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장 근처 주거지 주민들의 파킨슨병 발병 위험이 최대 126%로 치솟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픽셀즈
내 집 앞마당처럼 쓸 수 있는 한적한 그린과 넓은 잔디밭… 미국 멤버십 골프장 내에는 고급 주택단지가 조성돼있는 광경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이를 따라 국내에도 일부 골프장 내 별장 내지는 주거지 용도로 집이나 토지를 분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런 골프장 근처 주거지가 뜻밖의 건강 위협으로 떠올랐다. 새 연구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미국 내 연구에 따르면 골프장 반경 1.6km(1마일) 이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파킨슨병 발병 위험이 최대 126% 높아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농약이었다.
■ 연구 결과…“가장 큰 위험은 ‘농약’”
미국 바로우 신경학 연구소(Barrow Neurological Institute)가 24년간 미네소타주 올름스테드 카운티 주민들의 파킨슨병 진단 이력을 추적 조사한 결과, 주거지에서 골프장까지의 거리와 파킨슨병 발병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연구는 미국의학협회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139곳의 골프장과 해당 지역 주민들의 거주지를 비교 분석했으며, 특히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하는 지역에서는 파킨슨병 발병 위험이 거의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지반이 물을 잘 흡수하는 ‘취약한 지하수 지역(vulnerable groundwater regions)’에서는 농약이 빗물과 함께 토양을 통과해 식수원에 침투할 수 있어 위험은 더 컸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이 단순히 ‘골프’라는 취미나 스포츠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간 축적된 농약 노출과 같은 환경 요인이 본질적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 파킨슨병, 전 세계 환자 1,180만 명…폭발적 증가세
파킨슨병은 운동 기능, 언어 능력, 인지 기능에 영향을 주는 퇴행성 질환으로 현재까지 완치법이 없다. 유전적 요인도 일부 있지만, 환경적 노출이 주요 위험 요소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파라콰트(Paraquat), 로테논(Rotenone) 등 일부 농약은 동물실험에서 파킨슨병과 유사한 증상을 유발한 것으로 나타나, 국제적으로도 규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 환경단체 비욘드 페스티사이드(Beyond Pesticides)에 따르면 미국 골프장에서 사용되는 농약의 인체 위해 가능성은 유럽 대비 최대 15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떨까? 사단법인 세계골프지도자협회 이한영 이사장의 한 매체 칼럼에 따르면 현재 국내 골프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농약은 살충제 ‘클로로탈로닐’이다. 클로로탈로닐 역시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이 커서 유럽연합과 스위스에서는 2019년부터 이미 사용이 전면 금지된 농약이다.
이번 연구는 골프장 인근 거주자들에게 즉각적인 이주를 권고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공 공간 내 농약 사용 방식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와 지방정부가 농약 사용 규제를 강화하고, 골프장들이 최대한 친환경 농약을 쓰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