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자신과 김정숙 여사의 재난지원금 60만원을 기부했다. 소비를 통한 경제활성화가 재난지원금 지급의 기본 취지이지만 형편이 어렵지 않은 국민들의 기부를 독려해 정부의 재정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자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상조 정책실장도 문 대통령과 뜻을 같이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기재부 과장급 이상 공무원들도 모두 재난지원금 전액을 기부키로 했다. 정세균 총리 역시 지원금을 기부하기로 했으며, 민주당 지도부 전원 또한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고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그뿐 아니다. 금융권을 비롯한 대기업들에서도 정부의 기조에 발맞춰 임원과 간부급 직원들이 속속 기부 의사를 속속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기부 분위기 조성과 달리 많은 지자체들은 ‘지원금을 기부하지 말고 받아서 소비해 달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지역경제 살리기가 그만큼 시급하다는 소리다.
최문순 강원지사는 지난 13일 강원도청 앞 광장에서 ‘다 함께 동행, 지역 경제살리기 챌린지’ 캠페인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최 지사는 “긴급재난지원금을 기부하면 국고로 귀속될 뿐이다”라며 “나는 기부하지 않겠다. 받아서 지역경제를 위해 쓰겠다”고 소비를 장려했다.
특히 최 지사는 “정부는 자발적 의사에 따라 기부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공직사회에서는 일정 직위 이상의 직원은 알아서 기부하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지적하면서 “재난지원금 사용은 코로나로 무너진 지역상권을 살리는 ‘경제방역’인 만큼 모두 지역에서 소비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최 지사는 강원도와 시·군 공직자는 물론 도민들도 모두 재난지원금을 지급받아 강원도 경제를 위해 써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강원도에서는 도청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재난지원금을 적극 사용하는 범도민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전통시장 이용하기, 음식점·카페 이용과 의류 등 구입 시 소상공인 상가 이용하기, 플라이강원 항공권 구매 등이 핵심이다. 소비활동 권장을 위해 지난 15일에는 도청 앞에서 ‘찾아가는 직거래장터’를 열기도 했다.
충북 영동군에서도 ‘재난지원금을 지역상권을 살리는 마중물로 삼아야 한다’며 재난지원금을 선불카드로 받아 쓰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로 충전할 경우 충북 전체에서 쓸 수 있지만, 선불카드로 재난지원금을 받으면 지역상품권처럼 영동 지역 내에서만 써야 한다. 이에 군은 세무서·경찰서·금융기관 등에 협조공문을 보내 동참을 당부하고 있다.
지원금을 기부하기로 한 박세복 군수도 일단 지원금을 받아 전통시장 등에서 물품을 구매하고, 자신이 같은 금액을 군청 주민복지과에 기탁하는 식으로 지역경제를 챙기고 기부약속도 지키키로 했다. 박 군수가 받은 지원금은 100만원이다.
서울에서도 ‘기부 대신 소비’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먼저 양천구는 재난지원금을 수령해 지역상권 활성화에 기여하는 ‘나눔 소비’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자신이 받은 정부 재난지원금(60만원)의 2배인 120만원으로 동네 단골가게와 전통시장에서 선결제하는 방법으로 ‘착한 소비’를 실천했다.
또 은평구는 다음달 30일까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재난지원금 집행을 통한 ‘아름다운 소비’ 운동을 펼친다. 직원 1명이 지역 내 단골 업소 3~4곳을 만들어 소비를 촉진하는 것. 직원들은 지역 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가게, 전통시장 등에서 재난지원금을 소비하고 이를 SNS 등에 게시하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의 소비도 장려한다. 재난지원금으로 생필품을 구매해 ‘푸드뱅크마켓’에 기부하는 프로젝트도 벌인다.
지자체장 가운데 기부를 처음 제안한 김경수 경남지사 역시 소비도 함께 권장하고 있다. 김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기부가 아니어도 ‘착한 소비’를 통해 경기 활성화에 힘을 보태 주시면 된다”고 전했다.
한편 원희룡 제주지사는 재난지원금이 소비로 이어져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도록 사용지역 제한을 없애자고 정부에 건의했다. 정부 재난지원금은 3월29일 기준으로 가구주의 주민등록상 주소지에서 접수·지급하는데, 3월29일 이후 제주도로 주소지를 옮긴 사람들은 지원금을 사용하려면 타 지역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시·도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