겉으로만 행동할 뿐 세월호 진상규명 등 실질적은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월호침묵행동’에는 단원고 희생자 김동영군의 아버지 김재만씨(57)도 함께하고 있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 달라는 것은 누구에게 보복해 아이들의 한을 풀기 위함이 아니다.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 다만 상대가 누구이고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아야 용서고 뭐고 할 수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진도에서는 장례를 치를 때 상주를 웃음짓게 할 정도로 흥을 돋운다. 나도 그러고 싶다. 세월호 참사의 모든 의혹이 밝혀지면 해마다 4월16일을 ‘슬픔을 기억하는 날’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더욱 안전해진 것을 기뻐하는 날로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세월호의 진실은 여전히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아 있다. 그곳이 더는 슬픔과 원통의 공간이 아니라 위로와 배려의 공간이자 ‘안전 교육의 장’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세월호침묵행동’의 소리 없는 외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상규명이 우선이다.
■세월호침묵행동은?
현재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 등을 위해 활동하는 주축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다. 하지만 두 곳 외에도 전국적으로 수많은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려 애쓰고 있다. 세월호침묵행동도 그중 하나로, 시민 10여명이 순전히 자신들의 주머닛돈으로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 가족들의 아픔을 보듬어안는 일을 해오고 있다.
정기적인 모임이 있고 여러 행동도 함께하지만 회비나 규칙 같은 것은 없다. 당연히 대표도 없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의 아픔은 우리 사회가 잊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희생자 가족들이 사고 책임자들을 용서했을 때 비로소 씻어지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