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항소심…설득은 ‘기록’에서 시작된다

최가경 변호사의 이혼 승소 노트

뒤집힌 항소심…설득은 ‘기록’에서 시작된다

최가경 변호사

“항소심은 최 변호사가 봐야죠.”

언제부턴가 로고스 안에서는 1심에서 결과가 좋지 않았거나, 기록이 복잡한 항소심 사건이 들어오면 내 이름이 먼저 오르내리곤 했다. 누가 처음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항소심 전문”이라는 조금 부담스러운 별명도 따라붙었다.

그날도 파트너 변호사님께서 사건 기록을 들고 나를 찾으셨다.

“이 사건은 최 변호사가 한번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고마운 말이었지만 부담이 먼저 밀려왔다. 별명은 별명일 뿐인데, 사건 기록은 늘 진짜였으니까. 미팅에 들어가 보니 의뢰인은 이미 다른 변호사를 선임해 1심을 진행한 상태였다. 그런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의뢰인은 15억 원 상당의 재산분할금을 청구했다. 상대방은 5억 원을 청구했다. 그런데 1심 법원은 오히려 의뢰인이 상대방에게 위자료와 재산분할금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청구한 사람이 받기는커녕, 도리어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은 것이다.

의뢰인은 이미 한 번 변호사를 믿고 맡겼다가 좋지 않은 결과를 받은 뒤였다. 그런 의뢰인이 다시 변호사를 찾는다는 것은 처음 사건을 맡기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그런데 의뢰인은 항소심만큼은 로고스에서, 그중에서도 내가 직접 봐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항소심 전문이라니. 누가 붙인 별명인지 참.’

속으로는 잠시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겉으로는 태연한 얼굴을 했다. 부담스럽다고 해서 기록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니까.

사건은 정말 쉽지 않았다. 1심을 대리한 곳은 인지도와 업무역량으로 손꼽히는 대형 법인이었다. 양측이 제출한 서면만 총 45회에 달했다. 이미 충분히 다투어진 사건처럼 보였다.

게다가 의뢰인 부모의 무리한 사업 확장과 실패라는 사정도 분명했다. 1심 법원은 이를 혼인 파탄의 원인으로 보았다. 상대방도 그 부분을 강하게 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항소심에서 뒤집을 방도가 쉽게 보이지 않았다. 대형 법인이 대리했고, 서면 공방도 충분했고, 불리한 사실관계도 명확했다. 항소심에서 새로 만들 수 있는 틈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기록은 다시 봐야 했다. 항소심은 억울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절차가 아니다. 1심 판결이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 찾아내고, 그 부분을 기록과 증거로 설득해야 하는 절차다.

나는 1심 판결문과 양측 서면을 다시 읽었다. 한 번 읽어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두 번 읽어도 지나치는 것이 있다. 그런데 기록을 오래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 이상하게 걸리는 지점이 생긴다.

이 사건에서는 사업상 이득의 귀속 문제가 그랬다.

1심은 의뢰인 부모의 사업 실패를 혼인 파탄의 원인으로 보았다.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의뢰인에게 불리한 사정이 맞다. 그러나 사업은 실패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이득의 상당 부분은 의뢰인 부부에게 귀속되어 있었다. 부부 공동생활과 재산 형성에 반영된 부분도 있었다.

손실만 의뢰인 측 책임으로 보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이익이 부부에게 귀속된 부분을 충분히 보지 않는다면 균형이 맞지 않는다.

그때부터 길이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업상 이득이 의뢰인 부부에게 귀속되었다는 증거를 새롭게 수집했다. 흩어진 자금 흐름을 다시 정리했고, 1심 판결이 놓친 부분을 중심으로 항소심 전략을 다시 세웠다.

그렇게 총 70면의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50면의 준비서면을 추가로 제출했다.

면수가 많다고 좋은 서면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사건은 몇 문장으로 방향이 바뀌지 않는다. 특히 1심에서 대형 법인이 대리했고, 양측 서면만 45회가 오간 사건이라면 더 그렇다. 재판부가 기록을 다시 보게 만들어야 했다.

변론기일이 열렸다. 그날 상대방은 소송 외 합의를 제안했다. 처음 사건을 맡았을 때만 해도 쉽게 길이 보이지 않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흐름이 바뀌고 있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의뢰인은 위자료를 지급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재산분할금 1억 원을 지급받게 되었다. 1심에서 월 440만 원으로 정해졌던 양육비도 월 640만 원으로 증액되었다.

처음 의뢰인이 들고 왔던 1심 판결과는 전혀 다른 결론이었다. 사건이 끝난 뒤, 파트너 변호사님께 연락이 왔다. 의뢰인이 여러 차례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했다. 항소심을 최 변호사에게 맡기길 정말 잘했다고도 하셨단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조금 안도했다. 이미 한 번 패소한 의뢰인이 다시 변호사를 믿는 일은 쉽지 않다. 그 두 번째 선택이 나였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고, 그래서 더 물러설 수 없었다.

며칠 뒤에는 의뢰인이 직접 긴 메시지를 보내왔다. 1심 판결 이후에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몰랐는데, 이제야 조금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문장을 읽고 한동안 휴대폰 화면을 바라봤다.

‘이런 말을 들으려고 그 많은 기록을 다시 봤나 보다.’

그런데도 기록을 다시 보면 길이 보일 때가 있다.

결국 핵심은 전문성과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라고 느낀다. 좋은 결과는 감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록 속에 묻힌 한 줄을 찾아내고, 그 한 줄을 재판부가 다시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항소심은 1심을 반복하는 절차가 아니다. 1심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설득하는 절차다. 그리고 그 설득은, 억울하다는 말이 아니라 기록에서 시작된다.

※법률 포인트 정리
이혼 항소심의 핵심: 1심 판단의 오류를 구체적으로 특정하는 것
재산분할 쟁점: 사업 실패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이익이 부부에게 어떻게 귀속되었는지도 함께 검토해야 함
양육비 쟁점: 1심 판단이 있더라도 자녀의 복리와 부모의 소득에 따라 항소심에서 다시 다툴 수 있음


※승소 전략
1심 판결문과 양측 45회 서면 전면 재검토
대형 법인이 대리한 1심 패소 사건에서 누락된 쟁점 발견
의뢰인 부모의 사업 실패라는 불리한 프레임 재구성
사업상 이득 귀속 증거 새롭게 수집
70면 항소이유서와 50면 준비서면 제출




최가경 변호사


법무법인(유) 로고스 변호사(가사/상속팀).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자산가 이혼, 상속 사건 및 유명 연예인 사건 다수 수행. 서적 <가정법원 너머의 이혼상속 상담일지>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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